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개가 헐레붙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등 뒤로 올라타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더니, 그 다음에는 엉덩이를 붙인채 각각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똥개의 모습은 참으로 괴상망측했다. 옛날, 귀한 집 자손들에게 붙어다니는 별명 중의 하나가 [똥개]였다. 함부로 막 부르는 그 이름 속에는, 제발 탈없이 무사히 자라서 대를 잇게 해달라는 간절한 소망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똥개]는 역설이며 하나의 상징이다. 길거리에서 함부로 교미한다고 똥개를, 우리는 함부로 삿대질해서는 안된다. 저자거리의 천하디 천한 똥개라는 단어 속에는, 누구나 눈 밑으로 내려다보면서 확보하게 되는 우월감과 그만큼의 친근감이 깃들어 있다.
[친구]로 전대미문의 한국 영화 흥행기록을 세운 곽경택 감독이, [챔피언]의 실패로 와신상담한 후 내놓은 [똥개]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경남 밀양경찰서 수사과장의 외아들인 철민은, 그렇게 막 굴러먹는 똥개는 아니다. 철민 역을 맡은 정우성의 변신을 생각하면 똥개라는 수식어와 상징성에 우리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그러나 냉정하게 작품을 분석해보면, 시골 중소도시의 경찰서 수사과장이라는 직책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철민이 아무리 놀고 먹는 백수라고 해도, 공부 해놓은 것도 없고 변변한 재산이 없다고 해도, 막나가는 똥개는 아니다.
타이틀 롤 똥개 역의 정우성은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해가면서, 백수 건달이지만 착하고 의리 있는 시골 청년의 우직한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왜 곽경택 감독은 굳이 정우성을 택했을까? 최고의 귀공자를 최하의 자리에 위치시킴으로써 관객들에게 상대적으로 카타르시스를 불러 일으키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정우성은 그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방황하는 청년의 아이콘이나 우울한 안티 히어로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무장해제 당한 것처럼 눈에 힘 한 번 주지 않으며 무식하지만 정감있는 캐릭터를 표현한다.
문제는 그의 지나친 오버 액션이다. 사투리를 익혀서 표현하는 배우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지만, 심하게 사투리로 대사를 할 때 절제가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절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똥개]에서도 제일 안쓰러운 부분은, 똥개가 계란후라이를 먹은 아버지와 다투거나, 차 안에서 의자를 젖히고 아버지와 대화할 때처럼, 힘겹게 배운 사투리를 억지로 쓸 때다. 정우성은 말할 때 밥알을 튕겨가며 험하게 망가진다.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김갑수 분)와 단 둘이 살아온 철민은 똥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무 생각없이 방 고석에 누워 TV나 보고, 달걀 후라이 반찬을 아버지가 먹어버리자 애통해하는 그는 빈둥거리는 백수의 전형이다. 특별한 꿈도 없고 야망도 없으며 하루 하루 평범하게 소일하는 것이 그의 삶의 전부이다.
그가 나들이 하는 것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인 MJK 멤버들을 만날 때다. 밀양 주니어 클럽의 약자라는 MJK, 중학교만 제대로 나왔어도 MJC가 되어야 맞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는 신경쓰지 않는다. 당랑권의 고수라고 폼을 잡는 친구도 있지만 철민의 한 방에 나가 떨어지며 [졌다]라고 항복한다. 철민은 고수다. 싸움꾼이다. 똥개처럼 무식하지만, 한 번 물면 놓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 때나 힘을 쓰는 것은 아니다. 나쁜 일은 하지 않고, 똑똑한 척 하는 사람들에게 당하는 힘없는 사람을 위해 싸운다.
철민의 집에 철민 또래의 여자가 한 명 들어온다. [식순이]는 아니다. 정애(엄지원 분)는 전직 소매치기로서 서울 압구정동의 로데5거리에 커피전문점을 내는게 꿈이다. 전직 소매치기지만 개과천선하겠다고 경찰인 철민 아버지를 따라 집에 온 것이다. 하지만 가끔 몰래 스쿠터를 타고 다방의 커피배달 알바도 한다.
