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경종을 울리게 하는 한마디 "니들도 나빠"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웅의 시대>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빼어난 영웅들이 한 시대를 주름잡는 이야기들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신화 속에서도 영웅의 이야기는 우리들을 신나는 모험의 세계로 이끈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곧 돌이 되고 마는 흉악한 괴물 메두사의 머리를 베어낸 페르세우스며, 크레타의 미궁 속에서 소머리를 한 괴물을 처치하고 궁을 빠져나온 테세우스 같은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은 얼마나 지혜롭고 강인했던가? 페르세우스는 방패를 거울처럼 닦아 비춰가며 메두사를 죽였고, 테세우스는 미궁 입구에 실을 매달고 들어가 길을 잃지 않았다. 그들이 지닌 힘과 지혜, 운명을 이겨내는 용기, 신들의 도움을 보면서 우리는 어지롭고 험한 시대를 무찔러줄 어떤 영웅을 꿈꾸기도 한다.
시대에 따라, 민족에 따라 어떤 인물을 영웅으로 보느냐는 조금씩 다르다. 어던 곳에서는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을, 어떤 곳에서는 장대한 몸집으로 기운을 쓰는 사람을, 또 어떤 곳에서는 자신을 희생하는 순교자를 영웅으로 본다. 아무튼 이 영웅들은 모두 남과 다른 존재이며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이문열의 소설 제목을 보면서 제목에서부터 모순을 느낀다. 영웅이라면 그 집단에서 힘을 발휘하고 다른 사람 위에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일그러진'이라는 관형어는 그 영웅이 발휘하는 힘이 잘못된 것임을 나타내준다. 제목부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 소설은 1987년 제 11회 이상문학상을 받은 중편 소설이다. 한 시골 국민학교(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어린이들을 중요 인물로 등장시키면서,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 저항하던 인간이 어떻게 그 권력의 틀 속에 들어가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 소년이 겪는 권력의 소용돌이>
자유당 말기의 혼란 속에서 아버지가 시골로 발령나는 바람에 시골학교로 전한 온 한병태는 시골학교의 초라한 모습에 실망한다. 서울에서 그런 대로 인정받았던 그는 학급을 휘어잡고 힘을 휘두르는 엄석대에게 강한 불만과 반감을 나타낸다.
반장을 맡고 있던 엄석대의 힘은 대단했다. 아이들은 엄석대에게 반찬을 갖다 바치기도 하며 물 당번을 정해 물시중까지 들고 있었다. 그는 거의 폭력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대신 시험을 쳐주기도 하며 다른 아이의 물건을 거의 강제로 빼앗는 일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 권력에 빌붙거나 순응한 채 살아간다.
한병태는 엄석대의 권위에 도전한다. 담임 선생님에게 엄석대의 잘못을 이르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몰이해와 아이들의 소외만이 되돌아온다. 어린아이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다.
결국 한병태는 외로운 저항을 포기한다. 석대의 권위에 굴종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석대는 유일하게 저항하다가 포기한 한병태를 제2인자로 인정한다. 병태 역시 석대 밑에서 권력이 주는 달콤함을 그냥 받아들인다.
4.19로 온 사회에 변화의 물결이 이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젊은 선생님이 반을 맡게 된다. 엄석대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이 반의 분위기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새 선생님은 석대를 신임하지 않는다. 권력이 몰락하는 기미를 눈치 챈 아이들은 앞다투어 석대의 잘못을 일러바친다. 병태만이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 반의 권력자에서 비웃음 당하는 문제아로 몰락한 석대는 모욕감을 느끼며 교실을 뛰쳐나간다.
30년 세월이 지나 한 가정의 가장이 된 병태는 엄석대를 다시 보게 된다. 수갑을 차고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늘 반복되는 우리 삶 속의 이야기>
한병태가 겪은 시골 학교에서의 체험은 먼 먼 옛날부터 줄곧 있어온 문제이며바로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소설 첫 부분에서 한병태는 이렇게 회고한다. .
"벌써 삼십 년이 다 돼 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어쩌면 그런 싸움이야말로 우리 살이(生)가 흔히 빠지게 되는 어떤 상태이고, 그래서 실은 아직도 내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받게 되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도 한병태와 같은 체험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학급이나 학교에는 '짱'이라 불리는 힘센 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비위를 건드리면 눈밖에 나서 '왕따'가 된다. 은근히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기도 하고 물건을 빼앗기도 한다. 주먹질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선생님께 일렀다가는 더 큰 봉변을 당할까봐 그저 쉬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사회 생활을 하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라고 다를까? 힘있고 돈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그냥 조용히 사는 게 제일이라며 잘못된 것에 눈을 감기도 한다.
먼 먼 옛날 왕과 귀족, 평민의 구분이 없던 시대, 사유재산이 없어 돈을 많이 가진 사람과 돈이 없는 사람으로 나뉘지도 않던 시대. 그런 시대에도 권력을 잡은 자와 그에 따르는 자가 있었을 것이다. 인간 사회나 동물 사회나 힘 있는 자가 권력을 잡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으면서 우리가 떨림을 느끼는 것은 시골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지금 우리가, 사회가, 인류 역사가 겪어온 일들의 축소판이라는 생생한 느낌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배경을 온갖 부패로 얼룩졌던 자유당 시절의 막바지와 새로운 힘이 용솟음쳤던 4.19시절로 설정하고, 30년이 지나서 권력과 모순이 판치는 사회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한병태의 입을 통해 사건을 이야기하게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권력의 생성과 몰락, 그리고 그 속에서 힘겹게 저항과 굴종을 되풀이하는 인간의 삶은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둘러싼 다양한 몸짓>
엄석대는 타고난 기운과 교활한 성격을 밑천으로 반의 권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은 잘못된 방향으로 쓰여지고 있다. 반의 질서와 구성원의 행복, 더불어 사는 아름다움을 이루기 위한 권력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권력이 되고 말았다. 아니 권력이란 것의 속성이 그런 것이리라.
