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의 여왕' 장미란 선수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엄청나게 먹지는 않아 고기 3인분이면 끝"
"내가 금메달 따고 올 때 못딴 선수들은 힘들어… 그들 마음도 헤아려야죠"
"운동을 할 때 유난을 떠는 게 싫었어요. 아빠가 시합장에 따라와 응원하고 비디오에 찍는 것도 싫었어요. 시합을 끝내면 꽃다발이나 꽃 목걸이를 걸어주거나 인터뷰해야 하는 것도 정말 싫었어요. 그런데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때 제가 졌거든요. 난 은메달을 목에 걸고, 금메달을 3개 딴 박태환과 나란히 들어왔어요. 아 이런 거구나…. 그 싫던 꽃 목걸이, 꽃다발, 인터뷰가 그때는 전과 다르게 느껴졌어요."
―2등의 설움이 어떻다는 걸 처음 맛본 것이네요.
"상처나 설움이라기보다…, 제가 금메달을 따고 들어올 때 다른 선수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저는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잖아요. 그걸 당연하게 여겼는데 처음으로 다른 선수들의 마음을 겪어본 거죠. 그동안 저 때문에 힘들어했던 사람도 있었겠구나 하는 것을."
장미란(26) 선수는 어떨 땐 "헤헤헤" 웃다가 어떨 땐 "하하하" "허허허" 웃었다. 소녀 같기도 했고, 세상 물정을 다 아는 장정 같기도 했다.
'킹콩을 들다'라는 역도 영화를 보면서 그를 떠올렸다. 하지만 인터뷰에 안 응했다. "운동만 하면 됐지 유난을 떨 것까지야…" 하니, 중간에 여러 사람이 나서도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보름쯤 지나 성사됐다.
오전 훈련이 없어, 그는 티셔츠와 바지차림이었다. 태릉선수촌을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마치 제 집처럼 편하게 보였다.
"주말에도 외출은 별로 안 해요. 일주일에 한 번 방 청소를 하고, 선수촌 안에 교회에 가고, 피아노도 쳐요. 숙소에서 음악 듣고 책 보면, 바깥에 나갈 이유가 별로 없어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들어온 뒤로 거의 매일 여기서 지냅니다. 시합과 전지훈련을 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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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장미란 선수는“주말이면 선수촌 교회에서 피아노도 치고 일주일 묵혀둔 방 청소를 한다”고 말했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제 세계 최고인데 슬슬 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다른 선수들이 눈앞에 안 보이고 있을 뿐, 저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정상에 서기도 힘들지만 정상을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하잖아요. 정점에 도달했을 때 그것을 넘어서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그래도 '압도적'이었잖아요.
"세계 선수권대회 3연패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땄지만, 사실 중국 선수들과 월등하게 차이가 나 이긴 게 아닙니다. 같은 무게의 바벨을 들고서 제가 체중 1~2㎏이 적어 이겼어요.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국가당 역도 출전권이 7체급 중 4체급만 있었어요. 그래서 중국은 금메달이 확실한 체급만 내보냈고, 저와 실력이 비슷한 중량급 선수는 출전을 안 시켰어요. 제가 독보적인 게 아니에요. 오는 11월 고양 세계역도선수권 대회에는 중국 선수들이 나옵니다."
―남들은 살 빼려고 난리인데, 장 선수는 더 무거운 바벨을 들기 위해 체중을 불리느라 애를 먹는다면서요.
"제가 무제한급(級)이고, 바벨의 무게와 체중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으니까요. 살 빼는 것도 고역이지만, 살 찌우는 것은 더 힘들어요. 저는 안 먹으면 살이 빠져요. 불리는 것은 먹어도 먹어도 화장실 한번 갔다 오면 쑥 빠져 있어요. 고등학교 들어가 처음 운동할 때 체중이 78㎏이었어요. 운동하면서 40㎏가 쪘어요. 제가 잘 먹으니까 무난하게 체중을 불려왔는데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어요. 체중도 그렇고 기록도 그렇고…."
―무제한급의 다른 외국 여자 역도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몸매가 허물어져 있던데.
"하하하,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체중을 불렸는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저는 운동을 하면서 불렸어요. 그냥 지방으로만 살찌운 게 아니라 근육량도 늘어난 거죠."
―일단은 많이 먹어야 되겠군요.
