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 넓은 당산마을 사람들
블루베리 밭 주인장의 땅 한 뙈기가 팔렸습니다. 6.25 전쟁 때 탱크가 지나다녔다는 옛날 조치원 1번 국도와 접하고 있는 땅이라 양도세가 어마어마하게 나왔습니다. “땅은 말이여, 국가하고 나하고 사이좋게 반반씩 나눠 갖고 있다 생각하면 마음 편한 겨.” 동네 어르신들 말씀에 다소나마 마음이 편해지는 듯합니다.
땅을 팔 때 심겨 있던 금송과 반송, 그리고 일반 소나무에, 비닐하우스 및 물탱크 시설까지 모두 넘기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습니다. 소나무 옮기던 날 업자에게 들어보니 옮기는 비용만 3천만 원가량이 든다더라구요. 소나무 뿌리 캐는 굴착기에 소나무 들어 올리는 기중기까지, 거기다 6명이 한 조로 움직이는 인부들 인건비까지 따져보니, 나무 값은 옮기는 비용이라던 업자의 말이 실감났습니다.
금송 밭에 있던 비닐하우스를 철거하던 날 아침, 동네 분 여럿이 구경을 나왔습니다. 비닐하우스 철거 작업도 노하우가 요구되는지라 예전 관련업에 종사했다는 70대 중반의 어른을 부른 모양입니다. 이분이 혼자 하기 벅찼는지 당신 친구를 불렀답니다. 그 친구가 바로 동네 OO건강원 주인장이었는데요, 이모님과 저를 보더니 “지 몰라보겄시유? 요 아래께 OO건강원. 작년에 블루베리 주스 하고 호박즙 짜시지 않았시유?” 반갑게 인사를 하더라구요.
구경나온 동네 분들이 이런저런 훈수를 두는 사이 비닐하우스가 거의 분해될 즈음, 낯선 1.5톤 트럭 한 대가 도착했습니다. 머리 희끗한 노부부가 트럭에서 내리더니 비닐하우스 문짝 2개와 철근 막대를 주섬주섬 트럭에 싣더라구요. “지난해 여름 강풍에 비닐하우스 문짝이 날아가 버리는 통에 끌탕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가 전화로 알려주어 찾아왔노라.”며 겸연쩍게 웃으셨습니다. 당신은 고복저수지 근처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고 있는데, 올해는 복숭아가 영 시원치 않다며 걱정이 태산이라면서도, 부부가 비닐하우스 철거한 자리에 쓸 만한 물건들이 남아 있는지 찬찬히 살피고는 이것저것 주섬주섬 담아 트럭에 실었습니다. 비닐 씌울 때 필요한 요철 모양의 꼬불꼬불한 철사줄도 여러 가닥 알뜰히 챙겼구요.
모퉁이 집 포클레인 기사네는 작은 손수레를 가져와 비닐하우스 앞에 쌓여있던 유박을 한가득 실어갔고, 감나무 집 할머니도 마당 화분 분갈이를 해야 한다시며 금송 묘목 키울 때 부어놓은 흙을 담아갔습니다. 누군가는 방부목을 살뜰히 챙겨갔네요.
마침 동네 분리수거 장소를 다니며 부지런히 빈 박스만 모아다 파는 20대 초반 청년도 비닐하우스 철거 소식을 들었나 봅니다. “왜 인제 오는겨? 다른 사람이 먼저 가져가면 어쩌려고. 누나는 어디 간겨?” OO건강원 주인장이 살갑게 인사를 건네더라구요. 묻는 말에 애매한 미소만 짓는 그 청년은 지능이 4~5살 정도에 머물고 있는 발달 장애인이었습지요. 사정이 딱한 듯해서 우리 밭의 간단한 일거리를 맡겨볼까 했는데, 그의 누나가 “우리 동생은 그만한 일조차 할 형편이 못 된다.”며 동생 상황을 소상히 알려주었답니다. 블루베리 농장엔 쌓이는 것이 빈 박스인지라, 그 청년은 일수 도장 찍듯 매일 농장문을 두드리곤 한답니다.
서울 촌놈인 제게 세종시 연기면 연기리 당산마을의 소소한 풍경은 예전 마을 공동체의 로망을 부추기는 듯합니다. 집집마다 어떤 일이 있는지 소상히 알고 지내던 그 시절, 친구네 비닐하우스 문짝이 떨어졌는지도 알고, 빨래방 남동생이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지도 알고, 전씨 할아버지네 베트남 며느리가 공장에서 매니저로 승진했다는 소식도 알고, 법 없이도 살 최씨 아주머니 사위가 직장에서 또 쫓겨났다는 소식도 아는 당산마을의 사람 냄새가 참으로 좋습니다.
때로 도시생활이 그리울 때도 있긴 합니다.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황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관심과 간섭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동네 어르신들 오지랖 또한 피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서울 아파트의 각박함이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애써 외면하는 무례함보다는 아직도 따스하고 끈끈한 정이 오가는 당산마을이 참으로 좋습니다.
물론 예전 농사짓던 시절의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도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도 손수레를 밀며 빈 박스를 모으는 발달장애 청년을 나름의 방식으로 품어주는 당산마을 사람들, 홀로 사는 어르신 하루이틀만 안 보여도 안부를 묻고 걱정해주는 당산마을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마을 공동체의 장점 중 일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되살렸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