겨울 들녘에 서서
오세영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거기 있다.
먼 별을 우러르는
둠벙의 눈빛.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빈 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잠들지 못하는 건 사랑이다>(2002)-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교훈적, 존재론적, 관조적, 역설적
◆ 표현
* 통사구조의 반복을 통해 의미를 강조함.
* 관조적 태도로 겨울 들판을 통해 깨달음에 이름.
* 자연물을 통하여 삶의 아픔을 역설적으로 극복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겨울 들녘 → 아픈 사람에게 성찰과 각성의 계기가 되는 시적 공간
* 빈 공간의 충만 → 역설법, 수확이 끝난 자연이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는 데서
느끼는 기쁨의 충만
* 아낌 없이 주는 자 →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존재(낟알을 가리킴)
* 지상의 만남 → 이승에서의 짧은 만남
*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 → 이별을 영원한 만남으로 승화시키는 존재(둠벙을 말함)
* 먼 별 → 이별의 대상
* 둠벙 → 웅덩이의 사투리
* 너 → 그리움의 대상
*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 된 자의 성찰
→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서는 그리운 대상과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역설적 표현
◆ 화자 : 아낌없이 주며 기쁨을 간직하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 사랑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교훈과 위안을 얻으라고 권유하는 위치에 서 있는 인물
◆ 청자 : 사랑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이며, 이별 후 그 대상을 잊지 못해 그리움으로
가슴을 쥐어뜯는 사람
◆ 주제 : 겨울 들녘에 가서 받는 위안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수확이 끝난 논의 낟알을 통하여 참된 사랑의 의미를 일깨움.
◆ 2연 : 둠벙을 통해 이별의 슬픔을 영원한 만남으로 승화시키는 삶의 태도를 일깨움.
◆ 3연 : 허수아비를 통해 외따로 있음을 더불어 지내는 것으로 성찰하는 삶의 태도를 보임.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괴로움과 슬픔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겨울 들녘으로 안내하는 화자의 목소리가 담담하고 다정하게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겨울 들녘은 빈 공간이지만, 그 모습 자체로 괴롭고 슬픈 인간에게 위안과 교훈을 주는 자연이다.
■ 오세영의 작품 경향
모더니즘에 심취해 있던 초기에는 기교적이며 실험 정신이 두드러지는 시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언어의 예술성에 철학을 접목시키는 방법론적 문제로 고민하던 시인은 동양 사상, 특히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후 그는 불교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사물의 인식을 통해 존재론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함으로써, 현대 문명 속에서 아픔을 느끼는 인간 정서를 서정적으로 형상화하는 시적 변모를 모색하였다.
[작가소개]
오세영 Oh Sae-young시인, 명예교수
출생 : 1942. 전라남도 영광
소속 : 서울대학교(명예교수)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 박사
데뷔 : 1968년 시 '잠 깨는 추상'
수상 : 2014년 제4회 김준오시학상
경력 : 2011~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관련정보 : 네이버[지식백과] - 저술/연재 글 모음
작품 : 도서 147건
1942년 5월 2일 전남 영광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8년 『현대문학』에 시 「잠 깨는 추상」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연작시인 「무명연시(無明戀詩)」를 비롯하여 「모순의 흙」, 「우수시초(憂愁詩抄)」, 「그릇」, 「아크로바트」, 「하일(夏日)」 등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시집 『반란하는 빛』(1970),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1982), 『무명연시』(1986), 『불타는 물』(1989), 『사랑의 저쪽』(1990), 『신의 하늘에도 어둠은 있다』(1990), 『무명연시』(1995), 『반란하는 빛』(1997), 『벼랑의 꿈』(1999), 『적멸의 불빛』(2001), 『봄은 전쟁처럼』(2004), 『시간의 쪽배』(2005), 『문 열어라 하늘아』(2006), 『임을 부르는 물소리 그 물소리』(2008), 『바람의 그림자』(2009) 등을 간행하였다.
한편 「이상의 시 세계」(1972), 「30년대 모더니즘, 비극적 상황의 주인공들」(1975), 「고전의 시적 변용-‘춘향전’의 경우」(1975), 「비 혹은 우수의 미학」(1976), 「무한에의 그리움, 노천명」(1981), 「슬픔, 사랑 그리고 죽음의 미학」(1989), 「비 혹은 우수의 허무주의」(1995), 「색계와 무색계를 넘어-서정주 ‘80 소년 떠돌이의 시’」(1997) 등 다수의 평론을 발표하였다.
평론집으로 『한국 낭만주의 시 연구』(1980), 『한국현대시의 행방』(1988), 『상상력과 논리』(1991), 『한국 근대문학론과 근대시』(1996), 『김소월, 그 삶과 문학』(2000), 『시적 상상력과 언어』(2003), 『한국 현대시인 연구』(2003), 『우상의 눈물』(2005)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녹원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현대시』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존재론적 인식을 통하여 역사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모더니즘의 언어의식을 전통사상에 접맥시키는 데 주력하며, 언어를 극도로 정련, 함축시키는 지적 구사와 서정의 접맥을 시도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세영 [吳世榮]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