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루이스
병상 결혼식
2009.03.21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 발표
2009.03.20
마이클 조던
17개월만의 복귀
2009.03.19
에리히 프롬
타계하다
2009.03.18
샘 월튼
자유의 메달 수상
2009.03.17
로버트 고더드
액체연료 로켓발사
2009.03.16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출간
2009.03.14
윌리엄 허셜
천왕성 발견
2009.03.13
루스벨트 대통령
첫 라디오 연설
2009.03.12
마르코스
평화대장정 마침
2009.03.11
마하트마 간디
경찰에 체포되다
2009.03.10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 <새> 시사회
2009.03.09
프랜시스 베이컨
‘옥새상서’가 됨
2009.03.07
멘델레예프
주기율표 발표
2009.03.06
장 자크 루소
아버지의 재혼
2009.03.05
본문시작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C.S. 루이스는 20세기 영국 문학의 대표작가이자 영문학자이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톨킨을 비롯한 여러 지인들과 함께 문학과 철학을 토론하는 모임인 ‘잉클리즈’를 만들었다. 루이스는 무신론자였지만 1929년에 유신론으로 회심했다. 그는 이후 기독교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기독교 변증론을 펼친 인물로 손꼽히게 된다.
1952년 9월 루이스는 조이 데이빗먼(Joy Davidman)이라는 여성을 처음으로 만난다. 그녀는 젊은 시절에는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조이는 미국의 소설가인 빌 그레셤(Bill Gresham)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시인이었던 조이의 결혼 생활은 이미 파경을 걷고 있었고, 부부는 잠정 별거에 합의한 상태였다. 두 사람의 교류가 시작된 것은 1950년에 조이가 루이스에게 편지를 쓰면서부터이다. 1946년경 조이는 마르크스주의자에서 기독교인으로 회심을 하는데 루이스의 책이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편지는 명민함과 섬세함이 돋보이는 지적인 것이어서, 루이스의 눈에 금방 들어왔다. 두 사람의 만남은 지적 교류의 차원이었다. 조이는 1953년에 두 아들과 함께 미국에서 영국으로 이주한다. 조이가 이혼을 한 것은 이듬해인 1954년의 일이었다. 단순한 우정을 넘어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된 것은 이 무렵의 일로 알려져 있다.
1956년 영국 정부가 조이의 비자를 더 이상 연장해 주지 않자 루이스는 그녀에게 영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혼인 신고를 하기로 했다. 쉰 살이 넘도록 독신으로 살아온 루이스를 곁에서 지켜 본 친구들 가운데는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루이스는 혼인 신고가 조이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956년 10월 조이가 골수암 판정을 받게 되자 루이스는 깊은 충격에 빠진다. 루이스의 어머니 또한 그가 어렸을 때 암으로 사망했다. 루이스의 표현을 빌자면, 죽음의 신이 연적이 된 상황에서 조이에 대한 루이스의 사랑은 급속히 깊어졌다. 두 사람은 1957년 3월 조이의 병실에서 성공회 예식에 맞추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조이의 죽음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결혼식 이후 한때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1959년 가을에 골수암이 재발했다. 조이 데이빗먼 루이스는 이듬해인 1960년 7월 세상을 떠난다.
조이의 죽음 이후 루이스는 고통에 빠진다. 그는 자신의 삶을 고백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조이와의 관계를 책으로 써내려 간다. 신에 대한 원망과 구원, 사적인 감정이 뒤섞인 책 <헤아려 본 슬픔>은 N.W. 클러크라는 가명으로 출간된다. 책 속에서 조이는 ‘H’라는 이니셜로 호명된다. “나는 언제든지 다른 죽은 사람들을 위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H를 위해 기도하려고 하면 멈칫 한다.” 루이스가 <헤아려 본 슬픔>을 낸 시기는 오늘날 월트디즈니 사에서 영화화하고 있는 <나니아 연대기>를 모두 출간한 후였고, 수많은 사람들을 회심시킨 루이스의 대표적인 기독교 저작 <순전한 기독교>와 자서전 <예기치 못한 기쁨> 같은 대표작을 낸 이후였다.
