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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만남
대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선배들에 의해 일명 의식화 교육을 받았다.
매주 한권씩 커리큘럼에 의해 책을 읽고 토론했다.
혼돈스러웠다.
별로 부족함없이 자란 내게 , 나와 비슷하지 않은 나와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들을 보라고 하니 겁부터 덜컥 났다.
숨고만 싶었다.
그저 혼자 책읽고 시를 노트에 적어내려가는 것들이 더 행복했다.
그렇게 하다 박노해를 만났다.
그의 시는 ,이기적인 나의 마음에 돌을 던졌다.
워낙 잘 우는 나지만, 그의 시에 눈물이 나왔다.
내가 혼자 내려가는 노트에 그의 시를 옮겨적었다
스무살 때다.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참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다시 현실에 매진하는 사람이 되어 , 그를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작년 재작년 겨울 박노해 사진전을 갔다가 다시 그를 만났다.
울컥 마음이 따뜻해졌다.
너무 나만을 위해 살아온 삶이 살며시 부끄러워졌다.
작년 여름 그의 사진전이 광화문에서 열렸다.
세번을 달려갔다.
처음에 가서 싸인을 받는데 ,이것저것 물어봐주셨다.
강하게 인상에 남으라고 눈에 확 틔는 빨강색 딱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갔다.
이것저것 물어봐주셨다.
두번 째는 친구와 그곳을 다시 방문했다.
친구와 그 분의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그분께서 돌아보시더니 왜 아는 척 안하느냐고 물어보셨다.
그때 내옷은 더 화려했다.
분홍 레이스 달린 호피 무늬 원피스
너무 반갑다고 하시며, 그 사람 많은 곳에서 덥썩 나를 안아주셨다.
사람에게서 따뜻한 온기가 있구나
말로, 글로는 전해지지 않는 사람의 체온에서 느껴지는 향기가 있구나.
세번째
마지막 전시회날
싸인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이 너무 길었다,
그날은 정말 최대한 얌전한 짧은 버버리를 입고 갔다.
그분께 드리는 직접 손으로 삐뚤빼둘 쓴 편지, 초코렛
그분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건 스토커도 보통 스토커가 아니다 싶었겠지.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오늘의 이 기억이 제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너무도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가 더 감사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눈물이 맺혔다.
그분의 강연회
강연회가 끝나고 싸인회가 열렸다.
이번에는 내가 스무살 때 그분의 시를 적어내려간 노트를 가지고 갔다.
선생님은 그 노트를 한참 살펴보시더니 아이같은 순수한 해맑은 함박 웃음을 내게 보이셨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노트를 보이며 자랑을 하셨다.
젊은 날부터 마음 속에 좋은 이미지로 간직해왔던 그 분은 여전히 맑았고, 나는 죄송했다.
두울 --책-- 다리언 리더-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얼핏 알고 있던 사실들을 콕 찝어서 정리해 놓은 책은 더할 나위없이 반갑다.
이 책이 그랬다.
제목이 일단 끌어당겼다.
내게도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었을까.
보내지 않은 편지는 아마도 참 많이 슬픈 편지일 것이다,
보내지 않은 편지는 가슴 한켠에 박혀서, 어느 순간 문득 튀어나오기도 하고, 내 삶의 전경으로 떠오르면서 깔끔한 해결을 요구할 것이다.
무작정 정말 정신없이 두서없이 정신분석학 심리학책을 읽어댔다.
거의 중독 수준이었던 듯 싶다.
읽으면서 공감하고 울고 위안도 되고 지난 날의 나를 돌아다보고, 지금의 나를 새롭게 발견하기도 하고 , 그렇게 알아가고 위안도 받았다.
완벽하고 완전한 치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나란 사람을 알게 되고 긍정하고, 있는 대로를 받아주는,내 마음속의 넉넉한 엄마를 가지게 된 듯 하다.
누군가 나를 한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기를 바랬던 그 마음을 , 내 자신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는 거부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을 가능하게 했던 그 책 속의 위안이, 어쩌면 대인 관계에서 접촉하고 느끼고 깨달았던 것 그 못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적어도 책 속에 말들은 사람들이 주었던 실망과 좌절감과 헛바퀴는 선물하지 않았으니까..
라캉에 대해서 잘 모른다. 많이
그저 알고 싶다는 열망.
마치 그가 세상의 모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랬을 뿐이다.
그런 사람이 어디있을까 싶으면서도, 정말 그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목숨걸고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살아갈수록 세상은 모르겠고,그래서 답답하고, 그래서 궁금하고, 호기심이 가득한 곳이다,
그가 제시했던 네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그 명령, 급진적이기도 당혹스럽기도 한 그의 명령에 너무도 감사할 뿐이다.
다리언 리더도 라캉의 뒤를 잇는다는 그 점에 매혹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쓴 모나리자 훔치기도 재밌게 보고 있다.
봄에 이 책을 만나고, 새로 처음 보는 이론이나 말들은 없었지만, 맘 속에 콕콕 박혀서 아프게 하는 말들이 참 많았다.
이미 마음 속에 그런 생각들이 내재되어 있는데 명쾌하게 활자로 되어있는 걸 보니, 그저 눈이 아렸다.
다른 인간을 이해함으로써 분리를 이겨내려고 하면 할수록 분리는 강화된다.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관계가 조화로울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성에게 사랑과 실존이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가를 보여준다
결국 진짜 살아있는 인간의 사랑의 경우,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것이 언젠가 끝난다는 것뿐이다.
사랑은 단번에 말해 질 수 없다.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무언가를 목표로 하며, 그것이 한 번의 답변, 한 번의 몸짓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이다
인간은 서로 인지/ 인정하는 데 실패하며 전 생애를 허비한다.
우리 자신의 일부는 우리 바깥에 있다.
사랑에 관한 말들.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자신이 되고 싶은 존재를 구현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사랑의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랑의 목표는 다시 받는 것이다.
사랑은 라캉이 말하듯이 궁극적으로 결핍에 건네지는 것이다.
그렇다.
사랑이 그만큼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그 감정에 대한 신뢰를 가지기가 어렵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만큼 , 당신도 나를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그 바람이 너무도 절박하고도 어려워보이기에,,
같은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다
.
아프더라도,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로움을 가지고 나가는 과정이
이런 것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서로 주고 받는 영향들, 그로 인한 그 작은 변화들
서로 무엇인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이러한 움직임은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세엣 --꽃 --봄날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작약
유월이다.
내 생일도 있고 초록이 눈부시고,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작약이 한창이다.
하늘은 더없이 맑고 깊고, 때죽나무도 수국도 말채나무도 후박나무도, 메꽃도 뻐꾹채도 자주 닭개비도, 엉겅퀴도 모두 나의 친구다.
사방이 초록으로 위로와 에너지를 준다.
더없이 충만하라고, 마음 편하라고, 너 잘 살고 있다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그 말 고맙게 받는다.
작약을 선배 언니에게서 50송이나 선물 받았다.(봄날 이 글을 올렸는데, 작약 50송이를 보고 나의 나이를 추측한 분이 계셨다. 작약 숫자의 나이는 아닌데. ㅋㅋ)
더없이 감사하고, 기쁘다.
작약 작약 노래를 불렀더니 자신의 정원에서 직접 가져다 주었다.
작약에 그야말로 미쳐살았던 날들
한강의 작약을 보러 가서 그 곳에 가서 대체 얼마나 나는 정신없이 서있었을까.
한송이 한송이, 다 봐줘야 하고, 향기도 맡아줘야 한다.
요며칠은 정말로 작약에 향기에 취해 그 아름다움에 정신 못차렸는데
너무 기뻤던 그 순간, 꽃에게 매혹된 그 순간 이별을 예감하기에 조금은 서러웠다.
작약의 가야할 길을 알기 때문에.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어제보다 많이 숨죽어 있다.
작약이 조금 변해가는 것을 보며 나를 생각했다.
내가 저렇게 변해가고 있겠지.
바슐라르는 시인으로 사는 것은 자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자신을 비쳐 보이는 것에 있다고 했다.
꽃 하나를 통해서 삶에 대해 ,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해, 자기자신을 바라본다.
젊음에서 아름다운 것에서 한발짝 떨어질 때도 되었는데 쉽지 않다.
절정의 아름다움에서 나도 작약도 스톱했으면 좋겠는 이 마음.
부질없고 어리석은 건 알겠는데 내겐 너무 어렵다.
그 아름다움에 열망, 아름다운 것이 내게 가져다 주는 그 지독한 환희에 뼈저리게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일까.
너무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내게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삶이다.
손아귀에 넣고 조금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막고 싶다.
이 처절한 몸부림.
아직 작약은 한창인데, 어떻게 변해갈지 뻔히 알기에 정말 애닯다.
순간의 아름다움마저 불안하고,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그만큼 내겐 너무도 지독한, 내 온 심장을빼앗아가는 듯한 강렬한 만족이다.
애초에 네가 내게 이토록 와닿지 안았어야 했을까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흔들림이다.
부질없는 것 , 불가능한 것에 정신없이 몰두하고 덤비고 마음 쏟는 이 마음에
힘이 되어주는 주는 음악, 강허달림의 미안해요.
이 노래보다 더 안쓰럽고 슬프 지 않음을 다행이라 생각한다
네엣 -- 공간-시모키타자와
시모키타자와는 우리나라로 치면 조그만 소극장과 고만고만한 카페들, 그리고 다양한 소품가게들, 재즈바등이 많은 우리나라로 치면 홍대앞이나 대학로 같은 일종의 문화 공간이다.
동경에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이유도 시모키타자와에 가보고 싶어서이다.
동경에 화려한 거리는 거의 많이 가보았다
긴자거리나 오모테산토의 화려함에 눈을 뗄 수 없이 마음이 들떴다면. 이곳은 마음이 차분해지고, 일종의 엄마의 뱃속같이 모든 마음이 무장해제되는 본연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남들에게 치여서, 무엇인가 끊임없이 성과를 내야하고 두드러지는 게 힘들어질 땐 이런 조용한 나즈막한 곳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싶은 법이다.
