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마을에서 필요한 것은 산책자의 자세다. 산책자들은 후미진 골목을 쏘다니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그 시간을 아깝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느린 걸음은 가끔 평범한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보물을 발견하고는 더 없이 기뻐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루한 일상 속에 감추진 유머를 읽어낼 줄 알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풍경, 초록색 블록 담 위에 화분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화분 위로 가스 배관이 지나간다. 분명 삭막하고 스산하다. 하지만 가스 배관 위에 새들을 그려넣었다. 마치 새들이 사스배관 위에 걸터앉은 것처럼 보인다. 좁은 골목에 놓인 가스통도 애교스럽다. 누군가 가스통 위에 플라스틱 바가지를 엎어놓앗다. 그리고 그 옆에 그려진 해바라기 그림. 삶은 때로 이처럼 천연덕스러울 때도 있다.
나는 렌즈에 가스통을 담고 포커스를 맞추고 천천히 셔터를 누른다. 삶이 상투적이라고 생각했던 지금까지 잠시 후회스럽다.
이건 삶에 대한 생생한 반응이야.
이런 풍경이 깃든 골목을 걷다보면 투정과 불만으로 가득 찼던 하루가 괜히 미안해질 거야.
그리고 텃밭, 개미마을에는 텃밭이 참 많다. 고추와 상추, 대파가 심어져 있고 각종 채소가 자란다. 집들이 텃밭 사이사이에 들어앉은 느낌이 들 정도다.
『여기 사는 사람들, 바깥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그렇게 가난하지 않아. 다들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어. 여기 텃밭들 봐. 시장 안 봐도 일 년을 너끈히 먹고 살아. 』
텃밭을 가꾸던 한 할아버지가 허리를 펴며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얼마나 인정 넘치는지 알아? 누가 아프면 돌봐주고 좋은 일 있으면 같이 기뻐해주고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하루하루 살아가. 』
저물 무렵이다. 나는 지금 개미마을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 버스가 왔다. ‘끼익-’ 하고 문이 열린다. 아주머니가 내리고 가방을 맨 아이들이 내리고 할아버지가 내린다.
나는 버스를 그냥 보낸다.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정류장에 머무르기로 한다. 세상에는 일부러 버스를 놓치게 만드는 정류장이 존재하는 법이니깐.
어쩌면 이런 상냥한 정류장이 있는 마을을 알고 있다는 건 양평이나 안면도의 바닷가에 멋진 별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분명 다른 느낌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내게 묻는다면 글쎄, 나라면 아마도 전자를 택할 것 같다.
▶작가_ 최갑수 – 시인. 1997년 『문학동네』에 시 「밀물여인숙」으로 등단. 신문과 잡지에서 여행담당 기자로 일하다 지금은 프리랜서 여행작가가 되어 글 쓰고 사진 찍고 있다. 시집 『단 한 번의 사랑』 여행 산문집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등이 있다.
▶낭독 – 장인호 – 배우. 영화 ‘고지전’, ‘하울링’ 등에 출연.
서윤선 – 성우. 연극 ‘백치, 백지’, 영화 ‘줌 피씨 월드’, 애니메이션 ‘ 명탐장 코난’ 등에 출연.
▶출전-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달)
▶음악_ Backtraxx-piano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최갑수,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를 배달하며
지난 시절 스스로 비장해진 지식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세종로 큰길을 가득 메우고 주먹 쥐고 구호를 외칠 때,
블록을 쌓아 담을 덧대어 꼬불꼬불해진 골목길 저 안쪽에서는
텃밭이 있어 가난하지 않다, 하는 선량한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
삶이란 그저 살아지는 것이지, 누가 누구의 권리를 대신
쟁취해준다는 것인지? 그때 주먹 불끈 쥐었던 한 사람, 선거철이 되니
명함 들고 찾아와서, 서울에 아직 이런 동네가 있단 말인가, 하고
놀라는 시늉을 한다. 그가 바로 안면도 바닷가에 멋진 별장을 가진 그 사람일지도!
문학집배원 서영은 / 사이버문학광장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