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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퇴계로 지점에서 자퇴하다^^ 점장:KH Lee ~
Writer:제갈종한
작성시간:2019.06.10 View: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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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로 지점 (마지막 편)
지하철 타고 성내역에서 내려서 다시 천호동행 버스타고 태양금속 앞에 하차후 풍남동 집까지는 도보로 약 10분정도 걸렸고, 중간엔 풍납토성 옆에는 아낙내가/막걸리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그시절에 나는 버스 내려서 공중전화로 울 카타리나에게 포장마차로 나오라고 전화하고서/ 종종 포장마차에서 프라스틱 막걸리에 다가 곰장어를 굽어서 출출한 상태에서 한병을 둘이 나누어 마시면서 나의 직장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했으며, /어느날은 "우리 식구 모두 외국으로 떠나면 어때? "하면서 문특이, 이야기를 그녀에게 내비쳤다!
아내는 아무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박종칠이가 날 강압/불법적으로 끼워 짜맞추었던 광화문 직원횡령/사고후 부터 나는 왠지 내 삶이 싫어졌고/ 매사에 의욕도 없었고 무기력해 졌으며/ 우울증에 시달려/ 파란나비가 되어/ 어딘가 자유롭게/훨훨 날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었다.
퇴계로에 갑작스런 발령을 받고 내 마음은/ "떠나자!" 하면서 마음이 굳어지기 시작했다...어차피 내 인생! 40여년간 "홀로서기"하면서 부모덕,선배덕, 직장덕,없이 어디에 다가 비빌 언덕없이 홀로 살았지 않는가! "떠나자" 어디론지...단지 공산국가만 아니고 자유시장경제 정책을 원칙으로 하고 자유민주국가 이며 영어권의 나라로 떠나자!
어디로 가서 내처자,내 어린 딸3명 데리고 세끼 밥못겟는가? 늘 생각중에 어느날, 퇴근후 조간신문에 광고난을 보고 나는 "바로 이거다" 하면서 구세주를 만난 기쁨을 만났었다!
투자이민:카나다 퀘벡지역.사업금액, 사업경력.직장경력.세미나 개최일자.시청앞 S이주공사.전화번호.등
세미나 개최날 참석하고, 개인상담을 마치고 가능성을 발견하고 곧 바로 서류신청 작성하고 착수금을 납부하고 카나다 현지답사을 위한 제반 서류를 공여받고 여권신청을 착수하기 시작했었다!
입행동기 최대리가 퇴계로 서무대리를 마지막으로 나의 고향 순천으로 차장 승격하여 부임한 후라, 나는 서무대리직을 은행입행후 처음으로 계이동을 명 받았고 바로 옆 부지에 새로운 건물로 이사를 몇 달내에 해야 하기에 매우 바쁜 일정이었다! 직설적인 내성격에/ 윗선에 천성적으로 아부하며/ 비빌 줄을 몰라서 나는 일반 모든 업무는 모두마스터 했지만 서무직만은 못 받았었다. 그래서, 서무실무경험이 없어서 선택과목으로 1고시를 위험을 무릅쓰고 영어를 선택/ 합격했던 기억도 있다. 상업은행 축구,운동출신의 서무주임을 만나서 나는 그저 전표 및 모든 제반 서류에 인주만 묻여주면서 결제를 하곤 했었다! 운동선수 출신였지만 서무주임은 다구지게 업무처리가 능숙했었다.
어느날, 순천 동기 최차장에게 전화해서 큰누나가 60살이 넘어서 집에서 할 일 없이 노시는 것을 알고서 /소일거리로 지점 식당운영을 좀 마끼면 어떠냐고 청탁(?)을 했으며, 그는 누나를 만나고 채용해서/ 누나는 근 2년간 열심히 식당하시다가 시장에서 점심 반찬 거리를 사오시다가 오토바이에 다리를 다친 큰 사건이 발생해서/ 식당 일거리를 그만 두셨었다.
신축이전 행사가 벌어지던 날 나는 눈이 크게/돌아가고 말았었다.!
어느 연속극에서 나온 한 장면처럼...호화스런 얼음으로 깍은 1.5미터 이상의 모형을 보면서..그리고 본점 각부에서 참석한 임직원들을 보면서 이경희 점장의 놀라운 인적자산에 대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저 정도의 과한 개업식을 할려며는/ 본부 서무부에 얼마나 섭외를 잘해서 경비를 타와서 하며..정말 녹아서 없어질 얼음 조각에 나는 기가 질렸었다. 저짓이 바로 "허허 실실" 이다 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점포 이전식이 끝나고 ,
얼마 안가서 나는 , 또, 외환계에 계이동을 당하고 2층 근무중에 점장 바로 입구 앞에 있는 대부계의 업무를 주의 깊게 보곤 했었다. 이경*점장의 동문인 김(kim .m.h)대리는 대리 서열이 낮음에/불구하고 대부,서무를 맡기고 2고시 합격한 동기 강 대리는 한직인 로카운터에 앉아서 /결제 하기에 나는 보기가 언짢했으며, /어느날 김대리는 전직원 통신연수 결과로 날라온 연수과 공문을 그냥 점장결제를 올리지 않고 찢어서 휴지통에 넣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었다.(당연히 김대리 점수가 미달이었기에)
더우기 정말 기막힌 놀라운 사실은....