혼자 더 있고 싶은 공간이다.
도착했을 때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노래에 취해서 한참을 서있었다.
낯선 곳에서도 노래로, 누군가의 마음이 읽힌다.
나와 같은 감성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 그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신을 숨기고, 절대로 우울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적당히 포장하고지내다가 이렇게 내면을 건드리는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노래 한 소절에 마음이 아리다.
좁은 골목길에 마음을 빼앗긴 건 언제부터 였을까.
갑자기 골목길이 내 마음 속으로 정신 없이 들어온 건.
스페인의 피카소미술관에서였던 것 같다.
혼자 들어가기조차 힘든 그 좁은 골목길에서 다투어 쏟아지던 스 햇빛을 피하며, 햇빛과 싸우며. 그러다가 햇빛과 화해하며 한 시간 넘게 기다리던 그때가 마음 속에 깊게 아로새겨져있다.
어디나 골목길엔 사람 냄새가 난다.
그것도 사람의 아주 내밀한 마음.
그래서 골목길이 점점 더 소중하게 다가오나보다
다섯 -- 영화 --싱글맨
오늘 톰포드 감독의 싱글맨을 봤다.
과연 디자이너답게 곳곳에 아름다움으로 화면이 가득찼다.
톰포드가 디자인한 옷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늘 흥분된다.
내가 사랑하는 디자이너 중의 한명이다.
주인공은 콜린 퍼스로 그가 입은 수트, 안경, 그가 사는 집, 그가 타는 자가용, 집안 곳곳의 소품들까지도 한편의 그림을 보는듯한 시각적 만족이 대단한 영화다.
콜린 퍼스는 브릿짓 존스의 일기에서부터 눈 에 띄기 시작한 배우였고, 뉴욕은 언제나 사랑중에서 나를 흔들어 놓다가 ,맘마미아에서 그의 노래 솜씨에 반했다가 이 영화를 통해서 그의 연기에 빨려들어갔다.
애인을 잃은 비통한 슬픔을 그 눈빛만으로도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절제되고 단정한 양복이 그의 슬픔을 더 배가 시키는듯했다.
1962년 미국, 대학교수인 조지는 자신의 사랑하는 동성연인이 죽자 상실감과 공황상태에 빠진다. 16년간 짙은 교감을 나눴던 연인의 죽음으로 살아갈 희망을 잃은 조지는 자신도 권총으로 죽을 결심을 한다(아 그런데 그 권총도 왜이렇게 아름답던지.. 중간에 보석이 박힌 건지.. 소장하고 싶은 멋진 총이었다)
감독의 섬세한 마음과 아픈 마음이 느껴져서 짠하다.
완벽한 교감을 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외로움과 이제는 누구에게 이해받지 못할거라는 두려움,성적 소수자,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밝힐 수 없는 아픔과
그 절망감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졌다.
인생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드물지만 다른 사람과 진실한 교감이라고 얘기하는 조지의 말이 정말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가면서 느껴지는 그 두려움과 자기 소외에 대한 감정의 흐름을 잘 표현해냈다.
산다는 건, 누구에겐가 나를 이해해달라고 소리치는 일인듯 싶다.
평생 스스로도 이해가 안되고, 스스로도 용납이 안되는 나이지만, 누군가와 깊은 공감을 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달라는 그 몸부림의 과정이 혹시 삶은 아닐까.
합리성을 늘 열망하면서, 세계 내에 던져진 존재의 부존재 이유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비합리성의 세계 내에서 느껴지는 순간의 행복에 대한 안도감,행복에 대한 안간힘을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끈에서 찾고자 했던 조지.
그래서 삶은 고달프고 슬픈가보다.
이 노래만큼
영화 중간중간에 올더스 헉슬리를 인용한 대사들이 나온다.
올더스 헉슬리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남들과 다르면 누구든지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그 대사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나온 대사지만,
혹시 톰포드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아닐까 싶다.
클로이--- 줄리엔 무어, 리암 니슨 , 아만다 사이프리드,아톰 에고이안 감독---
니체의 운명과 역사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열정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평온한 일상에 그저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늘 상승하려는 의지로 살아가고 싶다.
영화도 평온한 나의 삶과 일상을 뒤집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게 좋다,
실천적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무언가가 꿈틀거리면서 살아 있는 존재임을 확인 시켜주는.
그런 면에서 클로이는 정말 한동안 나를 끊임없이 흔들어놓고, 괴롭혔다.
제목은 클로이지만, 클로이가 주인공이라기보다, 중년의 산부인과 의사 캐서린의 심리 묘사에 집중을 한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보이는 40대 후반의 의사 캐서린.
잘 생기고 매너좋은 교수남편과, 약간은 반항적이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있는 아들을 둔 전형적인 중산층 주부이다.
겉으로 보기엔많은 것을 가진듯하나, 어딘지 모르게 내면은 공허하다.
그녀의 내면을 깊숙이 쳐다보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완벽한 평화의 세계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은 , 매혹적인 젊은 여인 클로이를 만나면서 표면화된다.
처음에 그녀를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은 비천한 여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만남을 계속하면서 클로이에게 받는 느낌에 당황한다.
그녀가 가진 매혹적이고 치명적인 아름다움, 자유로움, 당당한 자신만만함에 자신도 모르게 동경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
클로이의 치명적인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이미지가 케서린에 욕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전혀 자신과 다른 차원의 것들이라고, 밀어내고 싶겠지만,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서 클로이가 가진 지독한 매력에 빠져든다.
한편 클로이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워보이는 , 어딘가에 정착한 캐서린에게 동경의 마음을 품게 된다.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모든 남자를 요리하면서 자유롭고 화려함을 누리고 사는듯 보이나 , 그녀 또한 마음 한곳의 허허로움을 어찌할 수 없다.
정처없이 떠돌던 마음을 어디에 붙들어 매고 싶었을까
구름처럼 떠도는 마음의 안식처로 캐서린에게 기대고 싶다.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고, 기존의 사회 질서나 테두리에 순종하고자 했던 캐서린은, 클로이와의 만남으로 인해 용기를 얻게 된다.
사회질서에 적응해서 잘 살아가던 삶 이외에 자신의 가장 내밀한 감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잠들어 있는 욕망에 솔직하게 반응하면서, 둘 사이의 위험한 관계가 시작된다.
둘 사이의 욕망은 다 현실의 저편을 지향한다.
욕망은 충족되지 않는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충족된 욕망은 이미 욕망이 아니다.
그래서 욕망이란, 현실 질서를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
현실 속에 욕망이란, 아무 것도 제공해 줄 수 없으리라.
그래서 급진적이고 그래서 위태롭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옳다고는 할 수 없는
이 영화는 상당히 자극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안정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누리는 기존의 여러가지 특혜나 , 선점한 것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언제까지 당연할 수 있는지에 대한 , 질문에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욕망을 감춰두고 편안함에 의지하는 삶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함으로써 생겨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감수하면서 ,당신 속의 욕망을 실현해 나갈 것인가
라캉이 당신은 당신 속에 있는 욕망에 일치하여 행동하였는가라고 묻는다면
내 안의 섬세함은 이렇게 , 도덕주의적인 삶 너머로 그렇게 달려갔노라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어쩌면 욕망이 실존이었노라고
그렇게 캐서린은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결핍에 대해 건네던 말들.
자신의 상처에게 건네던 말들
결핍을 제거하려던 움직임들
사랑이란 이름으로 채워넣으려고 하던 그 몸짓들이 합일이나 실현되는 그 순간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임을 느끼게 될 지도
한바탕 꿈을 꾼 것처럼 멀게 느껴질지도
결핍의 차원을 존속시키위한 다른 무언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주하던 그 죽음 충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고 조절해야하는지는 전적으로 자신의 견해에 따르기를, 타인의 시선이나 도덕적인 당위성이 아닌.
자신의 세계를 뛰어넘어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나자신 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타인의 말걸기에 뛰어들음으로 해서,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 타인의 멧세지가 스며들던 그 느낌
그건 아마도 욕망이란 삶이란 행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다른 이야기였을 것이다.
줄리엔 무어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듯, 그녀 자체가 캐서린이 된 듯한 완벽한 연기를 한 것 같다.
안정되어 보이지만, 어딘가 불안하고, 애처로운 여인의 내면을 아주 잘 소화해 내었으며
새롭게 떠오르는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연기 또한 만만치 않다.
얼굴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도발적이면서도 당돌하고 위험한 열정을 가지고 사는 고혹적인 여인을 잘 표현해 냈다.
맘마미아에서 보여 준 발랄함과 디어존에서의 그 지고지순한 청순함과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팜므파탈의 역할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잘 잡아낸다
여섯 -- 공연
게리 무어 공연을 다녀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타리스 중의 하나이다. 게리무어, 로이부캐넌, 리치블랙모어, 랜디로즈..
너무 소리 질러대고 , 너무 환호하고, 너무 전율하고, 마지막에 parisienne walkways를 연주할 때는 엉엉 울어버렸다.
나도 깜짝 놀라고, 혼란스럽다.
공연을 보면 보통 약간은 너무 감격하고, 좋아서 간혹 눈물을 글썽거리기는 하지만, 이렇게 크게 울어버리긴 처음이다.
내가 왜 그렇게 심하게 오열하면서 그의 파리지엔느 워커웨이를 들었는지에 대해 한참 분석을 해봤다.
혼자 갔기 때문에 나의 감정을 더 원없이 발산한 것 같았다.
나를 모르고 나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공연을 본다는 게 이렇게 맘 편하고, 자유로운 건지 몰랐다.
여행만 혼자 갈 일이 아니다.
영화만 혼자 볼 이 아니다.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이렇게 까지 나의 감정을 다 드러내고 나의 밑바닥 감정을 들여다 볼 수 있었을까
지금은 뭐든지 혼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편에 속하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부모님 두 분이 다 알아서 다 주셨기 때문에 난 정말 고등학교 때까지 문방구 가는 것조차 해본 적이 없고, 그래서 너무나 무서웠다.
