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미산령
사월 셋째 일요일이다. 토요일 제법 많은 비가 와 미세먼지를 씻어가나 싶었는데 황사가 밀려오나보다. 주말 이틀 가운데 하루라도 하늘이 개어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나는 마산역 광장으로 나갔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많은 푸성귀와 잡화들을 어디서 마련해 오는지 궁금했다. 시장경제 원리가 그렇듯 수요가 공급을 낳는 듯했다.
철도역은 각기 나름의 특성이 있다. 마산역은 전국의 다른 어느 역보다 광장 부지가 엄청 넓다. 조경수 규모와 화단의 넓이도 다른 역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 주말이나 휴일 아침이면 산악회나 예식장으로 떠나는 관광버스 출발지이기도 해 광장은 일시 혼잡해진다. 지금은 숫자가 현저히 줄었지만 한때 배회하던 노숙자도 보였다. 점심때면 무료 급식을 하는 단체도 두 곳 있다.
이맘때 응달 산기슭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는데 올봄은 이상 고온으로 일찍 피어 잦은 비에 상당수 저물어버렸다. 그럼에도 천주산 일대는 지역사회 단체에서 이번 주말을 택해 진달래 축제를 열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몰리는 그런 곳은 가질 않는다. 여항산과 서북산 일대로 가려고 마산역으로 나갔다. 번개시장 들머리에서 하루를 지켜줄 기본 칼로리에 해당할 김밥을 두 줄 마련했다.
진전 산간 둔덕으로 가는 76번 버스를 탔다. 주말이라도 출발지 마산역에서 타는 손님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나니 예전 볼 수 없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다수 탔다. 고작 요양병원으로 출근하는 요양보호사 아낙 정도 탔는데 웬 일인지 승객이 넘쳐 서서 가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통화를 하더니 진동 환승장과 면소재지 오서에서도 타는 승객이 있었다.
평소 텅 비다시피 다니던 버스에 승객이 갑자기 불어난 사연은 왁자한 할머니들의 얘기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인근 진주 이반성 초등학교 동창들이 진동 어디로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한 회원이 시집와 사는 마을이 버스가 들어가는 어디쯤이었다. 칠순의 초등학교 남녀 동기들은 그 회원 댁을 베이스캠프로 차려 점심나절을 보내고 저녁은 다른 곳에서 2부 행사가 예정되는 듯했다.
초등학교가 최종학력인 내 고향집 칠십대 형수님을 보는 듯했다. 늙수레한 사람들은 소리가 그리 높지 않았으나 여러 얘기들이 오갔다. 어릴 적 소풍 나온 기분으로 차창 밖 시골 풍경을 바라보았다. 버스에 동승하지 못한 일부 회원은 승용차편으로 집결지로 향하는 듯했다. 나는 둔덕 종점에서 내려 미산령을 넘을 생각인데 그분들은 종점에서 내리질 않고 고스란히 되돌아 나갔다.
종점에서 내린 나는 오실골을 지나 오곡재로 올랐다. 군북 오곡으로 넘는 포장도로이긴 하나 차량 통행은 전혀 없다시피 했다. 산허리 갈림길에서 미산령으로 향하는 임도로 접어들었다. 내가 즐기는 트레킹하기 좋은 길이었다. 건너편 여항산 수종 갱신지구는 굴삭기로 임도를 연장 개설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시 맑아졌던 대기가 점차 희뿌연 미세먼지가 엄습하고 있었다.
길가는 양지꽃이 화사했고 해발도가 낮은 지대 산벚꽃은 모두 저물었는데 산마루에는 아직 허연 산벚꽃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길섶에서 산달래가 보여 캐었더니 뿌리가 마늘만큼이나 굵었다. 미산령 정자에서 김밥을 비울 때 적재함까지 사람을 가득 태운 트럭이 올라왔다. 일행들은 모두 오곡 처갓집을 둔 부부들로 산나물 채집을 나섰다고 했다. 봄날이면 치르는 연례행사인 듯했다.
나는 고개를 넘어 길고 긴 임도를 걸었다. 산기슭엔 엷은 보라색으로 피어난 구슬붕이꽃도 보았다. 꽃잎을 펼친 모양이 관악기 주둥이 같았다. 짙은 보라색인 각시붓꽃도 무척 예뻤다. 계곡 어디쯤에서 사람 손길이 미치지 못한 두릅 순을 조금 땄다. 너럭바위 계곡엔 잦은 비에 맑은 물이 흘러 배낭을 벗어놓고 이마의 땀을 씻었다. 미산에서 파수를 지나 봉성으로 가 새마을호를 탔다. 18.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