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 길의 또 하나 특징은 비슷비슷한 길이 많다는 것이다. 분명 지나온 것 같은데 가다보면 비슷한 길이 또 나온다. 지리산의 품이 그 어느 산보다 크기에 느껴지는 멋이다. 여느 산에서는 어느 쯤은 어떤 형태의 길이 나오고 어느 쯤에 어떤 나무들이 군락 지어 있어 지금 나는 대충 어디 만큼에 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데, 지리산의 웬만한 경험자가 아니고서는 여기가 어느 쯤인지 금방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지리산은 남비처럼 일러 데워져 쉽게 그 주제를 파악할 수 있는 산이 아니다. 황소처럼 묵묵히 인내를 하며 가고 또 가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여운도 길게 남아 후에 다시 오면 다시 다른 맛 또 다른 날 찾아오면 또 다른 정취를 준비한다.
돌았던 것만 같았던 모퉁이를 세 번쯤 돌아가야 벽소령 산장이 나온다. 벽소령 산장은 아침 등산 짐을 꾸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벽소령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의신 마을에서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음정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박정희는 전생에 두부장사를 했는갑다. 여하튼 무엇이든지 쪼개는 디에는 도가 튼 사람이었는 갑더라. 의신마을에서 음정마을까지 5.16도로(난 그리 부르고 싶다.)를 맨들어 지리산을 동 서부로 쪼개부렀다. 벽소령 산장부근으로 난 도로를 보고 무신 도로인고 하고 궁금하게 생각했던 사람 많이 있었을 게다. 박정희가 쪼갠 금입니다요.
벽소령의 밤하늘에 빛나는 달과별(명월)이 참 아름답다하더라. 재작년 가을 각시랑 여기 벽소령 산장에서 일박을 하며 밤하늘을 보면서 각시한테 참 많은 썰을 풀었던 기억이 난다. 보통 달이 밝으면 별빛이 흐린 법인디, 유명하다는 이름에 걸맞게 벽소령 밤별들은 밝은 달 아래에서도 그 빛을 더 환하게 내 품더라.
지리 10경을 알아보자. 노고단의 운해, 피아골의 단풍, 반야봉의 낙조, 섬진 청류, 벽소령의 명월, 불일폭포, 세석평전의 철쭉, 연하 선경(여그서 연하는 연하천이 아니라 장터목 아래 연하봉), 천왕봉의 일출, 칠선 계곡이다. 벽소명월이 당당히 그 한 자리를 꿰찼다.
쉬지 말고 가자. 글더라도 박정희가 쪼갠 금 5.16도로 사진은 한 장 찍자. 덕평봉 아래 선비샘에 가서 탁족도 하고 간식도 좀 묵고 쉬었다 가자. 덕평봉. 2001년 대산 문학상 수상 시집을 낸 시인 이성부는 이 덕평봉 아래에서 누군가 버리고 간 오토바이를 보고 인간의 생명력을 느꼈다 글던디, 역시 시인의 느낌은 유별나다. 난 5.16도로로 인해 빚어진 또 하나의 오염 현장이라고만 치부했는디. 그 시인이 이 깊은 산중까지 오토바이를 몰고 왔을 사람으로부터 생명력을 느꼈다는 것. 또 하나의 파괴 짓이다 라는 역설이었을까?
덕평봉을 오른다. 벽소령, 세석 산장 사이를 마의 코스라 부르고 싶다. 종주시 이 구간이 가장 힘들다. 체력은 거의 소진되고 연이은 3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중간에 다행이 선비샘이 있어서 조금은 안심되지만 울고 넘는 박달재라 아니 할 수 없다. 덕평봉 오르막길에서 젊은이 몇 명한테 추월을 당했다. 힘들다. 인제 배낭이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내용물이 줄어듦에 따라 가벼워져야 할 배낭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선비샘이다. 찰밥을 좀 묵고 탁족도 하고 맨소래담으로 발맛사지도 좀 허고 양말도 갈아신고 상의도 갈아입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부산 말씨의 중년 남녀 한 쌍이 다가온다. 금강산악회입니까? 예 금수강산 산악회라카에. 부부세요? 예. 아 억수로 힘드네예 대장이 너무 무리하게 잡응기라에. 일행 분이 많이 오신 것 같드니만요. 아 에 어딥니꺼? 삼도봉인가 하는디서 마 둘이 가고 세명이 무릎이 아파서 벽소령이라카는 데서 내려간다카에 우리는 기냥 와부맀는기라에. 그래도 등산을 많이 다니시는 갑네요? 마 우리 등산 안 가본디 없다카에. 대단합니다. 예. 참 멋있네요. 즐거운 산행되세요.