혼자서 영화보는 거, 혼자서 여행가는 거 남들에겐 비교적 쉬운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혼자 완벽하게 자유롭게 누리고 있는 시간들과 평화에 대해 항상 너무 가슴 벅차고 고맙다.
공연은 혼자 가기 너무 싫고 무서웠다.
공연의 취향이 맞는 사람을 주위에서 찾아내기 쉽지 않아, 여지껏 거의 대부분, 지인에게 돈을 지원하면서 같이 다녔다,
이번의 게리 무어의 경우, 내 주위에 게리무어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 공연을 간다해도 선뜻 vip 석에 돈을 쓸만큼 미친듯이 좋아하는 사람도 없었다.
두렵지만, 혼자 가기로 했다.
공연을 오자 마자 너무 잘한 선택이라 여겨졌다.
나의 탁월한 선택에 대한 만족, 뿌듯한 감정 그리고..
나와 비슷한 감성적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감사함
게리 무어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손 잡을 수 있을 듯 싶었다.
내가 누리고 싶은 모든 문화적인 취향들은 같이 할 수 있는 동반자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시절, 내 자신에 대한 갈증과 허기짐, 내 존재에 대한 결핍의 많은 부분을 거의 음악을 통해 메꾸려했다.
팝송은 내게 거의 신과 같은 존재였다.
매일 매일 팝송일기를 써가면서 나의 구멍을 메우고자 했다.
팝송에 대해 집착할수록 오히려 더 외롭고 소외되어 가는 자신도 바라봐야 했다,
내가 늘 말하고 싶어하고, 내가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던 허허로움,그리고 좌절감
라캉이 말하는 욕망이란,타인들의 욕망을 통해서 인정될 때만 의미를 갖는 법인데,타자의 인정이 없었기에 그렇게 허기졌었나보다.
게리 무어를 몇 년 동안 정말 얼마나 있는 힘을 다해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내내
거의 게리 무어에게 빠져있었던 것 같다.
내 평생에 게리 무어의 연주를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도 못했는데,이런 기회가 오다니, 세상 살아가는 기쁨이란 게 바로 이런 건가보다,.
로이 부캐넌과 게리 무어의 기타 연주는 밤에 들으면 더욱 더 아프고, 아파서 괴롭다.
랜디 로즈의 기타 소리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아려지는데도, 멈출 수 없음은 ,그들의 기타소리가 내게 들려주던 그들만의 위로가 있었을 거다.
사람이 목놓아 우는 것보다 더 뜨거운 설움을 토해낸다. 기타의 그 떨림과 그 현란한 아픔은 내 마음을 오히려 다독여주었다.
게리 무어가 등장 했을 때 숨이 턱 멎는 듯 했다
기타 연주를 들려줄 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기분, 그동안 나의 정열을 바쳤던 그 시간들이 지나가면서 애잔한 마음까지 가세했다.
i love you more than you 'll ever know를연주 할 때의 게리 무어의 혼신의 힘을 다하던 연주.
천안함 사건을 위로한다면서 들려줬던 still got the blues의 기타 소리는 , 서럽고 애닯아서,기타에도 혼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게 했다.
마지막 연주 parisienne walkways를 연주할 땐 정말 너무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이 노래를 늘 같이 들었던 친구
이 노래 들으면서 써내려갔던 일기장
그리고 그 일기장에 빼곡히 적혀있던 누군가가..
이 세상에 단 한 명, 내가 가지고 있던 나의 음악적인 감수성을 받아주고 이해해주었던 그 친구, 그래서 더 친구에게 의존적이 되어갔을 지도 모르겠다.
내 자신의 욕망을 누구에겐가 계속 인정받고 싶었고, 그 시선으로 내 욕망을 다시 한번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내 존재가 더 많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시간들이 흘러서,그때 밤잠을 설칠만큼 고민했고,아팠던 감정들이 아물어서, 현재의 시간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노래 한 곡으로 사람 맘 뒤흔들어 놓기도 한다.
어쩌면 젊은 날에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했던 그 감정들의 연장선상에 지금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노래에 열광하는 게 아닐까.
게리무어의 공연은 여지껏 내가 봤던 공연 중에 최고인듯 싶다.
엑슬로스는즈는 너무 몸이 무뎌졌었고
밥 딜런은 관객과 전혀 소통이 안된 채 혼자 너무 진지했고
게리무어는 여전히 기타를 신들린 듯, 너무도 서럽게 아리게 연주를 잘 해내 있었고
그의 정열적이면서도, 진지한 표정도 너무 좋았다.
관객을 보면서 끊임없이 관객의 반응을 살피고, 배려하는 정성스런 태도, 그리고 자신이 연주하는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 적지않은 나이임에도 믹 재거 못지 않은 에너지와 무대 장악능력 모두 다 만족스러웠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empty rooms과 still in love with you를 연주 안 해주었다는 거다.
.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는 행복감과 충만감이 함께 한다.
일종의 스탕달 신드롬인듯 싶다.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오면서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 가까이 오자 스탕달은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단테,다빈치, 미켈란젤로,마키아벨리, 갈릴레오 등의 위인이 살았던 도시에 발을 들여놓는 다는 것만으로도 황홀경에 빠진 것이다.
시내에 들어와 한 성당에서 벽화를 보고 난 후에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만 같아 의자에 앉아 쉬어야만 했다고 전해진다.
흥분과 그리고 약간의 허탈감으로 잠이 쉽게 오지 않을 듯하다.
이렇게 황홀한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 게리무어에게 어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나 살아있으면 다시 한번 볼 수 있으려나
강허달림 공연
처음 그녀의 노래를 들었을 때 기억난다.
어느 나른한 봄날의 오전 시간
그녀의 목소리는 그대로 내게 걸어들어와 다른 세상으로 끌고 갔다.
그 봄 내내 나는 작약에 취해서 그렇게 작약 보는 재미로 한강을 뛰어갔었다.
처음 그 꽃을 대할 때의 그 미묘한 떨림.
이른 저녁, 늦은 밤, 환한 대낮 어느 시간이고, 꽃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나를 긴장시키고 불안하게 만들며 ,소유욕을 끊임없이 시험한다.
작약의 아름다움과 만나면서도 늘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줄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다고 붙잡아 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곁에 있다가 떠나가는 것의 공허에 대한 두려움으로 ,매혹된 그 순간부터 이별의 아픔에 대한 예감으로
빠져드는 내 감정을 제어하고 싶었다.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 낯설고도 기이한 이질적인 타자였을까
아름다움은 벨벳처럼 말랑거리지는 않았다.
결핍을 예상하면서 시달리고 있을 때 , 무언가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데는 능숙하다.
내 마음 속을 가득 채우던 것이 떠나가버릴 때, 그 빈자리에서 위로해줄 대체제로 이 노래에게 무의식중에 몰입하게 된 것 같다.
그 아름다운 것이 내게서 떠나갔을 때, 예상했던 이 대체제는 그 역할을 아주 성실하게 해냈다.
선배언니에게서 받은 작약 50송이가 시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더 이상 향기도 탱탱함도 유지 못하고 , 내게 의미가 없어지는 그 때 그것들을 직접 내 손으로 쓰레기 봉투에 넣을 때 참담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아름다움이었는데, 이렇게 서러운 운명으로 바뀌는구나
다시 내년에 오겠다는 허망한 약속을 받아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나를 어루만졌던 음악
이런 찢어질듯한 이별을 감내하면서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감전된 듯하다.
이건 분명히 그녀의 체험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게 분명하단 생각을 했다.
그녀의 목소리, 진실한 체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의 울림이다.
가사 하나하나가 한구절도 놓칠 수 없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한여름 무더위 계속 되던 때는 이 노래를 잠시 제쳐두었다.
같이 질퍽거리면 그 무게감을 감당못할 것 같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 하늘이 높아지면서 , 이 노래가 다시 생각났다.
그녀가 공연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을처럼 조금은 시리고, 쓸쓸한 이 노래 분위기가 그만일듯 싶었다.
미안해요를 절절하게 부르는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진다.
눈이 말캉말캉 해지고 콧날이 시큰해지면서 이내 눈물이 내린다.
중간중간에 멘트를 지행하면서 하는데, 달변이라기 보다는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노래에 얽힌 사연도 그녀가 겪어낸 것인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떨림을 저런 흐느낌을 세심하게 표현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끊임없이 관객의 반응을 살피며 관객과 소통하면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녀의 노래는 가사 하나하나에도 많이 집중하게 된다.
우리는 사랑했을까.
앵콜곡으로 봄날은 간다와 빗속의 연인,님은 먼 곳에 를 불렀다.
봄날은 간다의 노래는 백설희, 한영애 목소리 모두 가슴 떨린다.
몇 년 전 봄날 저녁,한강을 산책하면서 라디오에서 나왔던 한 영애의 봄날은 간다를 들으면서 그 자리에서 주저않을 정도로 가슴이 쿵했던 적이 있다.
알뜰한 맹세는 어떤 거였을까.
봄날은 간다. 정말 그렇게 봄날도 그 마음들도 강물처럼 흘러간다.
연기처럼 사라진다.
강허달림 또한 만만치 않다.
님은 먼 곳에도 마찬가지
가을과 그녀의 공연 너무 잘 어우러진다.
누군가의 체온이 필요한 순간, 그녀가 어느 정도는 내 결핍을 채워준다.
뜨거웠던 여름날 그녀가 질척거려서 멀리 던져두었는데, 그렇게 그녀를 닮은 가을날 공연장에서 보았다.
공연 내내 목울대는 간질거리고 , 눈망울은 간지럽고, 감정이 복받히는 그 기분, 드뎌 (미안해요)에서 시원하게 터져버렸다.
그녀가 노래를 통해 내게 말하려했던 것들을 그녀보다 더 많이 감정이입했다면, 믿어지겠는지.
떠나가는 누군가를 그렇게 미련스럽게 잡아보고 애원하고 ,그럼에도 그 감정들이 하나도 후회스럽지 않고, 오히려 그 자양분으로 마음이 더 풍성해질 수 있음을 그녀의 음색이 말해주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는 사랑하는 그를 떠나보냈기에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로 평생 남아있음이 분명해보였다.
