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주(알러메 타버타버이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과정)
결혼식은 두 사람이 공동생활의 시작을 선언하는 공식적인 행사로서 각 나라와 지역마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특별한 전통과 관습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세계 18위의 큰 영토를 갖고 있으며 국경선을 따라 7개국의 이웃국가를 접하고 있는 만큼 결혼 풍습이 도시마다 다르고, 민족마다 다르다.
최근 테헤란의 결혼 문화가 급속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과거 최소 3일에서 7일에 걸쳐 진행하던 결혼 절차를 하루 만에 끝내는 젊은 신혼부부가 늘고 있다. 간소화된 결혼식이 하루 만에 끝난다고 해도 그들의 하루는 새벽 6시에 시작해서 거의 밤 12시가 넘어야 끝나니, 2시간 안에 결혼식의 모든 행사를 마무리하는 한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절차가 복잡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이란 중산층에게 결혼은 큰 지출이 따르는 행사로 신랑과 신부에게 관심이 집중되기 보다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대접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특히,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에 매우 민감해 웨딩홀 장식, 초대 손님수보다 많은 저녁식사 및 다과 등에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인구증가, 생활비 상승, 공공 지출의 감소, 경제상황의 악화, 주택 임대료의 증가 등으로 인해 신혼부부의 시작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젊은이들은 인생의 한번뿐인 결혼식이라는 이유로 화려하고 호화로운 예식을 선호한다.
물론, 몇몇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가정 내 결혼 예식이 행해지고 있다. 이란 결혼식은 한 번의 행사가 아닌 여러 절차들의 통합과정으로 대개 며칠 동안 지속된다. 쉬러즈, 마샤드, 에스파헌, 케르먼, 하메던 등 지방 도시별로, 투르크족, 로리족, 쿠르드족, 발루치족, 아제리족 등 민족별로 다양한 결혼 절차가 있으며, 이 중 일부를 생략하거나 추가하기도 한다. 가령 마샤드 신부와 케르먼셔 신랑이 결혼하는 경우, 신부와 신랑은 각자의 도시에서 자신들의 일가친척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두 번의 결혼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때 상대방의 도시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에는 직계가족들만 단출하게 참석한다.
현재 다양한 결혼문화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란 사람들이 “결혼”하면 떠올리는 기본적인 예식 절차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
이란인들의 결혼 문화, 처음부터 끝까지
커스테거리(Khastegari)
커스테거리는 청혼 즉 , 결혼에 대한 제안을 의미한다. 신랑이 자신의 어머니, 또는 연세가 많은 직계 여자 가족들과 함께 꽃, 다과를 들고 신부 집에 가서 신부의 부모에게 인사드리고 결혼에 대해 제안하는 과정이다. 친족 간의 결혼이 아직도 빈번한 이란에서 신랑과 신부의 가족이 이미 서로 친숙하다면 이 절차는 더욱 쉽고 빨라진다. 이 때 주요 의사결정권자인 신부의 부모님이 결혼을 전재로 한 신랑과 신부의 만남을 인정해주어야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한다. 이미 신랑과 신부가 결혼에 대한 의견 합의를 보고 양가 상견례를 진행하는 한국의 방식과 반대이다. 때로 이 커스테거리는 신부가 신랑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주변의 소개를 통해 신부를 알게 된 신랑과 신랑의 친척들이 신부 측 가족에게 방문 의사를 전달하기도 한다. 커스테거리는 양측이 각자 자신의 조건과 결혼에 대한 바람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첫 번째 만남에서부터 양가의 허락을 받은 상태로 교제를 시작하는 것이 이란의 전통 방식이다.
발레 보룬(Bale borun)
발레 보룬은 이란의 오래된 전통 예식 절차 중 하나로 대개 신부의 집에서 진행된다 . 양측이 결혼에 대해 확신할 때, 신랑의 가족은 신부 측에게 발레 보룬 예식을 준비할 것을 요청한다. 일반적으로 이 예식에서는 나이 많은 어른이나 먼 친척까지도 모인다. 이때 중요한 화두는 메흐리예(이혼 시 신부에게 지급될 위자료)와 쉬르바허(신부를 키워준 신부 측 어머니에게 감사의 뜻으로 전달되는 돈이나 선물)이다. 결혼과 관련된 중요한 금전적 사항들, 특히 메흐리예에 대해 서로 의견이 일치되면, 합의사항을 서류로 작성하고 신랑과 신랑 측 참석자들은 증인으로서 서명한다. 약혼식과 결혼식의 날짜 역시 발레 보룬 예식에서 확정된다. 과거 남성들만 참석했으나, 오늘날 여성들까지 모두 참석하는 중요한 결혼 예식 절차이다.
쉬리니 코런(Shirini khoran)
쉬리니 코런은 신랑 측 가족이 신부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절차이다 . 이 선물들은 달콤함을 의미하는 사탕으로 장식된 쟁반에 놓여 신부의 가족들에게 전달된다. 신랑의 가족들은 해가 진 후, 신부의 집에 방문하여 약혼반지를 신부의 손에 끼워준다.
