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익산서 문 여는 ‘또다른 백제’
[국립익산박물관 개관]
백제 미륵사터 유물 3만여점 갖춰
무왕 뼈 나왔던 쌍릉 대왕릉 목관
102년 만에 온전하게 복원·공개
‘유적 밀착형’ 반지하식 전시실
작품 배치·눈높이 해설 주목받아
사리 담은 작은 금제 항아리(금제 사리내호). 국립 익산박물관 상설전시관의 첫머리에 나오는 유물이다. 익산 미륵사 터 서탑을 해체하다 기단부 심초석 구멍에서 나온 사리 장엄구의 핵심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담았던 금제 항아리가 어두운 입구 끝에서 가물거린다. 다가가니 맑은 빛을 뿜으며 자태를 내보인다. 10㎝도 안 되는 금빛 몸체엔 광대한 미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넝쿨과 연꽃잎 문양이 약동하고, 무늬 사이엔 동그란 알 무늬가 풍요롭게 채워졌다.지난 10일 오전, 4년간의 공사 끝에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 상설전시관을 찾았다. 들머리를 수놓은 대표 유물은 백제 무왕이 세운 미륵사 터 서탑에서 나온 사리 장엄구의 사리내호(사리를 싼 안쪽 작은 항아리)였다. 자신의 몸체를 둘러싼 사리외호(사리를 싼 바깥 항아리)와 더불어 한국 미술사상 가장 빼어난 조형예술품으로 꼽히는 국보다. 이 명품은 독특한 벽체로 둘러싸인 가운데 관객을 맞았다. 고대 석탑의 탑돌 가장자리의 옥개석 선들이 계단처럼 정연하게 겹친 형상으로 재현한 벽체였다. 기획진은 이 벽체 한가운데에 원래 사리장엄구가 들어 있던 석탑 심초석 구멍 모양의 감실을 판 뒤, 사리내호를 놓고 조명을 집중시켰다. 사리내호에 뒤이은 1~3실 전시는 ‘또다른 백제’ 익산 역사문화권의 별세계를 차근차근 보여줬다.
1917년 익산 쌍릉 대왕릉을 발굴할 당시 나온 백제 목관이 지난 10일 오전 국립익산박물관 상설전시장에서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에서 주로 자라는 고급 수종인 금송으로 만들었다. 박물관에서 온전히 모양새를 복원해 전시한 것은 발굴 10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백제 마지막 왕궁으로 추정해온 왕궁리 유적의 옛 담장과 궁터 복원 모형으로 시작한 1실은 궁터에서 나온 변소 터, 공방 터 등 유물과 인근 제석사 터에서 나온 소조상, 백제 무왕과 왕비 무덤으로 유력한 쌍릉 출토 유물로 꾸려졌다. 시선을 붙잡은 건 1917년 발굴 이래 102년 만에 온전한 모습으로 처음 복원·공개된 쌍릉 대왕릉 출토 나무널 관이다. 일본에서 주로 자라는 고급 수종인 금송으로 만들었고, 연결부를 이은 못이나 관의 자재를 다듬은 솜씨가 당대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육안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이 목관이 나온 무덤에서 출토된 뼈를 2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감식한 결과 무왕이란 사실상의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열반한 부처를 바라보며 슬픔을 토로하는 제석사 터 출토 승려상도 처음 공개되며 강렬한 인상을 전했다.
익산 미륵사 터에서 나온 보살의 손. 일부를 구부린 손가락의 조형에서 간절한 열망이 비친다. 2부 미륵사 터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상설실의 중심인 2실 미륵사 터 유물실의 주인공은 서탑에서 나온 사리 장엄구다. 사리내호 못지않게 뛰어난 사리외호와 크기가 높이 3㎝ 남짓으로 3분의 2가 부서졌던 사리 담은 유리병을 온전히 복원해 내놓았다. 사리 장엄구 공양품을 감싼 직물로 추정하는 백제 시대의 정교한 자수비단, 금실 등도 보존 처리를 마치고 처음 진열됐다.
익산역사문화권 전반을 다룬 3실도 볼거리가 적지 않았다. 청동기시대 군산 선제리의 대쪽 모양 청동 도구도 처음 나왔고, 백제 금동 관모와 신발이 나와 유명해진 입점리 고분의 유물을 더불어 감상할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부여 왕흥사 사리기와 경주 감은사 사리기, 칠곡 송림사 사리기 등 국내 불교 사리 장엄구의 대표작을 한데 모은 특별전도 볼거리다.
미륵사 터 바로 아래 터를 잡은 박물관은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로 반지하식 깊이감을 낸 유적 밀착형 시설이다. 이전 전시관보다 3배 더 확장해 약 3만여 점의 유물들을 수장·전시하면서 익산역사문화권을 알리게 된다.
