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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roll님의 글을 읽다 문득 웨버 생각이 나서 댓글로 쓸까하다가 그건 제 영웅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 같아 저도 글로 남깁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길기만 한 제 사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쓰면서 옛 추억이 자꾸 떠올라서 혼자서 자꾸 피식했습니다. 글 첫 줄은 PGroll님 글에서 살짝 베껴왔습니다. 양해해주세요.^^
‘Retrospect for C-Webb #4’
"혹시, 크리스 웨버라는 선수를 아십니까?"
얘기는 약 12년 전, 19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가 순수하게 농구를 처음으로 접한 것은 98년 초등학교 3학년 때 설날에 특집으로 방송해주던 마이클 조던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었습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 마이클 조던의 슛을 ‘컴퓨터 슛’이라고 부르며 마이클 조던이라는 선수가 얼마나 잘하는지 영상들을 보여주는 정도였습니다. 천성적으로 둔하고 운동을 못했던 저는 당시에 농구는 커녕 스포츠 자체를 안 좋아했기 때문에 그냥 그 방송을 보면서 ‘와, 저사람 정말 대단하네.’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게 농구를, 아니 처음으로 스포츠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게 만든 것은 바로 슬램덩크였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사촌 집에서 몇 달을 보내게 되었는데 슬램덩크의 광적인 팬이었던 사촌 누나들과 사촌 형과 함께 TV로 슬램덩크를 보며 농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정대만에 저 역시 완전히 빠졌었고 집에서는 미니 농구대로 농구를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농구공을 들고(야구도 많이 했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KBL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고향 팀인 대구 동양은 지금보다도 더 처참한 성적으로 리그 꼴찌를 수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허재와 신기성이 있던 원주 나래를 응원했습니다. NBA는 iTV(개국 첫 몇 년동안은 서울 경기권 말고도 전파가 잡혔던 걸로 압니다.)를 통해 몇 번 보고 뉴스도 접하면서 코비 브라이언트, 팀 던컨 같은 유명한 선수 정도는 알게 되었고 NBA live 99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게임을 하면서 로드맨, 피펜 같은 불스의 스타 선수들도 알게 되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04년 봄, 5:5 대회 출전을 앞두고 나보다 키 큰 센터들을 어떻게 막을까하며 고민하던 중학교 농구부원 꿈쟁이는, 영감을 얻기 위해 인터넷으로 NBA 경기를 처음으로 다운받아보게 됩니다.
샤킬 오닐의 레이커스(당시 코비는 이미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이었지만 저에겐 코비의 레이커스보다는 샤킬 오닐의 레이커스였습니다.)와 야오밍의 로켓츠의 경기를 보고 히트에서 라마 오덤과 함께 콤비를 결성했던 겁 없는 신인 웨이드가 호넷츠를 상대로 버저비터를 넣는 경기도 봤지만 그렇게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운 받아놓고 보다가 지루해서 포기한 경기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2004 NBA Playoff Western Conference first round SAC vs DAL Game 1'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더블 클릭한 후 2시간동안 저는 화장실도 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넋이 빠진 채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게 됩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당시 새크라멘토의 톱니바퀴 같이 돌아가는 공격 농구는 저에겐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농구가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새크라멘토를 이끌던 크리스 웨버. 그의 플레이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밀레니엄 킹스의 농구는, 저에게 농구가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잠깐 화제를 돌려서 제가 여태까지 ‘광적으로’ 좋아했던 선수들은 모두 타고난 천재형 선수들이었습니다. 유타의 폴 밀샙 같은 블루워커들이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낮은 기대를 받다가 엄청난 선수로 성장한 선수들도 좋아하지만 그들의 예전 경기를 다시 찾아보거나 프로필을 외우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했던 허재, 김승현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경기를 보는 이로 하여금 양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하게 만드는, 오밤중에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게 만드는, ‘니 어제 그 플레이 봤나? 완전 대박이드라. 나도 그렇게 할끼다.’ 라며 학교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 웨버는 제 생애 세 번째로 위의 세 가지를 하게 만드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빅맨은 박스아웃을 열심히 하고 리바운드를 열심히 잡아야 하고 패스를 받아 골밑 득점을 한다. 그 이상은 없다. 화려할 수가 없기 때문에 관중들에게 환호는 받을지언정 그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할 수는 없다.’는 저의 편견 아닌 편견을, 크리스 웨버는 그냥 산산조각 내다 못해 저의 농구관 자체를 바꿔 버렸습니다. ‘센터인 나도 김승현처럼 패스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동작 하나하나가 저에겐 신선함과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농구부 연습 경기 중에 웨버의 플레이를 따라하다 감독님께 꾸중도 듣기도 했지만 저는 웨버의 플레이를 비디오 플레이어를 통해 수십번을 돌려보고 웨버의 플레이를 따라하는데서 농구의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킹스의 농구 그리고 킹스를 이끄는 웨버의 플레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농구를 사랑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농담 섞인 얘기지만 초콜릿이나 바나나, TV를 처음 접하신 어르신 세대 분들의 경험을 저는 크리스 웨버의 플레이를 보면서 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심지어 크리스 웨버의 환상적인 패스 뒤에 나오는 캐스터의 "‘What a pass!"라는 환호를 듣고 무슨 뜻이지 알고 싶어 영문법 책을 뒤지다 영어의 감탄형 문장을 제대로 배우게 되어, 저는 학창 시절에 영어시험에 그와 관련된 문제가 나오면 절대 틀린 적이 없습니다. (정말이에요.)
