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한 마리가 뛰어가면
고라니 한 마리가 뛰어가면
고라니 발바닥만큼 발딱 낙엽들이 일어나고
고라니 주둥이 같은 돌멩이들이 비탈로 굴러가고
비탈 아래 구지뽕나무가 날름 잎을 내밀고
고라니는 뽕잎을 뜯어 먹다가 이마로 나무를 들이받고
그러면 가지 끝에 앉았던 어치가 건너편 콩밭으로 날아가고
고라니는 어치 울음소리 따라 냅다 달리고
콩밭 콩잎들 살갗에 솜털이 송송 돋고
고라니 앞다리의 털이 더 붉어지고
송곳니는 길쭉해지고 엉덩이는 동그래지고
그때 목이 마른 고라니가 골짜기 쪽을 바라보면
산속에 혼자 사는 웅덩이가 고라니더러 물을 먹으라고
밤새 수면에 깔려 있던 어둠을 걷어 내네
안도현 동시집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라』(상상 2023)
첫댓글 마지막 행에 오타가 있어요. 수몉-수면
선생님, 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