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 884회] - 세브란스 병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 지니라.” (야고보서 5:14)
최근(2023년 정월) 신문에 환자들의 편익을 위해 힘쓰는 세브란스병원에 대한 소식이 났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면 뽀송뽀송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환자복을 받는다. 병원이 최적 온도와 습도를 계산해 제공 한다. 24시간 돌아가는 병원에서 환자 잠을 해치는 주범은 소음이다.
각종 상자 테이프를 뜯고 싸매는 과정에 소음이 많아 무소음 테이프로 바꿨다. 상자 작업은 별도 밀실에서 한다. 병실 화장실 변기 뚜껑에 소음 방지기를 달아, 닫을 때 조용하다. 안대와 귀마개도 무상으로 제공한다. 병원 생활에 불만을 제기하는 환자 목소리를 세브란스는 복음(福音)이라고 부른다. 병원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금쪽같은 의견이라는 의미다.
일주일에 불만이 260여건, 칭찬이 270여건 정도 복음이 들어온다. 모든 불만 사항은 어떻게 개선됐는지 매주 병원장에게 보고 한다. 연간 10만 명이 넘는 퇴원 환자에게 휴대폰으로 병원 생활에 관한 설문을 보낸다. 병실 게시판에 질문을 적어 놓으면 회진할 때 의사가 답해준다.”
기독교 병원답게 환자들의 편익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의 태동은 1885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84년 9월, 한국에 나온 최초의 의료선교사 Horace Allen, M.D.가 미국 북장로교회 파송으로 한국에 나왔습니다. Allen이 한국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만해도 외국 선교사의 입국은 허락되지 않았고, 더욱이 서양 종교의 전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Allen이 입국한 지 석 달 만에 갑신정변(甲申政變) 즉 개화(開化)파가 수구(守舊)파를 참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조선 최초 우정국(우체국) 건물 낙성식 만찬에 많은 대신들이 참석 했는데, 이때를 기해 개화파가 수구파를 몰살해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수구파의 수장이며 민왕후의 조카인 민영익이 칼을 여러 곳에 맞고 절명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의사들이 왔으나 온 몸이 갈기갈기 찢겨 피를 낭자하게 흘리고 있는 민영익을 어떻게 조치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Allen이 불려와 절망적인 민영익의 끊어진 혈관을 명주실로 묶고, 찢긴 살을
꿰멘 후. 4,000년 역사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서양 알약(Tablet)을 먹여, 기적적으로 살렸습니다.
이 일로 Allen은 고종 황제로부터 진료소 개소를 허락받고, 1885년 4월, 서양 병원인 ‘광혜원’(廣惠院:은혜를 널리 베품)을 세웠는데, 2주일 후에 진료소 이름을 ‘제중원’(濟衆院:민중을 구제함)으로 바꾸고 환자들을 진료했습니다.
제중원은 밀려드는 환자들과 수술한 후에 입원 치료를 해야 하는 환자들이 넘쳐나, 큰 병원이 필요했습니다. 1900년, 제중원 4대 원장인 Oliver Avison이 New York에서 모인 세계 선교사 대회에 참석하여 조선의 의료 선교에 대한 보고를 하면서, 한국에 현대식 병원이 절대 필요함을 역설하였습니다.
연설이 끝난 후, 어떤 사람이 Avison를 찾아와 자기가 조선의 병원 건설을 위해 당시 거금인 1만 5천 달러를 헌금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분이 바로 Louis Henry Severance(1883-1913)씨입니다. Severance 씨는 미국 Ohio주 Cleveland시에 사는 Standard Oil 회사의 회장으로 그 때까지 많은 선교 헌금을 한 인물입니다.
Avison이 헌금한 돈으로 서울 역전에 대지를 사고, 현대식 2층 병원 건물을 세운 후, 병원 이름을 많은 기금을 헌금해준 ‘세브란스’씨의 이름 따서 ‘제중원’을 ‘세브란스병원’으로 개명했습니다. 세브란스 씨는 1907년에 내한하여 다시 3만 달러를 희사하여 외래진로소와 의학교 기숙사를 건축하게 하여 오늘의 세브란스 병원을 있게 한 우리 교회와 민족의 은인입니다.
이 병원에는 장로교회 의사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감리교, 성공회, 심지어 안식교회 의사 선교사들까지 합류하여 한국 최초의 종합병원이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세브란스병원은 에큐메니칼 정신이 구현된 선교 기관이 되었습니다.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이 통합하면서, 연희의 ‘연’자와 세브란스의 ‘세’자를 합해 오늘의 ‘연세’대학교가 되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은 한국 최초의 서양병원으로 한국의 수많은 서양병원의 효시가 되었고, 이 병원은 초기부터 복음 선교를 목적으로 시작되어 많은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 기관이 되어왔습니다.
세브란스병원이 환자 위주로 병원을 운영한다는 것은 ‘복음’이지만, ‘참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브란스 병원이 처음 세워진 목적에 따라 오늘도 계속 참된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귀한 기관으로 계속 성장해 나가기 위해 함께 기도드립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