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훈의 <불교음악 3, 4집>
“ 불교음악의 새로운 자리 매김을 위한 시도 "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일로 알려져 있다. 이어 백제와 신라에도 불교가 들어왔고 불교는 삼국의 국교가 되었다. 이후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를 통하여 융성하였던 불교는 조선시대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그 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그러나 불교가 이 땅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불교는 우리들의 의식전반에, 문화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불교음악 역시 우리 전통음악의 일부분을 차지하면서 전통음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왔다. 기록에 의하면 많은 향가들이 불교적인 노랫말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비록 불교 예배의식에서 사용되지는 않았으나 일반에 전파되어 많은 사람들을 교화시켰던 원효 대사의 ‘무애가’는, 일반 민중들의 삶과 함께 했던 당시의 불교음악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기악곡형태로 연주되고 있는 ‘영산회상’은 본래 ‘영산회상불보살’의 7자를 노래하는 불교적인 내용의 성악곡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현재 민요로 전승되고 있는 경기민요 ‘탑돌이’나 황해도민요 ‘산염불-자진염불’, 전라도민요 ‘보렴’, 그리고 민간에서 전해오는 ‘고사염불’ 등은 불교음악이 기층음악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러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음악은 일반 민중의 삶과 정서에 깊이 밀착하면서 불교의 교리를 쉬운 노랫말과 음악어법으로 풀어내어 일반에게 널리 전파시켜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음악은 1911년 일제에 의해 사찰령이 반포되고 예불의식과 각종 불교행사가 금지되면서 쇠멸의 길을 걸었고 이후 물밀듯이 들어온 외래문화와 외래종교의 기세에 눌려 일반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러한 불교음악의 역사는, 일제의 민족 음악 말살 정책과 외래음악의 유입으로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음악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동안 불교계에서는 이처럼 위축된 불교음악을 다시 세우기 위하여 1960년대부터 대대적인 찬불가 운동이 일어나 현재까지 많은 찬불가들이 창작, 보급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찬불가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의 찬송가와 그 가락이나 형식이 비슷하고 노래도 피아노 반주에 혼성 4부 합창으로 불려지기 때문에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불심을 돈독히 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필자가 얼마 전에 조그만 절에서 행해진 의식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찬불가 제창순서가 되어 군가풍의 찬불가를 신도들이 어색하게 따라 부르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이러한 노래들은 모처럼 의식에 참여한 신도들의 불심을 흐트러뜨릴 뿐만 아니라 불교의식이 갖고 있는 본래적인 의미를 크게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불교음악의 맥을 이으면서도 신도들의 불심을 크게 함양해줄 새로운 찬불가의 창작이 시급한 실정이다.
[박범훈 불교음악 3, 4집]은 이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찬불가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사적인 음반으로 평가된다. [무상(無常)]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3집에는 도신스님과 김성녀, 김영임, 김일륜이 부른 10곡의 찬불가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와 중앙 불교합창단의 합창으로 실려 있고, [김성녀의 찬불가]라는 부제를 갖는 4집에는 김성녀와 중앙 불교합창단이 부른 11곡의 찬불가가 실려 있다.
이 찬불가들은 기존의 찬불가들이 갖고 있는 피아노반주의 합창곡 형식에서 벗어나 국악 관현악의 반주에 독창과 중창, 합창이 다양하게 결합되는 형태를 띠고 있고, 음악내용도 전통적인 불교음악의 맥을 이어 전통음악의 다양한 양식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찬불가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소금과 대금의 애잔한 가락과 합창의 낮은 허밍으로 시작되는, 제 3집 [무상]의 첫 곡 ‘가야지’는 4분의 4박자 가요풍의 곡으로, 속절없는 세상을 등지고 홀로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담담하면서도 아름다운 가락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 곡 ‘무상계’(반영규시)는 사랑하는 임을 저승으로 보내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중모리의 느린 3박에 싣고 있다. 특히 이 곡에서는 독창과 합창의 어우러짐이 매우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김성녀의 노래 또한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려나오는 영혼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세 번째 곡 ‘길’(석상일 스님 시)과 네 번째 곡 ‘어화너’(반영규 시)는 몇 가지 닮은 점이 있는데, 우선 상여행렬의 북소리를 연상시키는 8분의 12박자의 단순한 리듬이 인생의 숙명을 상징하듯 끝없이 이어지고, 두 곡 모두 독창과 합창이 서로 주고받는 형식을 띄고 있는데 이는 민요의 메기고 받는 형식을 적절히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곡 ‘길’에서 다소 철학적인 내용의 가사를 담담하게 노래한 도신 스님의 성음과, 네 번째 곡 ‘ 어화너’를 민요풍의 맑은 창법으로 시원스럽게 불러 내린 김영임의 성음은 합창과 잘 어울리면서 큰 감동을 자아낸다.
다섯 번째 곡 ‘보리 이루리’(반영규 시)와 여덟 번째 곡 ‘무상인’(고은 시)은 밝고 화사한 봄의 기운처럼 가볍고 경쾌한 3박의 리듬에 실려 노래되고, 여섯 번째 곡 ‘찬미의 나라’(정완영 시)는 굿거리장단의 일렁이는 흥 속에 부처님이 내 마음속에 와 계심을 찬미하는 짧지만 아름다운 노래이다.
일곱 번째 곡으로 수록된 ‘거룩한 손’(목정배 시)은 관세음보살의 따뜻한 자비의 손을 찬미한 노래로 조용하고 경건하게 불려지는 처음부분과 외치듯이 격하게 불려지는 중간부분, 그리고 다시 처음의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반복이 되는데 조용한 부분과 격렬한 부분이 서로 대조를 이루면서 진행하는 것이 일품이다. 남녀 2중창과 합창의 잔잔한 어울림도 곡에 생명력을 더해준다.
