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세상을 살아 봤다는 나이가 되니 저란 존재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할 때가 많아집니다. 살아 온 날 보다 살아 갈 날이 적다는 걸 의식하는 순간부터 ‘이 세상에 와서 나 자신을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다닙니다. 어쭙잖은 박사 학위는 토질동역학이라는, 광대무변한 우주의 크기에서 보면 개미의 눈물보다 더 작은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도 듣기도 했고 나름 인류를 위한다는 거창한 목표 아래 여러 일거리를 찾아 방황도 했습니다. 지금은 20여 년 전으로 돌아간 제 인생에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새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생활도 어연 십수 년이 되니 황감하게도 새 전문가 소리를 들으며 주업으로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새와 관련된 많은 분야가 아직은 미개척의 영역이 대부분입니다. 저와 같은 아마추어(부전공자)가 새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이런 사실을 대변합니다. 이 일련의 새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조금이나마 가지는 계기가 되어 새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에 일조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은 슬프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과 같이 결코 지지 않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새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일전에 대학 선배의 따님이 운영하는 커피숍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주문한 종이컵에 과테말라라고 적혀 있고 새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이 컵에 그려진 새 그림을 보고 과테말라의 슬프고 가슴 아픈 역사가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습니다. 미국이 있는 대륙으로 유명한 아메리카는 북, 중앙, 남아메리카로 이루어지며, 북아메리카는 미국, 중앙아메리카는 과테말라, 남아메리카는 브라질 등이 있습니다.
현재는 미국이 대륙 이름을 직접 나라 명으로 사용할 정도로 강대국으로서 존재하지만, 지금부터 5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북미와 남미를 잇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이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찬연한 문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대학시절 잠 못 이루는 새벽까지 들었던 사이먼 앤 가펑클의 ‘엘 콘도르 파사(철새는 날아가고)’의 고향인 마야, 아즈텍 문명이 그것입니다. 이 문명의 후손들이 사는 대표적인 나라가 과테말라입니다.
과테말라는 스페인 등의 유럽 침략에 의해 멸망한 문명으로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전설 등의 많은 문화가 스페인의 침략에 대한 저항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 나라에는 ‘케찰(Quetzal)’이라는 새가 있습니다. 몸통 길이는 30~40cm이고, 꼬리가 60~70cm로 전체길이 1m정도 되는 새로, 인도네시아 및 파퓨아 뉴기니에 서식하는 극락조에 버금갈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새입니다.
이 새는 마야문명에서는 태양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개자로서 인식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과테말라의 나라새(국조)가 케찰이며, 화폐의 통화 단위도 케찰이며 나라의 문장 즉 국장 역시 케찰이며 국기에도 케찰이 들어가 있습니다. 즉 케찰 없는 과테말라는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슬픈 연유가 있습니다. ‘키체마야’라는 나라의 마지막 왕자 ‘테쿤 우만(Tecun Uman)’이 누란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스페인 군의 창에 찔려 가슴에 붉은 피가 하염없이 흘렀는데 이 때 케찰이 날아와서 흰 가슴 깃이 피로 붉은 가슴 깃으로 바뀔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케찰의 가슴 깃은 지금과 같이 핏빛 붉은 진홍의 깃으로 바뀌었으며 테쿤 우만의 영혼이 케찰과 함께 한다는 전설에 기인합니다.
이탈리아에 조금은 무식하고 사기성이 있는 하지만 달변인 가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컬럼부스입니다. 고향 이탈리아에서는 이 사람의 말이 잘 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스페인으로 가서 여왕에게 인도를 발견하여 금 등을 가져와 같이 부자가 되자고 유혹을 합니다. 이 유혹에 넘어 간 여왕 덕분에 그는 우여곡절 끝에 신대륙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머리가 부족한 탓으로 죽을 때까지 지금의 아메리카 대륙이 신대륙인지 모르고 인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한 사람 즉, 그의 부하(항해사 혹은 서기로 추정됨)였던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원정이 끝난 몇 년 뒤에 조그마한 책자를 발행(저자에 대해서는 이설도 있음)하고 본인의 이름을 ‘아메리고’라고 사인을 합니다.
이 이탈리어어에 상응하는 라틴어가 ‘아메리쿠스’로 남성명사화한 것이 ‘아메리카’입니다. 이를 ‘발트제뭘러’가 그의 ‘지리학 입문’에서 대륙이름으로 사용한 것이 오늘날의 아메리카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물론 베스푸치는 컬럼부스와 달리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확신했습니다. 즉 컬럼부스는 돈과 명예는 얻었을지 모르지만, 베스푸치와 같은 혜안은 없어서 북, 남 컬럼부스 대륙으로 칭해지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베스푸치를 더 중요인물로 부각시키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이는 야만의 정복자인 서구의 역사이고 선량하고 자족할 줄 알았던 테쿤 우만의 키체마야와 같은 민족들은 이제는 역사에서 사라져 슬픈 전설로만 전해 오고 있습니다. 이 슬픈 전설도 1990년도에 들어와 아픔을 겪게 됩니다. 케찰이라는 새는 신과 테쿤 우만의 새이기 때문에 사육될 수 없어서 붙잡히는 즉시 죽는 새로 인식됩니다. 이는 스페인의 식민지로 사느니 죽음을 택한다는 과테말라 국민 저항성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징성이 흐트러지게 되는 사건이 생깁니다. 멕시코의 유명한 동물원 ‘미구엘 알바레즈 델 토르’에서 케찰을 사육하여 번식에 성공하게 된 것이 그것입니다. 저는 새를 기르는 사람으로서 번식에 비중을 두고 싶지만 이 일만큼은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싶습니다. “멕시코의 케찰은 사람 손에서 길러져도 과테말라의 케찰은 기를 수 없다고”라고 말입니다.
새를 사랑하는 자로서, 또한 열강에 끊임없이 강탈당하고 식민의 긴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우리와 너무나 비슷한 과테말라에 대해서 커피로 기억되기 보다는 밟히고 죽임을 당해도 영혼까지 굴복시킬 수 없는 그 새, ‘케찰’을 더 많이 기억하는 국민이 많았으면 하고 소원해 봅니다. 감히 여러분들께 여쭈어 봅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빛나고 있습니까? 그 누구도 더럽힐 수 없는 빛나는 영혼 말입니다.
▲ 황성춘 박사 동국대 겸임교수·경주버드파크 경주화조원 대표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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