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취푸’의 잘못.
어휘별 규범 해설
뜻풀이 : ‘취푸(Qufu[曲阜])‘의 잘못.
오류어휘 : 曲阜, 취푸
표준어 규정 조항 : 외4장2절2항
규범해설 : 중국의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중국 산둥 성(山東省) 서부 쓰수이(泗水) 강 남쪽 기슭에 있는 도시인 ‘취푸(Qufu[曲阜])‘는 한자음 때문에 ‘곡부‘라고도 하나, ‘취푸‘로 적는다.
古阜郡 전북 정읍시 일원과 부안군 일부를 포함한 지역의 통일신라시대 행정구역명. 백제 古沙夫里郡을 경덕왕이 고부로 고쳤다. 936년(태조 19) 영주(瀛州)라 하고 관찰사를 두었으며, 광종 때는 安南都護府를 두었다. 현종 때 다시 고부군으로 고치고 충렬왕 때 영광군에 병합되었으나, 곧 복구되어 조선 후기까지 존속하였다. 1914년 일부는 부안군에 속하고, 일부는 정읍군에 병합되었다. 현재 일부가 정읍시 고부면으로 남아 있다. 全琫準의 동학군 궐기의 발상지이다
고부와 곡부는 서로 연결이 안 어울리는 지명으로 보입니다...네. 그 동학군은...중원 동쪽 황해연안과 한반도 전체에 분포되어 있었다 사료됩니다...남쪽은 수뇌부라기 보단...따르던 민중들이겠고여...동학란 시기(태평천국시기)에..남쪽 못잖게... 현 북경주위의 민란이 오히려 가장 극심하게 일어났답니다.
정감록에 엄택곡부라는 문구가 있군요. 그걸 누군가 해석해 놓으면서 곡부가 고부의 옛지명이라고 갖다 붙였나본데 도전은 제가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대순전경은 자세히 본 편인데 곡부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서요. 아마 대순전경에는 곡부라는 말이 없을 겁니다. 곡부가 고부의 옛지명이라는 건 근거가 없는 듯해요. 아마 곡부가 고부와는 다른 곳일 가능성이 높네요....뭐 대순전경 초판부터가 일제의 교열을 거친 편집본이니 원본에는 곡부였을 수도 있고...
대순진리회에서 대순전경이 아닌 비결 나부랭이를 가지고 '해석'을 들으셨다면 걍 잊는 게 좋아요. 완전 "아님 말고"에요. 결론적으로 곡부라는 지명은 대순전경에 증산이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는 고부와는 다른 곳이고 정감록이라는 예언서에 나오는 '엄택곡부'라는 문구를 대순진리회 애들이 고부에 갖다 붙였다는 것 정도인데..곡부라는 지명은 일단 증산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대순진리회 애들이 왜 그런 얘기를 쉽게 하냐면 그들은 각 방면별로 책임이 분할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통제 없이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기 쉬워요. 곡부 얘기를 굳이 하시려면 곡부가 전라도 지명이었다는 다른 근거를 알려주시고요
네. 중조와 청에 항거한 동국(조선)족들을...양키자본들이 부추겼을 수 있어 맞다 봅니다...중요한 건...이후의 동학란은...외세 배척운동이 된 단 겁니다...이 때 부터 양키들과 왜는...동학(태평천국)세력을 조져 버립니다...중조(차이나)와 양이&왜들에게 협공당한 동국조선군(동학군)의 비참한 최후라 봅니다.
첫댓글 좌= 동 우=서 이므로 한반도 서해안이 좌수영 이 되지요 허나 지나 대륙 남쪽 면 전체를 좌우로 나눈 것 이 기존인식 이지요
고려에게 서서히 병합당한 신라의 대부분은 역시,동쪽으로 밀렸다 보고...동이 라인이 옛신라의 영역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라 보아...중원 전체가 아닌...패망기의 신라영역인 황해일원을 전라(全羅)라 했지 않았을까 해서 유추했고여...
무었보담도...전라도 곡부란 지명에서...곡부는...공자와 관련된 지명으로서...산동반도(청도)가 거의 유일한 지명이니 유추해 봤습니다.
지금 중국 산동반도의 곡부가 과연 공자의 출생지일 지는 의문이군요.....
공자의 출생지가 아닌...무슨 전통적 사당지역인가 그랬답니다.