다시 챙겨 칠선봉으로 간다. 09:40분경이다. 어깨가 무겁다.
지리 종주기(8) 장이무궁의 지리산
칠선봉. 칠성봉이 맞는지 칠선봉이 맞는지 모르겄다. 칠선계곡허고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많이 떨어져 있는데 말야. 칠선봉을 넘는 길은 그래도 갈만하다. 평탄헌 길도 있고 흙길도 있고. 아마도 영신봉 올라 갈 때 죽어봐라 글면서 여기서는 몸 좀 풀어라 그 뜻인 모양이더라.
선비샘에서 휴식도 취하고 에너지도 보충해서인지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진 않는다. 칠선봉에 올라 영신봉 쪽을 보며 사진 한 장 찍고 계속 간다. 영신봉 좌측 산허리를 돌아 오른다. 대부분 돌길이다. 모퉁이를 돌고 언덕을 넘기를 몇 차례. 바위들 틈은 푹 패여 어쩔 수 없이 미끄러운 바위만 울러있는 돌길은 묶여진 밧줄을 끌어 올라가고. 이마에 땀이 맺힌다. 등어리도 다시 축축허다. 쇠계단과 낭떠러지 같은 바위로 되어있는 영신봉 마지막 오르막길이 겁난다. 거길 어케 올라가지 마음속 걱정이다.
다왔다. 고개를 쓱 들어 위를 쳐다봤다. 야호! 잘 정리된 나무 계단이다. 이번 봄철 해빙기에 공사를 했는갑다. 걱정이 싹 가신다. 휘파람 불면서 올라간다. 말이 휘파람이지 사실은 그래도 힘들다. 나무계단을 3분의 2쯤 올라가 계단 사진을 한 장 찍고 신나게 올라간다.
고개마루에 올라가면 바람이 쏴하고 반겨주겠지. 시원하다. 배낭을 풀고 모자를 벗고 하동쪽 산줄기를 본다.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날 좋을 때는 한없이 이어진 산줄기가 자랑스럽고 오늘같은 날은 이리저리 날라 다니는 구름이 정겹다. 가슴이 확 트인다. 역시 이름 그대로 장이무궁의 산이다.(서산대사 지리산 장이역수 웅장하나 수려하지않다. 금강산 수이불장 수려하나 웅장하지 않다. 묘향산 장이역수 웅장하고 수려하다. 김종춘 지리산 장이무궁 웅장하며 그 멋이 무궁하다.) 웅장하다. 끝없다. 세계화 된 수준에서 일러 말하면 스펙터클하다.
11:10분이다. 배낭을 둘러멘다. 으매 근데 배낭이 돌짐이네. 왜이리 무겁다냐. 영신봉을 완전히 넘어 세석평전까지는 아직 10분 정도 더 가야헌다. 이제 촛대봉이 보인다. 구름에 얕게 쌓인 푸른 평원 세석 평전이 보인다. 전경을 둘러보며 사진을 한 장 찍고. 전에 백상필 변호사님 사무실에서 본 세석평전의 1980년대 철쭉축제사진을 떠올리며 비교를 해본다. ‘학실히’ 복원사업의 성과가 있다. 10여년에 걸쳐 참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안다. 아무리 좋아도 사람 때가 타면 금방 망쳐지더라니까. 한번 베린 걸 복원하는데는 그보다 수 백 배의 노력을 들여야 하고. 긍게 뭣이든지 좋을 때 지켜야해.
