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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 Los Angeles Lakers
Wins: 3,027 Playoff wins: 426 Series wins: 106 Titles: 16 All-Stars: 127 | Best player: Magic Johnson Best coach: Phil Jackson Best team: 1971-72 (69-13, won NBA title) Intangibles: +150. Endless stream of superstars -- on the court and in the sea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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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 카림. 로고. 코비. 샥. 수퍼스타들이 나오면 레이커스는 모두의 앞에 재미 뿐만 아니라 -- 그들의 올타임 베스트5 라인업은 다른 모든 팀들의 베스트 라인업을 압도할 수 있다; 사실, 리그의 나머지 모든 팀들을 다 합한 중에서의 라인업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스타들이 휘황찬란한 전설적인 팀의 베스트 라인업에서 나는 윌트 체임벌린, 엘진 베일러, 조지 마이칸을 제외해야 했는데, 또한 제임스 워디, 밥 매카두와 게일 굿리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빅 네임들은 승리도 거머쥐었다. 셀틱스가 한번의 우승을 더 차지했지만, 레이커스는 우승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셀틱스보다 앞서고 있다 -- 정규시즌 승수, 플레이오프 승수,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 컨퍼런스 타이틀. 이 올타임 랭킹에서 레이커스에게 흠집낼 수 있는 것은 1950년에 미네소타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한 연고지 이전에서의 감점이 유일하다.
이야기는 북쪽으로 가, 조지 마이칸이 미네아폴리스로 하여금 리그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6시즌중 5시즌을 우승시킨 것부터 시작한다. 리그의 첫번째 다미네이팅 빅맨이었던 그는 어떤 전통을 세웠다.
그 이후, 레이커스는 항상 최소한 한명의 괴물같은 빅맨을 가졌다 -- 마이칸, 윌트, 카림, 샥, 파우 가솔 -- 그리고 또한 팬들을 열광시키는 외곽에서의 스타가 그와 함께 했다. (매직, 제리 웨스트, 베일러, 코비)
레이커스가 이뤄내지 못한 단 한가지는 셀틱스를 상대로해서 잘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셀틱스와 가졌던 11번의 파이널에서 LA는 단 3번밖에 이기지 못했다. 베일러의 미네아폴리스 팀이 58-59시즌, 그리고 웨스트와 함께 했던 60년대, 그리고 체임벌린과 웨스트가 뛰었던 팀들이 셀틱스에게 도함 5번이나 연속으로 패배했다.
그 레이커스는 결국 71-72시즌에 69-13의 시즌을 보내며 33연승을 기록하고 -- 아직까지 북미 프로 스포츠 역사상 기록으로 남아있다 -- L.A로서의 첫 타이틀을 안겼다.
70년대의 잠깐의 소강상태 이후, 매직이 카림과 함께 하게되면서 그들은 5개의 반지를 더 차지했다. 1984년에 보스턴에게 또 한번의 끔찍한 7차전 패배를 당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L.A는 거의 20년간 처음으로 연패를 이루는 팀이 되면서 그를 복수했다. 다음해 매직이 파이널에서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생하며 레이커스의 3핏 꿈을 접어야 했지만, 15년 뒤 필 잭슨이 와 샥과 코비로 하여금 그 과업을 이루게 했다.
그 팀은 극적인 재미를 주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 예를 들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2000년 포틀랜드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7차전 막판 코비가 샥에게 띄워준 앨리웁 -- 또한 플레이오프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플레이오프 성적인 15-1을 2001년에 기록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프랜차이즈는 62년간 단 5번만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했다. 밀레니엄 이후 7번이나 파이널에 진출했던 레이커스는, 이제 그들의 숙적 셀틱스에게 2010년 파이널에서 극적인 7차전 우승을 차지하며 그들에게 단 하나의 우승 트로피만 뒤져있다.
No. 2: Boston Celtics
Wins: 3,021 Playoff wins: 324 Series wins: 88 Titles: 17 All-Stars: 131 | Best players: Larry Bird, Bill Russell Best coach: Red Auerbach Best team: 1985-86 (67-15, won NBA title) Intangibles: +50. Deepest tradition in the leag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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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셀틱스의 팬들은 단 한팀의 팬들을 제외하면 리그의 모든 팬들을 상대로 자랑할 권리가 있다. 심지어 그 한팀에게 마저도 물음표를 제기할 수 있다. 셀틱스는 1968년 이후와 전체 랭킹에서 레이커스에게 뒤져있지만, 셀틱스 팬들은 레이커스의 16회 우승보다 더 많은 17회 우승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또한 최근 2008년 6차전만에 따낸 우승을 포함해 그중 9번의 우승이 L.A에게 따낸 것은 물론.
