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Y2K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1999년 12월 24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인도 뉴델리로 향하는 인도항공 여객기가 공중납치됐다. 여객기는 여러 나라, 여러 도시를 거쳐 주유를 거듭한 끝에 탈레반이 득세하던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공항 활주로에 안착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당시 그곳에서 보란 듯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테러 공격에 가려진 데다 인도와 파키스탄, 미국, 아프가니스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의 기억에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지 않은데 아눕하브 신하 감독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IC 814 공포의 비행'(IC 814: The Kandahar Hijack, 6부작)으로 제작해 지난달 29일 공개했다.
뉴욕 테러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오사마가 간을 보려 했던 것이 아닌가 자꾸 의심하게 되는 이 흥미로운 납치 행각 여드레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사반 세기 전에 일어났던 끔찍한 공중 납치극인데도 당연히 인도 소셜미디어에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고 영국 BBC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납치범들의 이름 문제다. 인도 정부와 납치범들의 맞교환 석방 협상이 타결돼 인질극은 끝났는데 인도가 수감 중이던 마수드 아자르를 비롯해 3명의 테러리스트들을 풀어주는 대가로 납치범들이 승객들을 풀어줬다.
인도는 마수드 아자르가 풀려난 뒤 자이시 에 모함메드 그룹을 창설해 여러 건의 테러 공격을 자행했다는 비판을 지금도 받고 있다. 그 뒤 유엔으로부터 테러리스트로 지목됐다. 당시에도 위험한 분자들을 풀어주면 야당의 비판과 공격이 있을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았는데도 국민들 목숨을 살려야 한다는 명분으로 맞교환 석방 협상을 타결지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인도국민당(BJP)이 집권하고 있는데 이런 결정을 미화하는 것이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민족주의 성향과 부합해 시리즈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특히 5편과 6편을 보며 이런 의심이 짙어졌다.
무엇이 논쟁인가?
이 시리즈는 데비 샤란 기장과 언론인 스린조이 초두리가 함께 쓴 책 '공포로의 비행, 기장의 이야기'(Flight Into Fear: The Captain's Story)를 바탕으로 각색됐다. 카트만두가 당시 국제 첩보 무대였다고 소개하며 인도 대사관의 정보 요원이 공중납치 기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트리뷰반 국제공항을 이륙하는 IC 814 편의 이륙을 막으려 시도하면서 시작한다. 이륙 몇 분뒤 무장요원들은 179명의 승객과 11명의 승무원을 태운 여객기를 납치했다고 선언한다.
납치범, 승무원, 승객 사이에 날 선 갈등과 타협, 의지를 그리는 데 집중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서로 경쟁하는 인도 정부 관리들의 노력을 조명한다.
그런데 일부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납치범들이 서로 이름을 부를 때 볼라와 샹카르란 힌두 이름을 쓰는 것으로 묘사한 것을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이름은 이브라힘 아타르, 샤히드 악타르 사예드, 수니 아메드 카지, 미스트리 자후르 이브라힘과 샤키르로 모두 파키스탄 남성들이었다.
BJP 지도자 아밋 말비야는 엑스(X, 옛 트위터)에 납치범들의 가짜 이름을 비무슬림 식으로 제작진이 표현함으로써 "힌두인들이 IC 814 편을 공중납치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힌두 우익 조직이 이 시리즈의 공개를 금지하도록 델리 법원에 제기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PTI 통신은 제작진이 결정적인 팩트를 왜곡해 역사적 사건을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여러 인도 매체들은 소식통을 인용해 연방 정부가 이 이슈를 놓고 넷플릭스 임원진과 만남을 가졌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넷플릭스와 인도 정보방송부는 BBC의 코멘트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무엇이 팩트인가?
이 시리즈를 옹호하는 많은 이들은 팩트는 정확하다고 말한다. 2000년 인도 내무부가 발표한 성명을 보면 납치범들은 비행기 안팎에서 힌두어 가짜 이름들을 주고 받았다고 전했다. 성명은 “공중 납치된 승객들에게 이들 납치범들은 각각 (1) 대장, (2) 닥터, (3) 버거, (4) 볼라, (5) 샹카르라고 자신들을 분간하기 위해 변함없이 표현했다”고 기재돼 있다. 목격자들과 이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도 예전부터 비슷한 얘기를 해 왔다.
