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代 十 國 時 代
後 梁 王 朝 世 家
五代(오대)
後梁,또는 朱梁(후량, 주량) AD. 907∽AD. 923 漢族(한족) 위치 중국 화북 성씨: 朱(주)
代數 | 在位期間 | 位 | 姓名 | 關係 | 首都 | 現地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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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宣元皇帝(선원황제) | 朱黯(주암) |
| 開封(개봉) | 河南 開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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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光獻皇帝(광헌황제) | 朱茂琳(주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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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남개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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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昭武皇帝(소무황제) | 朱信(주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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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穆皇帝(문목황제 | 朱誠(주성) | 주신의 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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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대 | AD. 907∽AD. 912 | 孝皇帝(효황제) | 朱全忠(주전충) | 주성의 삼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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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대 | AD. 912∽AD. 913 | 폐제 | 朱友珪(주우규) | 효황제의 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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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대 | AD. 913∽AD. 923 | 末帝(말제) | 朱友貞(주우정) | 효황제의 삼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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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 난을 토벌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반군출신의 주전충이 당나라 마지막 황제인 20대 애종으로부 터 선양받아 봉지였던 개봉에 도읍하여 개국한 국가이나, 주전충은 살인마 못지 않게 인간 도살을 즐긴 폭군이었다. 게다가 황소 토벌 때부터 돌궐 사타족 장군인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과 격렬하게 대립하였 다. 주전충은 음탕하기까지 해서 자신의 마누라를 빌려준 양자에게 제위를 물려주려다가 차남인 주우규 에게 살해되었다.
제 1대 효황제(AD. 852∽AD. 912)
태생이 미천하고 가난한 농부인 주성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적 부친이 죽자 먼 친척뻘인 유숭 밑 에 몸을 의탁한다. 장성해서는 황소가 군사를 일으킬 때 형과 함께 참전하여 두각을 세웠다. 880년 황 소는 중앙 정부군을 물리치자 이에 놀란 희종 황제는 사천(촉)으로 달아났다. 황소는 장안을 함락시키고 국호를 "대제"라 칭하며 제위에 오른다. 하지만 곧 당나라에 충성하는 사타족 출신 이극용이 장안을 공격한다. 이 무렵 촉에 있던 왕중영의 밀서를 받고 내통하게 된다. 그 후 주온은 장안에서 황소를 몰아 내자 황소는 도주하여 산동의 태산부근에서 자결하였다. 이 전공으로 당나라 조정에서 양왕에 봉하고 좌금오위 대장군과 전충이라는 이름도 하사받는다. 이후 환관들이 소종 황제를 몰아내고 그의 장남 이 유를 세우자 주전충은 군대를 이끌고 장안으로 쳐들어가 재상 최윤을 비롯한 조정대신들과 환관들을 학살하면서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또한 봉상에서 72명의 환관과 장안에서 색출한 90여명의 환관까지 몰살시킨다. 지난 100여 년간 당나라 조정을 어둠속에서 지배한 환관들은 이렇게 간단하게 조정에서 사 라져 버렸다. 결국 환관은 송나라 때까지 세력이 커지지 못하게 되었다. 소종을 협박하여 낙양으로 천도 할 것을 강요한 후 장안을 무참히 파괴하였다. 그 후 소종을 살해하고 또한 소종의 자식들까지 몰살했 으며 소종의 9남 당 애종(또는 당경종)을 옹립했다. 머지않아 주전충은 마지막 황제 애종으로부터 선양 받고 애제를 소주(하남성 하택)로 보냈다가 이듬에 독살하였다. 또한 이극용도 쫓아버린다. 이극용은 908년 주전충 타도를 아들 이존욱에게 당부하면서 숨을 거둔다. 황제가 된 주전충은 당의 멸망이 부패 한 조정 대신에게 있다고 판단하면서 과거 당의 고관들을 싸그리 잡아들여 모두 죽인 뒤 황하에 그 시 체들을 버려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더욱이 당 현종처럼 자신의 양자의 아내 즉 며느리와 간 통하는 등 여러모로 말종이었다. 이존욱은 아버지 이극용의 원한을 가슴깊이 새겨둔 채 전쟁준비를 하 여 주전충을 공격하였다. 주전충은 대패하여 홧병으로 병석에 누워 있다가 후계자 문제로 셋째 아들 주 우규에게 살해당했다.
제 2대 폐제(AD. ?∽AD. 913)
주전충의 서자이며, 변론에 능했고 영리하였으며 지혜가 많았다. 후량이 건국된 이후 아버지 주전충에 의 해 영왕에 책봉되었다. 아버지 주전충이 병에 걸려 주우문을 다음 황제로 세우려 하였으나 주우규는 사 람을 보내어 아버지 주전충과 주우문을 살해한 뒤 황제가 되어 연호를 봉력으로 하였다.
재위 8개월 후 원상선이 금병으로 토벌해 오자 자살하였으며 사후 말제 주우정에 의해 서인으로 삭탈되 었다.
제 3대 말제(AD. 888∽AD. 923)
후량의 초대 황제인 주전충의 3남이며, 아버지 주전충이 즉위하자 균왕에 봉해졌다. 군사를 일으켜 주우 규를 쫒아내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주우정은 하북 3진을 항복시킨 진왕 이존욱에게 공격당하게 되었다.
결국 이존욱에게 개봉이 함락되면서 후량 왕조는 불과 16년 만에 멸망하였다. 균왕 주우정은 수도 개봉 이 함락되기 전에 그의 형제들이 모반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 즉시 皇甫麟(황 보린)을 불러내 자신을 죽이라 한 다음 건국루에서 황보린이 그를 죽였다.
사료 출처
曾先之(증선지)의 十八史略(십팔사략)과 司馬光(사마광)의 資治通鑑(자치통감)과 그리고 인터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