No. 3: San Antonio Spurs
그들이 레이커스나 셀틱스처럼의 전통을 가지지 못했을 지라도, 데이빗 로빈슨이 1989년 스퍼스로 온 이후, 스퍼스는 틀림없이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시간을 가졌다. 지난 21시즌중 12시즌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놀랍게도 그중에 17시즌이나 53승 이상 (1998-99시즌은 82게임 기준으로 계산)을 올렸다. 그 기간동안 딱 한시즌 스퍼스가 좋지 않았지만(1996-97시즌, 로빈슨의 등 부상으로 시즌 아웃 이후 20-62), 그들은 로터리에 참가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고 던컨을 드래프트했다.
2년 뒤, 그들은 리그 역사상 가장 과소평가된 우승팀중 하나로서의 첫 우승 타이틀을 따냈다. 던컨과 로빈슨이 동시에 전성기에 있었으며, 스퍼스를 상대로 페인트존에서 득점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고, 파업으로 인해 짧아진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 마지막 53게임동안 압도적인 46-7의 성적을 기록했다.
샌 앤토니오는 2003년에 다시 우승하면서 레이커스의 연패를 3번에서 괄호로 마무리했고, 1년 뒤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5차전에서 레이커스의 데릭 피셔에게 불명예스러운 "0.4"샷을 허용하면서 스퍼스 스스로 3연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스퍼스는 2005년 피스턴스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7년엔 이력서에 4번째 타이틀을 추가하는 캐벌리어스와의 파이널 스윕을 해 냈다. 다시 한번 3연패의 가능성이 있었던 플레이가 있었다. -- 2006년 댈러스와의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7차전 스퍼스가 3점 앞서고 있던 마지막 순간 터졌던 더크 노비츠키의 3점슛이었다.
그렇게 효율적이던 스퍼스는 그들의 성공에 비해 충격적으로 적은 주목밖에 받지 못했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단조로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 던컨과 함께했던 13년간 매시즌 60%의 승률을 올렸을 뿐 아니라, 최소한 플레이오프 2라운드 이상 진출했던 것이 11차례였다.
그 시점 이전으로 향하면 그들은 거의 정 반대의 상황이었는데, 스퍼스는 조지 "아이스맨" 거빈을 마음껏 득점하도록 활용했지만 좀처럼 승리하지 못했다. 샌 앤토니오는 거빈 시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세번 패배했고, 특히 1979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워싱턴에게 당한 패배는 특히 뼈아팠다 -- 스퍼스가 한때 3-1로 앞서나갔고 7차전 4쿼터에 리드를 잡고 있었으나 결국 2점차로 패배를 맛봤다.
그들의 ABA시절 이야기는 꽤 짧은데, 리그 마지막 시즌이었던 1976년 세미파이널 시리즈 7차전에서 패배하며 시리즈를 내줬다. 그것이 샌 앤토니오가 ABA에서 보낸 단 세시즌중 하나였다 -- 나머지는 6시즌간 5번이나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던 셰퍼렐로 유명한 댈러스에서의 시즌이었다.
그러한 이적은 그들로 하여금 연고지 이전 패널티를 부여해야하지만, 이 케이스에선 그들의 랭킹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68-69시즌 이후 레이커스를 제외한 그 어떤 프랜차이즈도 스퍼스보다 많은 승수를 챙기지 못했고, 그들은 이 리스트에서 안전한 3위다.
No. 4: Chicago Bulls
시카고 불스는 1998년부터 2010년까지 단 한번의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 뿐이며, 1976년부터 1988년까지 역시 단 한번의 1라운드 통과밖에 없는 팀이다. 전체적으로 45년간 50승 이상했던 시즌이 11회며, 올해의 데릭 로즈를 제외하면 10년이상 올스타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고, 첫 24년간 단 한번도 컨퍼런스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했었다.
