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출발한 남프랑스의 일정
제노아에 도착한 날이다
여행은 호텔과 이동 사이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날은 조금 달랐다.
해가 산 너머로 내려앉으며 바다 위에 남겨둔 빛이
나를 먼저 이곳의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가이드님은 조용한 분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한 번 꺼낸 이야기는 오래 머문다.
묵직한 저음으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
시간은 현재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오스만제국의 바람이 스치고
플라톤의 사유가 이 바다 위에 내려앉는다.
알렉산더의 발걸음이 이 길 어딘가를 지나갔을 것만 같은 착각 속에서
우리는 그저 걷고 있었다.
산타마리아그루아의 해변은
생각보다 더 조용하고 느렸다.
작은 배들이 물 위에 가만히 머물러 있고
집들은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물에 비춘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람도 크게 불지 않았다.
그저 지나가는 정도였다.
나는 나무 데크 끝에 앉아
발끝을 물 위로 내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풍경 속에 머물렀다.
물 위에 번지는 노을은
누군가의 기억처럼 흐릿하게 퍼지고
잔잔한 물결은 마음 깊은 곳까지 천천히 스며든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디를 더 가야 할 이유도
무엇을 더 봐야 할 조급함도
그저 사라진다.
함께 걷는 사람들과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시간 위에 앉아 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문득 깨닫는다.
좋은 여행은 많은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오래 머물며
내 마음이 따라갈 시간을 주는 것이라는 것을.
제노아의 저녁은
그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 있다고 느껴지는 시간.
그것이
이곳이 가진 진짜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