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중의 보물 2점이 나란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7세기 전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반가사유상으로 삼국시대에 만들어졌다.
예전 국보 83호로 지정됐던 오른 쪽 불상은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광륭사 목조반가사유상의 원형이 된다. 일본에 있는 것은 그곳에서 나지않는 적송으로 만들어져 일본 학계에선 신라에서 온 것으로 공인되고 있다. 일본인들은 광륭사 목조반가사유상을 인간이 다다르고자하는 영원한 평화와 조화가 어울린 절대적 이상세계의 구현이라 여긴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의 찬탄을 그대로 확대시켜 이 불상의 가치와 의미를 앞 세운다. 어쨌든 이 반가사유상의 아름다움은 숨 멎게 할만큼의 위력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시키는 건 사실이다. 나도 그 아름다움에 굴복된 사람 중의 하나다.
오래 된 일이지만 이 불상의 매력에 빠진 한 대학생이 광륭사 경내의 금줄을 넘어 덥썩 껴안게된다. 천 오백년 넘게 보존된 반가사유상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사고를 낸다. 국보 1호인 문화재를 훼손시킨 이 대학생의 처벌여부를 놓고 일본 사회가 시끄러웠던 적 있다.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겠냐는 동정론이 퍼져 처벌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불상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엘리트 청년의 행동이 외려 미화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나 좋았으면'에 방점을 찍어야한다. 실제 이 반가사유상을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압도감에 휩싸인다. 상상을 넘는 완벽의 지경 앞에 그 청년도 온 몸이 저릿해지는 충격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이 충격을 받게 된 출발은 배워서 알게 된 지식과 의미가 아니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체험에서 비롯됐다. 일본 국보1호는 국립박물관도 미술관도 아닌 교토 외곽의 조그만 광륭사란 절에 모셔져있다. 내가 찾았던 90년대 말엔 별 제재없이 불상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만져보는 일 말고 가까이서 각도를 바꾸거나 오랜시간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가능했다. 2000년대 초 다시 찾았을 때도 큰 변화는 없었다. 국보의 권위와 관람자 사이의 간극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랜시간 컴컴한 경내에서 물끄러미 바라봤던 불상의 표정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깨친 이가 지나온 지난 시간의 흔적과 맞게 될 희열의 미소가 교묘하게 섞인 무념무상의 표정이 어떤 것인지 봤다고나할까.
최근에도 광륭사를 찾았지만 원래의 자리를 벗어난 적 없는 불상이 뿜어내는 인상의 강도는 줄어들 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가 가깝고 생각나면 반복해 찾아볼 수 있는 곳에 불상이 있다는 건 그만큼 친숙해지기 쉽고 자세히 알게될 기회가 쌓이는 거 였다. 어느 누구도 단번에 모든 걸 파악할 사람은 없다. 감흥조차 관심과 반복으로 단단해 질 수 있음을 광륭사에서 알게됐다.
그 동안 우리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은 지금까지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다. 국립박물관의 근엄한 쇼 케이스에 갖혀 전부를 볼 수 없었고 마음대로 다가가지도 못했다. 제한된 각도와 거리에서 봤던 일본 국보 1호의 원형인 우리의 국보 83호가 객관적으로 일본의 것보다 표정의 디테일과 긴장감이 덜하다는 편견의 발단이다. 제대로 본 적 없어 그 아름다움까지 미처 느끼지 못했던 거다. 광륭사의 불상이 훨씬 친근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는 게 어찌보면 당연할 지 모른다. 보낸 쪽 보다 받는 쪽이 더 우수한 것을 갖게 된 아이러니만을 떠올리고 씁쓸하게 만 여겼던 건 나만의 심정이 아니었을게다.
그러던 중 몇 년전부터 국립박물관의 분위기와 운영방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전문성을 갖춘 운영자의 역량 때문이란 점이 중요하다. 깊게 보관되던 보물들을 꺼내 새로운 의미와 대비의 분명함으로 다가서게 하는 시도들이 반복됐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박의 놀라운 기획과 전시방식에 감탄 한 적 있다. 우리문화의 실체가 이토록 대단한 것임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됐음은 물론이다. 이 시대 국가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으로 나는 해석한다.
신안 해저유물선 유물전이나 청화백자전,15m나 되는 세한도를 직접 보여줬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번 사유의 방 전시는 변화의 백미라 할 만큼 큰 울림을 만들었다. 우리문화의 최고 걸작이라 할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을 바로 코 앞에서 볼 수 있게 해주지 않았던가. 결코 한 자리에 모은 적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 나란히 모셔져있다. 그 답답한 유리도 씌우지 않았다. 널찍한 공간에서 차분한 조명으로 비춰지는 불상의 표정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일본의 목조상에 비해 표정의 디테일이 떨어졌다 느꼈던 건 잘못이었다. 나무와 금속의 특성을 알지 못하면 영영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칼로 파낸 것과 틀을 만들어 쇳물을 부어 넣어 만든 건 느낌이 당연히 다르다. 다름을 차이와 수준으로 파악했던 무식을 이제사 깨달았다. 쇳물로 이런 디테일을 구현한 기량과 미적 감각이라면 나무는 여기에 비해 몆 배나 쉬운 대상이 아니었을까.
비로소 내 마음대로 불상 주위를 돌아볼 수 있었다. 손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놓여있다. 바닥에 앉아 올려다보기도 하고 둘이 겹치는 각도로 대비시켜보기도 했다. 불상의 뒷태가 섹시하다는 것도 오늘 처음봤다. 유려한 선 처리와 숨막히는 비례의 균형에 탄식마저 흘렸다. 광륭사 목조상에 비해 전혀 꿀리지 않은 여유와 선 굵은 미소의 아름다움도 새로 찾아냈다. 제대로 본 적 없어 마음대로 가치 평가하고 일말의 질투심까지 갖게됐던 한 일 사이 반가사유상의 진단을 이제사 객관적으로 하게됐다.
이 전시에 외국의 큐레이터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들 역시 제대로 본 적 없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실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들이 실체를 알고 인정해야 세계의 공감과 이어지게 된다. 디테일을 갖춰 최상의 상태를 경험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그 동안
제대로 보여주고 이해시키고 공감 의 폭을 늘리는 일들이 소홀했다. 안 에서 사는 우리조차 신기해 하는 우리문화의 실체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 지 더 신경써야 한다. 아는 것 보다 본다는 것 그것도 제대로 본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말해 뭐할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보기 힘든 걸작들은 한 자리에 모으기 힘들다. 나중에.. 시간되면..
과연 그 때까지 이런 일이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