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버님, 1950년 10월 14일 흥남에서 옥고 2년 8개월 만에 극적으로 해방
“선생님의 생애노정은 새로운 소생의 폭발력을 재발시킬 수 있는 힘”
무고한 옥고의 배경과 새로운 자아각성
1948년 2월 22일 주일 아침 10시경, 참아버님께서는 기성교단의 질시와 공산당국의 종교말살정책이 야합한 가운데 평양 내무서에 구금되셨다. 평양 기독교 지도자 83명의 공동명의 투서로 이승만의 스파이, 사회질서 문란 등의 무고한 혐의가 씌워졌다.
4월 7일 공판에서 재판장은 사건 심리와 무관한 질문과 요식절차를 거친 후 사회질서문란죄로 단심 5년형을 언도하였다. 참아버님께서는 형량가감에는 관심 없이 최후로 판결문 중 ‘허구’라는 말의 삭제를 엄중히 요청하셨다. 재판장이 이를 수락하자, 수갑 찬 손을 태연
히 흔들며 희망의 암시를 주는 웃음으로 식구들을 격려하여 퇴정하셨다.
공판 당일 참아버님께서는 평양형무소로 이감되셨다. 전송하는 식구들이 눈물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실 때, 하늘을 찾아가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셨다. ‘이후엔 무엇이 올까, 하늘이 예비한 자가 누구일까?’를 궁금해 하시며 벅찬 희망으로 형무소를 향하셨다.
5월 20일 오후 3시경, 평양형무소를 떠나 흥남으로 이송되셨다. 17시간 흥남행 차 중에서 산야외경을 바라보시고 산골짜기 개울 길을 따라 걸으시면서 새로운 자아각성의 기회로 삼고 변치 않을 것을 결의하셨다.
참아버님께서는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읍 본궁리, 오늘의 흥남시 본궁동 특별노무자수용소와 흥남시 덕리, 즉 오늘의 덕동 특별노무자수용서에서 옥고를 치르셨다. 본궁에서는 단기간 계셨고, 출감하실 때까지 대부분의 기간은 아오지탄광 다음으로 참혹하다는 덕동 수용소에서 수형생활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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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중 생활 중에 느낀 하늘의 섭리의 손길
참아버님께서는 어려운 옥고자리에서도 하나님의 협조를 바라시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환경적 결속기반을 조성해 주셨다. 감옥이나 그보다 더 깊은 곳에 갇힐지라도 무한한 위로를 주셨다.
조용한 밤중이나 숨이 끊어질 듯한 순간에라도 하늘의 섭리의 손길은 은밀히 뻗쳐지고 있었다. 신념에 넘쳐서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머금는 심각한 입장에 서서 무엇이든지 문의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면 어느 샌가 해결의 한계를 넘은 자신을 발견하셨다.
그래서 한마디를 하게 되면 그대로 이뤄졌기 때문에 화제의 인물이 되셨다. 가장 심각하고 힘든 환경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은밀한 곳이었다.
옥중생활에서 예수님이 쫓기고 제자들이 배반했던 입장을 탕감복귀하셔야 했다. 영계의 협조로 12명 이상의 제자를 전도함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출발될 수 있었다. 참아버님과 옥중 제자들은 고생 가운데서도 말없이 깊은 천정을 교환하였다. 제자들은 참아버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고 가야 마음이 안정된다면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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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란과 흥남감옥 출감
1950년 6월 24일 주일 새벽, 북한군의 불법남침으로 한국동란이 발발했다. 개전 이래 열세였던 전세는 유엔군 참전으로 역전되었다.
1950년 8월 1일에 백 대 이상의 B-29 전투기가 흥남 공장 일대를 네 시간 동안 집중 폭격했다.
참아버님께서는 이런 사태를 예측하고 계셨고, 직경 12미터 이내는 지켜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계셨다. 그래서 지근에 있는 사람들에게 모두 자신의 주위에 있도록 일러 주셨다. 이런 권고를 듣고 가까이에 모인 사람들은 기적적인 하늘의 가호를 입었다.
아군은 10월 10일 원산 탈환 후 흥남에 상륙했다. 수용소 측은 12일 형기 7년 이상이 된 수인들부터 산 속으로 데려가 처형했다. 당초 형령 5년을 언도받고 수감되셨던 참아버님께서는 1948년 9월 북한 정부수립 기념조치에 따라 3년4개월로 감형돼 계셨다. 순서상 참아버님의 차례는 3일후였다.
10월 14일 새벽 2시경, 하늘의 참아버님 구출작전이 본격 개시됐다. 아군의 총공격으로 공산군이 퇴각함에 따라 참아버님께서는 기적적으로 참화를 모면하시고 출옥하셨던 것이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로 2년8개월만의 극적 해방이었다. <출처: 「참부모님 생애와 섭리 1권」 pp 223~251>
고난에 대한 참아버님의 말씀
* 모든 어려움을 나 홀로 당한다고 생각 말라. 하나님과 같이 당한다고 생각하라. 나에게 닥치는 모든 고난과 시련은 그것을 통하여 하늘의 지난날을 바로 체휼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고난이 닥칠 때는 기뻐하고 감사하라. 그것은 곧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증거이다. (「뜻길」
* 흥남감옥이 나에게 불행을 갖다 주지 않았어요. 통일교회 교리가 퍼지는 세계 도처에 있어서 통일교회 원리말씀을 듣는 젊은이의 가슴에 흥남감옥 생활을 통한 선생님의 생애노정이 새로운 소생의 폭발력을 재발시킬 수 있는 힘이 솟게 하는 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선집 38권」 p132)
* 감옥이 나에게는 무서운 곳이 못 돼요. 채찍이 제 아무리 무섭고, 그 환경이 제 아무리 모질다 하더라도 그 사랑을 흠모하는 마음을 점령 못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아버지를 부르고, 하나님을 위하는 향상을 꺾어 내지 못했어요. 그 힘을 중심삼고 나는 종적인 단계를 해방할 수 있는 터전을 공고히 닦은 것입니다. (「말씀선집 184권」 p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