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음 봄에 우리는. 서울 혜화동에서 시집 서점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제목이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내용도 좋았고, 제목이 유독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지난해 봄과 올해, 그리고 이다음 봄에 대해서. 2021년에 귀농을 결심하고 선택한 작목은 복숭아와 블루베리였다.
복숭아는 12월 초에 심었다. 블루베리는 2022년 3월 말에 심기로 했다. 블루베리는 물을 좋아하지 않아 배수가 잘되야 한다. 마사토와 피트모스 등을 섞은 블루베리 전용 흙도 구입했다.
봄에 묘목을 옮겨심기 위해 주문한 화분이 도착했다. 가로세로 35cm 크기의 화분에서 키우다 다시 가로세로 1m의 블루베리용 큰 화분에 옮겨 심는 것이 나무의 생육에 좋다. 새로운 흙에서 영양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흙과 화분을 하우스 바깥에 쌓아 놓았다. 묘목 800주도 도착했다.
주말에 옮겨심기로 했는데 걱정이었다. 바깥에서 나무를 심는다면 화분의 무게 때문에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 나르는 일이 힘들 것 같았다. 두 아들이 감당하게 될 운반작업을 도울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화분의 절반쯤 흙을 채워 하우스 안에 배치해 놓고, 하우스 안에서 묘목을 심으면 일이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남편은 퇴직 후, 귀농준비로 "농사짓고 살려면 망치질이라도 제대로 할 줄 알아야 한다"라며 4개월 코스 건축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5일 동안 혼자서 해보기로 했다. 흙이 담긴 화분을 묘목의 종류에 따라 수량에 맞춰 배치하는 비밀 작업이 어렵사리 완성되었다.
하우스 안에 흙까지 담겨 있는 800개의 화분을 본 남편은 왜 혼자 일을 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묘목까지 심어서 화분을 옮기면 나무도 흔들리고 아이들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라는 말에 정말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아이들이 당신보다 키도 크고 훨씬 힘도 좋은데 뭐 하러 힘들게 혼자 일을 해!"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일도 해보지 않은 아이들이 힘들까 봐 미리 준비해 놓았다고 말했다. 온 가족이 이틀 동안 묘목을 심고 물도 주었다. 반듯하게 줄 맞춰 늘어선 화분의 나무를 보니 지나간 수고는 다 잊고 흐뭇했다.
90평 하우스가 공간이 남아서 키우는 김에 1,000주를 채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우리 차로 묘목을 실어 왔다. 종류별로 수량을 맞추다 보니 1,100주가 되었다. 다시, 묘목의 풀을 제거하고 꽃을 따주고 가지치기까지 마무리해서 화분에 옮겨 심었다.
3월 말에 심은 블루베리는 5월 초가 되자 초록색 이파리를 올리며 씩씩하게 자라났다. 하우스 안에 가득 찬 1,100주의 블루베리 나무는 충만함 그 자체였다. 옮겨 심어야 할 일도 무섭지 않았고, 열매 달린 나무를 상상하며 여러 가지 것들을 꿈꿔 보기도 했다.
2022년 5월은 상상 이상으로 더웠다. 하우스의 앞뒤와 옆창까지 활짝 열어 두었지만, 한낮의 뜨거운 햇살로 인해 나무들은 열 피해를 입었다. 천장 쪽에 문이 없으니, 큰 선풍기를 설치해 열을 빼 줘야 한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놓쳤다. 급하게 차광막을 설치했지만, 한발 늦었다. 우리는 말라가는 잎을 보며 물이 부족한 줄 알고 물을 주었다. 물을 싫어하는 블루베리는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했다.
농장에 갈 때마다 죽은 화분을 빼내는 것이 일이 되었다. 차라리 한꺼번에 다 죽었으면 한 번 크게 아프고 말았을 텐데, 9월 말까지 물 주고 풀 뽑는 등 일은 일대로 다 해 가면서, 죽어가는 화분을 지켜보며 너무 힘들었다. 남편은 마음이 아프다고 진즉부터 하우스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덕분에 그 어려운 일들이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며칠 전, 농업기술센터에서 블루베리 영양 관리와 병충해 방지 교육이 있었다. 블루베리가 수분과 기온에 민감하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강의 내용에 더욱 집중해서 들었다. 새로운 각오로 블루베리의 특성에 맞춰 비가림 하우스를 제작했고, 나무를 심을 큰 화분에 흙 채우는 작업을 한 달 넘게 했다. 이제는 묘목이 뿌리를 잘 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최상의 상태로 준비하는 것이 목표다.
나무는 말이 없고, 준비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나무도 우리 가족도 흙 속에 뿌리내리기 너무 힘들다. 초보인 만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의 조언을 잘 듣고,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조치를 해 줘야겠다. 흙 속에 단단하게 뿌리내릴 이다음 봄을 꿈꾸며.
첫댓글 부지런한 손놀림과 정성으로 저 불루베리 무럭무럭 잘 자라 뿌리발이 잘 해서
기대 이상의 소출을 내어 수고한 댓가가 있어주기를 기원드려요
농원도 유실수로 튼튼하게 잘 자라고 글밭도 덕분에 튼실하게 일구는 작가님은 마음부자입니다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저는 땅이나 식물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져요
덕분에 저도 덩달아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흙속에 뿌리내리기 연작 수필을 쓰고 있어서 지난간 실패담도 기록삼아 적어 보았습니다.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무는 말이 없고, 준비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 명언이네요.
하우스안에 정돈된 블루베리를 보니 넉넉하고 흐믓하겠다 싶어요.
올해는 블루베리가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서 마음을 풍성하게 해 줄 것 같아요.
좋은 글 잘 읽었어요.
지나간 이야기를 쓰기도 쉬운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작업도 녹록치 않아서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힘이 듭니다. 농장에 매달려 있으려니 다른 일들이 밀려 마음이 복잡합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메!!
시상에!!~~
너무나 고되고 힘들어서 지칠것도 같은데!~
젊음이 대변하듯 멋지십니다!
결실은 반드시 있겧지요!!
파이팅!
젊다는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여기 저기 몸이 아파서 힘이 듭니다. 몸만 건강하면 일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닌데요. 건강 때문에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