세석 산장은 들르지 말자. 곧바로 평원을 질러 촛대봉으로 향한다. 음매 더운 거. 덥다. 돌길이다. 세석이란 말은 잔돌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글더라. 길 좌우로 평원 복원사업에 관한 글, 지리산 야생동식물에 관한 사진 글 등이 잘 세워져있다. 아주 작은 것이긴 하지만 스폰지 즉 늪도 있다. 촛대봉에 도착했다. 젊은이들 10여명이 사진을 찍고 있다. 프랭카드도 배낭에 넣어 왔는갑다. 찍기 전에 쫙 편다. 다움 카페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쓰여있는지 미워하는 사람들이라고 씌어있는지 관심이 안 간다. 나가 고되 죽겄는디 뭐. 혹시 나보고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글까 두렵다. 힘이 부친다. 만사 귀찮다. 피곤허고 잠도 온다.
여그서 간식을 좀 묵고 장터목까지 쉬지 말고 가보자. 복숭아 넥타를 땄다. 갈증도 해소해주고 단 시간 내 에너지도 보충해주는 식품이어서 등산할 때 꼭 지참하는 음식이다. 게눈 감추듯 한 깡통 다 묵어부렀다. 누가 좀 달라고 할까봐 저만치 떨어져 혼자 다 묵었다. 다시 힘을 내기 위해 잠을 쫓아내기로 했다. 기어이 맨소래담을 꺼내 눈두덩을 학대 해부렀다. 눈이 따끔거리며 눈물이 저절로 나온다. 가자 가자. 고우 고우 마운틴.(이말은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인가 정상으로 행진하자는 말인가?)
지리 종주기(9) 그 힘도 안생기네
다리를 재촉하고 달래며 11:30분 경에 촛대봉에서 장터목으로 향한다. 등산객들이 많다. 목소리 톤을 높여서 한담을 나누며 가는 사람, 세 발 뛸 때마다 야호 하는 사람, 뛰듯이 추월해 가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구슬땀을 흘리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무겁게 걸음을 옮기는 사람도 있다.
얼굴에 생기가 돌고 깔끔하게 폼 잡힌 사람보다 눈이 부은 듯하고 잠에 취한 듯한 사람이 더 반갑다. 동료의식이 발동한 것일 게다.
촛대봉부터는 정상부근이다. 고산지대임을 쉬 느낄 수 있다. 발 아래에 흘러 다니는 구름도 많아지고 시야도 더 넓혀진 느낌이다.
짧은 거리라도 상당히 가파르고 순간적인 에너지 소비량은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상 근방에서는 알 수 없는 힘이 샘솟는 법. 힘을 내어 본다. 산신봉을 넘는다. 청학동 뒷산 삼신봉허고 이름이 비슷허다. 힘을 한번 더 쓰면 연하봉을 넘어 장터목까지 안 쉬고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산신봉 마루 부근에서 그만 두 발이 말을 안 듣는다. 쉬어야겠다. 체력이 소진 되었는갑다. 초코렛을 꺼내 묵고 물도 겁나게 많이 마신다. 산행 시 땀은 많이 흘리는 편이지만 물은 그렇게 다량으로 마시진 않는데 오늘은 갈증이 심하다.
산신봉과 연하봉 사이의 짧은 평지를 지날 때 불어오는 산정의 바람으로 땀을 씻는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고마운 바람 힘을 받는다. 12:40분 경 드디어 장터목 산장에 도착했다. 그다지 거북이 걸음은 아니다.
점심을 묵자. 제대로 묵을라면 버너를 꺼내 밥을 허고 국을 끓여야 헐 것 같은데 허기싫다. 시간도 없다. 고산지대에서는 밥 익는 시간도 많이 걸리잖아.
남은 찰밥으로 끼니를 때우자. 라면을 하나 끓여 곁들일까? 물 뜨러 가기 싫어서 그냥 묵지 뭐. 찰밥을 꺼낸다. 4분의 1 끼니 분밖에 안되겠다. 여하튼 묵어보자. 김치도 다량 묵어보자 참외도 깍아 묵자. 양파랑 된장이랑 버물러 묵어보자. 밥이 적으니까 이 것 저 것 마구 섞어 묵어보자. 뱃속에 들어가서 어느 놈이 힘을 발휘헐지 아냐?
