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26 < 대구 김광석 다시그리기 길 –옥연지 송해공원>
우리나라 동남부에 위치한 도시 대구는 삼국시대에는 신라에 속하는 요충지였으며 고려시대 들어 그 지리적 가치가 높이 인정받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사실 여행이라하면 일본이나 중국은 가깝다는 생각으로 쉽게 가 보려하면서도 서해에서 대구는 멀다는 핑계로 나서기가 어려운 지역이었다. 이번에 동해를 다녀오면서 중간지점에 쉬어오는 느낌으로 하룻밤을 대구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물론 대구에 다녀올 기회도 없었을 뿐더러 태어나 처음 와본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알차게 보내고 싶어 이곳저곳 대구 여행지에 관한 관심으로 찾아 나서기로 하였다. 우선 동해에서 비와 함께 했던 여행이어서 이날은 날씨가 맑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밤늦게 대구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해보니 이곳은 업소형식이 아니라 일반 아파트를 에어비앤비를 통하여 여행객들이 묵어가는 곳이었다. 아파트구조라서 낯설지 않게 편안한 휴식이었던 것 같다. 다음날도 일기예보 또한 맑지는 않다는데 걱정과 기대로 대구에서 맞는 아침은 의외로 쨍하니 맑아 그야말로 여행하기 좋은 날씨다. 출발부터 빠듯하게 달려온 탓에 오늘은 느긋하게 대구에서의 아침을 맞아 대구시 중구 대봉동 골목에 위치한 김광석 다시그리기길을 찾기로 하였다. <김광석 길은 故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골목에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한 벽화거리이다. 2010년 '방천시장 문정성시 사업'의 하나로 방천시장 골목길에 11월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김광석 길은 중구청과 11팀의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350m 길이의 벽면을 따라 김광석 조형물과 포장마차에서 국수 말아주는 김광석,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김광석 등 골목의 벽마다 김광석의 모습과 그의 노래 가사들이 다양한 모습의 벽화로 그려졌다. 매년 가을에는 방천시장과 동성로 일대에서 '김광석 노래 부르기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故 김광석을 추억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광석 길 (김광석다시그리기길)> 이처럼 지식백과에 실린 요약된 글만으로도 이곳의 충분한 의미와 정서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그다지 길고 넓은 골목길은 아니지만 차근차근 둘러보고 기웃거려보는 재미와 감회가 색다르다. 골목길 스피커에서 김광석 가수의 노래가 흐르고 온통 김광석 가수에 대한 그림과 음악이면서 초입부터 노포 식당들이 쭉 들어 서있다. 거리를 참 예쁘게 잘 만들어놓아 곳곳마다 추억 돋는 골목이다. 특히 64년생으로 동시대를 살다가 먼저 떠난 사람이기에 남겨진 노래와 이곳의 풍경이 더 애틋하다. 80년대의 음악다방이 보이고 버스킹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 곳곳에 그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고 중간에 먹거리도 있어서 쉬엄쉬엄 둘러보기 좋았다. 젊은 친구들은 물론 설령 혼자라도 차분히 산책하며 계절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라 여겨졌다.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어 새로운 문화창작거리로 거듭나고 있다고 한다. 김광석 길을 둘러보고 점심예약을 해 둔 수성못 주변으로 향했다. 여행길에 혼자 떠나는 것을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편이지만 가족과 동행할 때면 아들은 소소한 것들까지 우리 부부를 위하여 많은 신경을 쓴다. 오늘 점심은 아들아이의 세심한 배려와 효도가 깃든 밥상을 대접받는다. 음식에 관한 한 전공분야이니 만큼 잘 알고도 남음이 있지만 평소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들의 핏기 선연한 속살이 부드럽다며 감탄하는 것이 궁굼했었다고 바람처럼 지나가는 말로 흘렸건만 아들이 오늘 준비해 준 것이다. 근사한 분위기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음식 앞에 문득 부모님이 생각났다. 그것은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므로 간절할 뿐 지금까지 살아계신다면 오늘 이 귀한 음식을 나는 부모님께 대접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예컨대 분명 부모님 생각보다 자식생각이 먼저 났을 것 같다. 이러니 자식은 그의 자식을 먼저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이라 세상의 효에 관한 이치가 이해되고도 남음직하다. 식사 후 대구투어의 마지막 경유지인 옥연지 송해공원으로 향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송해 선생님의 이름을 딴 공원으로 대구시 명예시민이자 처갓집이 옥연지 근처라는 인연으로 공원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송해공원은 옥연저수지 일원에 데크로드로 조성되었으며 대형 물레방아와 전망쉼터에 출렁다리는 물론 송해 백세교와 '백세정'으로 이름 붙여진 수중다리와 정자등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송해 둘레길도 조성되어 있어서 길게 산책하기에 좋았다. 송해 둘레길을 따라 3.5km 순환 길로 조성되어 있고 둘레길 중간마다 쉼터와 함께 송해선생님의 재치 있는 멘트가 스피커를 통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휴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부담 때문에 일찍 귀가를 해야 해서 원점회기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중간지점에서 돌아오기로 하였다. 숲길 구간에는 출렁다리와 용의 전설을 토대로 조성한 금굴이 볼거리인데 뜻밖에 만난 금굴은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보너스처럼 좋았다.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으며 금을 채굴하기 위해 만든 굴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숲길 구간에 출렁다리와 용의 전설을 토대로 조성한 금굴의 볼거리에 흡족함을 느끼면서 송해공원을 나오는 길에 송해 기념관까지 들러왔다. 다만 이곳은 하루 쯤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 와도 손색없을 만큼 볼거리가 많았다. 사람이 살면서 본인의 이름으로 된 거리나 공원을 남긴다는 것은 대단한 일일 것이다. 또한 처음 들여다 본 대구의 정서는 숲이 좋으며 툭 트인 도시 속의 도로와 어느 광역시보다 살기 좋은 도시임을 확인하면서 해외를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되듯이 내 지역을 떠나보니 이 작은 나라 안에서도 무엇으로든지 차별화된 정서에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대구투어를 만족스럽게 마무리하고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편안한 둥지가 있는 서쪽으로 향했다. 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붙임 없는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생각해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가 불법 아닌 것이 없으며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또한 세상은 어디든 열려있고 통하는 법이다. 다만 내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소될 것 같았던 참으로 철없던 시절이 너무 길었다. 직장인과 결혼하여 목숨 같은 자식 낳아 살면서 그 자식으로 하여금 속앓이 한 번 한 적 없이 잘 자라주었다. 또한 정원이 있는 내 집을 마련하여 늙어가고 있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누구나 필요 이상의 쓸데없는 걱정과 염려와 욕심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내 안에 풍요로운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평생을 낭비하게 된다는 것을 알겠다. 50대에 나는 예순이 무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60대에 칠순은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그것은 젊었을 때보다 지금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진정한 인생을 알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이번 여행은 때마침 연휴가 적당히 주어져서 알차게 다녀오기도 하였지만 남편에게 만족스러운 기회였다니 아이들에게도 특별히 감사하며 내 아이들은 돈에 너무 메이지 않고 소소함이 인생의 큰 축복이라는 것을 빨리 터득하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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