넘자디(Namzadi)
넘자디는 신랑과 신부 측이 결혼에 대해 합의한 이후부터 시작되는 절차로 양가의 가족 간 왕래가 이루어지고 , 신랑과 신부는 결혼식과 관련된 초기 절차를 준비한다. 일부 가정에서는 신랑과 신부 양측 가족들이 서로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이 의식을 진행하기도 한다.
아그드 코넌(Aghd konan)
아그드 코넌은 여성과 남성이 공동의 삶을 꾸려나갈 것을 합의하는 결혼계약을 의미하며 , 이를 토대로 결혼생활을 지속할 것을 약속하는 의식이다. 주로 신부 부모님의 집에서 진행되는 이 의식에 신랑과 신부는 장식된 테이블에 앉는데 이때, 신랑은 조로아스터교 전통 방식에 따라 반드시 신부의 오른편에 앉아야 한다. 연장자는 결혼 계약에 대한 설교하고,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여성들은 예쁘게 장식된 설탕 막대 2개를 신랑과 신부의 머리 위에서 비벼 설탕 가루가 그들의 머리에 떨어지게 한다. 이는 달콤한 인생을 함께 살아갈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참석자들은 이 새로운 한 쌍을 위해 행복과 번영을 빌어준다. 양측 가족 모두 결혼계약 조건에 대해 동의하면, 신부와 신랑은 결혼을 인정받고 공식적인 부인과 남편으로서 선언된다.
자허즈 바런(Jahaz baran)
신부의 가족이 준비한 혼수 및 전자제품을 신랑의 집으로 옮기는 의식이다 .
하너 반던(Hana bandan)
신부가 부모님 집에서 머무는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치루는 의식이다 . 이 의식에서는 예쁘게 장식된 헤나를 부어놓은 접시를 손님들에게 두루두루 돌리며 모든 손님들은 부부의 행복을 기원하며 자신의 손바닥 위에 헤나 조각을 올린다. 이는 이란 사람들에게 헤나가 행복, 애정, 번영, 선량함의 표상이자 낙원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루씨(Aroosi)
이란에서 결혼식은 신랑이 신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개최하는 의식이다 . “아루씨(Aroosi)”라고 부르는 이란의 결혼식 당일, 신부는 새벽 6시부터 미용실에 가서 화장과 머리 손질을 받는다. 이날 오전 신랑의 첫 방문지는 차량 외관에 꽃 장식을 해주는 꽃집이다. 미리 예약해둔 부케를 전달받아 웨딩카를 타고 신부의 꽃단장이 마무리될 시간에 맞춰 헤어살롱으로 신부를 픽업하러 간다. 이때부터 사진 및 동영상 촬영이 시작되어 메이크업 받는 장면, 신부를 태우러 온 신랑의 설레는 설정샷, 신부 손을 잡고 차량에 태우는 모습 등 당일 일어나는 모든 주요 장면들을 촬영한다. 최근 젊은이들은 이런 스냅촬영을 선호한다. 결혼식 당일 모든 장면이 촬영되니 웨딩카는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선택 사항 중 하나이다. 고급 외제차 소유주라고 하더라도 당일의 특별한 촬영을 위해 더 고급스런 컨버터블 카를 빌려 온갖 꽃 치장을 한다. 웨딩카를 탄 신혼부부는 실내 스튜디오에 가서 양복, 캐주얼 웨어, 파티복 등 다양한 컨셉으로 웨딩 사진을 찍고, 야외 스튜디오(테헤란 근교의 사설 야외 촬영 정원)에 가서 또 한 번 야외 촬영을 마친다.
미리 웨딩 촬영을 마치고 결혼식 당일 예식만 진행하는 한국식 결혼과는 다르게 이란의 현대식 웨딩은 당일 모든 일정이 일사분란하게 진행된다. 실내 촬영과 야외 촬영까지 마무리 짓고 나면 오후 4-5시경이며 그제야 본격적인 결혼식이 진행된다. 예전에는 대부분 개인의 집에서 결혼식을 준비했지만, 최근 호텔의 웨딩홀이나 컨벤션홀, 정원 등을 빌려 결혼식 연회를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진행되는 예식은 장소 대여에서부터 다과, 저녁식사, 음악과 영상 등 하나의 큰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출금액이 크다. 신랑과 신부는 일일이 하객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신부는 부케를 여성 하객들에게 던지는데,이를 받은 여성이 다음번 결혼할 차례라는 우리와 비슷한 믿음도 있다. 결혼식의 마지막 일정인 웨딩 케이크 컷팅까지 끝나면, 하객들은 신랑과 신부를 집까지 따라가 배웅해주고, 신부의 아버지는 신랑과 신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여보내며 행복과 번영을 기원해준다.
퍼타크티(Patakhti)
결혼식 다음날 축하행사로 신랑과 신부의 지인들이 그들을 위해 선물을 가져온다 . 퍼타크티는 일반적으로 여성들끼리 개최하는 예식이기도 하다.
이렇게 결혼식 절차가 많고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란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 또한, 실질적 결혼식 이전에 진행되는 의식들 사이에서 신랑 및 신부 가족 간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최종 결혼식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렇게 길고 긴 결혼 과정을 통해 신랑과 신부 당사자뿐만 아니라 양가의 친척까지도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 수 있는 시간을 거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즉, 이란의 결혼 문화는 집안과 집안간의 행사로서 더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