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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이 시간 간증 설교에 앞서서 먼저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변함없이 저를 믿어 주시고, 기다려주시고, 사랑으로 붙들어 주신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제가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사랑하는 목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21년 동안 때론 눈물로, 때로는 훈계로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키워주신 부모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1청년 선교회 선교회장, 문석준 형제입니다.
이 시간 간증 설교로 영광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요,
사실 여기에 모이신 분들의 대부분은 저보다 신앙에서, 그리고 삶에서 경륜이 더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나이도 어리고 아직도 부족한 게 많은 제가 이렇게 영 간증을 한다는게 민망합니다.
하지만 이 시간, 제가 제 자신을 솔직하게 내려놓고 말씀드릴 때
한 영혼이 어떻게 아버지, 주님, 목자님을 만나 은혜를 받았고,
변화되어 왔는지를 들으시며 아버지의 사랑을 더욱 느끼실 수 있는 시간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1997년 3월 21일에 태어났습니다.
저희 엄마 집사님께서는 비록 교회는 다니지 않으셨지만 신은 계실 것이라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제가 5살 되었을 때 열이 42도까지 올라갈 정도로 심한 폐렴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조미형 권사님께서 저희 가정을 전도해 주셨는데, 2주 연속 부흥성회를 참석 한 후 저는 폐렴을 치료 받았고, 엄마도 소화불량을 치료 받으셔서 2002년에 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동주일학교에서 신앙생활 하던 중,
3학년 때 아빠 집사님께서 미국으로 발령이 나셔서 가족 모두가 미국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은 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셨기에 형통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영어는 정말 “Hello” 정도밖에 몰랐던 저는 처음에 언어의 장벽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도전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빠른 습득력을 주셔서 1,2년이 지난 이후에는 어느정도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생활 3,4년 차에는 우수한 성적을 인정받아 오바마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지요.
물론 이 상은 대단한 상은 아니었지만, 목자님께 말씀드렸을 때 기뻐해주시고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도 저를 “그 오바마 상 받은 학생”으로 기억해주셨지요.
미국에서 지낸 4년 동안, 아버지라는 분이 제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미국 정착 초창기에 때론 어려움 속에, 힘듬 속에서 아버지께서는 틈틈이 하늘에 선명한 원형 무지개를 띄워주시며 저희 가족을 위로해 주시곤 하셨지요.
그리고 아빠 집사님께서는 다시 중국에 있는 본사로 발령이 나셔서 행복했던 4년간의 미국생활을 마무리하고 중국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미국과는 또 달랐습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차가 없으면 이동이 용이하지 않고, 미국 친구들과의 정서 차이 때문에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지만, 중국에서는 한국인 비율이 80%가 되는 국제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제 “인간경작”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 친구들과 정서적으로 맞다보니 같이 어울리면서 전에는 취하지 않았던 것들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게임으로 시작된 세상은 음악, 드라마, 등 여러 매체를 통해 급속히 제 삶을 채우기 시작했지요.
저는 하나를 시작하면 정말 열심히 들이파는 성격이라서 세상도 정말 열심히 취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앨범이 나왔으면 그 앨범에 있는 타이틀 곡 뿐만 아니라 모든 곡을 다 다운받아 들을 정도였지요. 또 스타크래프트는 잘할 때까지 하루에 2-3시간씩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만큼 세상에 빠르게 빠져 들게 된 저는 그나마 형식적으로 하고 있던 신앙생활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기도를 안 한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으로 집에서 가족 예배를 드릴 때에도 졸지 않은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는 오바마 상도 받고 신앙생활도 충만하게 하는 모범적인 학생이었으나 중국으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별로 없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저에게 2013년 제 신앙의 반전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10학년, 즉 고1을 마치고 미국 수능인 SAT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2달 정도 나와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2013년의 여름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종합선물세트였습니다.
아버지께서 강권적으로 은혜를 부어주셨지요.
기관장 교육 당시 저는 그때 막 영으로 들어오신 한분과 여러 대화를 나누며 영에 대한 사모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다음 주 주일에는 길에서 목자님과 악수를 한 뒤 철야에 와서 기도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악수해주시던 목자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때 굉장히 놀랐습니다. 기도하면서 울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목자님께서 얼마나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고 포기치 않으시는지 마음에 확 와닿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하나씩 느껴가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짝하고 있었고, 당시 본교회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던 저였기에 “난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너무나도 많은 은혜를 주셔서 제 손을 놓지 않으신 아버지의 사랑이 가슴에 절절히 새겨졌지요.
