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장
엄니 꽃 — 두엄 속 홍어와 모내기 풍류 (1)
두엄 속에서 익어 가던 어머니의 맛
모내기철이면 내 기억 속 고향은 온통 푸른 물감에 잠긴다.
밤새 물을 머금은 논은 새벽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고, 논물 위에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그대로 내려앉는다. 바람이라도 한 줄기 지나가면 잔잔하던 물결이 살짝 흔들리고, 그 속에 비친 구름도 덩달아 일렁인다.
논둑에는 이름 모를 풀꽃들이 피어 있고, 미나리밭에서는 짙은 풀내음이 올라온다. 어디선가 개구리가 울고, 잠자리들은 막 심어 놓은 어린 모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그 풍경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허리를 굽혀 모를 심었다.
한 줄을 심고 또 한 줄을 심는다.
허리를 펴는 시간보다 굽히고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발은 진흙 속에 푹푹 빠지고, 얼굴과 등줄기에는 땀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고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기억 속 모내기철은 힘겨움보다 흥겨움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 농담 한마디를 던지면 논 한가운데서 웃음이 터지고, 저쪽 논에서 부르는 노랫가락이 바람을 타고 건너오기도 했다. 힘든 일을 함께했기에 웃음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시절의 농촌은 가난하고 고단했어도 살아 있었다.
사람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고,
서로의 땀을 닦아 주는 정이 있었다.
그리고 모내기철의 그 많은 기억 가운데 유난히 내 코끝에 먼저 살아나는 냄새가 하나 있다.
홍어 냄새다.
그것도 그냥 홍어가 아니다.
어머니가 두엄 속에서 삭히신 홍어다.
모내기철이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영산포 오일장에서 큼지막한 홍어 한 마리를 사 오셨다. 지금처럼 냉장고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온도를 맞추어 주는 숙성고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에게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삶의 지혜가 있었다.
집 옆에는 소똥과 짚, 풀과 여러 농사 부산물을 쌓아 둔 두엄더미가 있었다. 그것들이 천천히 썩고 발효되면서 두엄 속에서는 은근한 열기가 올라왔다.
어머니는 바로 그 두엄 속에 홍어를 담은 항아리를 묻으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 그것이 참 이상했다.
먹을 것을 왜 냄새나는 거름더미 속에 묻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때가 되면 두엄을 헤치고 항아리를 꺼내셨다.
그리고 뚜껑을 여는 순간—
세상 어디에서도 맡아 보기 힘든 냄새가 터져 나왔다.
알싸하고,
꼬릿하고,
코를 찌르고,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강렬한 냄새.
처음 맡는 사람이라면 고개부터 돌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달랐다.
그 냄새가 나면 모내기철이 왔다는 뜻이었고, 사람들이 모인다는 뜻이었으며, 논둑에 둘러앉아 한바탕 먹고 웃을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어머니는 갓 삭힌 홍어를 먹기 좋게 썰어 놓으셨다.
그리고 논둑이나 미나리밭에서 뜯어 온 싱싱한 미나리를 깨끗이 다듬어 새콤달콤하게 무치셨다.
홍어 한 점에 미나리를 얹어 입에 넣으면 먼저 코끝이 찡해졌다. 그 강렬한 맛이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오는 순간, 하루 종일 논바닥에서 허리를 굽히며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가는 듯했다.
거기에 막걸리 한 사발이 빠질 수 없었다.
누렇게 빛바랜 주전자에서 막걸리를 따라 사발을 돌리면 어른들은 흙 묻은 손으로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캬— 좋다.”
누군가 한마디 하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홍어 한 점,
미나리 한 젓가락,
막걸리 한 사발.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소박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그 논둑 위에서는 세상 어느 잔칫상도 부럽지 않았다.
바람은 젖은 모 사이를 지나고, 멀리 영산강 쪽에서는 물비린내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막걸리 사발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건너가고, 홍어 접시도 사람들 사이를 돌았다.
누구 것이 따로 없었다.
함께 일했으니 함께 먹었고,
함께 땀 흘렸으니 함께 웃었다.
그것이 그 시절 모내기였고,
그것이 그 시절 농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 풍류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었다.
사람들이 논에서 모를 심고 있을 때 어머니는 집과 논을 오가며 먹을 것을 준비하셨다. 남들이 잠시 허리를 펴고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일 때도 어머니의 손은 좀처럼 쉬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때 홍어 맛만 알았지,
그 홍어 한 점을 논둑까지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했는지는 몰랐던 것 같다.
영산포 장에 가서 홍어를 고르고,
항아리에 담아 두엄 속에 묻고,
때를 살펴 꺼내고,
미나리를 뜯어 다듬고,
막걸리를 준비해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 앞에 내놓기까지.
그 모든 과정에 어머니의 시간이 들어 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삭힌 홍어 냄새를 맡으면 나는 가장 먼저 어머니를 떠올린다.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홍어 한 점을 입에 넣어도 내 마음은 어느새 수십 년 전 영산포 갯머리의 논둑으로 달려간다.
논물 위로 흰 구름이 흘러가고,
젊었던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이 허리를 굽혀 모를 심고,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논둑에는 막걸리 주전자와 홍어 한 접시가 놓여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어머니가 걸어오신다.
머리에는 음식을 이고,
한 손에는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뜨거운 햇볕 아래 논둑길을 조심조심 걸어오신다.
그때는 몰랐다.
두엄 속에서 익어 가던 것이 홍어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 속에는 가족을 먹이고 이웃을 대접하려는 어머니의 마음도 함께 익어 가고 있었다.
흙의 온기로 삭힌 홍어,
논바닥을 적시던 사람들의 땀,
미나리 향과 막걸리 한 사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말없이 준비하셨던 어머니의 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머니가 떠나신 뒤에야
그 향기는 더욱 짙어진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것은 홍어의 맛이 아니라,
그 홍어 한 점 속에 들어 있던 어머니의 세월이었다는 것을.
두엄 속 깊은 곳에서 오래 삭아 깊은 맛을 내던 홍어처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세월 속에서 삭고 또 삭아
이제는 내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향기가 되었다.
그 향기의 이름을
나는 오늘도 엄니 꽃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