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스페셜>
1945년
한반도는 일제의 결전기지였다
■ 방송일시: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밤 8시, KBS 1TV ■ 연출: 이완희 PD ■ 글: 고은희 작가
충북 영동, 그리고 전북 고창 일대의 수백 개의 땅굴 처음으로 밝혀지는 땅굴의 정체는?
<영동군에 있는 지하동굴> |
<고창군 공음면 용산에 있는 일본군이 구축한 토치카> |
현재 와인저장고로 쓰이고 있는 충북 영동 매천리의 한 땅굴. 평균 높이 3~4m, 길이 30~40m로 사람이 판 흔적이 역력하다. 매천리 일대에는 이런 동굴이 89개에 이른다. 주민들 증언에 의하면 이 굴은 1945년 봄 일본군이 주민들을 동원해 팠다. 당시엔 200개에 이르렀다. 서해안의 작은 도시 고창에도 비슷한 굴이 있다. 상하, 해리, 성송, 무장, 공음면 등 다섯 개 지역에 걸쳐서 수십 개의 동굴과 토치카가 발견됐다. 1945년, 일제는 왜 우리 국토 곳곳에 벌집처럼 요새를 만들었던 것일까?
본토결전, 미군의 상륙을 원천봉쇄하라
1944년 6월, 일본은 미군에게 마리아나 군도를 빼앗기고 필리핀마저 점령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일본 본토. 일본은 미군의 본토 상륙을 지연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른바 본토 결전이다. 일본군은 1945년 4월 8일, 전 영토를 일곱 개 구역으로 나눠 최후의 저지선을 구축하는 결호작전을 확정한다. 제주와 한반도는 결7호, 본토 밖의 유일한 작전지였다.
제주와 남서해안을 잇는 일제 최후의 저지선
<거문도 음달산 토치카> |
<목포 고하도의 해안 특공기지> |
일제는 미군의 상륙 거점으로 군산, 목포와 여수, 부산, 제주를 설정했다. 그리고 모든 거점에 동굴을 파고 소형해군기지를 조성했다. 자은도에는 산중턱에 군수물자저장용 동굴을 파고 30여개의 벙커를 설치, 목포로 진입하는 미군을 제어하는 항로를 확보했다. 고하도와 거문도에는 자살특공기지를 구축했다. 부산에는 대규모 포진지를 조성했다. 당시 부산 용호동 장자산에 설치되었던 포는 410mm 캐논포. 포탄 무게만 수백 kg에 달하는 대형포였다. 같은 포가 대마도, 이키에도 설치되었다. 대한해협 전체를 사정거리 안에 두어, 미군의 일본 본토 공격을 막으려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부산이 무너졌을 경우를 대비해 여수에 수상비행장과 해군사령부를 설치했다. 일제는 치밀한 계획으로 한반도 전체를 요새화하고 있었다.
<여수 수상비행장 내부에 있는 지하 발전소> |
<일본 대마도 토요 포대> |
대전에 전투 사령소를, 영동에 최후저항진지를 구축하다
“5월에 들어... 군은 장차 방면군 전투사령소를 대전에 설치하기로 결정... 한편 군수품의 집적을 개시하고자 모든 정찰을 실시하고 그 복곽적 중심지대를 대전, 대구 사이의 지구로 선정한다.”
「조선에서의 전쟁준비」中
45년 5월, 오키나와 함락이 임박하자 위기를 느낀 일본군 사령부는 미군이 한반도 남서해안에 상륙할 경우 작전 지휘를 원활히 하기 위해 한반도를 관할하던 17방면군 사령부를 대전으로 옮길 준비를 한다. 그리고 대전과 대구 사이에 복곽기지, 즉 최후 저항진지를 설치했다. 제작진은 일본의 동굴진지 전문가 츠카사키 마사유키와 함께 현장을 탐사했다. 그 결과 문제의 복곽기지가 지금의 충북 영동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기록에 의하면 영동에는 탄약 500톤, 연료 160㎘가 보관 중이었다. 제주를 제외하면 한반도 내 최대물량이었다.
“미군이 상륙하게 되었다고 한다면 조선군은 대패배를 겪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전투에 휘말려, 광대한 토지가 전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서해안에서부터 영동까지 매우 넓은 토지와 그 안의 민중들이 비참한 상황을 겪었을 것이라 상상됩니다.”
-츠카사키 마사유키
동굴진지, 수탈과 폭력의 역사를 증언하다
“많은 일본인들은 자기네 나라 땅에만 그런 기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동일한 군사시설이 한반도에도 거의 그대로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일본의 침략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웠던 것이고 얼마나 억압적이었는가를 우리에게, 그리고 세계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신주백 박사
<목포 고하도> |
<여수 수상비행장 내부> | 1945년, 한반도 전역은 일제의 요새였다. 명분 없는 전쟁에 휘말려 죽음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었던 한반도. 그 뼈아픈 역사를 한반도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 동굴진지를 통해 재조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