또한 이에 더하여 수련회 전 주일에 이희선 목사님과의 첫 가족 만남을 통해 당시 제 모습으로서는 참 과분한 비전과 칭찬을 해주셔서 힘을 주셨고, 수련회 때에는 처음으로 대언 말씀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께서는 2달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저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정말 변화되어야겠다는 뜨거운 마음으로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첫사랑으로 뜨거워진 저는 매일 밤마다 기도하면서 휴지를 10장 넘게 쓸 정도로 펑펑 울면서 기도했고,
날씨가 추워도 입었던 옷이 다 젖을 정도로 충만하게 기도했습니다.
난생 처음 아버지 앞에 기도하며 “아버지 사랑합니다” 외치며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온전히 아버지께 드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취하던 드라마, 웹툰, 게임, 음란물 등 세상 것들을 모두 다 끊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공부하다가 가끔 옛날 만민매거진들을 찾아서 영 간증을 들으면서 울기도 하고, 말씀무장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샤워할 때도 시간이 아까워 옆에 말씀을 틀어놓고 들었습니다.
날마다 영의 양식으로 채워지니 하루하루가 기쁘고 행복했고, 자연스럽게 성적도 노력하는 대로 역대급으로 잘 나왔습니다.
마음이 워낙 뜨거워서 전도하기에 힘썼고, 학교 성경 수업에서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게 너무 목자님의 말씀과 달라서 선생님과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선생님이 성령은 소멸될 수 없다고 가르치셔서 저는 수업이 끝난 뒤 성경책을 들고 선생님을 찾아가서 구절들을 조목조목 보여드리며 한 30분간 토론했던 기억도 납니다.
한겨울에는 목자님의 공의 채우심을 느껴보기 위해 창문을 열고 자보려고 했습니다.
물론 너무 추워서 곧 닫게 되었지만요 ^^
하지만 그렇게 뜨겁게 달려가던 저에게 한계점이 오고 말았습니다.
본교회에서 떨어져 있고, 믿음의 동역자도 없이 저 혼자 충만함을 유지하려다보니 참 쉽지 않았습니다.
4-5개월이 지나니 충만함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다시 세상 것을 조금씩 취하기 시작했지요.
부모님 몰래 드라마도 보고, 게임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점점 제 마음에 느껴지던 아버지와 목자님의 사랑 또한 식어졌고, 기본적인 신앙생활은 유지했지만 사실상 포기해버리게 되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생활을 하며 아버지께서는 항상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여 주셔서 고등학교에서 수석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참으로 놀라운 일들이 많았는데, 해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목자의 공간 가운데 항상 지켜주셨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6월,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대학 입시를 위해서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때 제 상태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오는게 두려웠고, 교회 사람들을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저는 제 신앙을 완전히 놓아버린 상태였습니다.
물론 어떤 사망에 이르는 육체의 일을 지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의 죄와 민망함 가운데서 교회에 가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럽게 여겨졌던 것이지요.
세상에 젖어 있었기에, 그리고 “난 아버지 은혜를 저버렸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교회에 오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다시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니 즐거움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학생주일학교에 가니 많은 분들이 환영해주어서 매주 교회 오는 것이 즐거웠고,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 믿음 안에서 친구가 사실 없었는데 믿음의 동역자들이 생겼다는 게 너무 감사했습니다.
9월에는 특별다니엘철야가 있었는데요.
저는 이번 기회를 꼭 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당시에는 본당 2층에 학생들을 위한 지정석이 있었는데, 보통 10시가 되면 다들 기도하다가 공부하러가거나 집에 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10시만 되면 비워지는 자리를 보며 안타까워서 “내가 기필코 이 자리를 사수하리라”라는 마음으로 자리를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다른 친구들이 나가는걸 보면서 저도 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리기도 했지만 또 마음을 다잡고 기도했습니다. 매일 기도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입은 셔츠가 땀에 흠뻑 젖고, 손은 너무 꽉 쥐어서 아플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했지요. 이번에는 절대로 아버지 주신 은혜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꼭 마음에 있는 온갖 악의 모습들을 버리겠다고 말이죠.
