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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 (Mosaad) 와 하마스 (Hamas)
이스라엘군 공격으로 사망한 하마스 무장정파원 과 가족들의 장례식 모습
이스라엘군 탱크에게 돌던지는 팔레스타인 어린이
이스라엘군이 폭격한 팔레스타인 가자(Gaza) 지역 하마스 본부의 처참한 모습
하마스 무장정파원
AD77년 유대는 로마에 패망하고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아왔습니다. 2차대전이 한창일 무렵 이스라엘 민족지도자 (대표 벤구리온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 들은 영국과 협상을 시도하여 전쟁비용을 지원해 주는 조건으로 종전후 옛 유대땅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건국을 약속받게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서쪽 여러 지역을 포함하며, 대체로 서쪽의 지중해에서 동쪽의 요르단강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이스라엘과 레바논 국경지대, 남쪽으로는 가자지구에 이르는 지역을 말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이 지역은 영국의 위임통치하에 놓였습니다. 이 위임통치는 영국이 정책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유대 민족국가 수립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1917년 밸포어선언을 구체화한 것입니다. 영국의 통치는 1948년까지 계속되었으나 다수 민족인 아랍인과 세력이 점점 커가는 유대민족 모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UN) 총회에 팔레스타인문제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UN총회에서는 1947년 팔레스타인에 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를 따로 세울 것을 제안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1948년 이스라엘의 수립이 선포되면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영국 관리들도 철수합니다.
그후 이스라엘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주변 아랍국들의 정규군이 팔레스타인으로 진격하면서 벌어진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갈릴리 지방, 연안지역, 이집트 점령 가자지구 일부, 네게브 사막, 예루살렘 북서부지역을 포함해서 UN의 원래 분할안보다 50% 정도가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약 72만 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이스라엘을 떠나 주변 아랍국가에서 난민생활을 합니다.
지난 1948년부터 이뤄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영토 불법점령 과정에서 이스라엘 군의 총구 앞에 가족이 학살당하고 고향 땅에서 내쫓긴 팔레스타인 난민은 현재 745만 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주변 아랍국 난민촌에서 정치적인 권리, 거주 이전, 직업 선택의 자유와 교육, 의료 등 사회보장 혜택도 박탈 당한 채 살고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은, 옛날에는 가나안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왕으로 이어지는 통일왕국 시대에는 ‘이스라엘’ 그후, 남북으로 갈라진 분열왕국시대에는 북쪽은 ‘이스라엘’, 남쪽은 ‘유다’라고 불렀습니다. 로마 제국이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는 ‘유다’라고 불렀죠. 그러던 것이 A.D. 135년에 로마 속국이었던 유다가 제 2차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는데, 그 후부터 유다 대신에 로마제국에서는 ‘Syria Palaestina'라고 불렀습니다. 아랍어로 “Filastin" 이란 말은 로마어인 라틴어식 이름에서 기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은, A.D. 135년 부터이고 (반란을 일으킨데 대한 징벌로) 이스라엘, 유다라고 불리운 것은 적어도 약 3200년전부터 입니다.
유대인들이 흔히 말하는 성지를 이스라엘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최소한 4가지 약속에서 근거한다고 합니다. 즉,
1. 하나님이 조상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약속하셨다.
2. 유대인들이 그 땅에 정착했고 개발했다.
3. 국제 사회가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정치적인 주권을 인정해 주었다.
4. 그 땅이 자기 방어를 위한 전쟁중에 실지 회복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미 1882년에 많은 숫자가 팔레스타인 땅에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곳에는 이미 아랍인들도 오랫동안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것은 역사의 한 부분일 뿐이지요.
디아스포라
그리스 어원의 디아스포라(Diaspora 영어발음 다이에스퍼러)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빌론 유수후의 "유대 민족 분산" 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다가 나중에는 한나라의 문화, 민족의 대거 이주, 국외이산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유대 왕국이 패망하여 바빌로니아로 유배당한 뒤 이방인 사이에 흩어져 살게 된 유대인들을 말할 때 바빌론 유수(exile)라는 말이 나옵니다. 최초의 중요한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BC 586년의 바빌로니아 포로 때문에 생겼는데, 바빌로니아(현재 이락에 있던 왕국) 사람들은 유대 왕국을 정복한 뒤 유대인 가운데 일부를 노예로 삼아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고레스) 대왕이 BC 538년 유대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했을 때 유대인 공동체 가운데 일부는 자발적으로 유배지에 머물러 살기도 했습니다.
