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나키스트' 보기 전, 많은 기대를 했으나, 보고나서 실망을 했다.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여기는 나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었다. 영화는 아나키스트를 테러리스트로 만들었다. 물론,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명백하지만, 나로서는 대단히 불만이었다.
내 일기의 한토막을 소개한다.
"동네 양아치들이 찍어 달라고 노래 부르고 춤 추고 난리다. 평일 날에는 가끔씩 지나가는 군대 차나 부식 팔러다니는 봉고트럭 할아버지가 전부 일 정도로 한가했는데, 요즘은 선거 막바지라서 그런지 매일 시끌벅쩍 하다. 언제 지랄발광이 끝날지..휴..."
매년 선거철이 되어 온 동네가 개판이 될 때마다,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내가 아무리 양아치라고 우습게 알아도 저들 중에 누군가가 우리들의 삶을 좌지우지 할 것이 아닌가. 나아간다면 저들이 우리들의 역사를 규정짓고 만들어가지 않는가. 가치와 진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저들의 가치에 의해 저들의 천박한 역사관에 의해 이 사회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도대체 누굴 찍어야 하는가. 나와 연관된 직간접적인 인간들도 수 없이 많고 내가 속해 있는 정당도 있지만 나는 선뜻 누구 하나 찍을 수 없다. 아무리 찍고 싶어도 손이 벌벌 떨려서, 잘못 찍을 것이 뻔한 것이고, 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 처럼 그렇게 엉터리 역사가 만들어 질 것이고. 우리들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말이다.
도대체 역사란 무엇인가. 게다가 우리가 배우는 한국사라는 것은. 그리고 민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난 도무지 이런 것들이 도대체 왜 존재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그것은 내가 양아치 들 중에서 누군가를 찍어야 하고 그래야만 민주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ㅎ하는 것이고.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개소리와 같은 것이다.
자고로 민족이라는 말을 지꺼린 인간들이 바로 저런 양아치들이 권력을 잡은 19 세기 이후다. 조선시대 까지 우리가 교육 받았고 거의 상식화 되어 있는 한국사와 민족의식을 규정 짓는 고려사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서민들은 도저히 구경도 할 수도 없는, 선비들일지라도 거의 읽을 수도 없었던 희귀한 문서였다. 게다가 단군신화가 몇 줄 언급되어진 신화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 만주 동북 지구 어느 만주 부족 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 정도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헌화로가 이름 지어진 그 사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 건너 일본 사기 역시 19 세기가 한참을 지나서 극우파 일본 정치인들이 어디선가 발굴해낸 것이다. 아니, 그 전에는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을 명치유신 이후로 세상에 등장을 시킨 것이다. 중국 서점에 가 보면 수없이 돌아다니는 통감절요 역시 그렇다.
발해를 한국사에 편입시킨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대조영이 고구려인인가 말갈인인가 대해서는 논쟁이 많지만, 대체적으로 학계에서는 말갈인으로서 고구려의 신하였다는데 동의를 하는 편이다. 대조영이 고구려의 신하였기 때문에 발해의 상층부는 고구려인이고 하층부는 말갈인이라는 논리는 기가 막히다. 우리의 위대한 한국사는 당연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민족 한족은 만주 벌판을 장악하고 호령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잠시 강대국에 움추려 숨을 죽이고 있는 민족이지만 언젠가는 우리의 영토 만주 벌판을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독도에 대한 역사 왜곡과 무엇이 다른가.
아마, 국가주의 전쟁 때문에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말갈족이 있다면 기가 막혀 웃을 것이다.
게다가 명문화된 역사란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석연치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다. 후에 남겨진 극소수 사료만으로 기술된 허구라는 것이다. 더구나 그 상상된 이야기 조차도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혀 없고 권력을 가진 자와 또는 가지려고 하는 자와, 그래서 그런 자들이 쓸 수 밖에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징기스칸이 그렇고 광개토왕이 그렇고 풍신수길이 그렇다.