古阜郡 전북 정읍시 일원과 부안군 일부를 포함한 지역의 통일신라시대 행정구역명. 백제 古沙夫里郡을 경덕왕이 고부로 고쳤다. 936년(태조 19) 영주(瀛州)라 하고 관찰사를 두었으며, 광종 때는 安南都護府를 두었다. 현종 때 다시 고부군으로 고치고 충렬왕 때 영광군에 병합되었으나, 곧 복구되어 조선 후기까지 존속하였다. 1914년 일부는 부안군에 속하고, 일부는 정읍군에 병합되었다. 현재 일부가 정읍시 고부면으로 남아 있다. 全琫準의 동학군 궐기의 발상지이다
고부와 곡부는 서로 연결이 안 어울리는 지명으로 보입니다...네. 그 동학군은...중원 동쪽 황해연안과 한반도 전체에 분포되어 있었다 사료됩니다...남쪽은 수뇌부라기 보단...따르던 민중들이겠고여...동학란 시기(태평천국시기)에..남쪽 못잖게... 현 북경주위의 민란이 오히려 가장 극심하게 일어났답니다.
고부의 옛지명이 곡부라는 건 어디 나와 있는 얘기인가요?
증산도 도전...대순진리회 대순전경에여...제가 옛날에 지하철에서 도를 아십니까..?...에 선뜻 응했던 적이 있거든여...
저기 그니까 몇 페이지에 있나요?
정감록에 엄택곡부라는 문구가 있군요. 그걸 누군가 해석해 놓으면서 곡부가 고부의 옛지명이라고 갖다 붙였나본데 도전은 제가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대순전경은 자세히 본 편인데 곡부라는 얘기는 처음 들어서요. 아마 대순전경에는 곡부라는 말이 없을 겁니다. 곡부가 고부의 옛지명이라는 건 근거가 없는 듯해요. 아마 곡부가 고부와는 다른 곳일 가능성이 높네요....뭐 대순전경 초판부터가 일제의 교열을 거친 편집본이니 원본에는 곡부였을 수도 있고...
잠깐 댕겨서...몇 페이진진 모릅니다...틀림없이 곡부라 했습니다....물론 오선생님과 마찬가지로..고부와는 전혀 다르다고 저도 확신하고여...현재의 신도님들이...고부가 옛 곡부라고 얘기하시는 글들은...그냥 다음검색어로도 나온답니다.
그러게여...?..대순전경은 어쩜 아닐지 모릅니다...증산도 도전엔 나옵니다...몇일 못 다닌 대순에서 교육자료로 쓴...격암유록과 진표율사 뭐시기...정감록등에 나올겁니다.
증산도 도전에도 아마 역주 정도에나 있는 얘기겠죠. 도전 역주는 무시하시면 됩니다. 그 단체의 희망사항일 뿐이니...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면 나왔겠습니까...?...강증산씨의 이론에 동조할 뿐...여기서 중요한건 그게 아니고...전라도 곡부(曲阜)란 지명입니다...그들이 조작을 했다면...왜 구집씨고 곡부가 고부란 설명을 하여...자신들의 외곡에 헛점을 만들겠습니다...교리는 몰라도...거기에 응용된 지명은...외곡이 아닐듯 합니다.
대순진리회에서 대순전경이 아닌 비결 나부랭이를 가지고 '해석'을 들으셨다면 걍 잊는 게 좋아요. 완전 "아님 말고"에요. 결론적으로 곡부라는 지명은 대순전경에 증산이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는 고부와는 다른 곳이고 정감록이라는 예언서에 나오는 '엄택곡부'라는 문구를 대순진리회 애들이 고부에 갖다 붙였다는 것 정도인데..곡부라는 지명은 일단 증산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대순진리회 애들이 왜 그런 얘기를 쉽게 하냐면 그들은 각 방면별로 책임이 분할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큰 통제 없이 유언비어를 만들어내기 쉬워요. 곡부 얘기를 굳이 하시려면 곡부가 전라도 지명이었다는 다른 근거를 알려주시고요
강증산은 프리메이슨과 연관이 많았습니다. 강증산도 독립운동가와 같이 조선분리주의자였습니다. 그가 한민족전통을 내세운다고 조선왕조를 계승한게 아닙니다. 참고로 동학난과 태평천국난의 배후도 프리메이슨입니다.
네. 중조와 청에 항거한 동국(조선)족들을...양키자본들이 부추겼을 수 있어 맞다 봅니다...중요한 건...이후의 동학란은...외세 배척운동이 된 단 겁니다...이 때 부터 양키들과 왜는...동학(태평천국)세력을 조져 버립니다...중조(차이나)와 양이&왜들에게 협공당한 동국조선군(동학군)의 비참한 최후라 봅니다.
그게 아니고 동학세력은 필요에 따라 이용되었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