물론, 1988년부터 1998년까지의 10년을 제외하고 말이다. 불스는 그 기간동안 대단히 뛰어났고, 그 기간을 제외한 35년간 해낸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었을지라도 이 리스트에서 4위에 위치할 수 있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인 마이클 조던이 이끈 불스는 6번의 우승을 따냈고 -- 만약 조던이 마이너리그에서 야구 선수로 뛰기 위해 거의 2시즌간 코트를 떠나있지 않았더라면 더 했을 수도 있었을것이다. 사람들은 조던의 서포팅 캐스트가 그렇게 허접하지만은 않다는것을 잊곤 한다. 스카티 피펜, 호레이스 그랜트, 토니 쿠코치와 동료들은 조던이 없었던 1993-94년에 55승을 합작하며 충분히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 시즌에 그들은 결국 5차전 막판 피펜의 미심쩍은 파울콜 덕분에 컨퍼런스 챔피언이 되었던 뉴욕에게 패배했다.
조던이 있을때? 모든걸 잊으라. 시카고는 조던이 풀타임으로 뛰고 대단한 수비수인 데니스 로드맨이 합류했던 1995-96시즌 폭풍질주를 거듭했다. 시카고는 72-10의 정규시즌 기록을 세우며, 오펜시브-디펜시브 이피션시 양 측면에서 리그 선두였다. 불스는 시즌을 41-3으로 시작했으며 4월 8일까지 홈에서 한 한게임도 지지 않았고, 정규시즌 내내 두자릿수 점수차 패배는 단 한게임 뿐이었다. 그들이 우승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 시즌은 조던의 4번째 우승이었다. 조던의 첫 네번의 우승은 모든팀들이 조던같이 빠른 가드를 막기 편하도록 더욱 피지컬한 수비를 도입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피스턴스든, 닉스든 -- 역대 최고의 수비팀중 두 팀 -- 조던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못했으며, 조던은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4게임만에 첫번째 타이틀을 위해 시동을 걸었고, 닉스는 세게임만에 무너졌다.
불스는 역대 최고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가 팀에 가져다준 수많은 순간들 때문에 재량으로 100점을 추가 부여했다. 그 기간동안의 불스를 본 누구라 해도 역사에 남은 순간을 대부분 팀의 팬들이 한 세기동안 본 것보다 압도적으로 더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조던만이 불스를 우승 후보로 만든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1970년대 초반, 딕 모타는 시카고를 5년 연속 50승 이상으로 이끌고, 컨퍼런스 파이널에 2년 연속 진출했다. 불스는 카림 압둘자바와 같은 디비전이라는 불운을 맛봤지만, 1975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그 해의 챔피언이 된 골든스테이트에게 아깝게 패배하기 전까지만 해도 약속의 땅에 도달한 듯 했다. -- 접전 경기였던 6차전을 그들의 홈코트에서 날려버린 이후, 7차전 역시 4점차로 패배했다. 그 팀은 4명의 키 플레이어가 모두 30대였고, 쳇 워커와 제리 슬론이 한 시즌 뒤 자신의 농구화를 벗으면서 그 빛이 바랐다. 그것이 불스가 조던을 드래프트하기 8년 전이었다.
No. 5: Phoenix Suns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최고의 프랜차이즈"라는 말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칭찬이나, 피닉스의 경우엔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40년간, 선즈는 단 한가지 -- 종내 우승을 해내는 것 -- 를 제외하면 모든 것을 해냈다. 네번의 데케이드동안 제리 콜란젤로의 앞을 내다보는 리더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회가 다른 이의 엽기적이기까지 한 불운으로 인해 망쳐졌다. 어떤 이는 이를 시카고 컵스 '염소의 저주'의 NBA 버전이 아닌가 하고 칭하고 있기도 하다.
피닉스는 리그의 합병(ABA와의)이후 단 7번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지난 33시즌간 18번 50승 이상을 거뒀지만, 그 기간동안 파이널에 나갔던 것은 딱 한번 -- 그들의 홈게임에서 3전 전패하며 불스에게 6차전만에 무릎을 꿇었던 -- 뿐이었다. 1988-89시즌부터 1994-95시즌까지 그들은 최소 53승 이상을 기록했고, 케빈 존슨, 탐 체임버스, 댄 멀리와 찰스 바클리 같은 스타들이 즐비했던확실히 리그에서 가장 재능있는 팀이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결국 승리하지 못했다. 로켓츠와의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7차전에서 리드를 날려버리며, 마리오 엘리에게 위닝 3점을 얻어맞고 키스 세리머니를 구경하며 2-0리드를 지켜내지 못했다. 1990년엔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에게 업셋을 거두며 파란을 일으키는가 했지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모든 경기를 접전끝에 패배하며 승리하지 못했다.