미국 회사에 고용돼 상업 해군 대위로 일하다 납치된 뒤 살아 남은 콜라투 라비쿠마르는 2000년 레디프 뉴스 포털에 기고한 기사에서 이런 가명들을 썼다고 증언했다. “우리를 감시하던 네 공중납치범들은 버거란 불린 리더를 갖고 있었다. 곧잘 버럭 소리를 지르던 것이 버거였다. 버거가 그들을 불러 난 그들의 이름이 볼라, 샹카르, 닥터인 것을 알게 됐다."
넷플릭스 콘텐트에 대해 인도에서 논란이 커진 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1월에는 강경 힌두 조직이 여러 장면을 트집잡자 타밀어로 만든 영화를 통째로 삭제해 버린 일도 있었다. 2021년 아마존 프라임의 '탄다브'(Tandav) 제작진과 출연진은 힌두 신들을 조롱했다는 비난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빈 라덴은 무엇을 얻었을까?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이 사건으로 뉴욕 테러 공격의 아이디어나 자신감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 궁금하다. 실제로 시리즈에 인도 정부가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납치범들이 인도 의회 건물에 여객기를 처박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타르낙 킬라란 낯선 지명이 협상 막후에 언급되는데 나중에 풀려난 5명의 납치범과 세 테러리스트를 빈 라덴이 타르낙 킬라 은거지에서 반갑게 맞는, 형편없는 해상도의 동영상이 나온다.
그런데 의도했는지 모르겠는데 이 시리즈는 이런 대목을 슬쩍 에둘러 간다. 탈레반을 창설한 물라 아무르와의 경쟁, 납치범들이 석방을 요구한 핵심 테러리스트 마수드 아자르 부친과의 친분 때문에 파키스탄 정보국의 도움을 받아 이들 공중납치범들을 배후 조종했던 것은 아닌가, 그 과정에 2억 달러 현찰과 사자드 아프가니가 불경한 땅에 묻혔다며 시신을 요구하는 등 억지 주장을 끼워 넣은 것 등을 속시원히 밝히지 않은 점은 아쉽기만 하다. 물론 빈 라덴이 2011년 5월 1일 미군에 사살돼 미궁으로 남을 것이기도 하다.
마수드 아자르는 석방 일주일 뒤 카라치에 2만명을 모아 자에시 에 모함메드(JEM) 결성식을 치렀는데 2008년 뭄바이 테러와 2019년 풀와마 테러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마르 사이드 셰이크는 알카에다가 미국에서 전쟁을 시작했을 때 뛰어들었고, 2002년 카라치에서 미국 기자 대니얼 펄을 납치해 참수한 일을 지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무슈타크 자르가르는 카슈미르로 가서 인도를 상대로 전쟁을 계속 벌여 인도는 그를 테러리스트로 지정하기 위해 법을 바꿔야만 했다.
인도 관리가 '탈레반과 파키스탄 정보국이 도긴개긴'이라고 뇌까리는 장면, 인도의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주에서 수감 중인 테러리스트 석방에 주지사가 완강히 반대해 설득에 애를 먹는 장면 등도 흥미로웠다. 맨처음 람이 주목했던 붉은 가방 안에 들어 있어 비행기 안에 태워진 것으로 보이는 폭탄 17kg이 파키스탄 정보국 국장의 카트만두 자택에서 발견돼 추방 당했는데 람이 "시적인 정의"가 이뤄졌다며 씩 웃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기장이 쓴 책이 원전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그나마 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일을 막은 그의 활약을 미화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뒤 21세기 초반 20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볼 때 가치있는 일이었는지를 묻는 데 대한 답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납치된 승객 가운데 신혼 부부의 남편이 황망하게 세상을 뜨고 이를 모른 채 새색시가 오열하는 장면, 이를 아는 다른 가족이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어린이와 여성 승객을 풀어줬을 때 어머니가 장애인 아들을 버려두고 혼자만 내려 버리는 장면 등은 그 뒷얘기가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21세기를 맞기 전 놓쳐버린 역사의 한 자락을 슬쩍 들춰 단숨에 여섯 편을 '순삭'할 수 있다. 아 참, 이 시리즈는 칸다하르가 아니라 요르단에서 촬영됐다. 여섯 편의 러닝 타임이 긴 것은 46분, 짧은 것이 28분으로 제각각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