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날씨가 느닷없이 더워지는 것을 보니 봄날은 갔는가 봅니다. 금년 봄날 내내 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시 한 편 적어봅니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시를 담아두고 있다 보니 제 ‘유년 시절의 윗목’ 생각이 났습니다. 어릴 적 여덟 식구가 살았습니다. 부모님과 제 오 형제에 할아버지까지. 그때는 대식구라고 할 수는 없었겠으나 먹고 사는 것이 녹녹하지 못했을 때였지요. 더러 엄마는 식구들 밥상을 챙겨주시고 부엌에 다 꺼져가는 아궁이 앞에 혼자 앉아계셨지요. 마루에서 부엌으로 통하는 작은 문을 열고 “엄마! 밥 같이 먹게 얼른 오세요.”라고 하면 엄마가 했던 말이 “응, 먼저 먹거라. 나는 부엌에서 혼자 먹을랑게 어여 먹어.” 하셨지요.
그때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밥을 먹고 상을 치울 때 엄마 얼굴을 보고 물어보았습니다. “엄마, 울었어?” 눈가가 얼룩져 있었지요. “아니, 연기가 매워서 그런 것이여.” 하면서 얼른 앞치마로 눈가를 닦으셨습니다. 그때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배고픈 삶의 무게를 아궁이 앞에 혼자 앉아서 ‘훌쩍거리던’ 엄마를 몰랐습니다. 지금이라고 제가 얼마나 엄마를 알겠습니까만, 기형도 시인이 제 ‘유년의 윗목’을 들춰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적어보았습니다.
( 기형도 시인은 1960년에 태어나서 1989년 3월 7일 서울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졸중으로 만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 그 해 5월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되었는데, 그에 대한 평가는 가히 폭발적이었고 하나의 새로운 고전으로 우리 문단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 기형도 전집에서 발췌 )
첫댓글 어른을 울리는 시 지요..
저도 항상 애송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