"일반 사람들보다야 많이 먹지만,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엄청나게 먹진 않아요. 컨디션이 좋아도 한자리에서 고기 3인분 넘게는 못 먹어요. 일반인도 고기 2~3인분은 먹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역도선수들은 다른 구기(球技)종목 선수들보다 못 먹어요. 세끼를 골고루 잘 먹고 운동 중간에 간식을 하고, 저녁 후에는 부담 안 되게 찐 고구마를 먹어요."
태릉선수촌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했는데 식사량이 대충 그의 말대로였다. 식사 전후로 역도 후배들이 자리로 찾아와 '공손하게' 인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역도 대표 중에서 왕언니군" 하니, "헤헤헤, 그런 셈이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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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베이징 올림픽 때의 장미란 선수.
―실제 무슨 음식을 좋아하나요?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이 질문을 받고 '일식'이라고 했더니, 그 뒤로 만나는 분들마다 일식만 사주세요. 지금은 '다 잘 먹는다'고 대답해요."
―길거리에서 비슷한 연령대의 날씬한 여성들을 보는 순간 분개하지 않나요?
"하하하, 분개한다면 체중을 이렇게 불리지 못했을 거예요. 주변에서는 그 나이 때 놀거나 누려보지 못하고, 예뻐지고 싶은 나이에 체중 불리는 저에 대해 안타까워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어울려 노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좋아요. 물론 운동만 하는 건 아니에요. '사복'을 입고, 사복이라는 말에 친구들은 웃지만 늘 운동복을 입고 지내니, 외출해서 옷을 사러 갈 때도 있어요. 마음에 드는 게 있어도 사이즈 때문에 입지를 못하잖아요. 입고 싶어도 입지 못하면 솔직히 전에는 속상했죠. 하지만 지금은 안 그래요. 다른 걸 입으면 되고 맞춰 입으면 되잖아요. 속상할 게 아니죠."
―여성에 대한 미(美)의 기준을 바꿔버릴까요?
"헤헤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좋죠. 어렸을 때 외모 콤플렉스가 많아 자신 있게 앞에 나서질 못했어요. 운동을 하면서부터 항상 방송에는 '남들 화장할 때 그는 송진 가루 묻혔고, 남들 다이어트 할 때 그는 체중을 불렸다'는 식으로 나왔어요. 너무 안됐다는 것처럼. 하지만 제가 좋아서 한 거예요. 체중 불리기 싫었다면 안 했을 겁니다. 외모 때문에 어디 가서 주눅 들어 있는 것은 잘못된 거죠."
―지금도 참하고, 어릴 때 사진을 보니 귀엽던데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살이 찌기 시작했어요. 워낙 먹는 걸 좋아하고 잘 먹었어요. 엄마는 딸을 예쁘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데 예쁜 옷을 입혀도 태(態)가 안 나니…. 엄마는 '나중에 원망을 어떻게 듣나'며 못 먹게 하고 다이어트를 시켰어요. 아빠는 '왜 못 먹게 하나 내버려둬라'는 쪽이었어요. 저는 아빠를 쏙 빼닮았어요. 대신 동생 미령이(경량급 역도 대표 선수)는 엄마를 닮아 체구가 아담해요."
―세상 사람들의 시각에 멋있는 운동도 있지 않습니까. 하필 역도를 택했을까요?
"사실 그때는 역도에 대한 거부감이 지금보다 더했어요. 말 그대로 '무식한' 운동이라고 했죠. 처음에는 부모님이 역도를 하라고 했을 때 속이 상했죠. 여자가 역도 한다는 게 창피스럽잖아요. 혼자 하는 게 뭐해 친구들에게 같이 하자고 했어요. 친구 엄마들은 다 못하게 막거든요. '딴 엄마들은 못 하게 하는 걸 왜 우리 엄마는 내게 시키려고 하느냐'고 원망했어요. 막상 역도를 해보니 바벨의 무게를 하나하나 올려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선배들과 합숙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고등학생이 대회 참가한다고 다른 도시에 가서 잠 자고 음식을 먹는 것도 흔치 않잖아요."
―역도가 정말 단순무식한 운동입니까?