어느날/ 오전 11:30분경에 김대리는 어디선가 외부전화를 받고 신속히 여직원에게 지시하면서 대부계 단말기에 수건의 전표를 입력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후에도 나는 수차례 외환계에 근무하면서 그런 현장을 목격 했었다!
만성적인 자금부족으로 인하여, 심사부에서 여신한도를 규제하기위해서 상업은행 전 전포에 전통을 보내서 대출을 전면 중지하는 차에...퇴계로 지점에서는 본부 전산부에서 십여분의 시간을 할당 받아서, 단말기에 대출 기표처리 하도록 비밀리에 선처(?)해 준 현장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 경* 점장은 조기퇴근해서 비서실 구실장을 만나고...그는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 미팅시간에 보면 얼굴은 아직 술이 가시지 않은 홍안의 얼굴이었고!!!
비서실, 전산부,심사부,퇴계로의 4박자가 일치하면서 상업은행은 압력에 의한 부실대출(?) 기표로 인하여 그의 패망의 운명은 날이 갈수록 도래하고 있었다!
"이러며는 안돼는데...이러며는 안돼는데..도데체 상업은행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면서 나는 너무 황당하고 윗넘들의 하는 짓들이 정말 가관이여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자들은 분명히 상업은행이 곧 없어질 것을 예견했기에 사리사욕을 챙기면서 분명히 압력대출과 더불어 콩고물에 중독되어서 멋데로 놀았으리라!!!
중요한 업무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몇자례 이점장한테 불러가서 질타를 받고 나는 어느날 점장한테 항변하면서 말했다" 서무 김대리가 연수과 통신연수 직원 점수 공문을 없에 버린 것을 아십니까? 점장께서는 좀 직원 동향에 대해서 잘 챙기십시요! 점장님의 저에 대한 지적은 그런건에 비하면 새발에 핍니다" 하면서 밀어 붙였었다. 나중에 서무여직원 왈" 이점장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한없이 울었다"고 나는 듣고 "당근이 자너!" 하면서 응대했다.
88년 당시에는 은행원들은 여권소지를 하기위해서 외무부에 신청하고 반공교육을 의뢰하면 공무원들이 전산화된 내력을 봐서 즉시 해당은행에 보고하게 되었었다..즉, 은행원코드가 삽입되었기 때문이다..나는 그것도 미처 모르고 신청했지만 이상하게도 나의 이름 코드는 회사원으로 나와서 무사통과로 카나다 비자가 나왔고, 배행기표도 구매해서 출발 날자만 기달리고 있었던 차에
그당시 내 허리 디스크도 완치가 안되어서 그냥 속이면서 병가휴가를 신청해서 한 일주일 현지 답사를 다녀와서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나는 혹시나...내가 윗선을 속여서 나중에 윗선에서 해가 되면 어쩌나? 나는 그냥 옷을 벋으면 되지만 윗선이 후탈이 생기면염려 되어서 일주일 후에 출발 날자가 잡혀서, 아침에 출근 하자마자 점장실에 들려서 미국처남이 그때 병중에 있어서 미국과 겸사 카나다에 다녀올 수 있도록 휴가를 청원하다고 했드니.....
바로...
이경*점장은..".여권이 나왔느냐? "하기에...
나는 2차례 은행에서 공무로 쉽게 여권을 받고 해서 아무 생각없이
"네 ...나왔습니다" 하면서 말씀드렸드니..
그는 곧 바로...서무차장 "최 장식"에게 "제갈 대리 직인 압수해!" 하며 격노했다!
"행장승인 사항 인데...내규 위반했다" 하면서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타협의 여지도 없이 그는 강공으로 밀어 붙였었다.
순간, 나는 넘 솔직해서 대신 "내가 당했구나!" 하면서 점장실을 나와서 바로 신경을 써서 허리 디스크가 와서 퇴계로 사우나탕에서 근 두시간 있으면서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해서
바로 지점에 들어가서 사직서를 작성하고 나와 버렸다!
훗날 내 사물은
내친동생이 지점에 들여
거두어 왔었다!