마음에서 발견되는 간음, 감정, 시기 질투 등 여러 모양으로 발견되는 모습들을 버리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42일이 지난 후 제 마음에 많은 변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정말 마음에 있는 감정, 간음 등의 악성들이 마음에서 많이 빠져나갔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가 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저에게는 정말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한명 있었는데,
“내가 이 사람을 품고 말리라”라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표정이 일그러져도 같이 있으려고 노력했고, 음료수 하나라도 뽑아주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점점 이 사람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들고 오히려 처해진 그 상황이 이해가 되면서 어떠한 말을 저에게 해도 웃으며 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제가 먼저 가서 손을 잡아주고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삶에서 적용시켜나가다 보니 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마음의 악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열심히 성결 되기 위해, 그리고 아버지 사랑을 느끼기 위해 달려갔고,
2015년 12월 25일을 기점으로 처음 믿음의 3단계 59.01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이렇게 높은 분량을 받을 줄 몰랐기에 너무나도 감사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동안 쌓아온 것들이 있었기에 자랑스러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또 1청년으로 올라와 처음으로 기관장 사명과 선교회 서기 사명을 맡게 되었기에 “아 인생의 클라이맥스를 찍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렇게 학교가 3월에 시작하기까지 꾸준히 기도로 쌓았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제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습니다.
연세대학교는 학교 교육 방침 상 모든 1학년들은 송도에 있는 국제캠퍼스에서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합니다.
따라서 저는 처음 해보는 대학생활에다가 주말에만 나올 수 있는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잔뜩 긴장한 저는 학교 가서 지금까지 쌓아온 기도와 충만함을 잃어버릴까바,
노심초사하며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았습니다.
기숙사 안에 있는 기도실에서 밤마다 기도하고, 의욕적으로 말씀을 들으며 공부를 열심히 했지요.
이렇게 나름 마음을 잘 지켜간다고 생각했고, 부활절을 기점으로 3단계 60.01을 받아 믿음의 반석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저에게 이 분량을 주신 것은 제가 그만큼 잘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적어도 크리스마스때보다는 더 성결 됐고 변화되었으니까 주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오산이었습니다.
반석의 분량을 받고나서 본격적으로 연단이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에서 친구들과 지내다보니 엄청난 혼란이 찾아왔지요.
말씀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무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대학생들 사이에 있다 보니 그동안 제가 지켜왔던 가치관, 생각들이 다 깨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요.
친구들이 소개팅에 나가고, 그리고 밤새 술 먹고 노는 친구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한심하다 한심하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마음속 깊숙이에는 그렇게 자유롭게, 자기 마음대로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예배와 기도 같은 신앙의 기본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지요.
저는 반석의 사람이었기에, 그래서 목자님의 희생과 눈물을 보장해드려야 했기에 더 모범적으로 살아야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이러한 세상이 보이다보니 죄송하지만 만민의 청년이라는 것이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왜 난 만민이기 때문에 하면 안 되는거지?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세상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밀리면 그 이후를 장담할 수 없었고,
또 절대로 목자님의 사랑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월요일에 송도에 가서 세상과 또 제 마음의 죄와 처절하게 싸우다가 너덜너덜해져서 금요일에 교회에 왔습니다.
그러면 정말 너무 힘들어서 표정도 어둡고, 축 쳐져서 금요철야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버지 앞에 죄송하고 또 민망해서 이희선, 이희진 목사님 인사는 도저히 못하겠고,
혼자 본당 2층에 앉아서 금요철야 예배를 드릴 때면 그렇게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준비찬양을 하며 목자님께서 따뜻하게 웃어주시는 사진이 화면에 나올 때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요.
“나 같은 사람을 목자님께서는 또 저렇게 웃으며 바라봐주시는구나,
그래 이겨내야지“라는 마음으로 또 다짐하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주일까지 충만하게 보내고 나면 다시 월요일에 송도로 돌아갑니다.
월요일에는 그 충만함을 유지하다가 화요일이 되면 주변에 보이는 것은 세상뿐이었기에 다시 그 충만함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지내다가 교회 오면 또 민망함 가운데 울고 했던 시간이 매주 반복되었지요.
처음에는 열심히 했던 기도도 어느새 식어지고 말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밤에 혼자 산책하면서 찬양을 들으며 울어도 보고, 아버지 불러보기도 했습니다.
혼자 몸부림을 치며, 눈물로 눈물로 아버지께 외쳤지요. 제발 도와주시라고,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시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보니 어느새 5월이 되었고, 저는 목자님 생신을 기점으로 3단계 70.01을 받게 되었습니다.