사랑하고 노래하는 그녀, 행복해보인다.
자유로워보인다.
일곱 -- 멀리 있어 늘 그리운..
김형경 선생님의 세월을 읽었을 때첫번째 짝사랑과 같은 친구와의 일을 기록한 앞부분을 읽고
공감을 정말
많이 했다.
왜냐하면 나도 그와 비슷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유달리 피부가 하얗고,짙은 눈썹에 굵고 크게 진 상꺼풀과 오똑한 코를 가진 ,
늘 앞에 나가서 발표하기
좋아하던 엄청 당찬 소녀.
약간은 조심스런 나와 달리, 늘 당차고 자신만만한 친구를 곁에 둠으로써나까지도
그렇게 똑똑하단
착각을 만들게 하던.
실제로 그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서 나도 당차지는 걸 배웠던 것 같다.
그때 아마도 우리가 그 반에서 가장 재수없는 축에 낄정도로 늘 도도했다.
그 친구와 나는 매일 붙어서 이야기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열네살 소녀들은
사강을 이야기 했고
이반데니소비치를 이야기 했다.
우린 둘 다 명랑하고 해맑긴 했으나 인생에 대해서 약간은 회의적인 시각도
그때 나름 있었고,
이 사회의 그 규격화된
틀에 대한 반발도 나름 가지고 있는 맹랑함도 있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면은 구김살이 없었으나 속은 나름 애어른이었다.
나는 특히 친구네 집에 가서그때 고등학교 오빠들이 읽는 책을 빌려다가 반납도 하지 않은채
읽고 또 읽어서
어른들의 세계에도 많이 발을 들여놓은 상태였다.
또래의 대부분의 친구들이내가 생각하기에 너무 어렸고 유치했으나 이 친구만
내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었다.
친구와 나는 각각의 영역의 장점이 있어서 서로 존종해주었으나,
그 친구와 난 국어 선생님을 놓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했다.
그 당시 잘 생기고 무척 수업을 재밌게 진행하던 국어 선생님
분명 그 당시 우리 반에서 처음에 나를 맨처음 귀여워했었다
유달리 눈에 띄는 편애
당시 나는 낭독을 잘 하고 글을 잘 쓴다는 이유로 엄청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는 상태
그러나 그 호사가 오래가지 못했다.
내 친구가 선생님의 눈에 띄었다.
그 친구는 글씨도 잘 썼고, 글도 엄청 잘 썼으며, 결정적인 것은 선생님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자신감이 있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고 질문을 하면 얼굴이 벌개지면서 아무 말도 잘 못하고
버벅 대는 나와 달리.
그앤 선생님과 농담도 아주 잘 했다.
그 당시 일기장을 보면 그 친구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가득했다.
내 딴엔 그 애가 완전 여우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의 마음을 내 편으로 돌리기엔 그 애가 너무 잘 났고, 난 튀지않는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그때 그 선생님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친구는 역으
로 내가 무척 미웠다고 한다.
혼자 내숭떨고 얌전하게 있는 모습이 얄미웠다고.
그 친구가 중 3이 되면서 부산으로가버렸다.
둘 다 글 쓰기를 좋아해서 우린 지속적으로 편지와 엽서를 주고 받았다.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뛰어난 머리로 무엇이나 쉽게 받아들이고 흡수하던 친구
이상하게도 자꾸 비교감도 많이 들었다.
아마 나를 계속 비춰주는 친구였던 것 같다.
그 친구로 인해 나의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있었고, 나의 문제를 생각할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길에 대한 조정과 확신도 그 친구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았으리라
우린 사실 지금까지도 가까이 곁에 있지 못하고 사는 곳이 다르다.
대학교 4년 시절만 같이 서울에 있어서 가끔 보았을 뿐, 나머지 몇 십년의 기간은
거의 편지와 메일로
정을 주고 받았다.
메일을 쓰면 둘다 길게 쓰는 편이라 그렇게 계속 그렇게 주고 받는다.
지금은 서울에 1년에 한두번 출장을 오게 되면 만난다.
그렇게 가끔씩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속에 있는 이야기도 주저하지 않고 한다.
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들락날락 거려도 마음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친구 중의 하나이다.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친한 친구들에겐 날 늘 어린애처럼 늘 보채고 돌봐달라고 하고 칭찬해달라고 한다.
그걸 알기 때문에 늘 알아서 칭찬해준다.(피곤할지도? )
가끔 말도 안되는 칭찬들도 늘어놓는데 그게 싫지 않다.
그런데 이 친구 정말 내게 칭찬 한번 해 준 적 없다.
그럼에도 오랜기간 무던하게 이어온 게 신기할 정도로
그래서 우리가 멜 한참 주고 받을 때 서로 칭찬해주는 메일 보내자고 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친구가 보내줬던 메일 너무 좋아서 들여다보고 들여다봤던 기억.
늘 깨어있고, 늘 공부하고, 늘 삶의 갈증으로 인해 하나라도 더 흡수하려고
발버둥치는 나를
급변하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지만..
우정이라는 족쇄로 늘 그 자리에 있기만을 바라고 계속 그냥 같이 있어주기만을 원하는
관계들에 때로는 지쳐가는 나
그러나 늘 내가 변화하는 모습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이런 친구들이 있는 한
네 페이스대로 나는 내 페이스대로
혼자서는 이뤄내지 못했을 다양함을 체험하게 해준 내 귀한 친구
-- 동료 교사 이야기
토요일에
8년만의 만남을 가졌다.학교에서 근무할 때 둘도 없는 단짝 동료 교사
누군가가 좋아지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머릿 속에 채워진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모습, 그 사람이 주로 입었던 옷, 그 사람이 좋아하던 음악, 향수, 내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
..
처음 만나서 학교로 가던 그
골목길그 골목길을 비추던 햇살
같이 갔던 태국
, 싱가폴 여행지나 때문에 좋아했다던 향수, 쇼핑,해외 여행
내가 제대로 먹고 다니는 지에 대한 세세한 보살핌
맘 속에 늘 여전히 많이 담고 있음에도 전화 한통 할 수 없었음,
그 전화번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음에도 손가락 하나 돌릴 수 없었음은
그만큼 야속했단 얘기였을 거다.
몇 년만의 전화였을까
그 선생님에게서 회사로 전화가 왔다.
순간 너무도 반가웠지만, 말은 왜그랬는지 모르겠다.
회사일이 바빠서 길게 통화 못하니 집에 가서 전화하겠다고 했다.
내 심정이 파악이 안되어서 시간을 좀 미뤄둔 거였다.
주말에 내내 전화를 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으나 전화를 할 수 없었다.
또 전화가 왔다. 또 바쁘다며 끊어버렸다.
세번 째 전화가 왔다
.
자기 많이 바쁜가보다. 회사든 집이든 내가 근처로 갈 테니까 한번 얼굴보자.
그 정성에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미안도 했고.
약속을 잡았다.
나가는 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나가기 싫은 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독한 애였나.
약속을 미뤄야 하나
야속하다는건 그만큼 기대를 많이 하는 관계라는 얘기였겠지
그래서 늘 누군가가 많이 내 속에 많이 들어오질 않기를 손모아 기도도 때론 한다.
약속을 미뤄야하나,가지말아야하나, 많이 혼란스러웠다.
마땅한 핑계가 생각나지 않았고, 일단 보고나서 결정하자고 생각했다.
내 감정은 야속하다는 거지 싫다는 건 아니었음을 스스로 분석해냈다.
강남역까지 먼거리서 와주었다.
회사든, 집 근처든 어디든 오겠다고 했다.
약간의 긴장감,
날 먼저 발견하더니 환하게 웃는다.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 보니 덩달아 기분 좋아진다.
어머 살 조금 찐거 빼고는 얼굴 그대로다.
라고 말해준다.
약간의 빈말인 줄 알면서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다.
그러고는 나더러도 어머 너무 예쁘다 악세사리 하나하나 예쁘다고 머리도..
뭐가 예쁘든 어찌 되었든 예쁘다는 칭찬에 완전 그동안 혼자 서운했던 감정이 모두 다
스르르 풀리려한다.
주로 지난 얘기들을 회상했다.
같이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에 있었던 얘기들.
나는 내가 늘 필요한 말도 야무지게 잘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또박또박 얘기도 제법 잘 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젊은 날을 상기시켜주는 벗 때문에 너무 즐거웠다.
지금은 어떻게들 지내고 있는지
같이 근무했던 동료 교사들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교사들끼리 단합이 잘 되어서, 그 선생님 집에 가서 몇 번
놀았던 기억도 났다.
이 얘기 저 얘기 정신없이 나누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지난 몇 년의 공백을 하루만에 다 메우려하니 정신이 없다.
집에 돌아와서도 오늘 즐거웠던 얘기들을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나왔다.
문자가 왔다.
다락방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먼지 쌓인 상자를 꺼내본듯한 날이 었다고 했다.
나 또한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귀한 악세사리를 다시 찾은 기분이다.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
여덟 --딱 한편 봤던 유일한 드리마--
지붕 뚫고 하이킥이 막을 내렸다.
너무 허전하다.
지붕 뚫고 하이킥 마지막 주간에는 저녁에 공부하는 거 이외에 모든 스케줄을 중단하고 그걸 보러 뛰어갔다.
마지막 날 회사 일로 퇴근 시간이 늦어져서 혹시나 못보게 될까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다행히도 마무리가 일찍 되어서 집에 와서 마지막 방송을 무사히 볼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혹은 재방송으로 보는 건 예의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방송 시작하는 내내 나도 세경이로 살았다.
세경이가 들으면 기겁할 노릇이지만, 난 완전히 세경이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나도 지훈 아저씨를 너무 좋아했고, 준혁 학생은 다만 안타까웠다.
같이 짝사랑하는 입장임에도 준혁 학생을 받아줄 수 없음이 미안했지만, 마음은 오로지 지훈 키다리 아저씨에게로 향했다.
세경이가 지훈 아저씨를 생각하며 부른 인형의 꿈을 부른 날엔 나도 정신없이 눈물이 뒤범벅이 되었다.