MVP 2회 수상에 빛나는 내쉬와 함께한 최근 시대는 더 비통했다. 연속으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패배했으며, 2라운드 5차전에서 보리스 디아우와 아마레 스타머다이어가 출장 정지 징계를 당하며 그 해의 챔피언이 된 샌 앤토니오 스퍼스에게 가슴아픈 패배를 당했다.
선즈는 초기에 다른 한번의 파이널 진출 역사가 있었다. 1976년, 선즈의 파이널 진출은 그들의 첫 9시즌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던 단 두번의 시즌중 하나였다. 물론 결국 실망스럽게 마무리 되었던 그 해는, 5차전에서 보스턴에게 3차 연장끝에 패하며 파이널 역사상 가장 기억될만한 패배로 남았다. -- 선즈는 결국 6차전만에 파이널에서 패배했다.
No. 6: Philadelphia 76ers
Wins: 2,487 Playoff wins: 199 Series wins: 49 Titles: 3 All-Stars: 95 | Best player: Wilt Chamberlain Best coach: Alex Hannum Best team: 1966-67 (68-13, won NBA title) Intangibles: +50: Have had a transcendent star in every generation except current 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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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역사의 대부분은 많은 승수보다는 대형 스타들로 이루어졌다. 전통깊은 오랜 농구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많은 재능있는 선수들이 거쳐간 이 도시의 팬들은 단 세번의 우승밖에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타 파워에 있어서 이 팀과 대적할 수 있는 팀은 몇 되지 않는다: 필리 광팬들은 쥴리어스 어빙, 모제스 말론, 찰스 바클리, 윌트 체임벌린, 돌프 쉐이즈와 앨런 아이버슨의 전성기를 목격했다. 주역이 아니었던 다음과 같은 스타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할 그리어, 모 칙스, 빌리 커닝햄, 앤드류 토니, 디켐베 무탐보, 쳇 워커, 조지 캑기니스, 덕 칼린스, 바비 존스, 루크 잭슨과 래리 카스텔로 등)
그리고 팀이 필라델피아로 연고를 이전한 이후 있었던 두번의 챔피언 팀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팀에 속한다. 1982-83년 플레이오프에서 단 한번의 패배밖에 하지 않았던 전설적인 "Fo',fo,fo'" 스쿼드와, 1966-67시즌 체임벌린을 중심으로 그때까지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던 68-13을 올렸던 팀이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가 시라큐스에서 있었다. 시라큐스 내셔널스(역주: 필라델피아의 전신, 1949-63)는 1954-55 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내셔널스는 1950년과 1954년 파이널에서 패배했으며, 11년동안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6회나 졌다.
그러한 불운은 필라델피아로 옮겨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식서스는 파이널에서 4회나 패배했고, 가장 최근엔 아이버슨과 래리 브라운이 이끌던 2001년에 패배를 맛봤다. 게다가, 어빙과 체임벌린이 각각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3번씩 패배했는데, 그중의 5번은 그들이 증오해 마지않을 셀틱스에게 당한 것이었다.
아이버슨의 팀은 굉장한 언더독이었으나, 어빙과 체임벌린은 실망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1977년 식서스는 포틀랜드를 상대로 2-0으로 앞서고 있었고, 1977-78년도엔 전체적으로 재능면에서 압도했고 기록면에서도 앞섰던 불릿츠에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후자의 패배는 식서스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당한 세번의 패배중 한번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고통스러웠던 패배는 다음 두 장면일거다: "Havlieck stole the ball" 멘트가 울려퍼졌던 1965년 보스턴과의 파이널에서의 패배, 그리고 1981년 3-1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7차전만에 패배한 증오스러운 보스턴과의 파이널.
1983-84 시즌 역시 타이틀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아주 끔찍한 플레이오프 전주곡이 흘렀다. 식서스는 1라운드에서 만난 뉴저지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셋을 당하고야 말았다.