이 권력에 반응하는 등장인물의 태도는 다음의 몇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권력에 아부하는 유형이다. 석대의 권위에 도전하는 병태를 괴롭히기도 하며, 석대의 뜻을 미리 알아서 '받들어 모시는' 부하들이 바로 그런 유형이다.
둘째는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대다수 반 아이들이 이런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석대가 하는 행동이 이치에 맞지 않고 지나칠지라도 대항하지 못하고 그러려니 방관한다. 그 권력이 행사하는 힘에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셋째는 권력을 키우며 인정하는 어른들이다. 아버지나 첫 담임 선생님 같은 인물은 잘못된 권력을 '통솔력'이라 인정하고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잘못된 의식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학생은 매로 다스려야 해' '한국인들은 민주주의가 안 돼' '누가 확 휘어잡아야 일이 돼'라는 말들이 엄석대 같은 인물을 낳게 하는 원인일 것이다.
넷째는 외로운 저항을 하는 한병태이다. 그는 약간의 정의감과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억울함에서 저항을 시작했다. 그의 저항은 실패한다. 저항의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으며 저항의 과정 역시 올바르지 못했다. 물론 병태는 '그때껏 내가 길들어 온 원리-어른들 식으로 말하면 합리와 자유-에 너무도 그것들이 어긋나기 때문'에 저항하지만 엄석대의 잘못을 캐내려는 생각, 그를 영웅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야겠다는 집착 등은 그의 저항의 가치를 떨어뜨려 놓는다.
다섯째는 새로운 담임 선생님처럼 위에서의 개혁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잘못된 것을 파악하는 안목과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신선한 인물이지만 그 역시 교사라는 권위에 의지해 강압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낸다. 개혁을 외치며 등장해 나중에 정치가가 되었다는 그 젊은 담임교사에게서도 우리는 또다른 독재자의 모습을 본다.
<진정한 영웅은 없다>
석대를 비롯하여 다섯 유형의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 소설 속에서 진정한 영웅을 찾을 수 없다고 느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인물은 석대만이 아닐 것이다. 뛰어난 힘과 술수를 지녔던 엄석대나 권력에 저항한 한병태나 개혁의 바람을 몰고온 새 담임 선생님 모두 영웅의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진정한 영웅이 되지 못했다. 왜일까? 그들에게는 힘이 있었지만 그 힘을 진정한 힘으로 만들어주는 다수의 힘을 얻지 못했다. 뜻을 함께 모으며 하나의 목표를 세우고 함께 달려가는 과정이 없었다. 또한 그들에겐 다른 사람이 당하는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잘못된 사회에 대한 분노가 부족했다.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된 행동만이 강하고 올바른 힘이 되고, 그 힘의 원동력이 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인 것이다.
<인간에 대한 다양한 물음을 던지는 작가>
이문열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 사대를 다니다가 그만 두고 젊은 날의 방황 속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77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군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새하곡]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이문열의 소설들은 인간의 고뇌 사회와 예술의 문제 등 다양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새하곡]등은 인간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하는 작품이다. [금시조]나 [들소]같은 작품은 예술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우리 역사에서 소재를 취한 [영웅시대] [선택] [황제를 위하여] 같은 소설도 있다.
이 작품들 속에서 이문열은 권력의 형성과 몰락의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문열이 해설을 붙여가며 쓴 나관중의 [삼국지]에서도 그같은 관심을 엿볼 수 있다.
작품을 덮으며 우리는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나 감동적인 영웅 신화나 소설에서 진정한 영웅들이 전해주는 감동 대신 작지만 인생에 대한 위안을 느낀다. 그것은 작품 끝 부분에서 한병태가 서술하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잠든 아내와 아이들 곁에서 늦도록 술잔을 비웠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두어 방울 떨군 것 같은데, 그러나 그게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를 위한 것이었는지, 또 세계와 인생에 대한 안도에서였는지 새로운 비관(悲觀)에서였는지는 지금에조차 뚜렷하지 않다."
작가는 한병태의 입을 빌어 '안도'인지 '비관'인지 뚜렷하지 않다고 했지만 우리는 그 대답을 알 것 같다. 진정한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에 살더라도 우리는 낙담하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는 영웅이 이끄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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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 새끼 순 나쁜 새끼에요
니네들도 나뻐잉ㅇ잉잉 ㅠㅠ
홍경인 예나지나 그대로네
어렸을때 보고 충격이었습니다
엄석대: 잘들해봐 이새끼들아!!
근데 글쓴이가...
이문열....
한국어인데 못알아 듣고 저새끼나쁜새끼에요 밖에 안들리네요 ..ㅋㅋ
작가가 이문열이라는게 아이러니 ㅋㅋㅋㅋㅋ
저 웃고있는 친구는 고딩때 같은 반이었는데 ㅎ ㅎ ㅎ
심지어 이 책은 표절이죠.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와 글의 구조가 엄청 비슷합니다.
http://nabeeya.net/nabee/view_past.html?loc=&type=serial&cat1=53&cat2=91&sidx=&cidx=1030&page=1 이런 시각이 있네요.. 표절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좀 애매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