제석사 터에서 출토된 눈을 찡그린 승려의 상. 흙으로 빚어 불에 구운 소조상이다.
이날 처음 선보인 상설관 전시는 ‘또다른 백제 문화’ ‘백제의 오래된 미래’란 관점을 첨단 영상과 입체적 진열 형식에 녹여냈다. 최경환 학예사는 “유물의 원래 의미나 쓰임새를 전시 공간에 어떻게 도드라지게 살려낼지를 고민했다. 일본·서구의 새 전시 모델 등도 직접 가 살펴보면서 완결성 있는 전시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익산/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24099.html?_fr=mt3#csidxdaa7ca47a6e21f48c769045c663d396
이런 뉴스를 만날 때..
문화의 단절이란 아픔을 느낀다.
1500 여년 전 이 땅에 있었던 우리 선배님들이 가꾸어 온 문화에 친근함과 자랑을 느껴
가끔은 기회가 있으면 찾고 싶은 명소가 되어야 할 터인데..
기독교가 대세인 지금 불교적인 문화에 과연 몇이나 진한 관심을 보이며 관람을 할까?..
"사리 장엄구의 사리내호(사리를 싼 안쪽 작은 항아리)"
사리란 불교 수행자를 화장하면 생기는 보석같은 작은 덩어리.
석가세존은 전신이 사리가 되었다고 전할 만큼 많은 사리가 나와
주변 국가가 나누어 모셨다는 데.. 사리를 모신 곳이 타파(stupa thupa)로
자기와 친한 국가가 되면 사리를 선물하는 관습이 있었기에..
백제에도 신라에도 아마 고구려에도 부처님의 사리[진신사리]가 전해졌으리라.
그렇게 백제에 전해진 진신사리는 익산 미륵사에서 최고급 시설이며 장엄한 미륵사 석탑에 보관되어 전해졌다고.. 사진에서 보듯 10cm 정도 항아리에 모셔졌다는 것.
약 14m 높이의 미륵사 석탑은 한반도에서 가장 높게 지어지고 오래된 석탑이라 한다.
미륵(Maitreya) 은 현재 아미타불과 함께 미래에 오실 부처님으로 이스라엘과 기독교에서는 메시아와 같다는 설이 있다.
미래에 불교와 기독교가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되면 그 때 주는 미륵[메시아]이 모셔지지 않을까^^..
<아함경>을 시설하신 석가 부처님은 이미 열반에 드셨다고 보았기에..
고구려, 백제와 신라는 현재 서방에 계시다는 아미타[미타 신앙] 부처님과
미래에 오실 미륵 부처님을 모신 절들이 많았다.
지금 익산의 미륵사는 복원 중이고 김제의 금산사가 미륵불 사찰로 유명하다.
어느 사회나 갑이 있고 을이 있다. 갑은 을 위에 군림하는 상황이다 보니..
갑은 현실이 그대로 이어지길 바라고, 을은 현실이 바뀌기를 바란다.
갑은 현재 불인 아미타 부처님을 공경하고, 을은 미래불 미타 신앙을 꿈꾼다.
<잡아함경>을 공부하면 서방의 아미타 부처님, 미래의 미륵 부처님과
석가 부처님은 셋이나 하나임을 이해할 수 있을텐데..()..
보살의 손 사진을 보면..
서서 중생에게 도움을 주는 (관세음)보살의 손이 아닌가 한다.
제질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옥으로 만든 보살 입상이 아닐까?..
보살의 손을 포함한 전신 상이 전해졌으면 하는 아타까움이 있다.
열반한 부처를 바라보며 슬픔을 토로하는 비구 얼굴 조각상은
경북 제석사 터에서 출토된 것이라 한다.
태어남은 한 구름 조각이 일어남이요,
죽음은 구름 조각이 사라짐이라 하고
열반은 죽음이 아닌 헌 옷을 벗어버리는 것이라 하지만..
죽음 앞에 슬픔에 젖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눈꼬리를 올리며 바라보는 모습은
슬픔이 허망인 줄 알아 슬퍼지는 마음을 추스리려는 간절함으로 보인다.
한국인이 자기 조상에 대해 마음이 멀어지면
그 누가 우리 조상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대와 동떨어진 검은 복장에 검은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는 유태인을 보면..
비웃기 전에 저들이 유태인을 지키고 있다는 부러움이 있다.
박물관을 짓는 것은 칭찬받을 일인데..
그와 더불어 전시된 물건을 보며 그 안에 스며있는 조상의 향기를
우리도 즐기는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