No. 7: Utah Jazz
Wins: 1,541 Playoff wins: 113 Series wins: 21 Titles: 0 | All-Stars: 40 Best player: Karl Malone Best coach: Jerry Sloan Best team: 1996-97 (64-18, lost NBA Final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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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그렇게 나빴던 프랜차이즈가 결국엔 오랜 기간동안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1974-75시즌 뉴올리언스 재즈로 리그에 들어와, 1979년 솔트레이크 시티로 연고를 이전하기 전까지 재즈는 6시즌동안 단 한번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유타의 재즈 전통이 괌의 스노우보드 문화와 비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재즈" 팀 네임을 유지했다. (역주: 아프리카에 온풍기 팔러갔다는 영업 사원이 생각나죠?)
모든 부분에서 나쁜 팀이었고, 첫 4시즌을 끔찍하게 보낸 프랜차이즈는 단 두번의 운좋은 드래프트로 인해 팀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유타는 1984년 드래프트에서 16번째로 존 스탁턴을, 1985년 드래프트에서 13번째로 칼 말론을 뽑았다. 이 프랜차이즈는 연속된 드래프트에서 다른 팀들이 테런스 스탠스배리나 존 컨책같은 선수를 뽑을 동안, 역대 최고의 선수중 두명을 가져갔다.
게다가 단 두명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80년대 초반, 유타는 확실히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 기간이 있었다. 재즈는 1982년 애틀랜타로 그를 트레이드 하기 전, 다미닉 윌킨스를 3번 픽으로 뽑았고(oops; 만약 'if' 시나리오를 생각해본다면?), 같은 해에 3라운드에서 7-5의 마크 이튼을 강탈해갔으며, 1983년엔 7번으로 털 베일리를, 54번으론 바비 핸슨을 뽑았고, 1986년 15번으론 델 커리를 가져갔다.
이 팀이 급속도로 성장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타는 1989년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와 7게임까지 가는 터프한 시리즈를 만들어 내 리그의 주목을 받았고, 1988-89시즌부터 제리 슬로언이 프랭크 레이든을 대신하기 시작하며 처음으로 50승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슬로언이 팀을 맡은 이후, 팀은 50+승 시즌을 12번이나 보냈다(98-99시즌을 82게임으로 환산했을때는 13번).
불행하게도, 그러한 승수를 포스트시즌에서의 성공으로 변환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재즈는 1992년에 들어서서야 처음으로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1996년 7차전끝에 패한 시애틀과의 컨퍼런스 파이널 시리즈까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후 두시즌은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두 시즌이었다. 유타는 서부 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했고, 마이클 조던에게 파이널에서 6차전까지 가는 엄중한 시험무대를 제공했다. 불스에게 당한 8번의 패배중 6번이 5점차 이내의 승부였으며, 조던이 러셀을 밀치고 꽂아넣은 점퍼는 재즈 팬들에게 고통스러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그 시점에 말론과 스탁튼은 30대였으나 온전히 그들의 전성기라 할 수 있었으며, 그들이 결국 은퇴한 이후에도, 유타는 또다른 유망한 포인트가드-파워포워드 콤보인 데런 윌리엄스와 카를로스 부저를 발견했다. 그들은 2007년에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지만, 아직 그곳에 다시 도달하지는 못했다.
No. 8: Portland Trail Blazers
Wins: 1,683 Playoff wins: 93 Series wins: 19 Titles: 1 All-Stars: 33 | Best player: Clyde Drexler Best coach: Jack Ramsay Best team: 1976-77 (49-33, NBA champions)Intangibles: -50. Two words: Jail Blaz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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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에 누군가 플레이오프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거든, 그들에게 1977년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이야기를 하라. 그들의 경험 미숙에 대해서: 이 프랜차이즈는 그 전까지 단한번의 위닝시즌도, 단 한번의 플레이오프 승리도 없었다. 그렇지만, 압도적인 위력의 센터 빌 월튼과, 위험한 포워드 모리스 루카스의 조합은 다른 선수들과 조합해서 아름다운 스타일의 놀라운 우승을 만들어냈다.
