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넘의 인물에 반해가지고 참으로 너의 아버지 잘생겼단다 훤칠한 키에 일을 하실 때 아주 열성적인 모습 그리고 가식없는 말과 행동에 내가 그 많은 청혼을 뿌리치고 아무것도 없는 네 아버지한테 시집간거 아니니” 하시며 아버지 얼굴을 흘끗 보시며 웃음 짓던 어머님.
어머님 말씀 대로 울 아버지의 키는당시178Cm였으니 당시에는 큰키에 속했고 얼굴은 정말 잘 생겨셨다
부리부리한 눈과 오똑하게 솟은 콧날 아버님이 지나가시면 여성들이 한번씩 얼굴을 더 쳐다 볼 정도였으니 저 얼굴 때문에 하시면서도 아버님의 정직성과 성실함에 더 매료 되었다고 하시던 어머님
아버님이 노래를 부르시면 이그 다른것은 다 잘하시면서 노래는 왜 저래 못부르는지 몰겠다 하시며 웃으시면 아버님은 왜그래 잘부른다고 하는데 왜 당신만 못부른다고 그래 하며 웃으시던 아버지............
내게는 아픈 기억 보다 좋은 기억 즐거운 기억이 더 많기에 나는 나쁜 기억을 내 머리에 지우고 좋았던 기억만 깊이 간직하며 우울할 때 또는 삶이 싫어질 때 살며시 꺼내며 힘을 얻고 용기를 가지며 살아간다. 그
리워하는 마음! 어쩌면 그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나는 그 그리움을 기쁜 일들로 치장하며 웃으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두분이 나란히 누우신 곳에서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 하며 아빠 나 오늘 이렇게 했는데예 엄마! 나 오늘 말이야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잘한 일 맞제 하며 귀염의 재롱을 떨며 그렇게 이야기 하며 돌아선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아들이 내가 누운곳에 왔을 때 나와 같이 슬퍼 하기 보다 웃으며 이야기 하며 나를 찾아올 수 있는 아빠가 되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그리운 이름을 부르며 그리운 사람 내가 이세상에서 진실로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오늘이 내게는 행복이라 생각하며 노을이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버님과 어머님께 작별 인사를 하며 돌아섰다. 돌아서 내려 오는 길에 직원 한테 전화가 온다. “사장님 어디십니까? ” “어~~아버님 어머님 뵙고 오는 길인데” “조금만 기다리이소 다 와 가니까예"
하이패스 요금대가 밀려 있어서 요금 받는 곳으로 돌렸다 톨게이트에서 고속도로 요금을 받는 아짐매를 바라보니 밑에 이름이 적혀있는게 아닌가
“저~·00씨 요금좀 깍아 주면 안되는교” 하니 “아~~그래요 기분이다 하며 깍아 드렸습니데이” 하길래 “아고 이쁘십니더 그런데 왜 깍았다 하면서 똑 같는교” 하니 “지가예 아자씨하고 말하는 순간 이 요금보다 더 많은 기쁨을 드렸지 않습니꺼” “무슨 기쁨요” “지하고 이야기 하는 순간 엔돌핀이 팍 돌지 않던가예 그기 어딥니까”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렇게 자투리 시간이 있으면 말을 나누며 웃음을 띠울 수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 사랑하는 부모님의 고운 말씀과 고운 행동들이 내 가슴에 살아 숨쉬고 있어 행복하고 내가 차를 타는게 불편 할까봐 걱정하며 나를 데리고 올려는 직원과 친구도 있고 우리 57년 에 많은 친구들이 계시기에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복이 많은 사람이다.
비록 아짐매들에게 발길질을 당하기는 하지만 이것 역시 행복한 발길질이 아닌가? 누가 감히 아름다운 상상을 할 수가 있고 이쁘게 발길질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혼자만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예쓰 하면서 보낼 수 있는 나의 오늘이 정말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아름답고 멋잔 친구들 나쁜 기억은 슬픈 기억은 가급적이면 머리에 지우세요. 그리고 좋았던 일들 아름다운 추억만을 생각하며 웃음 짓는 그런 날들만 만들어 가시길 바래요. 늘 아름다운 마음과 생각 속에 삶을 가꿔 가시는 오늘이 되 시길 빌어드립니다.
첫댓글 하기사 키크고 매너 있고 유머와 재치를 겸한 회장님 에게 어느 누가. 아 넘어
오겠습니껴 ㅎㅎ 근데요
저는 아버지 바람끼 때문에 학을 뛴 사람이라 집사람과 47년간 살면서도
단 한번도. 헛짖을 안했으니
나자신 한톄도 떳떳 합니데이. ㅎㅎ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생각나는 사람이 부모입니다
그 당시는 간섭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 내가 엄마가 되고보니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알았죠
아직도
이나이를 먹어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눈물 부터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