초기 유대인 역사에서 가장 크고 중요하며 문화적으로도 가장 창조적이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성했는데, BC 1세기 그곳의 인구 가운데 40%가 유대인들이었다고 합니다. AD 1세기경에 팔레스타인 바깥에 살던 유대인들의 4/5는 로마 제국 안에서 살았지만, 그들은 팔레스타인을 자신들의 종교생활과 문화생활의 중심지로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AD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도 이미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들의 수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사는 약 1,400만 유대인들 가운데 310만 명 가량이 이스라엘에, 590만 명 이상이 미국에, 그리고 210만 명 이상이 소련에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합니다.
아주 쉽게 말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의 그 곳을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본 이유는 “이땅이 우리 선조 땅이다, 그 근거는 구약성서에 있다 “ 라는 것이죠. 팔레스타인은 그 당시 구심점이 없는 유목민 같은 집단 거주 형태였기에 조직적인 구성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분쟁이 4번의 중동전을 거쳐 오늘에 까지 이어져왔습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국제사회의 중재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간에 수많은 평화협상이 벌어졌지만 양측의 불신과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이스라엘에게 빗진 것아 있어 건국을 약속했고 팔레스타인에게는 식민지였기에 독립을 허락해 주었던 것입니다. 아파트 한 채를 가지고 이중전매를 해서 주인이 두 사람이 되어 싸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생각해보면 이 분쟁은 영국과 같은 강대국들의 엄흉한 이해관계로 인해 야기된 참으로 기이한 상황입니다. 중동국가에서 두번 근무하면서 제가 만났던 많은 팔레스타인 인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말하곤 했습니다. 자기들 선조가 오랫동안 살아왔던 곳으로 부터 내몰려 주변 아랍국가에서 떠돌이 유랑생활을 하며 사는 그들의 입을 통해 많은 것을 듣게 됩니다. 팔레스타인 자치국가라고 하지만 늘 이스라엘의 위협하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셈이지요.
중동 국가에서 이스라엘을 가장 증오하는 나라는 이란입니다. 이라크의 사담후세인도 이스라엘을 증오했는데 그의 사후 이란의 아흐마디네자디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저주를 쏟아붓고 있습니다.뿐만 아니라 이란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하마스 그리고 시리아를 통해 이스라엘 공격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지요.
하마스 (Hamas)
팔레스타인의 대 이스라엘 무장 봉기인 '제1차 인티파다'가 일어난 1987년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행복을 깨뜨린 이스라엘의 차별과 폭력을 경험한 민중지식인들인 아흐메디 야신 등이 결성한 무장 정파가 하마스(Hamas) 입니다.
그들은 초기에는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 지구를 계속 통치하려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전역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지요. 급진 원리주의적인 성격으로 인한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노선으로 팔레스타인 인들의 지지를 얻고 있으나, 반대로 이것이 주변 아랍국가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한때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통합 정부 구성을 제안하고 총선 참여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하마스 조직원과 지지자 등 수십만명은 며칠전인 2011.12.14일 하마스 창설24주년 축하행사를 가졌습니다.하마스 지지자들은 가자 지구 서부에서 열린 행사에서 팔레스타인 국기와 하마스 기를 흔들며 "우리는 절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하마스 지도부는 팔레스타인 해방을 이룰 때까지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무장저항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러니 이 이 지역에서 평화가 유지될 리가 없지요.
1987년 12월 창설된 하마스는 2007년 온건파 파타로부터 가자 지구를 무력으로 차지했으며 이후 이곳을 통치해오고 있습니다. 하마스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 국가건설을 조건으로 이스라엘과 휴전에 동의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여전히 서방세계는 하마스를 테러그룹으로 간주합니다. 하마스는 '용기'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와의 사이에 벌어진 살인사건 이야기 하나 소개합니다. 제가 2010년 초반 귀국하기 전까지 근무했던 두바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입니다.
모사드
인구 겨우 몇 백만명에 불과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 이 기관이 미국의 CIA 구 소련의 KGB 다음으로 정보력이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지요. 미국이나 소련의 정보 기관은 숫자나 예산에서 모사드가 비교못할 정도로 컸지만 정보 수집 능력면에서는 어느 나라 정보부에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스라엘 여객기가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으로 피랍당한 사건이 발생 했을 때, 모사드의 뛰어난 첩보 및 정보수집 능력을 활용하여 이스라엘에서 비행기를 타고 출발한 특공대원들이 우간다의 엔테베 공항에 도착하여 인질 한 명도 죽거나 다치게 하지 않고 전원 무사히 탈출시켰고, 이란의 핵시설 의심 지역을 공격 파괴할 때는 거대한 여객기의 위에 전투기를 숨겨 가서 단숨에 이란 핵원자로를 파괴하고 무사귀환하게 하며, 2차대전중 히틀러 지시에 의한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의 책임자였던 독일인 아이히만을 그가 망명해있던 아르헨티나로부터 납치해와서 이스라엘 법정에 서게하고 사형에 이르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하마스 고위 실력자 피살 사건 - 모사드의 소행이 분명
2010년 1월 20일 이란의 무기 구입차 아랍 에미레이트 두바이 국제공항 부근 한 호텔에 투숙 중이었던 하마스의 실력자인 마무드 알 마부가 암살당합니다.