포틀랜드는 그러한 팀을 다시 만들기로 한 이후 세번의 데케이드를 보냈고, 몇번 근접한 성과를 내긴 했지만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다. 1977-78 시즌에 월튼과 바비 그로스가 그해 막판에 부상으로 빠지지 않았다면 성공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을 것이다; 그들은 리그 1위의 성적인 58승을 올렸지만, 플레이오프에서 2라운드만에 탈락했다. 월튼은 몸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고, 결국 FA 자격으로 샌디에이고로 이적했다.
그 우승 이후 32시즌동안 24번의 위닝 시즌과 26번의 플레이오프 진출(연속 21회 포함)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블레이저스는 위대하기 보다는 그저 좋은 팀 정도였다. 사실, 블레이저스는 우승 이후 굉장히 이상한 방식으로 엄청나게 꾸준했는데, 그들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26시즌중 17번동안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클라이드 드렉슬러 시대에 또 다른 우승의 기회가 찾아왔는데, 스타 가드와 올스타 아닌 선수들로 이루어진 앙상블은 두번 파이널에 진출했다(1990, 1992); 불운하게도, 그들은 1991년에 최고 전력을 보유했으나, 그 스쿼드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LA에게 업셋을 당하고 말았다.
블레이저스는 전력을 재구축하기 시작했고, 거의 10년 뒤에 또 기회를 잡았다. 블레이저스는 아비다스 사보니스, 라쉬드 월러스, 브라이언 그랜트, (두번째 해에는) 스카티 피펜과 스티브 스미스가 이끄는 강하고 깊은 선수들이 팀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연속으로 이끌었다. 불행하게도 2000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7차전에서 4쿼터 15점차의 리드를 지키지 못했고, 그 패배는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전승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그 시점 이후, 블레이저스는 스스로 스스로에게 최악의 적이 되었다. 선수들의 연이은 구속과 위법은 그들로 하여금 "Jail Blazers"로 불리게 했고, 월러스는 수갑을 차지 않았지만 리그 테크니컬 파울 기록을 세우는 식으로 역할을 다 했다. 포틀랜드는 확장드래프트 이후 계속 플레이오프조차 진출하지 못하면서 그러한 과거를 지워나가는데 5년을 소비해야했다. 그들은 2009년이 돼서야 드디어 그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익숙한 운명으로 복귀했다: 또다른 1라운드 탈락.
No. 9: Orlando Magic
Wins: 870 Playoff wins: 54 Series wins: 11 Titles: 0 | All-Stars: 20 Best player: Shaquille O'Neal Best coach: Stan Van Gundy Best team: 2008-09 (59-23, reached Final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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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도는 스스로를 불운한 프랜차이즈로 보는 경향이 있고, 사람들 역시 확실히 그런 이야기들은 하곤 한다. 1995년 파이널에서의 닉 앤더슨의 자유투 4연속 실패; 샤킬 오닐의 FA 이적; 페니 하더웨이와 그랜트 힐의 부상 악령; 정체 불명의 하키를 사랑한 남자가 GM으로 있던 기간; 거기에 더해서, 2009년 파이널에서 코트리 리의 레이업 실수까지. 프랜차이즈 역사의 대부분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말들이다.
그러나 그런 부분에 집중한다면 아주 큰 이야기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매직은 90년대 초반 확장 드래프트 팀들중 가장 꾸준하게 성공적이었던 팀이며, 모든 것들을 빅 스타와 함께 했다는 것이다. 샥, 페니,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드와잇 하워드는 거의 모든 프랜차이즈에서도 역대 최고중 한명으로 꼽힐만한 선수들이다; 매직 팬들은 12년의 기간동은 그들을 모두 보아왔다.
올랜도는 2번째 시즌에 31승을 했고, 4번째 시즌엔 샥의 활약에 힘입어 5할 승률을, 그리고 6번째 시즌엔 파이널에 진출했다. 휴스턴과의 파이널 1차전, 마지막 순간 앤더슨의 4연속 자유투 실패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22점차를 날려버리는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매직은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4게임을 모두 패배했다. 2년 후 샥의 LA로의 이적과 페니의 무릎에 이상이 생기며 젊은 왕조는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2008년 플레이오프 직전까지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승리했다. 올랜도는 과거 18년간 17시즌에서 36게임 이상 승리했고, "하키를 사랑한 남자" 존 웨이스브로드(역주: 하워드, 넬슨등을 드래프트하고 터콜루를 데려온 전직 GM이자, 현직 매직 프런트 종사자. 근데 자신은 하키를 사랑하고 농구는 하키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농구에 대한 백그라운드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GM을 맡았다고 합니다. 저도 원문에 하키 가이라는 말이 왜 있는지 몰라 5분간 구글을 뒤졌답니다)가 티맥을 스티브 프랜시스로 바꾸는 등 로스터를 망치는 가운데에서도 괜찮게 관리되어 왔다. 또한 2년 연속 59승 시즌을 보내며 2009년 파이널에 진출하기도 한 매직은, 언제든지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사실, 그들은 이미 그래 왔다 --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작년에 끝내고 올해 다시 업데이트 한 결과, 매직은 올해 1년만에 6단계를 끌어올렸다.
