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6장 1 - 10절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5.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9.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1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띄지 않게 악을 행했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하나님 눈앞에서 버젓이 악을 했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또한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안 계시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안 보시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보시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악을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안 보시는 곳에서 악을 행하면 별탈이 없는 것이냐?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사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이나 하나님께서 보시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항상 정직하게, 거룩하게, 깨끗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삶의 습관이 되지 못하면 우리도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는 불쌍한 영혼들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던 이스라엘이 얼마나 지독한 심판을 받게 되는지 자세히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디안의 손에 넘겨져서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이들의 침략과 약탈에 맞서지도 못하고 산으로 피신을 해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어 살았다는 것입니다. 미디안은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승리를 거뒀던 나라입니다. 민수기 31장에 보면 얼마나 큰 승리를 거뒀는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고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피신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으면서 그저 교회에 나와 기도에만 열중하는 신자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어린 소녀가 엄마와 함께 교회에 갔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끝까지 남아 기도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중에 앞에서 언급했던 그 신자가 기도를 시작하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교회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지경이었습니다. 실로 그 소리는 사소한 이해관계로 동네 아낙네들과 잦은 싸움질에서 단련된 목소리였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의 소리를 압도할 만 했습니다. 마치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향해 고함을 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기도하는 엄마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소녀는 엄마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엄마의 귀에 귓속말을 소곤거렸습니다. “엄마! 저 집사님께서 하나님께 조금만 가까이 가서 기도하면 저렇게 큰 소리로 기도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안 그래요?” 이 소녀의 어머니는 대구할 말이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자체가 악이고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무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절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절대 다른 신을 두려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시작은 두려움의 끝이고 두려움의 시작은 믿음의 끝이라는 말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지금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고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는 어리석은 영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존 맥아더 목사는 두려움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그분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하심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주권자의 존재를 경외할 때 나타나는 것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것 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호의를 얻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다. 징계와 징벌 그리고 심판의 권리가 모두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한 때 초전박살을 냈던 상대에게도 대항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요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 도우심을 버리고 하나님 눈앞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게 된다면 우리는 소망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연약한 존재가 되어서 적을 피하여 웅덩이나 파고 굴과 산성을 만들어서 전전긍긍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패배자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겠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음성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