수백번, 수천번을 말해도 모자라고 그 어떤 문장으로도 표현하기 힘들지만 한번 말해봅니다.
“크리스 웨버는 저에게 우상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선수였습니다. 단 한 번의 대화조차 나눠본 적 없는 그를 저는 제 가족과 친구들처럼 사랑했습니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응?)
2004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 킹스의 홈구장 아코 아레나.
자유투 라인 부근에서 패스를 받은 웨버가 골밑으로 돌진합니다. 시즌 MVP 가넷이 괴물 같은 사이드 스텝으로 그를 따라갑니다. 웨버가 펌프 페이크를 반복합니다. 가넷은 페이크에 속지 않고 긴 팔로 웨버가 슛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없애버립니다. 바로 그 순간, 웨버가 오른손으로 공을 림에 그대로 꽂아버리며 가넷에게 인유어 페이스를 먹입니다. 아코 아레나 팬들 모두 양손을 펼치며 일어납니다. 웨버는 환호하고 그 장면이 리와인드되면서 화면은 광고로 전환됩니다.
이것이 10여년 넘게 농구를 보는동안 제가 기억하는 최고의 명장면입니다.
물론 그후에도 이 못지않은 명장면도 많이 봤습니다.
2006년 코비가 토론토를 상대로 81점을 넣고 관중들의 기립을 받으며 벤치로 들어가는 장면, 같은 해 코비가 플레이오프 1라운드 4차전에서 당시 리그 최강팀 피닉스를 상대로 시리즈를 3승 1패로 만드는 위닝 버저비터를 꽂았던 장면, 2008년 보스턴 셀틱스의 홈에서 열린 미네소타와의 경기에서 역전을 노리던 미네소타의 마지막 공격에서 텔페어를 가넷이 맨투맨으로 막아 스틸을 해내고 자신의 저지를 관중들에게 보이며 포효했던 장면도 혼자서 수백번은 되감기하며 봤던 최고의 장면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웨버가 아닙니다. 수없이 많은 명장면들 중에 웨버의 그 플레이를 최고였다고 기억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웨버야말로 저에겐 진정한 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코비의 팬분들껜, 가넷의 팬분들껜, 그들의 최고의 플레이가 최고의 명장면이듯이 저에겐 웨버의 최고의 플레이가 최고의 명장면일 수 밖에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킹스는 서부 컨퍼런스 준결승에서 7차전 연장승부까지 가는 접전 끝에 가넷의 울브스에게 패하고 또다시 우승 도전에 실패합니다. 웨버는 3점차로 뒤지고 있던 7차전 연장 마지막 공격에서 직접 던진 3점슛이 림을 돌아 나오자 경기 종료와 함께 무릎을 꿇습니다.
중계진은 ‘Happy Birthday, Kevin!'이라며 7차전 승리와 생애 첫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로 본인 스스로에게 생일 선물을 선사한 가넷에게 축하의 멘트를 던집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웨버는 코트의 어느 구석진 곳에서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만 울진 않았습니다. 웨버의 킹스는 리그 최강팀 중 하나였으니까요. 언젠가 우승할 거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팀의 리더로서의 웨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웨버가 부상에서 돌아오고 킹스의 경기력이 오히려 안 좋아졌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저는 웨버가 킹스 프랜차이즈의 첫 우승을 일궈낼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니, 웨버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웨버 없는 킹스는 생각도 해본 적 없으니까요.
좌절하는 웨버를 보고 마음이 아팠지만 울지 않았습니다. 그가 킹스의 첫 우승을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바로 다음 시즌, 말루프 형제는 웨버의 비싼 연봉에 부담을 느껴 웨버를 식서스로 트레이드합니다. 웨버는 식서스에서 아이버슨과 만났지만 팬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줬고 우승후보 디트로이트로가 배드보이즈 2기에 합류했지만 결국 우승에 실패하고 맙니다.
아이버슨과 웨버의 만남은, 결과적으로 팬들에게 큰 실망감만 안겨줬습니다.
사실 웨버가 식서스에서 실패를 한 후, 저는 몇 년 동안 NBA를 보지 않았습니다.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팬이, 자신이 죽도록 사랑하고 존경하던 선수가 무너져가는 것을 보고 싶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디트로이트에서 뛰는 웨버를 우연히 봤습니다. 어느덧 노장의 그. 여전히 무릎이 좋지 않았고 전성기에 비해 많이 기량이 떨어졌지만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더군요. 그 경기를 보면서 그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제가 웨버를 좋아한 것은 단순히 잘했기 때문만이 아닌데. 웨버는 나에게 농구를 더 사랑하게 만들었고 나를 행복하게 만든 선수였는데. 농구 선수 그 이상이었는데.
