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의 산
충주 수주팔봉(493m)
달천강 조망 명산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충북 괴산의 달천강이 빚어냈다는 여덟 개의 봉우리 '수주팔봉'이 절경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입에 착 달라붙는 그 이름 수주팔봉은 '물이 돌아 나가고 여덟 개의 봉우리가 있다'는 데서 유래됐다. 송곳바위, 중바위, 칼바위 등 절경의 진위를 확인해 본다는 핑계를 대고 우리는 또 '충청의 산'으로 유랑을 떠났다.
거창한 이름과 달리 들머리를 찾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듯 어디에도 등산객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두룽산(459m) 골짜기 아래 오지마을이었던 향산3리로 갔다. 여기서 마침 밭을 일구고 있던 서정운(80세) 할아버지를 만나 겨우 등산로를 찾았다. 우리는 그가 일러준 대로 향산2리 노루목마을 폐교(현재 미술체험학교)에 도착했고 그 옆쪽 다리 밑에 승용차를 세웠다. 산길은 도로가에 난 농로를 따라 희미하게 나 있었다. 이정표나 산악회의 표지기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길 따라 가면 정상 나오겄지 뭐~."
함께 간 일행 모두 충청도사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드러내며 별 걱정 없이 산행을 시작했다. 얼마 오르자 잣나무 조성단지가 나왔으며 그 뒤로 온통 '오디(산뽕나무 열매) 천국' 이었다. '에라 모르겄슈!' 우리는 배낭을 벗어던진 채 정신없이 열매를 따먹었다. 10분만 쉬었다 가자는 것이 30분을 넘어버렸다. 오디열매 때문에 검푸르게 물든 서로의 입을 보고 한없이 깔깔댄 뒤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우리는 산딸기 밭을 지나며 또다시 발이 묶여 버렸다. "남자덜한테 좋다니께 한번 잡솨봐유~" 라며 산딸기를 한 움큼 내미는 혜연씨를 물리치지 못해 나를 포함한 남자 일행들은 정처없이 또 그곳에 머물렀다.
산악회 표지기를 발견한 너덜지대에 들어선 건 폐교를 떠난 지 약 40분쯤 뒤였다. 마치 무인도에서 사람 발자국을 만난 것 마냥 신난 우리는 그대로 산길을 따라 20분만에 두룽산 정상에 도착했다. '바람과 구름 산악회'에서 나무에다가 '두룽산' 이정표를 두드려 박아놓았다.
정상은 정상 같지 않았다. 빼곡하게 들어찬 나무 때문에 주변 조망은 전혀 볼 수 없었다. 낙천적인 우리는 이에 개의치 않고 "점심이나 먹지 뭐!" 라면서 금세 진수성찬을 펼쳐냈다.
"여긴 두룽산이라 써있네. 예전에 여기에 두릅이 많아서 그런가봐유~."
"아니여~ 여기 아래 5부 능선쯤에 감찰사 무덤 2기가 있다고 해서 두릉이라 붙여진겨."
신기한 산이름 유래에 대해 설전을 벌이다가 점심시간을 다 보냈다. 다음 이어진 길은 전보다 좋았지만 군데군데 날카로운 바위지대가 있어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서쪽으로 칼날같은 바위가 우뚝 서 있었으며 그 아래로는 천길 낭떠러지였다. 그 너머로 살짝 보이는 달천강 주변의 절경이 보고파서 우리는 살금살금 그 위에 서 보기도 했다.
30분쯤 가니 수주팔봉 정상. 두룽산과 마찬가지로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멋진 조망을 기대했던 우리는 실망을 안고 그대로 능선을 탔다. 그래도 나무 사이로 감질나게 보이는 풍경과 간간이 부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기분좋게 산행을 이어갔다.