No. 10: Houston Rockets
Wins: 1,737 Playoff wins: 116 Series wins: 24 Titles: 2 | All-Stars: 51 Best player: Hakeem Olajuwon Best coach: Rudy Tomjanovich Best team: 1993-94 (58-24, won NBA tit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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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LA와 유타의 연고를 이전한 이후 그들의 닉네임이 그들이 자리하게된 도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대해 통탄하는데 비해, 휴스턴은 그런면에서 더 운이 따랐다. 로켓츠는 샌 디에이고에 단 4년밖에 머무르지 않고 로켓츠의 이름을 휴스턴으로 가져갔는데 -- 그곳은 NASA의 본부가 자리한 곳이었다. 완벽한 만남이었다.
이 클럽은 역대 최고의 센터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 모제스 말론과 하킴 올라주원 모두 MVP 어워드와 컨퍼런스 우승을 이곳에서 차지했고, 야오 밍은 전세계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팀의 첫 10년간은 단 2번의 플레이오프 진출뿐인 참담한 것이었다. 하지만 로켓츠는 포워드 루디 톰자노비치와 21세의 말론이 합류하면서 센트럴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고 1977년엔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다. 4년뒤, 말론이 이끈 휴스턴은 정규시즌에서 40-42를 기록하고, 플레이오프에서 4년 뒤 레이커스를 업셋한 이후 파이널까지 진출해 보스턴에게 놀랍도록 치열한 경기를 펼친 끝에 6차전만에 패배했다.
2년 뒤 모제스는 떠났지만, 그의 이적은 휴스턴으로 하여금 올라주원과 랄프 샘슨을 연이어 뽑을 수 있는 위치가 될 수 있게 했다. 이 듀오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샘슨의 놀라운 스피닝 샷으로 레이커스를 꺾고 1986년 파이널에 진출해 보스턴에게 다시 6차전만에 패배하고 말았다.
올라주원과 함께한 7번의 연속된 위닝시즌에도 불구하고, 로켓츠는 도무지 벽을 깰 수 없었으며 41승과 52승 사이의 승수를 계속 챙기면서도 매년 1라운드 혹은 2라운드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이것은 1994년 톰자노비치가 합류하면서 -- 이번엔 감독으로 -- 올라주원의 주변에 3점슛이 가능한 롤플레이어들이 자리하고, 하킴의 압도적인 로우 포스트 득점 능력에 의지하면서 바뀌었다. 휴스턴은 로케츠가 이 조합으로 연속 우승을 차지하면서 "클러치 시티"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1995년 컨퍼런스 6번 시드로서의 두번째 우승은 시즌 중반 클라이드 드렉슬러를 트레이드 해오면서 이루어졌다.
그 두 시즌동안 로켓츠는 플레이오프 탈락 위기에 몰린 게임에서 8-0의 승률을 기록했고, 피닉스와의 2라운드에서 2-0상황을 두번이나 극복해냈다. 도한 26번의 플레이오프 시즌동안 3명의 위대한 센터와 함께하며 4번의 파이널 진출과 9번의 50승 시즌을 보냈고 -- 지난 6년간 4번을 포함해서 -- 샌 디에이고에서의 이전 이후 많은 팬들까지 보유하고 있다.
No. 11: Indiana Pacers
Wins: 1,652 Playoff wins: 111 Series wins: 20.5 Titles: 0 NBA; 3 ABA All-Stars: 38 | Best player: Reggie Miller Best coach: Larry Brown Best team: 1969-70 (59-25, ABA champions)Intangibles: +0. Thirty years of good karma offset by one bad night in Detro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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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디아나는 농구의 고장이지만, 후져 주의 역사동안 NBA 팬들은 심각한 일류스타의 부족을 감수해야만 했다. ABA-NBA 합병으로 그들이 리그에 가입한 이후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페이서스는 지금까지 단 한명의 All-NBA 1st Team 선수도 배출하지 못했다; 단 한명의 2nd 팀 선수가 2004년의 저메인 오닐이었다.