아홉 번째 수록 곡 ‘탑돌이’(광덕 스님 시)는 중모리의 3박에 실린 독창이 부처님의 높은 은덕을 민요풍으로 노래하면 합창이 ‘도세 도세 백팔 번을 도세’의 후렴을 노래하는,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후반부에는 빠른 리듬으로 바뀌면서 경쾌한 느낌으로 곡을 맺는다.
타악기의 연타와 격렬한 합창으로 시작되는 끝 곡 ‘천둥소리’(목정배 시)는 박자와 빠르기가 시시각각 변하면서 다양한 리듬과 악상이 결합되어 큰 스케일의 역동감 넘치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혼성합창이 이루어내는 힘찬 울림은 압권이다.
제 3집 [무상]은 남녀독창과 이중창, 그리고 여성합창과 혼성합창의 적절한 사용과 섬세한 관현악법이 조화를 이루고 여기에 다양한 분위기의 음악들이 서로 어울리면서 성공적인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제 4집 [김성녀의 찬불가]는 첫 곡 ‘거룩한 손’ 외에 10곡의 찬불가를 수록하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낭송만으로 된 것이 두 곡 있다는 점이다. ‘달마가 서쪽으로 가는 날’(목정배 시)과 ‘팔상도’(목정배 시)가 그것인데 특히 ‘팔상도’는 몇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우선 이 작품에는 전통음악 ‘수룡음’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민속음악에 주된 기반을 둔 박범훈의 작곡성향으로 볼 때 매우 이색적인 시도로 보인다. 이러한 시도는 이 음반에 네 번째 곡으로 수록된 ‘연잎바람’(목정배 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곡은 매우 느린 8분의 12박자로 되어 있는데, 마치 현악영산회상의 한없이 느린 가락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그가 표현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음악적 지평을 정악으로까지 확대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한 일로 판단된다. 그것은 민속악이나 정악이나 모두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며 한 가지에 집착해서는 표현의 다양성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팔상도’에는 모두 다섯 종류의 음악이 사용되고 있는데 처음 음악은 앞에서 소개한 ‘수룡음’ 가락이고 두 번째 음악은 8분의 12박자의 가볍고 부드러운 가락으로, 세 번째 음악은 3박의 느리고 고통스런 가락으로 되어있다. 이어 네 번째 음악은 상여행렬을 연상시키는 단조로운 8분의 12박자의 리듬 위에 해금가락이 연주되며,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다시 처음의 신비스러운 ‘수룡음’ 가락으로 되돌아가는데 이번에는 혼성합창과 관현악이 가세하면서 짙은 음악적 감동을 자아낸다.
이 음반에 세 번째 곡으로 실린 ‘연꽃향기 누리 가득히’(목정배 시)와 여덟 번째 곡으로 실린 ‘부처님 오신 날’(덕신스님 시)은 각각 8분의 5박자의 흥겨운 세마치장단과 8분의 12박자의 굿거리장단에 실려 연꽃향기 가득한 배달 나라와 부처님 오신 날을 찬미한다.
이들 곡 외에도 이 음반에는 ‘미륵님 오시네’(목정배 시), ‘부처님 사랑’(목정배 시), ‘사리여’(목정배 시)등의 곡과 ‘거룩한 손’ ‘무상계’ ‘찬미의 나라’(이상 제 3집 수록 곡) 등이 수록되어 있다. 김성녀는 이 음반에서 맑고 유려한 창법으로 찬불가들을 노래하고 있는데 겉으로 아름답게 들리는 노래보다는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영혼의 울림을 노래로 표출함으로써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불심을 갖도록 이끌어주고 있다. 다만 이 음반에서 비슷한 유형의 곡들이 자주 나옴으로 인해서 약간의 지루함을 안겨주는 것은 옥의 티라 하겠다.
박범훈은 90년대 초부터 불기 시작한 국악에 의한 찬불가 운동을 주도해 오면서 많은 찬불가를 작곡했는데 특히, 독창과 중창, 합창 등 다양한 노래형태와 국악 관현악, 무용이 함께 하는 대규모의 장편 찬불가의 작곡은 불교음악사의 흐름을 뒤바꿔 놓는 역사적인 작업으로 평가된다. [아제 아제], [붓다], [보현행원송], [부모은중송], [이차돈의 하늘](무용곡) 등이 그것인데 특히 1992년에 발표된 [보현행원송]은 민요 등 다양한 전통음악양식을 사용하여 불교의 심오한 화엄사상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음악어법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박범훈의 이 같은 작업은 1920년대 우리나라 최초로 찬불가운동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 백용성 선사(白龍城禪師)의 맥을 잇는 것이다. 용성 선사는 새로운 찬불가를 작사, 작곡하여 포교운동을 하였는데 이때 작곡한 ‘왕생가’가 1927년에 출판된 [대각교 의식(大覺敎義式)]에 ‘권세가’와 함께 악보가 수록되어 있다. 이 곡은 가락이 5음 음계로 되어있고 장단은 흥겨운 굿거리장단으로 짜여져 있으며, 전통 민요의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전통음악의 형식을 바탕으로 새롭게 작곡된 신민요 풍의 곡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전통음악에 바탕을 둔 박범훈의 장편 찬불가 작품들과 이번 [박범훈 불교음악 3,4집]은 용성 선사로부터 시작된 찬불가운동의 맥을 이어받고 그동안 왜곡돼온 불교음악의 흐름과 방향을 바로잡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기회에 불교의식에 사용되는 모든 음악을 전통음악에 바탕하여 새롭게 창작, 보급함으로써 불교음악의 올바른 자리 매김을 하고 아울러 새로운 불교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