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서의 일입니다.
수도권의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겨울 날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양재동 사무실로 출근하기 위해 집 옆 버스 정류장으로 갔습니다.
소생이 살고 있는 수원 외곽 지역에서 서울 행 직행버스는 강남역행과 사당역행의 두 노선이 있는데, 출퇴근 러시아워 때 강남역행은 빈자리가 없어 다소 우회하지만 통상 사당역행을 타고 가다 중간에서 일부러 내려 양재천을 2키로 정도 걸어 사무실에 도착하곤 합니다.
오늘도 그 버스에 올라 과천 관문네거리에서 하차, 출금할 일이 있어 선바위역 근처 농협에 들렀습니다. 앞선 손님이 나간 뒤 ATM에 다가가 카드를 꽂으려는 순간 현금 30만 원을 받으라는 멘트와 함께 만 원 짜리 지폐가 드르륵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이게 웬 떡?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치면서도 본능적으로 돈을 집어들고 창구로 뛰쳐나갔습니다. 여보세요! 외치고 길 좌우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허, 이걸 어쩐다? 낭패감이 드는 찰나 바로 앞에서 시동을 거는 밴 차량이 보여 다가가 창을 두드렸습니다.
혹시 금방 은행에서 나오지 않았나요? 하니 그렇다네요. 이 돈 놓고 나오지 않았어요? 그 중년남자, 상의 포켓을 뒤적거리더니 아, 급하게 통장만 들고 나왔네요 합니다. 손에 든 돈을 건네주니 차에서 우정 내려 고맙다고 연신 머리를 주억거리며 점심값이라도 사례를 하고 싶다고 재차 말합니다. 나는 머뭇거리다 그럼 만 원만 주시오 하고 받아 지갑 맨 뒤에 넣어 왔습니다.
이런 경우를 당하면 누구나 하는 일이겠지만 오전 내내 기분이 좋습니다. 만 원의 횡재도 그렇고, 정작 당사자가 겪을 마음 고생을 덜어준 것이 기쁘네요.
불현듯 이와 비슷한 기억 하나가 와 박힙니다. 지난 연초 큰 딸애가 백수 애비 용돈을 들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액수가 딱 30만 원이었지요. 집에 두고 갈까 하다 봉투 기분을 좀 더 느끼고 싶어 잠바 안주머니에 찔러넣고 함께 외식을 하고 집에 왔는데 아뿔싸, 이게 없어졌습니다. 애비 보신시켜 준다고 비싼 장어집에 가 상의를 의자 뒤에 걸쳐놓고 식사를 했는데 그 와중에 흘린 것 같아 음식점에 전화를 해도 유실물로 습득된 것이 없다고 합니다. 많은 손님으로 북적대는 큰 업소이니 누가 주워간 것이 여실했지만 달리 무슨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딸에게 미안하고 찜찜한 기분이 열흘도 넘게 이어진 기억이 생생히 재생됩니다. 은행에서 만난 그 손님도 겪을 그런 불행한 기억을 덜어줘서 기쁘고, 만 원의 공돈을 얻어 기쁘네요. 너무 자화자찬이 되었나요?
그나저나 횡재한 만 원을 어떻게 쓸까 하는 새로운 고민이 또 생깁니다.
뭘 할 수 있는 금액도 아니니 이따 퇴근길에 로또라도 사볼 생각입니다. 누가 압니까, 눈먼 행운이 갈 데 몰라 헤매다 찾아올는지.
그리 되면 늘그막에 빈털터리 백수 만나 새벽부터 고생하는 마누라 호강 한 번 시켜주고, 우리 동기들에게 거하게 한턱 쏠 수도... ㅎㅎ
한 번 웃으시고, 추워지는 날씨에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