그 후 저는 NBA를 다시 보기 시작합니다. 웨버 커리어의 마지막 시즌인 2006-2007 시즌, 컨퍼런스 결승에서 르브론 제임스의 괴물 같은 활약에 그의 팀 디트로이트가 무너집니다. 웨버는 그 경기에서도 부상을 당하고 그의 선수로서의 마지막 큰 무대를 절뚝거리며 떠납니다.
그리고 웨버는, 자신의 NBA 데뷔 팀이었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마지막 커리어를 보내고 은퇴합니다.
'From Warriors, to Warriors.'
그리고 2009년 2월 6일, 킹스의 홈 아코 아레나.
웨버는 디박과 함께 킹스에서 영구결번됩니다. 웨버는 영구결번식이 이뤄지는동안 연신 눈물을 훔치면서도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영구결번식을 통해 자신과 킹스를 사랑해준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제 킹스의 보라색 유니폼에서 4번은 코트 위가 아닌, 아코 아레나의 천장에 걸린 채 존재할 것이고 킹스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이제 웨버의 유니폼은 아코 아레나의 천장에 영원히 걸려 있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밀레니엄 킹스 그리고 크리스 웨버는, 2000년대 레이커스의 쓰리핏과 로버트 오리의 버저비터에 희생당한 불운의 최강팀 그리고 그 팀의 리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기억합니다. 밀레니엄 킹스는 제 생애 최강의 팀이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 웨버는 그 최강팀의 리더이자 에이스였습니다.
여러분께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혹시, 크리스 웨버라는 선수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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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흥분한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저때의 킹스를 보면 지금의 피닉스를 보는거 같아 동병상련이 느껴져여... 가난하고 돈없는구단의 설움인가여
웨버가 훌륭한 선수인건 사실이지만.. 새크에서 커리어 찍고나서 후에 모습이 너무 안좋았습니다. 외곽에서만 밑돌다가 슛만 난사하고, 그 좋은 패스웍도 보여주지 못하고 리바도 참가하지 않고 이기적인 플레이로 비난도 많이 받았잖아요. 프로는 승부로 실력이 가늠이 되는데 이겨야 하는 경기에서도 노련하게 플레이를 하지 못한걸로 기억합니다. 디박은 말년까지 꾸준히 해서 사랑을 더 많이 받는 선수잖아요. 물론 포지션이 약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년이 너무 대비되는 디박과 웨버. 요즘은 제메인이 오닐이 웨버 말년을 따라할려구 하는데 올해는 살아날련지
킹스 영구결번까지 ㅊㅋ
부상이 너무 안타까운 선수ㅜㅜ
차라리 덩치가 작아서 가드가 였으면 아직 있었을려나 ㅜㅜ
그의 포지션은 Big Guard였죠...페니나 웨버와 비슷한 스타일의 슈퍼스타가 나올 확률이 가장 적다고 생각합니다
제겐 킹스를 알게해준 웨버. 파워포워드 자리가 매력적으로 보였던 선수.
저랑 비슷하시네요~ 저도 언젠지 모를 명절 연휴날 TV에서 마이클 조던 다큐를 보고 '와 저사람 진짜 잘하네' 라는 생각하고~ 그 이후엔 슬램덩크에 빠져서 혼자서 밤 늦도록 농구장에서 공을 튕기고~ 그 이후엔 NBA에 잠시 시들해졌다가~
우연치 않게 토요일 12시나 1시쯤에 해주던 NBA 경기에서 킹스경기를 보고 웨버라는 선수에 정말 깊은 감명을 받아서
킹스팬이 되서 응원했습니다~ 그 이후에 식서스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는 NBA 를 다시 멀리하다가
디트로이트에서 막바지 커리어 보낼때 다시 웨버를 응원하기 시작했네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옛날 킹스는 진짜 ㅜㅜ... 저도 2003년쯤 킹스보고 스토야코비치 팬이 됬죠. 아마 페자가 2004년에 득점왕까지 탔을거예요.
그때 킹스의 농구는 신바람농구뿐만아니라 실속까지 있었죠ㅋ
저는 웨버의 대학시절때부터 팬이었는데.. 정말 좋아하는 선수였죠..
정말 웨버가 국내에서 인기가 많구나..웨버를 잘 알지만 많을만한 충분한 스타..
불릿츠 시절 링을 돌아나오면서 몸을 빙글돌려 인유어 페이스를 먹이더군여 그렇게 간지나게 덩크하는 선수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모습에 반해 팬이 됐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운동능력 절정의 웨버는 최고였습니다
항상 관중석에서의 'may be next year'라는 문구를 보면서 안타까워했지만 그 안타까움까지도 고맙게 만든 웨버...최고의 선수입니다!!
골스랑 워싱턴은 트레이드 시키고 플옵진출하기까지 걸린시간이 ㄷㄷㄷ
94년에 구입했던 nba rising star라는 잡지에 소개 되어서 이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선수 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가 그리워 지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근데 모르는게 이상하지 않나요? 킹스의 프렌차이즈 스타인데..
영원히 기억할겁니다. 크리스 웨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