"선수가 최대 힘을 내는 장면만 클로즈업 해 보이잖아요. 그러니 힘만 쓰는 무식한 운동으로 압니다. 힘만 세다고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유연성·순발력도 좋아야 하고, 한가지 동작에서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기술 측면이 있어요. 시합 때는 용상·인상을 세 차례씩 드는데 상대 선수에 맞춰 워밍룸 안에서는 여러 작전이 펼쳐집니다."
―역도를 시작할 때는 그냥 취미로서가 아니라, 선수로서의 장래를 생각해봤겠지요?
"운동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말을 그때 많이들 했잖아요. 부모님이 강력하게 시키려고 했어요. 아빠가 한때 역도를 좀 했어요. 제가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서 장래성을 보였다면 안 그랬겠지요. 역도할 만한 체격 조건은 잘 타고 났어요. 아마 유도나 역도 등 근(筋)지구력을 요하거나 뛰는 운동을 했다면 못 견뎠을 거예요."
―학교 다닐 때 공부는 못 했나요?
"하하하, 그렇게 못한 건 아니고. 부모님이 교육열이 높아 어려서 피아노도 배우고 한문학원도 다녔어요. 생활이 넉넉지는 않았지만 남들만큼 할 수 있게 다 해줬어요. 당시 브리태니커 사전까지 사줬어요. 저는 인물전을 읽는 걸 좋아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거의 수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남들처럼 했죠. 교회 합창단에 들어가고 연극을 한 적도 있었어요."
―성장 과정에서 '내가 철이 들었구나' 하는 시기가 있었나요?
"당시 부모님은 식당을 했는데, 학교에 돌아오면 우리는 식당에서 서빙을 했어요. 온 가족이 한방에서 다 잤어요. 그런 환경에서 부모와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물질에 대한 중요성도 알고. 제가 처음 전국체전에 나가 금메달을 3개 땄고 상금으로 90만원을 받았어요. 고등학생이 그렇게 큰돈을 어디서 벌어요. 신기했어요. 그때 저는 '운동을 열심히 하면 엄마 아빠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 실업팀에 간 것도 그런 마음이었어요."
―지금 고1이라면 역도를 선택할 겁니까?
"저는 정말 다시 할 거예요. 우스갯소리로 부모님께 '그때 빨리 안 한 게 후회된다. 내가 역도를 안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돈을 벌고 누가 날 알아주나'라고 했어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즐겁게 잘할 수 있는 걸 부모님이 빨리 발견해준 건 행운이에요."
―또래 고등학교 친구들이 교실에서 수업받고 있을 때 운동을 한 셈인데, 운동에서 무얼 배웠나요?
"인내를 배웠던 것 같아요. 제가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다 가질 수는 없잖아요. 그걸 가지려면 제가 가질 만한 준비가 필요하고, 받을 만한 사람이 돼야 받을 수 있거든요. 선수들과 같이 지내면 남을 배려하는 것도 배우게 되죠."
―대표팀 후배들은 너무 높은 위치에 있는 장 선수를 어려워하지 않나요?
"장난을 먼저 걸어도 제가 어려운가 봐요. 상담하러 오라고 해도 다 안 와요. 하하하, 본인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죠. 합숙생활에서 코치나 후배들과 안 맞는 일이 있을 때, '내가 지도자라면 내가 후배라면' 하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합니다."
―현재 고려대 체육교육학과에 재학 중이지요. 하지만 막상 대학생활은 그렇게 못 즐기죠?
"대표팀에 충실해야 하니 수업에는 소홀하죠. 1, 2학년 때는 학점을 다 관리해줬어요. 그런데 제가 대학을 다니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대학에서 아는 친구도 없다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작년부터 몸이 피곤해도 가능한 한 출석하려고 했어요. 올 4학년 1학기 성적이 가장 좋았어요. 이번에 교생 실습도 했어요."
―늘 선수촌에 있는데 어떤 남자친구를 만날 것 같나요?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자란 사람이면 좋겠어요. 또 모든 부분에서 제가 존경할 만하고 배울 수 있는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하하하, 그러면 안 돼죠."
생물학적 나이로는 내 절반에 가깝고 체중으로는 내 두배에 가까운 장미란 선수와 마지막으로 팔씨름을 겨뤄볼 심산이었다. 그 손을 잡고 자세를 취하니, "정말 이건 약해요. 팔꿈치를 다칠 수도 있어요" 하며 피했다. 그가 졌다고 떠들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