13:10분 경 요새같은 장터목 산장을 뒤로하고 천왕봉을 향한다. 산장 바로 뒤가 최고로 힘들다. 가파른 돌계단. 위를 보지말고 올라가자. 돌계단을 다 올라챘다. 제석봉 고사목 지대이다. 종주할 때 참 짜증이 나는 곳이다. 땀은 뻘뻘 나는데 나무는 다 말라 죽고 뙤약볕이 내려 쬐어 절로 숨이 턱턱 막히는 곳이다. 그래도 힘을 내어 밥 묵은지도 얼마 안 됐응게 점잖게 카메라를 꺼내들고 제석봉 고사목 풍경을 잡아 찍고. 고사목에 관한 사연을 적어놓은 안내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본다. [...토벌꾼들이 토벌의 흔적을 없애려 불을 질러 그 불이 제석봉을 태워...] 거짓말 같다. [...토벌대(빨치산 토벌대)가 다 타 죽어라 하며 불을 질러 ...]로 바꿔 쓰는 것이 맞는가 아닌가 하는 맹랑한 생각을 해 본다.
안 쉬고 가보자 마음 묵었는디 어깨가 내려앉는다. 배낭이 천근 만근이다. 맨몸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서울 말씨 쓰는 사람들 장터목 산장에 배낭을 벗어 놔두고 천왕봉을 올랐다가 다시 장터목으로 돌아와 백무동으로 하산한단다. 백무동은 서울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하산길이다. 서울로 가는 교통편 때문이다. 겁나게 부럽다.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에 다다랐다. 계단 난간을 잡고 올라가는데 쥐가 날려고 한다. 어쩔 수없이 통천문에서 쉬자. 통천문 통과시 오가는 사람들에게 비켜주기 위해서 쉰다는 핑계를 대면서. 참 사람은 간사스런 것이여. 그 힘든 상황에서도 핑계를 찾아내고. 그 핑계를 더 합리화하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더 큰 목소리로 즐거운 산행되십시오. 대단합니다. 힘내세요. 등 온갖 인사도 한다. 속으로 나에게는 정상 아래에서 솟아난다는 알 수 없는 그 힘도 안 생기네 함시롱
지리 종주기(10) 상처안은 천왕봉 표지석
비바람에 깎여 바위 돌만 무성한 천왕봉을 눈앞에 두고 숨을 고른다. 기분 같아선 남들처럼 야호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소리도 안나온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으로 눈이 맵다.눈두덩에 남아있는 맨소래담과 땀이 섞여 눈을 쓰리게 하는갑다. 다 왔다. 여그서는 뭣이든 다 발 아래에 있다. 구름도 집도 자동차도 논밭도 전부 발 아래에 있다.
천왕봉 표지석 주위에는 사람들이 많다.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표지석 있는 곳이 돌덩어리 위이어서 조금은 위험하다. 차례를 기다리며 제각기 다른 사람 표정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인터넷 카페 다움 산을 사랑하는 사람 일행들이 또 한번 프랭카드를 펼친다. 이번에는 내가 찍어준다. 다 왔응게 그까짓 사진 한 장 찍어주는 것 뭐. 나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하면서 표지석 앞에 폼을 잡았다. 이 번 산행에서 처음으로 얼굴 사진을 찍는다.
표지석 전면에는 [천왕봉]이라고 씌어 있고 배면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고 씌어있다. 근데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배면에 씌어있는 [한국인]부근에 하얀 상흔이 있음을 알아채릴 것이다. 웃기는 상처이다. 처음 이 표지석을 세울 때 [호남인]의 기상...이라고 썼다고 한다. 아마도 전라도 사람이 세웠던 모양이지. 그 뒤 언젠가 [경남인]의 기상...으로 쪼아져 이 싸움을 말리기 위해 한국인으로 다시 조각하였다하니 웃지 못할 상처이다.