비교적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세경에게 다가 온 사랑의 감정은 그야말로 정신나간 미친 짓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그 한사람에게 홀딱 빠질 수 있을까.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너의 손길을 느껴
오늘도 난 너의 흔적 안에 살았죠
아직도 너의 모습이 보여
아직도 너의 온기를 느껴
오늘도 난 너의 시간 안에 살았죠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에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니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댄 어떤가요 그댄
당신도 나와 같나요 어떤가요 그댄
지금도 난 너를 느끼죠
이렇게 노랠 부르는 지금 이 순간도
난 그대가 보여
내일도 난 너를 보겠죠
내일도 난 너를 듣겠죠
내일도 모든게 오늘 하루와 같겠죠
길을 지나는 어떤 낯선 이의 모습 속에도
바람을 타고 쓸쓸히 춤추는 저 낙엽 위에도
뺨을 스치는 어느 저녁에 그 공기 속에도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니가 있어 그래
어떤가요 그댄 어떤가요 그댄
당신도 나와 같나요 어떤가요 그댄
길가에 덩그러니 놓여진 저 의자 위에도
물을 마시려 무심코 집어든 유리잔 안에도
나를 바라보기 위해 마주한 그 거울 속에도
귓가에 살며시 내려앉은 음악 속에도 니가 있어
어떡하죠 이젠 어떡하죠 이젠
그대는 지웠을텐데 어떡하죠 이제 우린..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
그리움의 문을 열고 너의 기억이 날 찾아와
자꾸만 가슴이 미어져
기억을 걷는 시간--넬
세경이의 지훈에 대한 사랑의 갈망은 일상의 버겁고 남루한 삶을 지탱해주는 환희이기도 했고
또한 아픔과 암울한 순간들이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소위 조건들 앞에서 집착을 놓는 법을 위해 부단히 자신을 다그치기도 했으리라.
그 과정에서 세경이가 느꼈을 그 괴로움과 마음고생을 자신을 성찰하고 성장하고 비워놓는 경지로 승화시키기도 했으리라.
인간의 위대함과 고귀함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는 과정에서 얻어진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 세상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감을 가지기도 하고,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함으로써 얻으진 자신에 대한 비루함도 말못한 고통이었으리라.
그러나 그 아름다운 감정으로 세경이의 존재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다른 사람이 심어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단단한 신뢰로.
누군가를 사랑할 능력이 있는 자신에 대한 , 자신 안에 깃들어 있는 그 온기로,
지훈아저씨가 세경의 존재를 인정해주었을 때 사라지던 고통과 찾아왔던 그 행복감으로
부족하고 비좁은 결핍의 존재에서 더 너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던 그 용기로
한국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훈 아저씨가 근무하는 병원을 찾아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지훈 아저씨는 오지 않았다.
간단하게 쪽지만 남기고 돌아가려던 찰나
지훈아저씨가 세경을 불렀다.
장대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지훈 아저씨랑 있을 땐 유난히 비가 많이 온다.
아저씨가 공항에 바라다 주겠다고 했다.
한국을 떠나기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지훈 아저씨 때문이었다
지훈 아저씨가 한국을 떠나기 싫은 이유를 물어봤다.
서울에 맨 처음 왔을 때 봤던 사람도 아저씨였고
떠날 때 맨마지막에 보는 사람도 아저씨네요.
무엇보다 가장 가기 싫었던 이유는 아저씨였어요.
아저씨를 좋아했거든요.
너무 많이.
처음이었어요. 그런 감정
아침에 매일 눈을 뜰 때마다 설레이고 밥을 해도, 빨래를 해도,걸레질을 해도
그러다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구,-- 이때부터 세경이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부끄럽고 비참했어요
(아저씨 대사--미안하다. 내가 한 말들 때문에 상처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다 지난 일인데요. 전 괜찮아요
그동안 제가 좀 컸어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의 끝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도 떠나기로 하고 좀 힘이 들긴 들었어요.
막상 헤어지면 보고싶어서 못견딜거에요.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 한테 그동안 두 마음 속에 담아두고 하고 싶던 말들, 꼭 한번 얘기 하고싶었는데,이루어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매일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잠시 시간이 멈춰졌으면 좋겠어요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화면이 정지된다.
화면의 색깔은 온통 회색빛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얼핏 꿈꾸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완전한 합일
외롭고 고립되어있는 마음에 시시 때때로 드는 욕망.
하나가 되었다고 느끼는 이 순간
비록 이 세상엔 없을지라도 내겐 영원한 현재로 기억된다.
아홉 --- 이월에 삼월에 내렸던 눈
밤새 눈이 내렸다.
밤에 내리는 눈소리가 계속 들리는듯 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눈부셨다.
아 이게 내가 사는 세상이구나, 너도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다.
아침에 회사로 가는 길에 라디오에선 라라의 테마가 나왔다.
눈덮인 하얀 설원, 러시아의 하얀 눈이 문득 생각났다.
눈이 오면 요즘은 제일 먼저 가고싶은 곳이 덕수궁이다.
작년에도 눈오면 난 점심 시간에 덕수궁으로 달려갔다.
차가운 바람맞으며 달려간 덕수궁
소나무에, 살구나무에,벚나무에 하얗게 새초롬하게 앉아있는 눈.
오늘같이 하얀 세상에 어울리는 순백의 정갈하고도 순수한 목소리
브레드의 목소리가 더욱 그리운 날이다.
기분 좋을 때는 더욱 기분 좋게
기분 가라앉은 날에는 가라앉은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목소리
그리고 오늘의 눈.
너무나 새하얀
상처내고 싶지않은 만지고 싶지도 않고,그대로 지켜주고 싶은
언제까지나 내게 아름다움으로 있어주길..
덕수궁에서 바라 본 하늘
유난히 더 파랬다.
파아란 하늘과 하얀 눈, 다가올 봄을 기약하고 있는 나무들의 싱싱한 기운까지
한아름의 선물을 받고서 돌아오는 길
이월의 하얀 눈도 봄이 오면 더욱 그리워지겠지.
마음 한가득, 살포시 안고서 돌아오는 길
눈 오는 날은 바로 점심 시간에 덕수궁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삼월의 눈
2010년 3월 10일에 눈이 펑펑 내리다.
어제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서늘하게 온세상이 하얗다.
앨리스같은 순수하고도 청순한 얼굴이다.
눈을 사뿐사뿐 밟았다.
뽀오얀 속살이 눈부시다.
사랑은 흰색같다.
질식할 것 같은, 쉽게 말도 못꺼내는, 소리내어 지르지도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눈은 내게 아무 말도 하지않는다.
그저 곁에 있어주었다.
내 마음과 내 감정을 그대로 읽어준다.
내 영혼이 새하얀,누군가에게 물들기 쉬울지 몰라도,그래도 그 순수함을 닮았으면 좋겠다.
너의 모든 것을 다 받아줄 수 있는 넉넉한 품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건, 아무 때나 언제나 상대를 받아들이는 견딜 수 없는 공허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눈 오는 날의 음악들은 차분하다.
들뜨지 않게 영혼을 치료해준다.
한동준의 에프엠 팝스에서 원더풀 투나잇을 들었다.
나는 좀 호들갑스러운 편이어서 정신못차리는 곡들이 많지만, 눈 오는 날에 에릭 클랩튼의 목소리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에릭 클랩튼과 엘튼존은 나의 열렬한 첫사랑이다
.
에릭 클랩튼의 그 눈물겨운 러브 스토리에 읽힌 그 진정성을 알고나선 그가 더 사랑스러워졌다.
영국 출신의 미녀 모델 패티 보이드와 조지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의 삼각 사랑
조지 해리슨과 패티 보이드는 부부사이였다.
조지해리슨이 패티 보이드의 미모에 반해서 열렬하게 구애를 하였다고 한다.
브리짓트 바르도에 비견될 정도로 섹시함과 도도함을 두루 갖추었다고 하는 패티 보이드
열렬하던 사랑도 잠시, 조지 해리슨의 인도를 향한 사랑에 ,패티 보이드는 애가 탔다.
조지 해리슨은 인도 사상과 종교에 심취했다고 한다.
조지 해리슨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해리슨의 친한 친구인 에릭 클랩튼을 유혹한다.
순진한 총각이었던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에게 빠졌다.
그러나 패티는 조지 해리슨의 마음을 끌어당기기 위해 에릭을 끌여들였을 뿐이고, 결국 패티의 소원대로 조지 해리슨은 아내인 패티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때 배신당한 마음 아픈 에릭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노래가 그 유명한 layla이다.
(근심에 찬 내 마음을 달래 주지 않을 건가요.
당신이 남편에게 실망했을 때 위로해주려고 했어요.
바보처럼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져버렸죠
레일라, 당신은 나를 무릎 끓게 만들었어요.
레일라,당신께 애원해요.
근심에 찬 내 마음을 달래주지 않을건가요.)
그러나 이들의 결혼 생활도 10년 정도였다.
그렇게 목숨 걸고 열렬하게 하던 사랑도 끝은 따로따로 였다.
그러다가 조지 해리슨과 패티보이드가 이혼하면서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와 결혼했다.
패티 보이드와 결혼한 기쁨을 노래한게 이 노래이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 생활도 10년 정도였다.
그렇게 목숨 걸고 열렬하게 하던 사랑도 끝은 따로따로 였다.
그러나 사랑했던 그 순간만은 진실한 것이어서 그때의 그 감성과 그 홍홀함이 이 노래 한 곡에 오롯이 남겨져있다.
(늦은 저녁이에요
그녀는 무슨 옷을 입을까 망설이고 있죠
화장을 하고 금발의 긴 머리를 빗어 내리죠
그리고 나서 나에게 물어보네요
나 괜찮아보여요?
그래서 나는 대답했죠
당신 오늘 밤 정말 아름다워
우리는 파티에 갑니다
모두들 내 옆에서 걷고 있는 이 아름다운 여인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죠
그러자 그녀는 내게 물어보네요
기분 괜찮아요?
나는 대답했죠
오늘 밤 정말 멋진 기분이야
나는 정말 행복했어요
그대 눈 속에서 사랑의 빛을 보았기 때문이죠.)