너무 민망한 모습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말씀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씀이 나올 때마다 분량을 받게 되니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민망한 마음뿐 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저는 70.01을 받고나서 “아 잘 이겨왔구나, 이제부터 더 잘해야지”라는 마음을 먹었지만 이미 저는 너무 지친 상태였고, 더 이상 이 세상을 이겨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주저 앉아버렸습니다. 싸우기를 그만둔 것이었지요.
기도를 하지 않으니 세상을 이길 힘도 없었고, 그냥 여기서 멈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무기력한 채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조구 교육을 기점으로 3단계 75.90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모습이 이렇게 민망하고, 말씀과 기도에 전무한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 믿음의 분량을 허락해주시는 것을 보며 감사하기는 하였으나, 지쳐있는 상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심지어 지조구 교육도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목자님께서 아버지의 사랑 7단계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때, 저는 아직 사랑의 1단계도 이루지 못했는데, 내가 저걸 언제 다 이루나 하는 생각 속에서 말씀이 굉장히 무겁게 다가왔던 것이지요.
저는 그래서 지조구 교육 후에 그동안 가져왔던 의문들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진리는 행복해야하는 것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은 즐거워야하는 것인데 왜 나한테는 짐으로 다가오는거지?와 같은 의문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지요.
매일 일기를 적으며 하게 되었던 고민, 그리고 그에 대한 해답을 조금씩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썼던 일기 하나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16년 7월 22일, 제목은 감사입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수많은 일들을 거쳐왔지만 그 가운데에서 아버지의 사랑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많은 것들을 느껴가면서 무서운 아버지가 아닌 사랑의 아버지, 나를 너무나도 따뜻하게 바라봐주시는 아버지로 느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때론 해답을 찾지 못할 때에도, 앞으로 가라고 채찍질 하시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시는 아버지...
이제 조금씩 그 사랑을 알아갑니다.
이 세상의 부모도 자식이 그 사랑을 알아갈 때 행복한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제가 이렇게 깨달아갈 때 얼마나 행복해 하실까요.
어떠한 저라도 사랑하시는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이요,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의 핵심임을 느껴갑니다.
아버지,
교회에 가야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고,
기도해야되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충성해야되기 때문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교회에 가고,
아버지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기도하고,
이러한 아버지를 잘 모르는 영혼들 안타깝기에 충성하는,
그러하기에 변함 없이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영혼들을 위해 살아가는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절절히 깨달아갑니다.
이제 저를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펼쳐보이시며 더 많은 영혼들이 이러한 아버지를 느껴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니까요.
실수해도, 잘 못해도, 때로는 너무 미련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제가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아버지,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경작을 마치고 아버지 품에 안길때는 진정으로 마음 중심에서부터 이 사랑을 알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제가 될게요.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아버지께서는 너무나도 따뜻한 분이시고,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러한 아버지를 오해해 잘 못할 때는 주눅이 들어 혼자 자괴감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의 심각하고, 수심이 가득하던 얼굴에 조금씩 웃음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8월, 저에게는 잊지 못할 하계수련회가 찾아왔습니다.
수련회 둘째날, 아버지께서는 특별한 체험을 통해 목자님의 사랑을 절절히 느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당시 참석한 청년분들도 아시겠지만, 그때는 중국에서 귀신이 들린 한 성도님이 오셨습니다.
청년 만남 때 같이 그 성도님을 위해서 기도하며, 찬양을 불러주었지요.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저는 남은 영의 분들 몇 명과 함께 이희선 목사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설교에서도 들으셨듯이, 이 성도님은 죄를 너무 많이 지어 공의로 봤을 때는 절대로 구원받지 못하시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희선 목사님께서는 귀신이 나갈 때까지, 새벽 1시까지 그 성도님께 기도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강경하게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라고 기도하시던 목사님께서는 어느 시점이 되니 “아버지, 목자님의 양떼입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시면서 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변에 있는 다른 분들도, 저도 덩달아 울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면서 나중에는 귀신이 조금씩 나가기 시작하면서 성도님이 중국어로 ”저도 새 예루살렘 가고 싶어요“하시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어쩌피 구원받기 어려운 영혼이니 조금 해보다가 그만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희선 목사님께서는 목자님의 양떼이니 구원해달라고 아버지 앞에 끝까지, 귀신이 나갈 때까지 간구하셨지요.
