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쯤, 숙영이네가 이사갔어요.
멀리 간 건 아니고 원통초등학교 정문 바로 앞 옛 문구자리로 옮기셨어요.
11월달 별보러가는 일로 어머니를 찾아뵙자
옮기신 집에서 작은 슈퍼 겸 분식점을 하실 계획이시래요.
동네 아이들 먹을 거니 좋은 재료로 하고 싶다며,
어떤 메뉴를 하면 좋을지 궁리 중이시래요.
맏딸 지연이, 둘째 숙영이,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하는 셋째 국구...
국구까지 다니면 학부모로 원통초등학교 오가는 게 14년 될 거라 하세요.
마침 개업이 10월 15일(토)이었어요.
개업앞둔 2, 3일 전 아이들에게 넌지시 이야기했지요.
"이번주 토요일이 숙영이네 가게, 개업하는 날이래. 우리 축하드리러 가자."
모든 활동이 그러할 순 없겠으나
아이의 인격과 관계를 기르는 활동 소재로 아이의 삶의 일상을 다루고 싶습니다.
'개업', 아이를 둘러싼 지역사회 평범한 이웃의 삶입니다.
친구, 언니, 동생의 부모님이자 이웃인 숙영이네 어머니의 일입니다.
가게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축하하며, 그 과정에서 아이가 성숙하길 바랍니다.
축하드리는 아이를 보며 이웃 어른이 그 아이를 좋게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전체 회의를 거쳐 축하드릴 방법을 의논하기 전에
어린이회장 진현이와 따로 의논했습니다.
이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아동자치회의인 만큼 진현이가 어린이회장으로서 제 몫을 다 할 수 있도록 돕고
둘째, 제가 생각한 진행방안을 의논하며 진현이가 자기 것으로 적용, 체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숙영이네 가게가 생기니 더울 때 목 축일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출출할 때 허기를 달랠 분식과 먹을 것을 가까이에서 살 수 있는 슈퍼 겸 분식점이 생겼다.
원통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참 잘 된 일이니 우리가 앞장서 축하드리자.
숙영이네 가게 개업 축하인사, 어떻게 하면 좋을까?'
'숙영이네 가게 개업 축하인사, 어떻게 하면 좋을까?'가 회의 안건(상위주제)이었습니다.
진현이가 생각한 방안(하위주제)이 몇 가지 있었으나
진현이 의견은 다른 사람들 의견을 들어보고 난 후,
자신이 생각했던 방법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제안해보겠다 합니다.
진현이가 생각한 방식에 노련함이 묻어났습니다.
거들어줄 만한 역할도 진현이와 의논해서 결정했고,
회의 전 준비할 물품(화이트보드, 보드마카), 좌석 배치도 의논하여 정했습니다.
진현이가 회의를 열고 진행할 수 있도록 부수적인 사항을 준비했습니다.


회의를 거치니 자연스럽게 진현이가 생각했던 축하 인사 방안이 나왔습니다.
여러가지 방안이 나왔으나 모두 할 수 없으니
그 중 두어가지 방안을 결정하여 다같이 준비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다소 흐트러지는 분위기, 산만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회의 진행시 진지하게 임해달라 부탁하고 저 먼저 회의에 진지하게 집중했습니다.
'편지쓰기, 색종이 접어 선물하기'를 나누어 하기로 했습니다.
배움터는 색종이와 각종 비품을 지원하고
아이들은 문구류를 활용해 각자 지원한 방법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신영이는 어머니께서 배움터 카페에 자주 들어오시는데,
숙영이네 가게 연다는 이야기 보시곤 신영이 편에 휴지 한 통 사다드리라고 하셨대요.