계속된 인디의 스타 부족은, 단 한번 파이널에 그들을 진출 시킨 감독이자, 인디아나의 그 어떤 선수들 보다도 명성이 있는 래리버드에 의해 강조된 사실이다. 그들의 최고 스타는 올스타팀에 5번 뽑히는데 그친 레지 밀러고, 1977년부터 1990년까지의 페이서스는 대표할 만한 선수조차 없었다. ABA 시절을 포함해서, 그 누구도 인디아나 선수로서의 통산 평균 득점이 20점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인디아나는 많은 조연들의 활약에 힘입어 팀으로서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페이서스는 그 17년간 16번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뤘고, 그 중 두 팀이 특출났다: 2004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그해의 챔피언이 된 디트로이트에게 패배했던 61승팀, 그리고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게 6차전만에 패배한 버드의 2000년 동부 컨퍼런스 챔피언팀. 불행하게도 인디는 2004년 11월 19월 팰리스 오브 오번 힐에서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비공식적으로 우승 후보로서의 질주를 멈춤 이후, 다시는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스타의 관점에서 봤을때, 초기 세대 역시 비슷한 형태를 띄었다. 페이서스는 ABA의 강팀들 사이에서 해마다 성장해나갔고, 슬릭 레오나드 감독은 호감은 가지만 다소 꾀죄죄한 스타일의 멜 대니얼스, 밥 니톨리키, 로저 브라운과 프레디 루이스같은 선수들을 이끌고 4년동안 3번의 타이틀을 차지했다.
불행하게도, NBA와 ABA가 통합되면서 그들은 이미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조지 맥기니스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페이서스는 그 다음 15년간의 침체기를 겪었다 -- 사실 그들이 래리브라운과 도니 월쉬를 데려오며 다음 20년간을 훌륭하게 보낼 수 있게 한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까지는 18년이 걸렸다.
12위부터 30위까지의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안타깝게도 ESPN 인사이더 계정이 없으면 볼 수 없네요.
첫댓글 3회 우승의 디트로이트가 순위는 좀 낮군요 .
음? 올랜도 9위? -_-
닉스가...;?
따로 보관될만한 훌륭한 번역이십니다. 수고하셨어요!
12위 밀워키 벅스, 13위 오클라호마 썬더, 14위 마이애미 히트, 17위 뉴욕 닉스, 18위 덴버 너겟츠, 19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21위 애틀랜타 홐스, 22위 뉴저지 네츠, 23위 워싱턴 위저즈, 29위 LA 클리퍼스 요렇겐 보이네요.. ㅎㅎ 아~ 눈아퍼 ㅠㅠ 24위 뉴올리언스 호네츠네요.. 내 눈~
드래그 해서 보시면 눈이 안아프실겁니다.
드래그 하면 잘보이는군요 ㅎㅎㅎ
창단된지 6년 정도된 밥캣츠보다 순위가 낮은 클리퍼스와 그리즐리스는........;;
수고하셨습니다 여기에 유타가 있다는게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역시 칼 to 존 ㅠㅠ
골든 스테이트가 ........ 20위네요;;
잘 봤습니다.^^
참 클리퍼스는..................
수고하셨습니다 ^ ^
아 그동안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른 모든 팀들도 참 대단하지만, 문득 생각나는건 본문에도 나와있듯이 매직이 역사에 비해 참 성적이 좋은 팀인듯 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마지막 글이 밀러형님이라.ㅎㅎ
멤피스가 꼴찌네요. 꼴찌에게 희망의 박슈를~!
인디애나 11위! 다행이야 휴~ㅋ
디트로이트가 왜??????
인디애나 ... 괜찮네요 ㅋ
근데 샌안토니오 베스트플레이어가...로빈슨이 아니고..던컨이네..던컨도 받을자격있지만..로빈슨덕에 샌안토니오가 저정도까지 온거아닌가?? 그리고 유타도 스탁턴이 아닌 칼말론..그냥 두명씩써주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