얼마전, 방송에서 인기리 방영되어진 주몽의 이야기는 비록 무협지 같은 헛소리지만 그래서 봐 줄 만하다는 것이다. 어차피 역사라는 것은 그네들의 영웅 무협지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19 세기 까지 전 세계 인구는 15억에서 20억 사이로 추측이 된다. 그 인구는 거의 이천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20 세기 들어와서 인류의 생활과 성문화가 극도로 발달하여 지금은 70 억 가까운 인구가 되었지만,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인구가 그렇게 급작스럽게 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중세까지의 인류의 역사는 유럽의 역사와 인도와 동 서아시아 일부의 역사가 전부다. 중세까지의 역사에 등장한 인구수를 대충 잡으면 5천만명이 넘지 못한다. 나머지 14억 오천만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 아메리카 아프리카 남 아시아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의 부족들 그리고 북극의 부족들의 역사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나머지 14억 5천만의 역사는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기록되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국가를 형성하지 못했고 권력을 잡지 못했을 뿐이다. 그들의 문명 역시 그들의 사회와 자연환경에 맞추어 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 글자를 갖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을 미개인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역사란 강제된 기록이고 허구라는 것이다. 그것에 준거하여 민족이란 말이 탄생된 것이고, 그것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한국사를 우리는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 증거는 발해의 역사가 한국사냐 중국사냐를 따지는 것이고, 일본사기를 두고 백제인인가 일본인인가 또는 백제 귀화인인가를 따지는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다.
도대체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사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계몽주의자 홉스 루소 로크에 걸처 완성된 사회계약설은 현대국가 정치제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특히,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에는 절대적이다.
미국의 현대국가 이전에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았다.
1만6천 년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살아왔던 인디언은 약 7천 년 전부터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생활방식을 정립했다. 인디언에게는 약 170가지가 넘는 언어가 다양한 문화와 함께 존재했다. “작고 평등하며 자율적인 공동체에서 더욱 복잡한 경제구조의 집중화된 정치집단으로 변모했다.” 유럽인들이 이 대륙에 왔을 때는 현재의 조지아와 플로리다주의 크리크 연방, 남북 캐롤라이나의 체로키 민족과 초크토 민족 연방, 세인트로렌스강 유역의 호데노소니 연방, 그 이웃인 휴런 연방, 뉴잉글랜드의 페나쿠크 연방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미국의 식민지 시절과 독립 당시 백인들과 가장 활발한 접촉을 하며, 영국과 프랑스 전쟁, 미국 독립전쟁에서도 한 변수였던 호데노소니 연방의 사회체제와 그 민주주의는 인디언들이 꾸려왔던 고도의 민주주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미국 독립 이전 영국 영토와 프랑스 영토 사이에 있던 호데노소니 연방은 콜럼버스 도착 전후 200년간 리오그란데강 이북 최대의 정치조직이었다. 이 연방을 이루는 세네카, 카유가, 오논다가, 오네이다, 모호크라는 다섯 민족은 1142년 연방을 수립했다. 이들 민족의 폭력적 분쟁이 끊이지 않자 데가나위다라는 전설적 인물은 다섯 민족 지도자를 모아 “평화, 동포애, 단결, 권력의 균형, 모든 사람의 자연권, 자원의 공유 그리고 지도자의 탄핵과 해임 절차 등을 상세히 규정한 117개 조항의 ‘가이라네레코와’(위대한 평화의 법)를 제정”한다. 그들의 이 헌법에 따라 “폭력 행사의 정당성 독점은 씨족에서 연방에게 옮겨졌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호데노소니에서는 공적 권위에 대해 필요 이상의 거대한 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쿼이 연방으로도 불리는 호데노소니 연방은 뉴잉글랜드에서 미시시피강 유역에 이르는 영토를 지배했다. 여러 민족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연방정치 형태는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어서 유럽인의 호기심 대상이었다”.
연방의 기본 구조는 연방 밑에 민족, 씨족으로 구성됐다. 연방은 전쟁과 평화 및 조약 체결과 같은 대외 문제만 관장하고, 각 민족의 민족장도 그 민족과 타민족 사이의 문제에만 관여했다. 이른바 내치는 씨족의 전권 사항이었다. 호데노소니는 모계사회로 어머니와 그 자녀들로 가족을 구성했다. 몇몇 가족은 오티아너라는 큰 집단에 속했고, 오티아너가 모여 씨족을 형성했다. 이런 모계제에서 씨족 어머니(이들을 오티아니라고도 불렀다)를 우두머리로 하는 결속력 강한 정치집단을 형성했다. 여성의 투표로 결정되는 씨족 어머니는 남성 사절을 대표로 임명하고, 그 남성이 씨족을 대표해 민족회의에 참가했다. 12씨족이 한 마을을 이루고, 마을이 모여 민족을 형성했다. 마을회의, 민족회의, 연방회의가 각 단위 통치기구다. 이는 미국 독립 전의 마을회의(town meeting)와 주의회와 연방의회의 모태가 됐다.