루이스는 문학, 종교에 관한 탁월한 저작을 내놓았지만 조이와 사별한 후 <헤아려 본 슬픔>을 통해 삶과 신앙의 문제에 대해 다시금 질문한다. 미국의 동화작가 매들린 렝글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루이스가 성난 목소리로 하나님께 고함지르고 회의하고 발버둥 치며 대들 용기가 있었던 사실에 감사한다. 이는 그다지 자주 권장되지는 않지만 건강한 슬픔의 일부이다. 루이스처럼 저명한 기독교 변증론자가 그토록 탁월하게 주장해 온 믿음을 의심할 용기를 가졌기 때문에 더욱 도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우리 자신의 회의와 분노와 고뇌를 터놓을 수 있게 되며, 그렇게 하는 것이 영적 성장의 일부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헤아려 본 슬픔>을 통해 루이스는 인간의 사랑은 물론이고 신과의 사랑에 대해서 깊이 회의하며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성숙으로 가는 도정이다. 참고 삼아 언급하자면, 루이스와 조이의 사랑은 <쉐도우랜드>(shodowland, 1993)라는 영화로 만들어질 만큼 유명한 것이었다.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이 만든 영화 속의 루이스와 조이는 각각 안소니 홉킨스와 데보라 윙거가 맡았다. 아마도 루이스가 20세기 판타지 작가를 넘어서 오늘날에도 이처럼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힘든 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회의를 통해 더욱 성숙해 지기를 갈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스가 태어난 것은 1898년 11월 29일 아일랜드의 벨파스트였다. 그의 자서전인 <예기치 못한 기쁨>에는 어린 시절에 대한 탁월한 묘사들이 등장한다. “긴 복도와 햇빛 비치는 빈 방들과 정적이 흐르는 위층과 혼자 구석구석 살펴본 다락방이 있는 곳”에 대한 묘사는 짐작할 수 있듯이 <나니아 연대기>에서 가장 유명한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과 <마법사의 조카>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절 루이스는 ‘잭’이라는 이름을 애칭으로 썼다. 나이 들어서도 루이스의 친구들은 그를 ‘잭’이라고 불렀다. 잭은 베아트릭스 포터의 ‘피터 래빗’ 같은 동화를 비롯하여 동물들의 이야기를 형 워렌과 탐독하였다. 가족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 중 절정은 아일랜드 해변에서 보낸 여름 휴가였다.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아일랜드 북쪽 해안가에 있는 던루스 성은 나니아 왕국의 왕과 왕비들이 거주하는 케어 패러벨 성과 은근히 닮아 있다.
루이스의 학교 생활은 좀 어두운 편이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한 달 만에 보내진 윈야드(Wynyard) 기숙학교는 시설도 형편없었지만 변덕스러운 교장 때문에 루이스가 훗날 ‘벨젠(Belsen)’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벨젠은 나치 수용소의 이름이다. 반면에 이 시절의 다양한 독서와 경험은 루이스를 20세기의 중요한 영국 작가이자 사상가이며 동시에 영문학자로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1930년대와 40년대 옥스퍼드 영문학과에서 루이스는 가장 존경 받는 선생님 중의 하나였다. 영국의 작가인 아이리스 머독의 남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조지 베일리(George Bailey) 교수는 “전후 옥스퍼드에서 루이스의 명성은 아무리 높다고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고 평가 했다. 그는 17세기의 영시들을 강의했으며, 이에 관한 책들도 여러 권 냈다.