'토계리 1.5km, 화실 2.0km' 우리는 토계리로 방향을 잡았다. 문산리쪽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길이 험했으며 오른쪽 팔봉폭포 부근 또한 수풀로 등산로가 막혀 있었다. 수주팔봉 정상에서 내리막을 따라 30분쯤 가니 멀리 토계교가 보였으며 얼마 안가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나왔다. 충주 탄금대를 지나 서울까지 연결되어 있다던 이 도로에는 꽤 멀리서 온 듯한 '자전거족'들이 다리쉼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팔봉교까지 내려왔다. 건너편에는 수주팔봉 일부인 칼바위를 절단해 만든 '팔공폭포'가 눈에 띄었다. 칼로 도려낸 듯 잘려나간 부위가 눈에 거슬렸으나 이것 덕분에 주변 농경지와 마을은 수해 상습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니 다행이라고 할 수밖에. 어느덧 산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우리. 수주팔봉을 지나는 내내 수풀을 헤쳤기에 취재팀의 옷에서는 온통 푸른 풀꽃향이 나는 듯했다.
*산행길잡이
향산3리(노루목마을)-(40분)-두룽산-(15분)-권감찰사 무덤-(15분)-수주팔봉 정상-(10분)-사거리 안부-(30분)-토계교(토계리)
'물 돌아 여덟 봉' 이라는 수주팔봉은 산 서쪽의 팔봉리에서 볼 때 달천에 그림자가 여덟 개의 봉우리로 비쳐 붙은 이름이다. 산 정상에는 정상석 외에는 이름과 이에 얽힌 사연을 알려주는 이정표나 안내판이 전혀 없어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팔봉교에서 만나는 모원정과 조금 더 오른 전망바위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그런 아쉬움들을 한방에 날려버릴 만큼 멋지다. 모원정 정자는 1981년 12월 충주시 지현동의 이명수 농부가 사비를 들여 건립했으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는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길'을 타고 온 자전거 마니아들의 쉼터로 인기가 좋다.
팔봉마을은 속리산에서 모인 달천 물돌이동을 이루고 있는데 전망바위에서 보면 이 모양이 한반도 지형과 비슷해 신비로움을 더한다.
산길은 대체로 좋지 않다. 특히 칼바위 구간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정상 조망 또한 변변찮다. 또 향산리~두룽산 구간은 사람이 다니지 않아 등산로가 거의 사라져 운행에 적잖이 힘이 든다.
향산3리 노루목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해 토계교로 하산할 경우 교통편이 좋지 않다. 버스가 하루 몇 번 안 다니기에 토계교에서 문강온천이 보이는 19번 대로로 나가 버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
*교통
청량리역에서 7시에 출발하는 중앙선 열차를 타고 제천역에서 내린다. 그곳에서 다시 충북선을 갈아타고 충주까지 간다. 경부선을 이용해 조치원까지 간 후 충주행 열차로 갈아타도 된다.
승용차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나들목을 나와 3번 국도를 따라 수안보 방면의 살미면까지 간다. 살미면에서 19번 국도로 바꿔타고 조금 가면 용문사 지난 문강사거리에서 오른쪽이 토계교 방향이다.
택시(010-2964-7104 개인택시 박수한)를 이용할 경우 충주역에서 향산까지 10,000원, 토계리까지는 17,000원 받는다.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 향산리에 민박집 두룽산농원(043-851-8819)이 있다. 주말이나 평일에 상관없이 1박에 30,000원 받는다. 이외에도 이름 없는 민박집(김길수씨 842-4297, 조경애씨 844-3920)이 있다.
약수터집(944-9231)은 꿩만두와 전골, 육회를 잘하고 호음실에 있는 명산가든도 많은 이들이 찾는 맛집이다.
충주시내 문화동에는 올갱이국을 전문으로 내놓는 운정식당(847-2820)이 있다. 전통문화보존 명인장인 김숙제 할머니가 주인다.
*볼거리
수주팔봉을 중심으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수안보온천, 월악산국립공원, 미륵사지, 송계계곡, 탄금대, 충주호 등 이름난 관광지가 있다.
수주팔봉 인근에는 최봉기 선생 생가터, 도요지가 있고 달천 주변의 팔봉유원지는 피서지로 인기 높다. 달천에는 쏘가리와 꺽지가 잘 잡힌다. 또 산행들머리의 모원정 앞에 낙차 6m로 떨어져 내리는 팔봉폭포가 있다.
수주팔봉 산행의 최대 볼거리는 전망바위에서 내려다보는 물돌이동을 이룬 팔봉마을 광경이다.
글쓴이:류재호 천안주재기자
참조:수주팔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