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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디마 스님은 미얀마 사람인데, 이제는 한국사람 같다. 스님이 암사동에 계실 때는 거리도 가까워, 내가 움직이거나 스님께서 우리 집으로 오시거나 해도 별 무리가 없었다. 스님의 한글공부를 도와드릴 정도로 내 실력이 훌륭하지는 않으나, 스님께 무엇인가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깊이는 측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암사동 지하에 있던 미얀마선원이 의정부로 이사 간 후에는 스님을 만날 수가 없었다. 그후 가회동으로 미얀마선원이 이사 온 후에야 다시 뵙게 되었다. 나는 내가 언제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얼마동안 뵙지 못해도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저 먼 미얀마와 한국에서도 만났는데, 우리나라 안에서는 왜 못 만나겠는가? 나는 그저 내 생활을 옷감 짜듯이 꾸려 나가며, 오는 인연을 기다렸다. 스님은 그제 전화를 하셨고, 나는 그 전화로 잡은 약속장소에 어제 나갔다.
33명. 갑작스러운 전화였음에도 모두들 스님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내어 모인 사람들이었다. 스님 뵈러 갔다가 많은 사람들과 점심공양을 함께 대접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공양이 끝난 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고, 나는 스님과 미얀마선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스님께 한 번도 내 인생의 어려운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스님께서도 내겐 스님의 어려운 상황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다. 스님의 시간과 내 시간은 언제나 한정되어 있어서, 나는 그 시간 내에, 스님의 한국어발음 교정과 한국어공부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스님은 배우느라고 최선을 다했다. 그 도움 덕분에 한국어를 더욱 잘하게 되어 생활하는데 도움이 되셨다며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스님은 아직도 초성 ㄹ발음과 종성 ㄹ발음을 잘 못하신다. ㄴ으로 소리내어 듣는 사람이 그냥 알아서 이해하게 만드신다. 의정부로 떠나기 전 한참 발전하던 한국어는 구사하시는 용어는 풍부해 졌으나, 문장이나 발음은 딱 그때에 머물러있다. 이번에도 스님은 후임 미얀마선원 주지스님의 한글공부를 내게 부탁하셨다. 그 이후 어학당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스님은 나이가 좀 더 들면 유학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고, 평소에 한국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기에 옥스퍼드에 가서 영어발음도 교정하면서 심리학과 영어를 좀 더 배워 한국에 돌아오면 아이들에게 불교를 통해서 배우는 영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은혜를 갚고 싶다고 한다. 스님의 맑은 눈빛은 그 모든 일을 이뤄내실 것이다. 가회동 미얀마선원에 앉아서 스님과 나는 내년 여름일을 슬쩍 지나가듯이 말한다. 아이들 방학 하면 미얀마에 있는 미얀마유치원에 가서 한달 동안 봉사 좀 해 달라는 것이다. 한치 앞을 알 수 없지만, 나는 또 그러지요 하고 선선히 답을 한다. 스님께 삼배를 한 후 나와 종각에 있는 서점까지 걸어갔다. 가회동에서 종각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기분에 5분 정도 걸은 것 같았다. 산디마 스님은 미리 한글공부를 해서 나와 의사소통을 할 때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했다. 그런데 이번에 오시는 스님은 한국어를 전혀 모르니 내가 미얀마어를 공부해야 할 것 같아 미얀마어 회화책을 한 권 사고, 아이들 공부할 문제집들과, 내가 공부할 책도 샀다. 내년 여름방학 때는 아이들 데리고 한 달 동안 미얀마에 다녀올까? 남편은 어찌하나? 그동안 집은 어찌하나? 내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똘망이가 4학년인데 그래도 될까?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까? 나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강을 건너기도 전에 나룻배를 들고 다니며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살다 보면 원하는 곳으로 가 있겠지! 미얀마 그곳이 나를 부르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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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아..기자라니.너므 멋지세용.히히..저도 살아가는 시야를 넗혀야 겟습니다./ 썜..화이팅.~!!
흐흐.. 오마이뉴스시민기자는 누구나 다 해요.^^ 화이팅 고맙심다~
대단하세요~ 쌤의 글을 읽으며 만감이 교차하는걸 느낍니다. '살다보면 원하는곳으로 가있겠지!' 그렇겠죠? 내가 원하는곳은 어디었나?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