여성은 지도자인 남성을 지명하거나 파면하고, 전쟁에 대한 동의를 했다. 민족장은 씨족 어머니들이 임명했다. 민족장의 자격, 권리와 의무는 엄격하게 정해졌다. 민족장은 권력이 없는 우두머리였다. 이런 민족장은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민족장은 평화의 유지자·중재자, 집단의 조정자로, 이는 전시와 평시의 권력 분화로 나타났다. 평시 민족장과 전시 민족장이 따로 있었다. 민족장에게는 물질적 보상이 없었고, 오히려 구성원들에게 물질적 요구를 들어주는 관대함이 있어야 했다. 말을 잘해야 했다. “국가가 형성된 사회에서 말하는 것은 권력이 지닌 권리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의 의무다.” 그는 매일 교훈적인 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훈계해야 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이른바 ‘인디언 추장들의 교훈적 말’은 그들의 의무였다.
연방은 각 민족 대표 8~15명씩, 모두 50명으로 구성된 연방회의를 두었다. 만장일치제여서, 각 민족의 대표 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방회의에는 대표들뿐만 아니라 일반 남성, 씨족 어머니, 여성, 아이 등 성별·연령 불문으로 참가할 수 있다. 서로 존중하고, 공정한 결과를 위한 복잡한 회의 절차도 상론할 가치가 충분하나, 발표자를 존중하고, 이야기를 중단시키는 것을 엄단한 데서 잘 드러난다. 의원이나 내각 구성원이 말할 때 야유와 칭찬을 보내는 유럽 의회와 달리 미국 의회가 발표자의 발표 때 경청하는 제도는 여기서 연유한다.
회의가 결렬될 위협을 받으면 민족장들은 그 문제를 민중의 결정에 위임해야 했다. 이는 미국의 몇 주가 채택한 주민발의권의 모태가 됐다. 또 민중은 탄핵 심의나 반역 고소의 발의 외에, 특정 문제에 대한 민의를 연방회의에 직접 호소할 수 있었다.
한탕주의자 콜럼버스의 인디언에 대한 배신은 평화주의자 인디언 사회의 아나키 민주주의 공동체를 말살하였다. 뿐만아니라 인디언 사회를 닮은 제 3세계 국가들의 아나키 사회는 세계 곳곳에 살아있었다. 중국의 오지 부족들, 아프리카 아메리카 부족들 그리고 러시아 농촌 공동체 미르, 유럽인들보다 훨씬 앞선 문명국가들이었던 잉카와 아즈택 문명들, 알래스카의 원주민들....이런 사회들은 우리가 역사에서 배웠던 중세 봉권국가 로마제국 보다 훨씬 더 앞서있고 평등한 사회였다.
우리가 영화에서 본 말을 타고 총을 들고 백인과 싸우는 인디언들의 모습은 조작된 것이다. 백인들이 오기 전까지 아메리카 대륙에는 말이 없었다. 북아메리카 대륙은 철저한 농업사회였다. 미국대륙에 넘처났던 초식동물들을 몰살한건 백인들이다.
계몽주의자들은, 제국주의 본인의 국가가 식민지를 강탈해서 도둑질 해온 부를 바탕으로 먹고 놀면서 파리의 카페에 앉아서,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식민지에 자신들의 새로운 국가를 새워야만 하는 당위성을 만들었던 것이다.
홉스 루소 로크가 현대 민주국가의 기틀을 만들었다면, 현대자본주의를 좌우로 나눈 장본인은 칼 맑스와 아담 스미스다.
노름을 좋아하고 평생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맑스와 휴머니스트 점잖은 영국 신사 아담 스미스는 자본주의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을 하였다. 물론, 맑스는 부정의 눈으로 아담 스미스는 긍정의 눈으로 바라 보았지만, 합리성이라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것이 20세기 국가들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진영으로 나누게 된 원인이 되었지만, 그 시대의 천재였고 진보주의자였던 두 사람 역시 옹졸한 시선이었다. 그들은 한 곳에만 머믈러 있었다. 그들은 그래서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여겼고 이론을 책으로 만들었다. 아담 스미스의 자본주의 시장의 자기 조정 능력과 비교우위론은 세계 대전으로 거짓임이 밝혀졌고, 맑스의 사회주의는 러시아 중국이 자본주의에 어느 국가 보다도 열을 올리고 있다. 돈을 너무나 밝혀 인민들까지 혹사 시키는 북한을 보면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