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단비 내리는 날의 스케치
2023년 5월 28일 일요일
음력 癸卯年 사월 초아흐렛날
비내리는 날이
왜 이렇게 좋을까?
고향말로는 와 이리 좋을꼬?
어제 점심무렵부터
시작한 비가 지금껏 내린다.
너무나 반갑고,
정말로 기쁘고,
참말로 고맙고,
무쟈게 감사한 단비다.
기분같아서는
내리는 비를 흠뻑 맞으며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감기 걸릴까봐 못하고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까봐 못한다.
아니다, 아니다, 그게 아니다!
아내에게 혼줄이 날까봐 못한다.
솔직히 말해
너무나 기다렸던 비,
그랬었기에 이번 비는
농부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고
입이 찢어질 만큼 함박웃음 웃게 한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3일간의 연휴가 시작된 어제,
산골살이를 하고 있는 촌부에게는
해당사항 없음이고 의미 없음이다.
다만 불자이기에 마음은 절에 가 있었다.
우린 복잡한 날을 피해 한가한 날에 간다.
꼭 특정한 날에 가야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그런데 고맙고 감사한 일이 생겼다.
대구에 사는 아내의 절친한 친구 이여사께서
세 친구들 부부 이름으로 연등을 달았다고...
감사함에 어떻게 보답을 해야할런지 몰라서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는 글로 인사를 대신했다.
농부에게는
비오는 날이 휴일이라지만
그런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다.
비가 시작되기 전인 어제 아침
두 종류의 콩을 밭가에 심었다.
하나는 작고하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콩,
또 하나는 반장님 사모님께서 주신 콩이다.
전해오는 옛 방식 그대로
한 구멍에 콩을 세 알씩 넣었다.
한 알은 새가 먹고, 또 한 알은 벌레가 먹고,
나머지 한 알은 잘자라 열리면 우리가 먹으려고...
봉평장날이라고 아내와 처제가
비가 내리기전에 후딱 다녀오자고 했다.
오랜만에 나간 장보기라 바리바리 많기도 했다.
짐꾼 노릇을 하느라 두 팔이 다 아프다.
장골목을 걷는 자매의 뒷모습을 보니
문든 옛 생각이 떠올라 울컥,
작고하신 엄마(장모님) 생각도 나고
영주에 가 있는 막내 생각도 나고...
넷이서 함께 거닐던 그 장골목인데
이제는 아내와 처제 둘 뿐이라 마음이 짠했다.
오후에는 할 일도 없이
혼자 우산을 바쳐들고 단지를 거닐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비가 좋아 빗속을 거닐었고...
장독대 위에 빗물이 고인 모습도 반갑고
장작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도 정겹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불두화(佛頭花)가 피었고
간만에 비오는 날이라고 함박꽃도 활짝 피었다.
이 녀석들은 냉해를 입어 안스러운 모습이다.
열흘전부터 며칠전까지 심은 모종들이
비를 듬뿍 머금고 싱글벙글 좋아하는 모습이다.
전날까지 밭에 물을 주고 밭가에 놓아둔
호스에게 고마운 마음에 이렇게 중얼거렸다.
"수고했다. 푹 쉬거라! 이젠 고생 안시키고 싶구나!"
저녁때 이장 부부가 올라왔다.
다음달 봉평읍내 입구에 영업장을 개업하는데
개업식 답례품 준비작업을 식구들이 돕기로 했다.
힘든 일은 아니기에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나누며
하다보니 여섯 명이 두어 시간에 다 해치웠다.
내일은 그 다음 작업을 하여 마무리하기로 했다.
우리와 둘째네에게 얼갈이, 열무에 쪽파외 부추를
넣고 맛있게 담근 김치 한 통씩을 갖다주었다.
이렇듯 이웃간에 서로 돕고, 서로 나누는 정겹고
마음 따뜻한 산골살이를 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아~ 참!
어제 저녁 이장네 답례품 준비작업을 할때
고향친구가 전화를 주어 한 20여분 통화를 했다.
더 길어지게 되면 작업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중간에 양해를 구하고 끊었다. 모처럼 전회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모양인데...
아이고~ 그러고보니 엊그제 예초기 작업 하느라
전화 못받아 하겠다고 문자를 보내놓고 깜빡했던
또다른 고향친구가 있었구나! 이따금씩 전화하여
고향소식 전해주는 고마운 나의 죽마고우들인데...
미안한 마음이라서 이따 차례로 전화를 해야겠다.
첫댓글
비는 내리지만
많은 일들이 늘 기다리는
촌부님 댁의 훈훈한 풍경이 정겹습니다
촉촉한 비가
너무나 반갑고 좋습니다.
농부의 마음이겠지요?
연휴 즐겁게 지내세요.^^
평창에서 들려주는
촌부님의 단상을 보노라면
마치 제가 현장에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가와서 행복한 모습, 대지를 적시는 마음이 마치
제 자신의 찢어진 마음에 해갈을 시켜주는 듯하군요.
모종을 밭에 내다심은 이후 줄곧 봄더위와 가뭄에 걱정이 많았지요. 다행히 이틀째 비가 내려 기쁜 마음입니다. 농부의 마음이죠. 늘 응원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한 휴일 되세요.
줄곧 내리는 비에 침착해지는 하루입니다
초파일은 지났지만
불자시라니 부처님의
가피가 평창 전역에
내리시어 큰 복 지으시길 기원합니다.
참고로 저는 불자가 아니지만 고 김수환 추기경님도 초파일 축하해주신 기억이 있어요.ㅎㅎ
비의 소중함을 새삼, 거듭 생각해보게 됩니다. 특히 산골살이를 하다보니 더 그러네요. 이 촌부의 짧은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타종교를 배척하거나 험담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내 종교가 소중하면 다른이가 믿는 종교도 소중하니까요. 어떻게 가느냐의 차이일 뿐이지만 결국 궁극적인 목표는 같은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요즘 불교계와 카톨릭계의 교류와 소통은 박수를 보내야 하고 환영할 일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