암살된 하마스 지도자 마무드 알 마부는 1988년 이스라엘 병사를 살해한 혐의로 모사드에 의해 20년간 집요한 추적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20년의 도피생활 끝에 두바이에서 표적 살해당하지요.
이 살해사건이 일어난후 각국, 특히 아랍진영은 이것이 이스라엘의 비밀정보 기관인 모사드의 소행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나, 두바이 호텔의 CCTV에는 용의자들만 목격되었습니다. 두바이 경찰은 모사드 소행으로 추정되는 유럽의 여러국가, 호주 등의 위조여권을 소지한 일행을 용의자로 발표했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사인은 머리에 전기쇼크 가격을 당했고, 옷등으로 목이 졸려 질식사 한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저는 아랍 국가 경찰이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치밀하지 못하고 어리숙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바이가 있는 UAE도 마찬가지죠. 이스라엘 집권당인 리쿠르당의 의원인 카르멜 샤마( Shama)는 진상 조사를 촉구한 한 아랍 국가 정치인의 말에 "확인된 바도 없는데 이스라엘을 배후로 모는 건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반박하며 "하마스 간부 살해는 유대교적 선행"이라고 마무드 알 마부를 암살한 모사드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아베그도르 리베르만 이스라엘 외무장관도 2010. 2. 22일 브뤼셀의 EU(유럽연합) 본부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모사드의 개입을 묻는 기자들에게 "007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좀 더 진지한 영화를 보기 바란다"는 농담까지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두둔하는 한국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저는 이스라엘이 참 뻔뻔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입니다.
살해된 마무드 알 마부가 이스라엘에 절대 우호적인 인물이 될 수 없고 적대국가인 이란과 절친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적의 친구는 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 등 정황상 암살 실행자는 모사드가 확실시 되지만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국 안보에 위협적 존재인 팔레스타인 정치군사 조직 하마스의 실력자가 성공적으로 살해된 것에 무게중심을 두는 반면 자국 정보기관 모사드 개입설은 모두 부인했습니다.
하마스 간부 암살을 대하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말은 '소수를 죽여 다수가 평화로울 수 있다면 그런 전쟁은 용인된다"는 손자의 병법에도 어울리는 것으로 소수(하마스)를 죽여 이스라엘 민족 (다수)의 평화를 지키는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것이며, 하나를 죽여 다수를 살리는 것(一殺多生)이 용인되는 불가의 말처럼 하나( 하마스)를 죽여 다수(이스라엘 민족)가 살겠다는 것으로써 이런 전쟁이나 살인의 善惡을 떠나 이스라엘 민족이 生存하기 위해서는 적을 살해하고 제거할 수 밖에 없다는 그들의 절박한 생존전략을 분명히 했습니다.
모사드(Mosaad) 는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으로, 정식 명칭은 ‘정보 및 특수임무 연구소(ha Mossad le Modiin ule Tafkidim Meyuhadim)' 입니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들 중 해외정보를 담당하며 비밀정치공작, 대테러활동 등을 담당하는 5대 정보기관의 하나로서 총리 직속기관입니다. 주로 외국에서의 첩보활동· 정보수집· 비밀정치공작 등을 담당하는 곳이죠.
이스라엘은 안보와 생존을 동의어로 보는 정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년간의 타국 생활(디아스포라)을 끝내고, 2차 대전의 대학살(홀로코스트)을 겪은 후 1948년 건국의 꿈을 이룬 유대인들에게 안보와 생존은 동의어 입니다. 적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고조된 안보 의식과 건국 이래 전시 상황이 아닌 적이 없다는 긴박감이 오늘의 ‘모사드(Mossad)’를 만들어냈습니다.
