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멜리데 섬에서 아래의 본문에서와 같이 그 섬의 추장 격이라 할 수 있는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분명한 것은 진정 그러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역사의 주체는 바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조금만 따지고 봐도 실제로는 바울이 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와 같은 역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 것이고, 아래 본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증거되어 있지는 않지만 반드시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것으로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은 결코 단 하나라도, 단 한 번일지라도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구주 예수님과 별개일 수가 없는 것이며..
그러한 사실과 실제는 우리 인생들이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됨에 있어서야 말로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인 것과 같은 이치와 원리인 것으로 사실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어떻게 표현되어 있든지 간에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한 것이 아니고서는 불합치와 모순이 되는 것입니다..
실상 빌립보 성에서 귀신 들린 여종을 귀신에게서 건질 때에는 사도행전 16장 18절에서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며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듯이 구체적으로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 확인되고, 또한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를 그 자리에서 일으켰을 때에도 사도행전 3장 6~8절에서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라고 증거되어 있듯이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 것임을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성경의 수많은 곳들에서의 하늘의 힘과 역사들에 있어 구주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곳들이 더욱 더 많은데..
그렇다고 그러한 모든 역사들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단 하나라도 구주 예수님의 이름과 별개일 수는 없는 것이고, 참으로 2000년 교회사의 있어서의 모든 응답들에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들의 기도의 응답들에 있어서도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모두 다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잘 살펴보면 구주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과 구주 예수님께서 중심에 계신 사도신경이나 축도 같은 경우에서만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있으나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당연히 그러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 등에서도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한 의미와 역할과 약속이 마찬가지로 포함된 것일 뿐 아니라 성경에 있어서의 하나님 아버지께 합당한 모든 기도들에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이름이 직결되어 있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 있어서의 제대로 된 기도와 응답들에 있어서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으며 주야로 더욱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창세기 3장에서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를 위시해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회막과 성전, 유월절 어린 양과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 뱀, 제사장과 선지자들 등과 같은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 하신 것과 같이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이름과 전적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아래 본문의 전후에 증거되어 있는 파선에서의 멜리데 섬에서의 구조, 원주민들의 특별한 동정과 은혜, 독사에 물려서도 죽지 않게 된 하늘의 힘과 이적, 멜리데 섬에서의 다른 많은 병자들까지도 고침 받게 된 일들 등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에 있어서도,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된 역사에 있어서도, 오병이어의 역사에 있어서도,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가 다시 살게 된 일에 있어서도, 빌립보 성의 감옥 터가 뒤흔들리게 된 역사에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들이 구주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구원에 참예케 된 일 뿐 아니라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무리하는 우리의 기도 응답들에 있어서도, 게다가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등에 있어서도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약속의 이름, 다시 말해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그 예수님의 이름과 결코 별개일 수가 없는 것이고, 전적으로 직결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결코 복잡하거나 어려울 수 없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 상 그와 같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창세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인생들이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그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깨어졌고 단절되게 된 것이며, 영적으로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인데..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죄악과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의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것이기에 바로 그 예수님으로만, 다시 말해 그 약속의 이름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고, 그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이든지 특별 은총이든지 간에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것이며, 특히 기도의 응답을 위시한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모든 역사들에 실제로 참예케 되고 생생히 누릴 수 있게 됨이 가능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렇다고 그와 같은 다양한 모양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누림들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님으로만 가능하고 그걸로 끝이고 그게 전부일 수는 없는 것으로 반드시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고, 결코 별개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반드시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해서만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질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정말 실제들이 되고 경험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근원적으로 그와 같은 모든 일들은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본질적으로는 그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며, 성령님께서도 말씀의 영이신 것이고,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다양한 모양의 하늘의 힘과 구원에 있들의 실제와 누림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 우리들의 기도들이 어떠해야 할지, 좀 더 넓게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있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사도행전28:8)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3년 11월 29일(수)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