[똥개]에는 특별한 사건이 없다. 사건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후반부에 잠깐 등장한다. 철민 친구들인 MJK의 일원인 대떡이가 동네 건달들에게 당한다. 건달들의 우두머리인 진묵(김태욱 분)은 철민의 앙숙이다. 진묵 뒤에는 지역유지 오덕만이 버티고 있다. 오덕만은 고속도로 이권과 연관된 도박단을 이용해 대떡이 아버지를 감옥에 집어넣는다.
후반부의 액션씬들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친구]에서처럼 목숨을 건 살벌한 격투도 아니다. 거대한 조직간의 싸움도 아니고, 기껏해야 시골 건달들과 경찰서 수사과장, 그의 백수 아들이 얽힌 싸움일뿐이다. 따라서 [똥개]에는 클라이막스라고 부를만한 씬도, 대단원이라고 할만한 장면도 없다.
마지막, 감옥 안에서 모든 것을 걸고 진묵과 일대 일로 맞장뜨는 장면이 있지만, 극적 긴장감은 약하다. 그 사건이 영화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똥개]에는 카타르시스를 일으킬만한 요소가 별로 없다는 말이다. 기복이 별로 없는 사건이 이 영화를 다소 밋밋하게 만든다. 양념을 덜친 심심한 요리를 먹는 느낌이다.
한 집에서 사는 비슷한 나이의 청춘남녀 사이에 뭔가 일이 일어날 법도 하지만, 철민과 정애 사이에는 약간의 긴장감만 존재할 뿐, 연애라고 부를만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기껏해야 철민이 안마시술소 갔다가 정애의 친구에게 서비스를 받은 사건 정도이다. 그것도 상대 건달들이 방화를 일으켜 뛰쳐나오는 바람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정애는 상처받은 캐릭터로서 작품에 긴장감을 불러 일으킬만한 요소를 갖고 있지만, 철민 주변에 머무는 애틋한 여인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엄지원이 연기한 정애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엄지원은 배역과의 간극을 좁혀가며 사실성 있게 역할을 표현한다.
영화 [똥개]는 길에서 시작해서 길에서 끝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장례식 행렬이 펼쳐지는 시골 길이다. 상복을 입고 아버지와 함께 상여의 뒤를 따르는 소년의 별명은 똥개.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배고프면 아무데나 막 들어가 밥달라고 해서 붙은 별명이 똥개라는 설명이 나레이션으로 뒤따른다. 그 다음 경찰서씬. 경찰인 아버지를 찾아갔다가 진짜 똥개와 만나는 씬이다. [똥개]라는 타이틀이 뜨기 전까지 보여지는 이 두 개의 씬, 길 위의 장례식씬과 경찰서 씬에서는 똥개의 어린시절의 삶이 나레이션된다.
영화 [똥개]의 마지막 씬 역시, 길에서 끝난다. 경찰서에서 나온 똥개는 정애와 함께 새벽 푸르스름한 길 위를 걷는다. 오프닝씬에서는 똥개의 곁에 아버지가 있었지만, 엔딩씬에서는 정애가 옆에 있다. 아마도, 두 사람은 이제 연애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런 무르익은 분위기를 영화의 엔딩씬은 전해준다. 이렇게 길은, 영화 [똥개]의 시작과 끝을 감싼다. 삶은 곧 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며, 늘 어디론가 떠나는 혹은 돌아오는 길의 보편적 상징은 영화 [똥개]를 보이지 않게 지배하고 있다.