1938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속속 불러들이기 시작할 무렵 태동한 모사드는, 건국 1년 후인 1949년 이스라엘 초대 총리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 정보 기관들을 중앙에서 관장할 목적으로 창설한 정보 기관이며 그 후 1951년 총리실 직속으로 구조조정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그들 특유의 무자비한 해외 활동등으로 인해 숱한 구설수에 올랐으며 많은 나라들로 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모사드의 모토는 구약 성경 잠언 24장 6절의 구절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For by wise guidance you can wage your war, and in abundance of counselors there is victory)’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국어로 ‘모략(wise guidance)’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기만’ 또는 ‘속임수’를 뜻하고, ‘모사(counsellors)’는 ‘조언을 주는 자’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모사드, 그들이 결코 정의로운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보기관 으로서, 비밀첩보 기관으로서의 일처리 모습과 국가가 그 조직을 다루는 모습은 벤치마크 할 대상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스라엘과 관련된 진실을 그 동안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모사드 휘장
Assassination of Mahmoud al-Mabhou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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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드 알 마부 죽기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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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January 19, 2010 |
Target | Mahmoud al-Mabhouh |
Attack type | Assassination |
Weapon(s) | Pillow, muscle relaxant |
Death(s) | 1 |
Perpetrator(s) | 33 people, using forged and fraudulently obtained passports. |
Suspected perpetrator | Mossad |
The assassination of Mahmoud al-Mabhouh, (February 14, 1961 – January 19, 2010) took place on January 19, 2010, in a Dubai hotel room. Al-Mabhouh—a co-founder of the Izz ad-Din al-Qassam Brigades, the military wing of the Islamist Palestinian militant group Hamas—was wanted by the Israeligovernment for the kidnapping and murder of two Israeli soldiers in 1989 as well as purchasing arms from Iran for use in Gaza; these have been cited as a possible motive for the assassination. He also had many other enemies including Fatah (whose members "loathed" him), Egypt had imprisoned him for all of 2003, and Jordan's intelligence services were looking for him.
His assassination attracted international attention in part due to allegations that it was ordered by the Israeli government and carried out by Mossad agents holding fake or fraudulently obtained passports from several European countries and Australia.
The photographs of 26 suspects, and the names they used, have been placed on Interpol's most-wanted list. According to Dubai's authorities, there are up to 29 suspects, 12 of whom carried British passports, six Irish, four French, one German, and four Australian, and another two Palestinians who were arrested. Interpol and the Dubai police believe the suspects stole the identities of real people, mostly Israeli dual citizens. Two Palestinians, believed by Hamas to be former Fatah security officers and current employees of a senior Fatah official, were taken into custody in Dubai, on suspicions that one of them provided logistical assistance to the hit team. Despite Hamas's claim, Dubai would not comment on the incident or identify the two Palestinian suspects.
According to initial reports, al-Mabhouh was drugged, then electrocuted and suffocated. Lt. Gen.Dhahi Khalfan Tamim of the Dubai Police Force said the suspects tracked al-Mabhouh to Dubai fromDamascus, Syria. They arrived from different European destinations and stayed at different hotels, presumably to avoid being detected and, with the exception of three of its members suspected of "helping to facilitate" who had left on a ferry for Iran several months before the assassination, departed after the assassination to different countries. Dubai's police chief said that he was "99% certain" that the assassination was the work of Israel's Mossad. On March 1, 2010, he stated that he was "sure" that all of the suspects are hiding in Israel. He has said that Dubai will ask for an arrest warrant to be issued for Meir Dagan, the head of Mossad, if it is confirmed that the Mossad is involved and responsible for the assassination. The Hamas leadership also holds Israel responsible, and has vowed revenge.Hamas, which is itself on the US and EU lists of terrorist organizations (and also considered a terrorist organization by the governments of Israel, and Japan, as is its military arm by The United Kingdom and Australia, requested that Israel be added by the EU to its list because of suspicions that Israel was involved in the assassination. However, later in March, Dubai police chief said, "I am now completely sure that it was Mossad", and went on to say "I have presented the (Dubai) prosecutor with a request for the arrest of (Israeli Prime Minister Benjamin) Netanyahu and the head of Mossad" for the assassination. and Khalfan would also suggest that Hamas fed information to the Mossad
On March 23, 2010, Britain's foreign secretary expelled an Israeli diplomat after the UK's Serious Organised Crime Agency turned up evidence that Israel had forged copies of British passports. On May 24, the Australian government expelled an Israeli diplomat after concluding that there was "'no doubt Israel was behind the forgery of four Australian passports" related to the assassination.[22] Similar action was taken by Ireland. Israel has refused to comment on the accusations that its security forces were behind the assassination.
On September 30, 2010, Dubai's police chief Dahi Khalfan said he received death threats from Israel's spy agency Mossad linked to his role in uncovering details of the assassination of Mabho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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