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1일 이화여대 교정에서 만난 이지선(45) 이화여대 교수(가장 왼쪽)와 어머니 심정(71)씨, 아버지 이병천(76)씨. 세 사람은 이 교수의 "하나 둘, 하나 둘" 구호에 발을 맞춰 함께 걸었다. 김경록 기자
2000년 7월 30일, 스물셋 딸은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몸 절반 이상에 중화상을 입었다. 사고 뒤 혼자선 밥을 먹지도, 화장실을 가지도 못하는 딸을 보살피던 부부가 절망을 뚫고 했던 기도는 "아기 지선이를 다시 키울 수 있어 감사하다"였다. 이지선(45)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부모 이병천(76)씨와 심정(71)씨 이야기다. 사고 당시 딸의 나이였던 23년의 세월이 한 번 더 흘렀다. 두 사람은 "딸의 고백처럼 우리도 사고와 잘 헤어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이화여대에서 오랜 여행을 앞둔 두 사람을 만났다. 교수 연구실에 들어서자, 이 교수가 어머니 심씨에게 직접 화장을 해주고 있었다. 그는 "엄마, 오늘 화장 잘 됐다"며 웃었다.
세 사람은 지난 3월 이 교수가 모교 이화여대에 부임하면서 19년 만에 함께 살고 있다. 이 교수는 200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컬럼비아대·UCLA에서 공부한 뒤 2017년부터 6년간 포항 한동대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최근엔 주말 저녁마다 오빠 정근(48)씨의 다섯 가족까지 모두 모여 식사를 한다.
지금도 사고 얘기를 꺼내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사고 이야기를 안 한 지 오래됐다. 숨기거나 잊으려 한 건 아니고, 자주 웃고 가끔은 서로 흉도 보는 보통의 가족으로 살고 있다. 분하고 억울한 걸로 치면 지구를 몇 바퀴 돌아야 하겠지만, 사고가 우리만 비껴가라는 법도 없지 않나.
사고 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아침에 서로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사고 당일 이 교수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오빠와 소형차를 타고 귀가하던 중 만취한 운전자가 몬 중형차에 들이받혔다. 차가 불길에 휩싸였고 오빠는 팔이 타는 와중에도 동생을 불 속에서 꺼냈다.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몸 5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심씨는 응급실에서 목도한 새까맣게 타버린 딸의 얼굴과 침대에 흥건한 피와 진물, 탄 냄새에 충격을 받았다. 딸을 안으려다가 어찌할지 몰라 뒤로 물러섰을 정도다. 이후 딸은 7개월간 병원 생활을 하며 큰 수술을 받았고 퇴원 뒤에도 40번 넘는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무너진 가족을 일으킨 건 딸을 향한 부모의 정성이었다. 심씨는 하루 세 번 20분씩 면회가 허용되는 화상 중환자실에서 딸에게 밥 먹이는 일에 집중했다. 한 숟가락씩 입에 넣을 때마다 "이 밥이 피가, 살이, 가죽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딸의 얼굴과 손이 사고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혈당이 떨어져 수혈해야 했을 때도 부모는 묵묵히 밥을 먹이고 몸을 닦고 병원 밖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모의 덤덤함 눈빛을 보고 딸은 조금씩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심씨는 면회 뒤 문밖을 나서면 쓰러지곤 했다. 딸을 간호하면서 체중이 10kg 가까이 빠졌다고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지난 2001년 어버이날 이 교수가 부모님께 쓴 감사 편지. 사진 문학동네 제공
하루에 한 가지씩 감사할 거리를 찾자는 건 어떤 얘기인가.
병원 생활 5개월쯤 됐을 때, 의약분업 의료파업 때문에 수술을 못 받고 진통제만으로 버틸 때였다. 아침에 딸의 안대를 벗기면 얼굴에서 나온 진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절망의 나락 끝에서 감사할 것을 찾아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어떤 걸 감사했나.
찾아보니 많았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딸과 병원 마당에 내린 눈을 밟았다. '뽀드득' 소리에 감사해 했던 기억이 난다.
딸처럼 가해자를 용서했나.
그렇다. 딸이 위중할 땐 가해자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나중에 그가 보험료를 미납한 상태였는데, 사고 뒤 완납했다고 들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가해자를 생각나지 않게 해주신 건 신의 은혜다.
부모의 강인함은 딸의 삶에 긍정의 씨앗으로 심겼다. 이 교수는 "남은 평생을 피해자로만 살지 않을 수 있던 건 부모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불쌍하다거나 안 됐다고 하지 않았다"며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딸로 전과 똑같이 대했다"고 말했다. 심씨는 사고 전에도 제대로 연애를 해본 적 없는 딸에게 "사고 안 났어도 시집 못 갔을 거"라고 농담을 하고, 이 교수는 "고마워 엄마"라고 받아치기도 한다고 한다.
2016년 미국 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지선 교수(가운데)가 부모님과 활짝 웃고있는 모습. 중앙포토
말수가 적고 감정 표현도 거의 없는 아버지였던 이씨는 병원 생활을 하며 딸과 친해졌다. 딸은 짧은 면회 시간에 다른 환자들과 인사를 다 하고 올 정도로 느긋한 그에게 '거북이'란 별명을 지어줬다. 말을 잘못 알아듣는 일이 많아 '주한 외국인'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두 사람은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씩씩하게 살아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이어 "살아나느라고 남들보다 고생했는데 너무 애쓰면서 살 필요 없다, 그냥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