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그치고 가을로 접어든다는 처서(處暑)를 앞두고 있다. 가을 운동회에 자주 등장하는 높이뛰기를 개화기에는 ‘큰 물고기가 높이 뛰어오른다’는 뜻의 ‘대어발호(大魚跋扈)’라 했다. 높이뛰기를 할 때는 한 걸음에 내닫는 것보다 적당한 보폭으로 도움닫기를 한 후 바를 넘어야 한다. 적절한 힘의 나눔은 병력과 병과 비율에도 필요하다.
■ 병력·병과 비율
전쟁론에서 가장 많은 분량으로 제5편 전투력과 제6편 방어를 담고 있다. 제5편은 18개 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투력의 구성 요소와 병력 및 부대 이동, 숙영지 편성과 전투근무지원 등을 서술하고 있다.
1장과 2장은 전투력 전개 순서와 전쟁터·군대·대전투의 일반적 개념을 설명한다. 3장은 병력의 비율에 대한 것으로 결정적인 전투에 병력을 집중해 수적인 우세함을 달성하는 일반적인 원칙을 피력하고 있다. 4장 병과 비율에서는 보병·포병·기갑 병과의 적정 규모 등을 설명하고 있다. ‘전투는 화력과 백병전, 각개전투로 적을 파괴하거나 무찌르는 것이다. 전쟁 수행 방식은 각 병과의 우세 정도와 병력 규모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의 성격은 병과 비율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게릴라전에서는 민병대와 의용대에 의존하며, 전투력이 열세인 약소국은 강대국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포병을 늘려야 한다. 기병은 제일 건장한 병력으로 구성된 강력한 병과로 기동력을 발휘해 큰 결전에 적합하다’라고 했다.
5장 군대 전투대형에서는 이러한 병과들을 군대의 각 부대에 적절하게 편성하는 것, 즉 분할과 병과 결합 및 배치를 다뤘다. ‘분할에서는 적정 규모 편성을 통해 지휘권 확립과 전투력 발휘가 용이하도록 해야 한다. 병과 결합에서는 사단과 군단 제대에서 적정 규모 병과를 결합하는 장단점과 예비 병력 규모를 판단해야 한다.
배치는 곧 전투대형으로 전투를 하는 데 적합한 집단이 되도록 군대를 분할하고 배치하는 것’이라고 했다. 높이뛰기에서도 도움닫기부터 착지에 이르기까지 적정 비율로 힘의 안배가 요구된다.
■ 높이뛰기와 장대높이뛰기
높이뛰기(saut en hauteur)는 도움닫기와 도약의 힘을 이용해 수평으로 설치된 바를 뛰어넘고 그 높이를 경쟁하는 종목이다. 뛰어넘는 기술은 날로 발전했다. 1912년 미국의 조지 허라인은 엉덩이를 틀어 넘는 방식으로 2m를 돌파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딕 포스버리가 누운 자세로 등 뒤로 바를 넘는 혁신적인 배면뛰기 기술을 선보였다.
장대높이뛰기(saut a la perche)는 육상의 종합예술이다. 단거리 선수의 스피드(도움닫기)와 높이뛰기·멀리뛰기 선수의 균형감(공중자세), 던지기 선수의 마무리 자세(낙하)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보다 빨리(Citius), 보다 높이(Altius), 보다 힘차게(Fortius)!’ 모두가 해당된다.
크레타인들과 에스파냐인들로부터 시작된 장대높이뛰기는 1866년 영국에 처음 소개됐다. 장대는 처음에는 물푸레나무를 썼으나 대나무, 알루미늄과 가벼운 합금 등 금속장대, 유리섬유 장대로 진화했다.
한편 한국 근대육상은 1896년 5월 2일 영어학교 운동회(화류회)가 시초였다.
서울 동소문(혜화문) 밖 현재 삼선교 부근(삼선평) 공터에서 300보 달리기, 공 던지기, 높이뛰기 등의 경기가 열렸다. 상투에 갓을 썼던 당시로서는 뛴다는 것은 웃기는 것이었다.
단거리 경주는 ‘어린 제비가 나는 것을 배운다’라는 뜻의 ‘연자학비(燕子學飛)’로 불렀다. 어학을 발판 삼아 신분상승과 입신출세의 높이뛰기를 한 사례도 많다.
■ 어학과 높이뛰기
19세기 말, 프랑스와 미국 군함의 포성과 일본도 부딪치는 소리에 놀란 조선 조정은 서둘러 나라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단 한 명의 통역사도 없었다. 윤치호는 일어는 잘했으나 영어는 서툴렀다.
이때 영어를 잘해 수직으로 신분이 상승했던 찹쌀떡 장수 이하영이 있다. 그는 1884년 한국 파견 의료 선교사 알렌의 요리사로 시작해, 영어통역전문교육과정 동문학(同文學)을 수료하고 영어통역전문가가 됐다.
그 후 대한제국의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오늘날 외교통상장관인 외부대신과 법부대신까지 올랐다.
1885년에는 최초의 관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이 설립됐고, 영어는 출세의 지름길이 됐다.
한편 일제 치하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가 일본인으로 채워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발음이 서툴렀던 일본인 교사들이 말하기는 제쳐놓고 문법과 독해를 강조한 탓에 고질적인 주입식 영어 교육이 고착됐고 그 폐단을 없애는 데 반세기가 넘게 걸렸다.
탁월한 어학 능력으로 불세출의 영웅이 되거나 산업계의 거장이 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해보지도 않고 사다리만 탓하는 그늘진 세대들은 당장 찹쌀떡판을 둘러 메고 거리로 나가보자.
발로 하면 1m, 장대로 하면 5m를 뛰어넘는다. 장대높이뛰기의 날갯짓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집중시켜야 한다.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요소에서 솟구쳐 나와야 한다. 어학능력이 장대다.
<오홍국 군사편찬연구소 연구관·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