루이스의 친구였던 오언 바필드(Owen Barfield)는 루이스 안에 세 명의 다른 루이스가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영문학자이며 비평가로서 명성을 날린 루이스, 두 번째는 <나니아 연대기> 같은 작품을 쓴 아동문학가로서의 루이스, 세 번째는 널리 알려진 기독교 작가로서의 루이스다. 그 중 세 번째 루이스의 작품에 해당되는 <순전한 기독교>는 명료한 표현과 논증으로 수많은 이들을 회심시켰다. 비평가로서 지적인 언어를 놓지 않으면서도 신앙에 대해 성찰하는 그의 능력은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론자로 손꼽기에 충분하다.
루이스의 삶 속에서 또 한가지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것은 <반지의 제왕>의 작가인 J.R.R 톨킨과 교류했던 잉클리즈(inklings) 모임이다. ‘암시’라는 뜻을 지닌 잉클리스는 1930년대 초반에 루이스와 그의 형이 톨킨을 비롯한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집필 중인 작품을 서로 읽고 토론하거나 친목을 다지는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이외에도 소설가 찰스 윌리엄스, 의사 험프리 하버즈, 변호사 오언 바필드 등이 멤버였다. 이 모임을 통해 톨킨과 루이스의 대표작들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옥스퍼드에서 가르치던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영국 지성사 에서는 옥스퍼드를 중심으로 한 20세기 지적 공동체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 모임을 통해 루이스의 초기 저작 중 유명한 <침묵의 행성에서>가 출간됐다. 국내에는 곧 나올 예정인 이 작품은 잉클링즈 회원들의 솔직한 상호 비평을 통해 다듬어진 많은 이야기 중 하나였다.
잉클리즈 회원들은 루이스의 장례식장에 모인 주요 인사들이기도 했다. 루이스의 양아들 더글러스 그레셤을 비롯하여 톨킨과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주교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루이스와 조이의 결혼 주례를 맡았던 피터 바이드 목사, 루이스가 ‘또 하나의 나’로 묘사했던 오언 바필드, 늦게 잉클리즈에 합류했던 제임스 던더스그랜터 경찰서장 등이 자리를 채웠다. 이 자리에서 톨킨은 루이스가 성탄절에 보내온 카드의 글을 떠올리며 애도사를 표했다. 루이스가 카드에 적은 글은 자신의 책인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것이었다. “슬픔도 있었고 어둠은 짙어 갔지만, 위대한 용기와 위업들이 허사는 아니었다.” 이 문장은 잭이라 불리던 어린 루이스가 꿈꾸던 삶을 보여준다. 또한 루이스가 언어를 통해 20세기를 통과한 영웅이었음을 상기하게 만든다. 그의 무기는 요정의 칼이 아니라 펜이었다.
C.S. 루이스의 기독교 저작의 대부분과 문학 저작의 상당수는 홍성사를 통해 출간되고 있다. 또한, 루이스와 관련된 전기물도 상당수 출간하고 있어서 다양한 맥락들을 살필 수 있다. <헤아려 본 슬픔>(C.S.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홍성사, 2004)은 아내 조이와 사별한 후 가명으로 낸 기독교 저작이다. 루이스의 인간적인 분노와 감정,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통찰, 신앙의 회복에 대한 문제들을 격랑 위에서 잠을 청하는 것처럼 차가운 열정으로 쓰고 있다.
<루이스와 잭>(조지 세이어 지음, 홍종락 옮김, 홍성사, 2006)은 루이스에 관한 다양한 전기 중 가장 유명한 저작 중 하나이다. 루이스의 양아들인 더글러스 그레셤 역시 루이스의 삶을 살피는 데 이 전기를 추천하고 있다.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C.S. 루이스, 강유나 옮김, 홍성사, 2007)는 조이와 함께 한 시절에 내놓은 대표적인 소설이자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와 푸쉬케의 유명한 러브 스토리를 재해석해 놓은 저작이다. <나니아 연대기>와 닮아 있지만 다른 톤의 작가적 역량을 살펴볼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지식은 나눌수록 자라납니다.
songup1 혼인신고를 해서 당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겠다 참 멋있는 삶을 살았군요 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