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김일성주체사상교(주사파) 신도,
주사파 교사 단체인 전교조 창립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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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재/전교조 출신 국회의원 도종환]
-1991년 7월22일 인민군 출신의 ‘빨치산' 김영태의 회갑 잔치에 참여-2012년 5월 작성
都鍾換(도종환) 의원은 1989년 전교조 창립을 주도했다가 해직·투옥된 전력이 있다. 해직 10년 만인 1998년 교사로 복직해 2004년까지 덕산중학교 교사로 재직했으며, 2011년 소위 야권 통합 추진모임인 ‘혁신과 통합’에 참여했다.
都 의원은 2010년 12월12일자 인터넷 <한겨레>에 기고한 ‘도종환의 나의 삶 나의 시’에서 자신의 투옥 전력을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 나라 역사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교과서 역시 그 잘못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과 군부독재의 역사를 거쳐 오는 동안 진실을 왜곡 은폐하거나 불의와 거짓을 미화한 교육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를 고쳐 본 적이 없고 바르게 가르쳐 볼 수가 없었습니다. 친일을 한 문인, 지식인에 대해 사실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과서가 없었습니다. 독재자의 사진을 다른 독재자의 사진으로 바꾸어 걸어놓은 교장실에 앉아 교장은 교사가 지켜야 할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강변했습니다. 저희야말로 진정으로 교육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가치중립이란 입장의 무입장을 강요받는 경우나 정권편의주의에 의해 이용당해온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한국 현대사가 '잘못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都 의원은 1991년 7월22일 인민군 출신의 ‘빨치산' 김영태의 회갑 잔치에 참여했다(1991년 7월24일 <한겨레신문> 인용).
비전향 장기수 김영태는 김대중 정권시절 6·15선언에 따라 판문점을 거쳐 北送(북송)된 후 2008년 북한에서 사망했다. 북한은 2004년 김영태를 모델로 한 소설 《北으로 가는 길》을 펴내는 등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과 함께 그를 ‘의지와 신념의 강자들’로 평가해왔다.
김영태는 6·25전쟁당시 남부군 李鉉相(이현상) 사령관 호위부대 소속으로 李 사령관의 호위병 생활을 했다. 1971년 7월 17년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대전교도소에서 출감했다가 사회안전법에 걸려 다시금 대전보호감호소에 수감됐다. 전향서를 쓰지 않아 13년이 지난 1989년 10월 청주보안감호를 나왔다.
都 의원은 2009년 8월 '노무현 시민학교 강좌에 한명숙·신영복 부부, 문재인 등의 인사들과 함께 이른바 시민주권 강좌, 역사·문화 강좌(강사: 도종환, 신영복), 언론강좌 등에 참여했다.
都 의원은 2012년 1월20일 작가 조정래, 공지영 등 한국작가회의(舊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작가들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인 서귀포시 강정마을을 찾아 해군기지 건설 반대 활동을 했다.
당시 都 의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작가들이 현실에 발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저항의 글쓰기를 하고, 현실의 잘못된 것에 행동해야 했다.
그동안 해군기지 반대를 위해 연인원 500명이 걸었다. 국도를 따라 걸으면서 작가 정신이 다 죽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게 됐다”며 “이런 일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되는데 장담은 못하지만 강정과 구럼비 바위를 소재로 한 詩(시)가 써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줄곧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해온 左派성향 문인단체로 2005년 강정구 前 동국대 교수가 ‘6·25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을 때 姜 씨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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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