[똥개]에는 캐릭터가 섬세하게 살아 있다. 먼저 주인공 똥개와 정애의 관계를 보면, 처음 똥개가 정애와 만나는 씬에서, 곽경택 감독은 똥개-아버지-정애의 삼각구도로 프레임이 짜여져 있어서 똥개와 정애의 사이는 멀리 떨어져 있다. 그 다음, 다방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정애를 오토바이를 타고 뒤쫒다 넘어진 후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고 있는 똥개를 정애가 오토바이를 타고 뒤따른다. 길 하나가 사이에 있지만 두 사람은 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 똥개와 평상에서 빨래를 개며 자신의 유년시절을 고백하는 정애의 씬을 보자. 정애는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를 드러낸다. 얼굴에 비누 칠하고 세수하던 똥개는, 정애가 갖고 있는 상처의 핵심을 들여다보며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심정적으로 가까워지는 아주 중요한 씬이다.
똥개와 정애의 원쇼트가 교차되는 이 씬에서 감독은 똥개를 프레임 우측에 등돌린 모습으로 보여주고 정애 역시 화면 우측으로 위치를 잡는다. 정애가 고아가 된 어린시절 고백하는 부분에서 똥개는 뒤로 고개를 돌린다. 이제 화면은 똥개와 정애가 각각 원쇼트로 잡혀져 있음에도 거의 비슷한 위치,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관객들로 하여금 심리적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두 남녀가 점증적으로 가까워지는 모습을 관객이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는 것은 곽경택 감독의 세밀한 연출력 때문이다.
똥개와 진묵의 관계도 그렇다. 똥개가 고등학교 선배인 진묵을 처음 만나는 장면은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씬이다. 운동장에 넘어졌다가 똥개의 똥을 짚은 진묵은 똥개에게 시비를 건다. 두 사람의 갈등이 처음 표출되는 순간인데, 똥개는 아직 왜소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들이 다시 만나는 보신탕 먹는 씬, 거리씬, 그리고 훗날 경찰서씬까지 이어지는 두 사람의 긴 은원관계는 감독의 치밀한 연출에 의해 긴장감이 고조된다. 거리씬의 경우, 진묵의 뒤로는 건달들이 여럿 보인다. 하지만 똥개는 혼자다. 진묵은 고개를 또 건들거리는 버릇을 갖고 있다. 진묵 역의 김태욱은 [친구]에서 유오성의 오른팔로 나왔던 배우다. 그는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건들건들하는 특유의 모습을 반복하며 자신의 독창적 캐릭터를 형상화한다.
밀양경찰서 수사과장인 똥개의 아버지 캐릭터도 좋다. 아들인 똥개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은 영화 [똥개]의 중요한 부분이다. 똥개의 아버지도 무조건 선한 인물로만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는 가끔 민원인들로부터 돈봉투도 몰래 받는다. 하지만 불쌍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똥개]의 악한 인물의 대표격인 오덕만과 일대일로 만나는 일식집씬은 아버지의 캐릭터가 가장 잘 표현되어 있는 씬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도식적 캐릭터를 만들지 않는 리얼리티가 [똥개]를 생동감있게 만든다.
곽경택 감독은 그가 그토록 원하는 [친구]의 왕관, 혹은 멍에를 [똥개]로서 벗을 수 있을 것이다. [똥개]는 마치 귀공자에서 아무 것 없는 백수로 변신하는 정우성이라는 배우를 통해, 스스로에게 부과된 무거운 짐을 벗고 가벼운 행보를 하고 싶은 곽경택 감독의 내면이 투사된 작품처럼 보인다. [똥개]는 그런 소망대로 가볍고 경쾌하게 만들어졌다. 아쉬운 것은, 지나친 소품이며 한 편의 완결성 있는 드라마로서 흡입력이 약하며 관객과의 긴장감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똥개]는 극적 긴장감이 치밀하게 얽혀있는 거대한 서사구조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의 소박한 인물로부터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 공감을 주고 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일상에 달라붙는 리얼리티를 충분히 살리면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한다. 망가진 정우성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하는 팬들도 있지만, 그러나 사물을 바라보았을 때의 꾸미지 않는 그 소박한 미덕, 그것은 온전히 살아 있다. 곽경택 감독으로서는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은 셈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남는 장사를 한 것이다. 소박한 진실의 힘을 얻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대중들과 상업적 감각으로 승부하는 영화 시스템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