이 노래 귓가에 들릴 때마다 희미하게 웃음지을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 , 함께 하지 않아도 오래전의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이 자리 어디엔가 스며든다면
그걸로 충분했노라고 그렇게 패티 보이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때 내 곁에서 함께 느껴주어서 감사했다고
열--슬픔 --박용하
어제 새벽 빗소리에 잠을 설쳤다. 어제따라 빗소리가 더 짠했다. 일찍 잠이 깨었다.
인테넷을 보았다. 박용하 죽음. 아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처음 기사는 자살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하고 있었다. 타살의 흔적이 없는 걸로 보아서 자살로 추정된다고 나와있었다.
갑자기 숨이 탁 막히고 눈물이 나왔다.
박용하의 눈빛을 난 안다.
밝은 모습 뒤에 그의 고독한 모습도 짐작이 되었다.
그 여리고 순수한 웃음과, 천진난만한 행동들을 기억한다.
겨울 연가에서 그 반듯하고 순수한 눈과 같던 그 순백의 느낌이 생생하다.
그 화려한 인기 뒤에 그 속내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고독했을런지,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을지..
머나 먼 타국에서
타인에게 짐 내려놓지도 못하고
비슷한 감성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나와 비슷한 여리고 예민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
일상에서 상처를 쉽게 받고, 그러나 그걸 꿋꿋하게 밝음으로 이겨내려 애쓰고, 남에게 최대한 피해주지 않으려 하고, 남에게 상처주는 말도 안하고, 길가에 뒹구는 낙엽만 봐도 마음 아리고, 꽃 한송이 눈물 흘리는 그 감성들..
그런 감성으로 살아가기엔 세상이 너무 험하다는 걸 안다.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게 너무도 쉽지 않음을 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타인의 안녕에는 관심이 없으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조차 배신할 수도 있는 상황이며, 어떻게든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많음을 안다.
그럼에도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좀 더 평화롭게 따뜻하게 인간적인 마음을 나누기를 꿈구며 착하게 맑게 살아가는 사람
하루 종일 회사에서도 일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남의 일 같지 않은 그 기분
눈물이 글썽글썽,
겨우 점심 시간에 덕수궁으로 달려갔다.
비가 가늘게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고 있는 원추리를 한참 쳐다보았다.
원추리의 청순한 순결함이 빗방울에 더 빛났다.
라디오에서 박용하의 처음 그날처럼이 나왔다.
자주 듣던 노래인데도 가사가 이렇게 까지 슬픈 줄은 몰랐다.
마치 죽음을 예견한듯이
너무 서러웠다.
노래를 들으며 엄청 서럽게 울었다.
빗소리, 노래 소리, 지금은 없는 가엾은 사람의 한
살아남은 사람도 서러움
일상의 무게, 내려놓을 수 없는 무엇인가에 대한 집착까지 더해져서 아픔은 가시지 않는다.
마음껏 내려놓지도 목놓아 울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감정을 건드려 놓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감성을 누른다.
오늘까지도 마음이 계속 너무 아팠다.
여전히
추스릴 수 없는 이 감정은 무엇인지.
친구가 내 얼굴빛을 보더니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 말에 눈시울이 더 붉어진다
언제나 나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려 주는 친구다.
누군가가 이렇게 나를 항상 주의깊게 봐주고, 내 존재에 힘을 실어주는 그것만으로도 힘을 내야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사랑해주고 ,지쳐있을 때 완벽한 보살핌을 주려하는 그 마음씀씀이에 마음을 빼앗기고, 삶이 약간의 가능성으로 빛이 난다.
그러나 저녁에 한강도 아직은 아프다.
한동안 나도 아플 거다.
입관할 때 꽃처럼 예뻤다던 박용하
꽃처럼..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서 눈물없는 세상에서 그 환한 웃음 맘껏 날리길..
산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살아야만 하는 , 살아내야 하는 그 이유도 있겠지..
열 하나-- 다이어트
다이어트는 늘 머리 속에 있었지만 실천이 어려웠다.
특별한 계기도 주어지지 않아, 그런대로 나의 몸에 약간의 만족을 하며 지내왔다.
그러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신진 젊은 경쾌한 디자이너의 이 빨간 원피스를 보고 가슴이 콩닥거렸다.
내 손에 넣고 싶은데 다른 이유도 아닌, 사이즈 때문에 입지 못하는 것이다.
체념하고 돌아서 오는데, 내내 이 옷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실크의 하늘거리는 감촉, 발랄하면서도 순수한 느낌, 마루 밑 아리에티가 입었던 그 원피스의 순수한 느낌, 뒷라인이 특히나 더 예쁘다.
저옷을 입고 싶다. 어떻게 해야하나, 신진 디자이너라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지는 않다.나의 패션에는 열정이 들어가 있다.
(패션은 축제다, 옷을 입는 다는 것은 축제에서 맏은 역할을 준비하는 것이다. 여자는 외양을 꾸민고 치장을 하는 순간부터 활기를 띈다, 나는 패션디자이너가 아니라 행복을 만드는 장인이다-- 이브 생 로랑)
(나는 늘 내 자신을 놀라게 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디자이너 드리스반노튼의 말 중에서 )
체중 감량에 들어갔다.
1)목표 및 의도:건강하고 당당하고 품위있는 중년의 삶을 위한 다여트 5키로 감량 목표 (고상한 목표,대외적 목표)
2)실질적 목적: 저 하늘거리는 빨간 원피스 무조건 입고 싶다.
3)시행과정: 행동 수정 요법 (운동요법) 식습관 수정 및 조절
심리적 안정 요법(독서,음악듣기,그림 감상,쇼핑,지인과의 수다)
일주일에 6회 이상 운동한다 회사에서 점심 시간에 산책하기 ,
퇴근 후 저녁 운동은 근육운동과 한강 한바퀴 돌기--- 반포 대교 남단서 한남대교 한바퀴 ..아주 빠른 걸음 시 한 시간 소요,약간 느리게 걸을 시1시간 10분 --20분 소요
4) 난제 : 운동은 오랜동안 해오던 습관이 있어 아주 어렵진 않았으나 식습관 교정이 매우 어려웠음.
특히나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 매우 열량이 높은 것이어서 그것들을 입에도 대지 않는 게 정말 어려웠다.
가장 이별하기 어려웠던 음식은 떡볶이 거의 매일 하루에 한번은 꼭 먹었던 음식과의 이별은 연인과 헤어지는 것보다 더 어렵다.
다이어트 시작한 순간부터 약 3개월간 입에 대지도 않았다.
몸무게가 4키로 정도 빠진 3개월 뒤 처음 떡볶이 먹은 날 눈물이 찔끔찔끔 나왔다.
현재 7키로 정도 감량하고 난 뒤, 1키로 정도 증가했으나 다이어트 시작 한지 8개월 정도 되어가는데 잘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다이어트에 도움을 준 음식은 콩, 저지방 우유,상추,오이,당근, 토마토, 고구마,감자
5)다이어트 이후에 달라진 점 신체의 한계에 갇혀서 변신하는 능력에 제한을 받았다면, 다이어트 이후에 나의 변신은 무한하다.창조하는 나자신을 만난 것 같다.꿈을 꾸고 있는듯하다.
열 둘 --그림
보라색을 좋아한다.
슬픔에 색깔이 있다면 분명 보라색일 것이다.
보라색을 좋아하는 엄마에 의해 난 보라색 아이로 키워졌다.
보라색 코트, 보라색 티,보라색 바지
지금의 난 보라색 장갑, 보라색 백, 보라색 섀도우, 보라색 원피스..보라색 목도리..
지금도 보라색을 보면 가슴이 뛴다,.
보라색 한가득 그림을 보았다.
박 서보전시회에서 보라색 천지인 그 그림을 보고 엉엉 울었다.
눈물이 날만큼 예뻤고 가슴저렸다.
그 때 그 얼얼한 기분 생각만해도 또 마음 저린다.
누군가의 마음을 받았다.
보라색 하늘, 눈덮인 겨울 호숫가, 집 한채
집에 걸려있는 그림이다.
슬픔과 아름다움의 미학이다.
그림을 보면서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를 읽어내는 걸 좋아한다.
작가의 마음을 헤어려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다보면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늘을 자주 쳐다본다.
하늘은 항상 내 곁에 있어준다.
항상 내가 원하면 아주 가까운 곳에
온통 무지개빛 하늘, 회색빛 하늘,보라색 하늘,
그날 그날 나의 감정 상태에 따라, 하늘 색깔이 달라보인다
보랏빛 하늘..
매일 나와 마주치는 그 그림,그저내 곁에 있어주어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강렬한 열망이 필요한 순간, 조용히 내게로 와준 그 보라색 하늘
나도 너로 인해 힘껏 숨쉬고 너도 나로 인해 숨쉰다.
끝으로 --신청곡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는 마음이 너무 저리고 아파와서 가능한한 듣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곡이다.
햇빛 좋은 봄날에도 이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쏙 빠진다.
담백하고, 순수한 이 목소리가 가슴을 쳐서 ,마음을 어떻게 다잡아야하는지 길을 잃게 한다.
벚꽃 지는 봄날에도
살구꽃지는 봄날에도
사월의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봄날에도 이 노래를 들으면 나른해진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를 듣고 보았던 어느 해 봄날.
사랑의 단상에서 받은 아련함과 안타까움 그 느낌들을 그대로 표현해낸 그 노래 덕분에 그 계절을 지낼 수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서러운 가을날
우연하게 이들의 노래를 들었다.
들었던 노래인데도, 마치 처음 들은 것처럼 마음의 떨림과 그 떨림이 전해주는 스산함에 이내 우울해진다.
마음이 아래로 내려앉는듯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이 노래에 계속 귀기울이게 되는 것은 노래의 애닯음이 나의 마음에 한자락 위안이 되어서 일게다.
너 또한
나 또한
그렇게 아프고, 서러워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거라고
그런게 우리네 삶일 거라고
그럼에도 멈출 수 없음은 , 그게 바로 존재를 지탱해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나 너무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젠 그만 앓고 싶다고
에피톤 프로젝트 좋아하는 친구들.