재니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칼집을 내어 뒷면에 종이를 덧대 입체 그림편지를 만들고
숙영, 신영, 진현, 경주, 다빈이는 공동으로 색종이를 접어 꽃다발을 만들었어요.
만들 시간이 여유롭지 않아 아쉬웠어도
그 날따라 비바람이 불고 해는 져서 어둑어둑한데 꼭 전해주고파 하는 마음이 갸륵하지요.
아이들과 우산 나눠쓰고 걸어갔어요.
가는 길에 겉옷 안에 넣어둔, 정성껏 쓴 편지가 날아가기도 하고
비를 맞아 구겨지기도 했지만 그 정성이야 어디 가나요.
저 멀리 숙영이네 가게 겸 집 불빛이 보이자
머나먼 여정의 도보 여행객이 밤늦어 묵을 곳을 발견한 감탄사처럼
경주, 다빈이가 "아~! 불이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했어요.
숙영이 어머니가 아이들 맞아주시며 쥬스와 떡을 주셨어요.
신영이는 애써 만든 색종이 장미꽃 철사가 쉬이 빠지자 안타까워했지요.
재니는 테잎까지 붙여 돌돌 말아온 입체그림편지를 건넸어요.
다빈이, 경주는 오는 길에 입을 맞추어 연습하더니
숙영이 어머니께 입을 모아 "축하합니다" 크게 외쳤어요.
"고마워" 답하는 숙영이 어머니 눈가에 함박 미소 가득...
숙영이 어머니께서 재니가 그려온 입체편지 보더니
"(가게) 벽에 붙여놔야겠다~" 하며 활짝 웃으시고
신영이가 건넨 색종이 장미꽃도 정수기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셨어요.
오가며 목 축이고 허기 달래고, 이런저런 학교 소식 주고받을
학교 앞 아이들 사랑방이자 일반 가정집 주방같이 포근한 분위기의 3공주 미니슈퍼.
숙영이 어머니께 "삼공주 미니슈퍼가 아동복지하는 곳이네요." 말씀드리니
손사래치시며 "아유, 잘 해야 그런 소리 듣죠" 하셨어요.



3공주네 미니슈퍼 찾는 아이들 웃음꽃이 피고,
어린이 손님 맞이하는 어머니 얼굴에 웃을 일이 많길 바랍니다.
자연스레 아이들 만날 일이 많아지시니 동네 아이의 상황과 사정에 더 밝아질텐데
아이를 이해, 배려하는 이웃으로 계셔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숙영이 어머니가 하실 '3공주 미니슈퍼'가
원통초등학교 다니는 동네 아이들에게 반갑고 편안한 곳이 되길 바랍니다.
원통 사는 학부모님들이 여기시기에
당신 자식 먹이는 마음으로 만드는, 믿고 먹일 수 있는 간식거리 파는 곳으로 자리하길 바랍니다.
평범한 이웃의 일상의 변화를 축하하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원통 아이들이 고맙고
아이들이 이웃에게 마음쓰는 활동을 믿고 지지해주시는 부모님들께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길, 어둑어둑한 길을 가는 아이들 걱정하실까 싶어
부모님 한 분 한 분께 전화드렸습니다.
믿어주시는 마음이 고맙고 본의 아니게 늦어져서 죄송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
오늘 숙영이 이야기를 들으니 3공주 미니슈퍼에서
아이 몇몇이 과자를 사갔는데 어머니가 좋아하셨대요.
어린이 손님 맞이하는 그 첫 마음이 얼마나 남다르셨을까요.
숙영이 어머니께 '마수걸이', 손님맞이 축하드린다고 연락드려야겠어요.
참, 신영이가 토요일은 비오는지라 휴지를 미처 못 샀는데,
신영이 어머니께서 숙영이네 가게 여시니
휴지라도 한 통 사다드리라고 하신 이야기도 모르실텐데 전해드려야지요.
첫댓글 삶의 한 자리, 사람살이의 한 자리,
한 자리 한 자리 이런 정성과 사랑으로 만들어 가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게 사람 사는 거죠.
사람 살자고 프로그램하는데, 프로그램하다가 이렇게 쉽고도 귀한 사람살이를 놓칠 수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