저는 그것을 보며 목자님의 사랑을 참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고, 목자님을 만나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저 자리에 내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목자님을 만나 말씀을 통해 지킴을 받고, 또 설령 우리가 구원받지 못할 상황에 이르렀어도 당신이 죄인처럼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으셔서 6년이라는 시간동안 아버지 앞에 처절하게 눈물로 구하셨을 모습들이 그려졌습니다.
그리고는..“목자님 감사합니다. 가족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신 목자님께서, 너무나도 부족하고 민망한 저를 사랑하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 대신 공의를 채워주셔서,
제가 이렇게 지킴 받고 세세토록 고통 받는 지옥이 아닌 아름다운 천국을 향해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심에 감사드려요”라고 고백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지요.
신명기 10장 13절에 보면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통해서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우리를 진리로 변화되라고 가르쳐주시는 말씀은 우리를 힘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주려고 하시는거구나. 우리가 행복하게 가라고 해주시는 거구나“라는 사실이 깨우쳐졌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 저를 향해 따뜻하게 미소 지어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나 많은 눈물이 났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아버지의 은혜를 저버리고, 목자님의 그 애타하시는 눈빛을 외면하며 세상을 바라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는 저를 질책하신 것이 아니라 아무 말 없이 믿어주셨고, 품어주셨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해주신 것은 완벽하기에 사랑해주신 것이 아니구나, 그리고 아버지는 나를 온전하게 되기까지 무섭게 노려보시며 채찍질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보듬어주시며 이끌어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느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따뜻한 사랑을 느껴가니 더 이상 말씀대로 행하지 못했을 때 자괴감과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이 아니라 “그래, 하나하나 해가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행해 나아갔습니다.
제가 한참 마음이 힘들 때 읽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도입부에는 이러한 글귀가 있습니다.
“모쪼록 나는 그대들이 더 어리석었으면 좋겠다. 너무 영리하게 코앞에 있는 단 1%의 이익을 좇는 트레이더가 아니라, 자신의 열정에 가능성을 묻어놓고 우직하게 기다릴 줄 아는 투자가였으면 좋겠다. 눈앞에 보이는 결승점을 향해 전력질주한 후 지쳐 헐떡이며 퍼져버리는 100m 달리기 선수가 아니라, 저 멀리 열망하는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우둔한 답사자였으면 좋겠다.”
저는 이 글귀를 놓고 기도해보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세상 교수도 이러한 마음일찐대 하물며 우리를 너무나도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한 것일지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한층 더 가깝고, 따뜻하며, 편안한 분으로 다가왔지요.
아버지는 우리가 변화가 더디다고 해서 혼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그 모습대로 사랑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온전치 못한 것은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으로써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앞으로 1년동안 분량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며 제 마음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바꾸어 나간다면 언젠가는 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지요.
제게 중요한 것은 빨리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마음의 악을 덮고 소위 선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제 마음을 세밀하게 살펴 악을 발견한 후 하나를 버리더라도 제대로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제가 반석의 믿음의 분량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마음에는 감정, 간음, 시기질투가 남아있으니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하나 벗어버리면 되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위의 글귀처럼,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달려서 목적지에 다다르기 보다는 조금은 천천히 가더라도 완주하는,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요한1서 4장 18절에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쫒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아버지를, 그리고 목자님을 이렇게 저를 사랑으로 참아주시는 분들로 느끼다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얼굴에는 웃음이 넘쳤습니다.
이전에는 기도하는 것이, 예배드리는 것이 힘들 때도 있었으나, 결국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으니 진리를 행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악을 버리고, 세상을 멀리하는 것도 결국에는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하는 것이며,
세상에서 오는 잠시 잠깐의 즐거움보다 찬양하며, 기도하며 마음에 채워지는 기쁨과 따뜻함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되었기에 쉽게 세상이 아니라 아버지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말씀대로 행하고 신앙생활을 할 저만의 이유를 찾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 마음을 느끼며 행복하게, 그리고 즐겁게 신앙생활하게 되니 다른 영혼들을 바라보는 눈 또한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세상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을 볼 때, “저건 본인이 뚤어나가야 해“라고 매정하게 생각했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이 얼마나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아버지께서 그러한 저를 어떻게 기다려주시고 따뜻함으로 품어주셨는지 느끼니 저 또한 세상에서 힘들어하는 영혼들이 이해가 되어지며 마음으로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채워지다보니 마음에서 감정, 교만등이 빠져나가게 되었지요. 따뜻함이랑은 거리가 멀었던 제가 아버지의 따뜻함을 느끼니 점점 그렇게 변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치며 마음에는 아버지, 주님, 목자님의 사랑이 점점 더 깊어졌지요.
