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408년 로드를 비롯한 4개의 도시가 로드를 수도로 하는 하나의 국가를 만들고자 연합했었다. 로드는 상업적으로 풍요로운 도시였고, 주 동맹국이었던 이집트의 프톨레미 1세(Ptolemy I Soter)와도 경제적으로 견고한 관계를 유지했다. 기원전 305년 프톨레미와 적대적이었던 마세도니아의(Macedonia) 안티고니스(antigonids)는 로드와 이집트의 동맹을 깨려는 의도로 로드를 공격하게 된다. 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기원전 304년 평화조약이 채결됨에 따라 안타고니스인들은 값비싼 전쟁 장비들을 내버려둔 채 그곳을 떠나야했다. 로드인들은 그들의 단결을 자축하기 위해서 그 장비들을 팔아 엄청난 규모로 태양의 신인 헬리오스(Helios) 조각상을 세웠다고 한다. 콜로수스의 제작 기간은 12년이 소요되었는데, 기원전 282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226년 강력한 지진이 로드를 강타할 때까지 수십년 간 항구의 입구를 지키고 서있었다고 한다. 지진으로 로드시는 막대한 피해를 보았고, 콜로수스의 가장 약한 부분이었던 무릎이 깨지고 만 것이다. 곧이어 로드시민들은 프톨레미 3세로부터 복구에 드는 비용을 대겠다는 제의를 받게 되지만, 그 재건을 금하라는 신탁이 내렸다고 한다. 콜로수스 조각상은 부서진 채로 그렇게 폐허에서 천 년간이나 놓여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기원후 654년 아랍인들이 로드를 침략한 후 콜로수스의 잔해들을 모아서 시리아(Syria)로부터 온 한 유대인에게 그것을 팔아 넘겼다. 일설에 의하면, 콜로수스의 부서진 조각들은 900구의 낙타의 등에 실려 시리아로 운반되었을 것이라 한다. 통설에 의하면, 콜로수스는 로드시의 만라키(Mandraki) 항구의 전면에서 항구의 입구에 다리를 벌린 모습으로 세워졌다고 전해졌지만, 최근의 자료는 이 조각상의 위치가 오히려 만라키 항구의 동쪽 갑(岬)이나 보다 내륙 쪽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로드시민들은 조각가 차레스에게 이 조각상을 의뢰했고, 이 조각가는 조수들에게 청동을 주조하도록 했다. 그는 백색 대리석 판 위에 먼저 다리와 발목을 고정시킨 다음, 청동주물이 골격과 함께 굳어짐에 따라 서서히 그 구조를 올려 세웠다. 완성된 조각의 높이는 33m에 달했는데, 그것이 쓰러졌을 때 어느 누구도 조각상의 엄지손가락을 자신의 팔로 감쌀 수 없을 만큼 컸다고 한다. 이렇게 세워진 콜로수스는 56년이 지나서 파괴되었는데, 오늘날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것은 단지 거대한 조각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대서양의 아름다운 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단결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으로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