역시나 싸움을 말리는데는 큰물로 통합하는 것이 최고. 한반도 남쪽의 지역주의를 타파하는데는 통일로 가는 것이 지름길이라니까
정상에 도달하니 제법 여유가 생기네. 이 인터넷 카페 동아리 회원들허고 농담도 허고 과일도 깎아서 나눠 묵고 이제는 좀 주기도 허고 받아 묵기도 허고 . 사람은 좀 여유있게 주고받고 해야 재미있다니까. 보니까(아까는 몰랐지만) 젊은 여성동지들도 많이 보이네. 음 그 두분 상당히 멋있네요. 비석 앞에 다정히 서보세요 좋습니다. 찰칵. 이쪽 두 분도 같이 한 컷. 네 좋아요 찰칵.
사방을 다시 한번 둘러보자. 왔던 길로 연하봉, 촛대봉이 보이고 저 먼발치의 반야봉쪽은 구름땜에 희미하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중산리이지. 천왕봉에서 가장 가까운 산행길이고. 그러기에 엄청나게 비탈져서 사람 환장하게 하는 코스이기도 하지. 왼쪽으로 지리산 계곡 중 가장 아름답다는 칠선 계곡이 이어져 있고, 앞 왼 쪽으로 약간 비껴서 중봉이 자리하고 중봉에서 써리봉,하봉으로 갈리고. 하봉을 다른 이름으로 두류봉이라고 한다는데, 백두산의 기상이[두] 흘러 머무른 곳[류]이라는 뜻에서란다.
조선 정조 때 신경준이 [산경표]라는 인문지리서에서 한반도의 산세를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하였다 한다. 1대간은 백두에서 이 곳 지리까지의 백두대간으로 한반도의 마루(물을 건너지 않고 산정으로만 이어졌다함)를 말함이고 1정간은 백두대간에서 함경지역으로 이어진 함경정간을 이르며, 13정맥은 백두대간에서 뻗은 13의 정맥이라 하더라. 잘 모르지만 근다고 하대.
고민스럽다. 처음 이 산행을 계획했을 때는 동쪽 끝 대원사로 하산하자고 작정했는데 막상 천왕봉에 서니 뭘라 그 쪽으로 하산할 것이여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가까운 중산리로 하지? 중산리 하산 길 6킬로미터 요즈음 산행길이 잛아져 5.5킬로미터. 두 시간 남짓이면 하산하겠는데. 대원사 길 12킬로미터. 유평리 밤밭골까지 11킬로미터 중산리 길 두 배네. 4시간 반 잡아야 하산 완료할 것 같아. 힘도 없는데. 대원사 쪽 하산 등산객은 거의 없을 거란 생각도 들고. 중간에 중봉도 올라채야 하고. 배낭 속 식량을 챙겨본다. 쌀은 충분하고 참치 캔 하나, 된장 약간, 양파 하나, 김치 좀 남아 있고, 라면 두 개, 참외 두 개, 초콜렛 몇 개.
그래 이거면 죽진 않겠다. 사나이 오기다. 대원사 쪽으로. 한 번 작정했으면 지켜야지. 두 시간 만 더 쓰지 뭐.
14:20분 경 혼자 슬며시 일어나 중봉 쪽 등산길로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누군가 보고서 힘도 없는 녀석이 오기는 쎄서 그 먼 쪽으로 하산하네 할까 봐. 다들 무사히 하산하십시오. 라고 등 뒤 중산리 쪽 하산 객들에게 마음속으로만 인사를 한다.
첫댓글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서정적이네요 이글을 생각하면서 그 길을 걸어보고싶어요
지금의 천왕봉 표지석은 1982년경 5공 때의 경남지사 이규호씨가 주도하여 세웠는데 그 때 경남인의 기상이라고 적었답디다. 그 표지석 부근 바위를 둘러보면 잡다한 글씨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호남인 경남인 들먹이면서 약간의 허구를 가미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올 해 여름은 지리산 종주로 할꺼나? 울릉도 동해안을 가르고 갔다 올거냐?가 갈등되는 글이다. 누가 보나 누가 경험하나 큰산 높은기상이 깃든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