이렇게 달려가던 중 어느덧 10월 창립이 되었습니다. 먼저 학생부에서 분량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분량이 나오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담담하게 지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분량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25프로가 성장한 4단계 01.01을 받아 영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화를 받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요.
처음에는 내가 영이라니! 생각하며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축하 인사를 받을 때마다 “내가 축하 인사를 받아도 되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얼떨떨했지요.
그리고 주일 새벽, 목자님께 영으로 들어왔다고 말씀드리니 목자님께서는 “축하하고 고마워요”라고 화답해주셨지요.
사랑하는 청년선교회 여러분, 그리고 여기 모이신 모든 여러분.
제가 오늘 간증 드린 내용은 제가 얼마나 선하고 아버지 은혜를 많이 받았는지 자랑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행하면 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드리는 자리는 더더욱 아닙니다.
저의 스토리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한 영혼이 자라면서 어떻게 아버지를 만나 은혜를 받고, 행복함을 찾기 위해 달려왔으며, 결국 아버지 마음을 느끼게 되었는지 말씀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착해서, 처음부터 말씀대로 잘 살아서 영으로 들어온 게 아닙니다.
제 삶 순간 순간마다 따뜻한 미소로, 사랑의 손길로 저를 이끌어주신 아버지, 주님, 목자님이 아니계셨다면, 아니 단 한 순간이라도 아버지께서 저를 붙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죽음으로 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목자께서 눈물로 이끌어주셨기에 저는 그 은혜에 감사하여 행복하게 살아왔을 뿐이고, 최고의 가치를 향하여 살았을 뿐인데 아버지께서는 영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게 더욱 행복한 것 같습니다.
이것을 해야한다, 저것을 해야한다는 율법적인 것이 아니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시는 아버지를 느끼며, 그리고 그 사랑을 나누며 우리의 마음도 더욱 따뜻해지는, 그런 삶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기에 행복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나를 내려놓는 것도 필요하고, 악을 버리며 이뤄야할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능히 할 수 있도록 돕는 원동력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과 목자님께서 이루어주신 99%라는 것이지요.
영으로 들어온 뒤에도 아직도 부족한 모습들이 많아서 지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러 무릎 꿇은 것만으로도 기뻐하시는 아버지, 찬양을 올려드릴 때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실 아버지를 느끼니 다시 힘을 얻고 앞으로 달려갑니다.
신앙이란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 마음을 알아드리고 느껴가며 더욱 온전해지기 위해 달려가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제 간증을 마치기 전에, 여러분들과 같이 불러보고 싶은 찬양이 있습니다.
바로 “사도요한의 고백”입니다.
이 고백에 사도 요한이 아닌 여러분의 고백으로 생각하시고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사도요한의 고백' - 한주경 찬양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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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부르신 찬양처럼, 저와 여러분은 목자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사람들이지만 목자님을 만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며 참된 소망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 우리가 가나안 시대, 그리고 대성전을 이룰 때 많은 영혼들이 물론 목자님의 권능을 보고, 그리고 말씀을 듣고 만민으로 오기도 하지만, 만민의 양떼들이 행복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을 보고 만민에 오게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자녀로써 산다는 것, 그리고 목자님의 양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진리가운데 온전히 거하지 못하신다고 해서 마음이 눌리시는지요?
아니면 혹시 세상의 유혹 가운데 주저앉아 버리신 분은 없으신지요.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항상 아버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이 되면 좋겠다고요.
오늘도 저희를 할 수 있다고 안아주시는 아버지,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라고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시며 아버지 보좌 앞에서 기도하시는 주님,
그리고 언제나 따뜻한 손으로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시는 목자님의 사랑을 떠올리시며 행복하게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훗날 새 예루살렘에서 재회할 수 있는 여기 계신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만민, 파이팅입니다.
이상으로 제 간증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
화요찬양예배 간증 (2017.2.21.화)
문석준 형제 (1청년선교회 선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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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버지의 사랑과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간증, 감사드립니다~ 은혜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