첫댓글 어제 아침 게리무어의 사망 소식을 듣고 참 심난하더군요. 오랜만에 쉬고 나가야하는 회사 생각에 머리 아파지는데 자욱한 안개에다 게리무어의 사망 소식 까지.. 대학교 시절 내내 게리무어의 연주를 들으며 마음 한자락 기대던 시절. 로이부캐넌, 랜디로스, 지미페이지, 리치블랙모어 영혼을 뒤흔드는 기타 소리였지요. 음악은 그어떤 것보다 파장이 즉각적이고 또 길고 쉬 가라앉지 않았으니까요. 내곁을 떠나가는 로니 제임스 디오 마이클 잭슨..프레디 머큐리 작년 봄에 그의 공연을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이 나 살아있다면 이 분의 연주 한번 더 이렇게 실제로 들을 수 있을까.. 했던 불안한 소망이 이유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들이
나이가 들어서 왔다고 투덜대지 않으려구요. 밥딜런이나 딥퍼플 , 엘튼 존 나이 들어서 한국 오더라도 저는 기를 쓰고 갑니다. 다음주에 내한하는 에릭 클랩튼 또한 마친가지구요.내가 살아있어서 잠시 감깐 만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올해도 기다려지는 공연들 이글즈, 산타나.. 전 살아서 롤링 스톤즈랑 로버트 플랜트,지미페이지,오지 오스본 한번 만나고 죽고 싶습니다. 어제 라디오에서 파리지엔느 워커웨이즈 나오는데 정말 울컥하면서.그러면서 너무 고맙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더군요. 그리고 어제 내내 죽음에 대해 또한번 많이 생각해보았는데 불확실하게 잘 모르기에 불안하고 허무하고, 두려움에서 도망치려는 그 감
감정들이 들기도 하지만, 점점 더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수록, 어쩌면 소크라테스가 죽음에 대해 지극히 낙관적인 시선을 가졌던 것처럼 그런 호기심도 들 수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정신을 흔들어 놓는 영화며 전시며 마음이 어디로 튈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ㅋㅋ 아이 엠 러브는 두 번 봤는데 완전히 중독되어서 한번 더 보기로 맘 먹었습니다. 영화에서 보면 마땅히 버려야할 잔재로서 여주인공의 자아를 가로막는, 억압하는 장치인듯 싶은 밀라노조차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 없구요. 뽀얀 속살을 드러내던 ,눈앞에 펼쳐진 화려함에 가슴 콩닥거리던 밀라노 성당의 다른 색깔도 한번 다시 봐야겠다는 소원이 하나 생겼고..
비슷한 여성의 자아찾기인 피파리의 특별한 로맨스, 우디알렌의 여전한입담 그리고 인생에 대한 여유있는 관조, 해학이 돋보이던 영화,연휴기간동안 몇 번 다시봤던 샤인어라이트,, 중국 작가 답지 않게 내면의 모습에 몰두하는 작가 송이거의 작품도 만만치 않게 감성을 건드리더군요. 제게 음악과 영화, 책은 일종의 신경안정제입니다. 불완전한 것이 완전한 것보다 더욱 완성된 경지이며, 부족한 것이 완벽한 것보다 더욱 견고한 것임을, 욕망의 움직임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인가가 결여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 그 불안한 느낌을 받아들이라는 것도 라캉의 책에서 절절하게 파악했으며,제게 치유적인 느낌을 준
영화, 음악이있어서 이젠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무조건 믿습니다. 남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철저하게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느낌들, 내 안에 흐르고 있는 느낌들 모두 인정해줍니다. 항상 정답이 다른 사람의 머릿 속에만 있을 거란 생각도 버렸습니다. 자신이 욕망하는 거를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이젠 라캉의 주체가 되어버렸을까요? 모든 사람이 다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해도 단 사람, 저는 저를 무조건 신뢰합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내 안에 진실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질거라 믿으면서요. 내 안의 에너지들이 살아숨쉬게 하는데 많은 힘을 준 음악, 영화 ,그림들 모두 모두 안아주고 싶네요.
그래요 정말로 어쩌면 자유란 새로운 것을 보는 눈인건 맞는 거 같아요.
하여간. 무지 바쁘고 알찬 2010년을 보낸 페르소나님의 긴 글을 읽으며 나의 수준에 부끄러울 뿐이고. 나의 2010년은 페르소나 벗기를 자주 못본 한해로 기억된다는 슬픈 이야기.
달항아리님 바쁘고 알차게 보내는 걸로 치자면 달항아리님만한 분이 없다는 거 다 알지요. 작년 한해동안 얼마나 발 동동구르면서 열심히 지내셨어요.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받는답니다. 글 자체가 너무 길어서 사람들을 놀래켜서 참 저는 죄송할 뿐이구요. ㅋ 관심과 취향이 달라서 그런거지 수준 뭐 그런 거는 없을 거에요. 나하고 좀 다르다는 것뿐,다른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구나, 그럼에도 이렇게 관심 가져주니 전 감사하구요. //작년에 많이 못봤지만, 그래도 달항아리님 번개 치신 여름 날 제가 울면서 조금 늦게 간 거 기억나시지요. ㅋㅋ 그날밤 덕수궁에서 참 좋았어요. 무지 더웠지만 그날 해설도 멋졌고 밥도 맛났고
모인 친구들도 좋았고. 여름밤의 덕수궁 그 길도 아름다웠구요. 언제가도 좋은 덕수궁, 그리고 가만 가만 그 해설 듣는 거도 좋구요. 여름에 또 한 번 덕수궁에서 뵈었으면 해요. 올 한해는 자주 봤으면 하네요.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 제가 다 받고싶구요. ㅋㅋ
저도 제 수준이 댓글도 못 달것 같고.... 페르소나벗기님의 정신적 방황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치유해나가는 긴 과정을 살짝 엿본 아니 그런가부다 하고 생각합니다. 라캉이 나오고 바슐라르가 나오고... 헤헤.. 저는 살짝 들여다본 사람인데 도통 어렵다는거였죠. 그래서 그 책들은 창고 속에 꼭꼭 닫혀 있습니다. 독서수준이 올라야 읽을 수 있는 대상..
박노해 시인을 찾아가셨군요. 음... 예쁜 옷이네요. 빨강에 흰... 회사생활도 열심히 하소서... ㅋ 만나면 뭔지 복잡한 대상인것 같아 대놓고 말걸기가 어려운 페르소나벗기님... 우히힛. 그래도 참 반갑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자락을 보고 싶어요.
가을님에 재 글에 멋지게 설명을 해주셨어요. ㅋㅋ 정신적 방황과 자신의 내면을 마라보고 치유해나가는 긴 과정.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듯하고. 넘 짠하게 마음에 와닿았어요. 정신적 방황을 했구나 내면도 바라보고. 글을 쓰면서 제 자신에 대해 조금씩 가닥이 잡혀가는 듯도 하고 마구 엉켜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려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냥 어떨 때는 혼돈스런 나자신을 가만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나봐요. ㅋㅋ 라캉, 바슐라르,, 알고싶지만, 특히나 라캉에서는 많이 부딪히구요. 라캉에 대해 무지 잘 아는 친구가 부러울 뿐이구요. 다만 제게 라캉을 이야기 해줬던 그 자극만으로 늘 감사하단 생각을 할만큼 제겐정말 많이 힘이 되
어 준 분임에는 틀림없구요. 집중해서 머리 싸매고 읽어간 건 맞는데, 머리 아파요. ㅋㅋ 짜증내지 말라고 이야기해주던 친구말도 위로가 되었구요. ㅋㅋ/ 박노해시인 찾아간 용기 ㅋㅋ 저도 놀라요. 대단한데 하구요. 같은 옷인데 저 모델 입은 거 보고 더 놀랐어요. 엄청 이쁜 옷이구나. ㅋㅋ/ 만나면 복잡한 대상인 것 같은 건 ㅋㅋ 그건 정말 글로 파악한 한계점이에요. ㅋㅋ분명히 저도 제가 쓴 글 보면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실제 생활하는 나도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하니.. 근데 그 양쪽의 혼돈이 다 나라는 거 받아들여요. 가을님 제의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려요. 남에게 관심 엄청 힘든 일인데요.
페르소나님 카페 느와르 :)
길위의 빛님을 제가 못따라가겠어요. ㅜㅜ 말씀해주신 게리무어 방송 저는 mbc에서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어라 이거 아닌가부다., 인터넷 방송인 거 같아요. 포기하고 그냥 이러구 있어요. 뭐 가입하고 그렇게 해서 보는 건가봐요. ㅜㅜ가입하고 이러는 거 저 참 부담스러워하거든요, 아닌가? 머리 아파요. 알려주셨는데 죄송해요, 나중에 보고 대충 어떤 거였는지 알려주세요. ㅋㅋ// 카페 느와르..라고 쓰시고 그 다음에는 요? 카페 느와르 좋았다구요? 아니면 그거 보고 제 느낌 말하라구요? 아님 카페 느와르 한번 또 보고싶다구요? 아님 흥행이 안되어서 안타깝다구요? 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영화 제겐 너무 좋았고 특히 정유미 나오는
2부 너무 좋았어요. 백야랑 거의 흡사한 그 장면이요. 그 소설 자체를 제가 너무도 좋아해서 가을이면 펼쳐보는 거거든요. 그 소설에서 받은 아련하고 알싸한 느낌이 정유미와 신 하균, 그리고 감독의 감성이 만나서 제겐 정말 가슴 저린 정지된 화면으로 머리에 콕하고 박혀있어요. 그 엇갈리는, 나의 진심이 상대에게 가닿지 못하는 그래서 너무도 외로웠던 신하균,,그건 어쩌면 우리들 모습이기에 더 그렇게 아팠는지도 모르지요. 이 영화평은 쉽게 쓰지는 못할 거 같아요. 쓰고나면 내내 맘이 아플 거 같아요.신하균이처럼요. ㅜㅜ
이것에 올리겠습니다..카페 느와르에 대한 이야기를 약속드렸지요..실은 느와르를 보면서 감독의 오마쥬에 껄끄러움과
관객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햄버거먹는 소녀와 그리고 청계천의 풍경을 보았을 때 천변풍경의 박태원의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십분을 보냈습니다..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의 나첸스카의 대사를 어쩜 한 획도 변함없이
그래도 대사를 문어체로 간도 크게 감독이 표현할 수 있는 지..사랑스럽고 또한 우습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솔직히 말할까요 너 날 가지고 노니요!아시죠..갑자기 나타난 젊은 소설가의 모습이 생뚱맞고..