18년간의 한 많았던 나의 은행근무를 마치는 순간이 되었고,
정녕 나의 희망의 뜻을 이루지 못했었지만/ 인사부의 거미줄에서 해방되었다는 기쁨과 환희가 교차되는 순간이기도 했었다!
지금 이순간
타자를 치면서 과거를 회상해보면, 인사부의 정직한 인사발령에 의해서/ 내가 대리때 해외점포에 부임해서 3년근무하고 원대복귀했다고 치면, 남들처럼 제때에 고시합격하고 진급해서 차장,점포장하고 명퇴해서 남들처럼 한국서 살아가고 있겠지?
그러나/
그의 삶의 가치가 현재의 값진 외국의 삶과 비교할 때 어떤 것이 더 유복한 삶의 가치인가를 곰곰히 평가해본다!
자퇴하고,
집에서 놀고 있던중에 한날 "최장식차장씨에게서 전화를 받아서 잠실 롯데백화점 옆 포장집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낼 모래 카나다로 투자 이민간다고 자랑을 떨어 놓았던 순간이었다!/ 순간 나는 마신 쇄주병으로 그의 만박을 쳐 부수어 버릴려고 했었다.
그는 모든 수속을 비밀리에 마쳤고
출발 몇주전에
자퇴해서 모든 월급,수당등을 마지막 순간까지 챙기지 않했는가!
이경*점장하고 공모해서 그냥 나를 잘라 버린 넘이~!! 나는 또! 당했다고 분함을 삼키면서 그냥 포장집을 나와버렸다!
나는 자퇴후 카나다 퀘백에 현지답사 다녀온후에/ 1년동안 결과를 기둘리다가 "사업성 부적격" 판단을 받고 재심을 바로 청구함과 동시에 "뉴질랜드 투자 이민"으로 국가를 바꾸어서 아내 카타리나와 뉴질랜드 현지답사차 방문하고 바로 현지안변호사가 작성해준 "무역업 개설중개자" 사업계획서를 지참해서 재뉴질랜드/서울 대사관서 1-2차 면담에서 합격해서 대한민국 외무부장관의 이주허가서를 받고(나는 상업은행장 해외발령서는 영~영~ 못받았지만) /90년 4월 10일에/ 이곳 오클랜드 공항서 영주권을 취득하고 살면서/ 3년전엔 완전히 한국국적을 반납하고/ 이곳 시민으로 귀화해서 /점포 5개를 임대업 하면서 살고 있다./나는 은행원이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다만/
한국상업은행이라는 이름의 첫단추를 잘 못 끼웠던 것을/ 18년 근무내내 꽤 많이 나는 후회했었다!
잘못된 선택은
운명의 작난이었고,
불행했던 그운명속에서
내 꿈은 산산히
처절하게 부셔지고
말았었다/
내적인 직업의식은
또력하였으나,
외적인 직장속의
냄새난 존재들이
날 호흡하기를 거북하게 만들어 놓아서/ 내내 난 불행한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의 파란 나비가 된체로~생명을 부지하면서 탈출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은 내 뜻데로
해냈다!!!
그리고/
마지막 남기고 싶은
최후의 말은 이렇게 표현하고 프다~
"과거 한국상업은행은 주인이 없었다!"
개인보다는 단체를위하여, 단체보다는 조직을 위하여 행동했어야 함에도 많은 직원들은 그 반대의 길로 질주했었다.
그래서
결국은 직원들이 /무능력하고/부패된 임원들에 대해서 방관자들이 되어서 망했다!
실제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각자가 주인이었는데..
님들은/ 침몰하게끔 지켜만 보고 있었다.
내 자리를 누가 훔쳐갈까봐...
비겁하게 저항도 못하고
그랬다!
그리고
꿈많았던
나는
그속에서
내 뜻을 못 이루었기에..
없어진 내 사랑,
한국상업은행이
오늘도
더욱 더 많이 생각난다!"
그간
내가 몸소 많이
가슴 아파했던
북반구 그시절에
아!
파란소쩍새는
나와 우리 가족을
평화스런 남쪽 키위나라로
보낼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그당시
그리도
구슬프게
울어댔나보다/
•••••••••••••••••••☆☆☆
키위나라
오클랜드시에서
천일은행 후예/제위분들
건투를 빌면서
글을 마친다!
작성자:
행우/제갈종한
행번/19671201
20-11-2005 초안작성
첫댓글 RiP 🙏 (((((((
20대 중반에
흑산도
처갓집 방문
하기/여름
휴가 시절에 (자금부 주임시절에)
고통속에 살았던 북반구 그시절을 회상하며
글 작성했다! 이해하며 끝까지 읽어주길/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