ㅎㅎ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오마쥬를 어쩜 이렇게 하니..저 여자는 정말 로테는 아
아.. 카페 느와를 그런 느낌으로 보셨군요. 저는 소녀적인 철없는 감성이 많은 편이어서 그저 너무 설레고 흥분되고 그랬거든요.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고, 다른 느낌 말씀해주시니 다시 한 번 생각하보게 되네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 느낌 특히나 문어체 대사 십분동안 청계천 묘사 ㅋㅋ 저는 그저 사랑스러웠거든요. 햄버거 먹는 소녀 그 장면은 처음에 실은 저도 상당히 껄끄럽긴 했어요. ㅋㅋ 배려안하는 감독..저는 아 저 감독님이할 말이 너무 많은 가보다 뭔가가 넘치고 있구나.그래서 어쩌면 남을 신경 쓸 틈이 없나보다. 상업영화 감독인데.. 그래서 실은 저도 그분 만나면 그거 정말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했어요. 용기인지.신념인지 취향인지.. 자본으로부터 그 여유있는 풍경이. 정말 궁금했다니까요. 저도. 부러운 건지.. 존경스러운건지. 하여간에 그 부분 저도 무척 혼란스러웠던 건 사실이에요 쉽게 이해가 안되었으니까요. ㅋㅋ
닌데..정성일씨 그대 넘했어 하면서..ㅋ 그리고 2009년의 신년프르그램을 묵음으로 처리하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서 보이게 켠켠이 집어놓은 그 익살도....
그러나 정성일다운 색깔을 원했건만..
감사해요..좋은 영화였습니다..3시간 넘게 나를 영화를 그리고 내 주변의 총체적인 것들을 정리해본 시간이요
춤은 좋았지만 여배우의 슬픔을 표현하기엔 조금은 부족햇습니다.,1년을 한 남자를 포기해야 하는 그런 장면에서의
깊은 내면의 연기는 좋앗지만 그 외양으로의 춤은 조금 표현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요새 마음이 정리되지 못합니다..그냥 조금 힘들어요,,아들이란 존재가 무엇인지..하는 마음이요..
제가 가장 아름답게 느끼고 눈물이 나왔던 장면 가운데 하나도 정유미가 추는 춤이었어요. 그 장면에서 정말 마음이 너무 시리고 짠했지요. 1년 넘게 기다리며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서 처연하게 추는 춤 그 맘을 알 거 같아서 그게 어떤 맘인지요. 그러면서 제대로 잊혀지지않고 지워지지 않는 그 마음이 그 장면에서 저는 그대로 전해져왔고 읽혔어요. 그래서 아마 눈물 떨구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아모카 공간 자체가 참 은근히 처량맞기도 하구요. 특히나 밤에는 더욱 더요. 그 공간이 밤이랑 낮이랑 분위기가 완벽하게 바뀌는 공간 중에 하나거든요. 올라가는 길 자체가 밤에 가면 상당히 안쓰러워요. 그냥 ㅋㅋ
이렇게 같은 영화를 보고도 각각의 각자의 느낌들 나눌 수 있으니 참 좋아요, 전. ㅋㅋ// 마음이 한동안 어려웠던 거 제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그래서 저 또한 어떠한 위로도 못하겠더라구요, 그저 옆에서 조용히 느끼고 있었고. 조금 정리가 되면 제가 살짝 위로랄까.. 그냥 나도 조금은 같이 아파하고 있다..라고 전해드리려 했어요. 어떤 맘이겠어요. 그 맘은..누군가의 존재가 내 맘 깊숙이 와있을 때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것 너무 힘들지요. 잘 해낼 거에요. 어찌되었던 시간은 흘러가구요. 이렇게 밖에 말씀 못드리는..
逍..遙...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도 많이 고맙습니다.봄에 우에노 공원에서 가서 멋지게 사진 찍게 되면 저에게 말씀해주시구요. ㅋㅋ 저도 벚꽃 흩날릴 때 가봐야하는데. 별르고 있습니다.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그냥 이유는 없어요. 꽃들이 너무 보고싶어서요. ㅋㅋ
페르님 긴 글을 읽고, 제일먼저 떠오르는 게 하필 저 위에 빨간 원피스네요..ㅎㅎ 뒤가 x자로 되어있는 거 맞죠? 그 원피스 입은 날 페르님 정말 소녀같이 순수해보였답니다. 다요트한 지금보다도 제겐 그 떄가 더 이뻐보였는데...그리고 강 허달림이라는 가수,,,사람에대한 애정과 배려,따뜻함과 강인함,자존감과 독림심을 가르친 어머니에대한 존경심으로 이름앞에 어머니의 성을 붙였다는 이유만으로,,그녀의 노래까지 좋아하게 되었죠....영화 싱글맨, 상실감에서 오는 절망과 슬픔을 그토록 아름답게 그릴 수 있었던 건 감정의 절제때문일까? 아무튼 몇번을 봐도 멋진영화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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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원피스 ㅎㅎ 모델 하고 참 ㅋㅋ 뒷모습을 기억해주시네요. 고맙습니다. 그날따라 제가 소녀같이 보였나요. 지하철로 가면 늦을까봐 일부러 큰 맘 먹고 탄 택시안에서 돌아가실뻔한 기억이 나네요. 그날 심통부리던 제 모습이 아마 철없는 소녀로 보였을 것 같아요. ㅋㅋ 지금 볼살이 빠져서 귀여운 맛은 없지요? ㅋㅋ 살빼고 얼굴이 많이 피곤하고 늙어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ㅜ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좋은 걸 어떻게 해요. ㅋㅋ 강허달림,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엄마에 대한 존경심.. 뭐 그러리라 짐작은 했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 배려 따뜻함 강인함,,아 넘 좋네요. 그래서 그렇게 딸인 강허달림이 따뜻하고 인간애 폴폴넘치는 느
낌이 강하게 와닿았군요. 정말 인간적인 온기가 전해져와서, 그 노래가 더 절절하게 들렸어요. 미안해요. 이 노래엔 이 사람의 진심이 그래도 담겨있는 듯해요. 눈물이 안날 수 없는. 누군가 이 노래를 듣고 너무 위로가 되었다고 넘 고맙다고 말한 사람이 생각나네요. 이 노래엔 그런 힘이 있어요. 사람을 어루만지는. //싱글맨.. 상실감에서 오는 절망감을 정말 담담하게 그려냈지요. 본인은 참 절절하게 아플텐데 보는 사람은 왜이렇게 아름답게 만 비춰지는지. 저렇게 아름다운거라면 ..저런 상실감 한번 맞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그렇게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콜린퍼스가 넘 멋져서 그랬나? 요ㅋㅋ 에고고
에릭 크랩튼,,젊은날 제 우상이었죠.10년전쯤 내한공연때 제가 제일 좋아하는 layla를 안 불러서 섭섭했구, 관객들이 너무 점젆아서 조금 시시했단 기억이나요..그러고보니 페르님과 공유힐 수 잇는 것도 꽤 많네요..비록 라캉에대해선 전혀 몰라도...ㅋㅋ...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않을 자유'를 만끽하고 있답니다. 먹고싶으면 먹고,자고싶으면 자고...
나무야님 에릭 클랩튼 좋아하셨다는 거 저도 기억해요. 제가 렛잇 그로우 올렸을 때 그 말씀하셨지요. 레일라는 정말 대단한 곡이지요. 그 노래 부르기는 본인도 많이 신경쓰일 거에요. 쉽지 않잖아요. ㅋㅋ 원더풀 투나잇이라면 몰라도요. ㅋㅋ 저도 다녀올텐데 그때 한번 다시 그 느낌 나눠요. ㅎㅎ 아 정말 기절할 거 같아요. 좋아서, 근데 관객들이 점잖으면.. 안되는데.. 그러면 정말 별로인데.. 음.. 제가 가면 뒤집어놓을 수 있는데요. 전 목 쉬고 오거든요. 켁켁. ㅋㅋ 나무야님과 공유할 수 있는 거 정말 많아요 저도 깜짝 깜짝 놀란다니까요. 글 쓰는 기쁨을 제게 와락 안겨주시는 분 중의 하나에요. 이 맛에.. 음 바로 이 맛이죠.
진한 소통의 기쁨. 내면의 것들을 표현하고 그것을 이해해주고 그것을 겪어내는 벗을 만났을 때 기 기쁨. 지음..지음이지요. 나를 알아주는 벗이요. 이거 질겨요. ㅋㅋ 라캉은 저도 저도 ㅜㅜ 그래서 라캉의 뒤를 잇는다는 지젝이나 다리언 리더같은 사람을 에둘러서 거쳐 가는 거에요. 이들은 그래도 라캉보단 훨씬 친절하거든요. 몹시 친절 다리언 리더같은 경운 제법 친절한 편에 속해서, 그래도 가려운데를 긁는 거 같아요. ㅋㅋ 아무 것도 하지않을 자유,,클럽메드가 아닌 곳에서도 가능하다니. ㅋㅋ 그곳이 천국이네요. 아 부럽사옵니다. 그런 자유 맘껏 누리고 아무에게도 침해받지 않는 온전한 자유, 그것이 비록 제한되어있는 시간 속에
일지라도 맘껏 최대한 즐기다가 오세요. 먹고 싶으면 먹어도 살도 안찌고,. 아 ㅜㅜ 전 먹고싶은 것 맘껏 못먹고, 시간에 쫒겨서 잠 제대로 못자고 일차적인 욕구는 완전 제로인듯 싶어요. ㅋㅋ 행복한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저도 전염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