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10월 19일 중국 작가 루쉰魯迅이 향년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루쉰은 1881년 9월 25일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성내城內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으로, ‘루쉰’은 등단작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할 때부터 썼던 필명이다.
루쉰이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는 한림편수翰林編修로서 베이징北京에서 관리 생활을 하고 있었고, 집은 약간의 논밭과 점포를 소유하고 있었다. 즉 루쉰의 집안은 전형적인 봉건 소지주 가문이었던 셈이다.
루쉰은 6세부터 독서를 시작했는데 11세 때 우리나라로 치면 서당격인 삼매서옥三昧書屋에서 수경오壽鏡吾라는 선생에게 사사했고, 집에서는 증조부에게 글을 배웠다. 그 외 혼자서 중국 고서와 야사 등을 즐겨 읽었으며, 어른들에게서 민간전설과 설화 등을 들을 때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루쉰 자신은 어린 시절 안고촌安稿村 외가에서 보냈던 시절을 특별히 기억한다. 그는 1922년에 발표한 <사희>에 그 무렵 외가마을 소년들과 천진난만하게 놀았던 여름철 추억을 선명하게 술회하고 있다. 루쉰은 “그곳은 내게 천국이었다. 모두들 ‘ 오냐, 오냐!’ 해주었고, <시경> 등을 외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소외 없이, 동질감으로 가득찬 유년기의 인간적 충만이 사람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학력도 경제력도 정치권력도 사회적 영향력도 서로 비교하는 법 없이 오직 천진난만하게 상대를 인간으로 대한다. 루쉰의 표현대로 말하면 ‘천국’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천국을 스스로 잃고 모두들 도시에서 악착같이 경쟁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유년기를 보살펴 주었던 ‘공동체의 근원’ 어머니는 “멀리 북간도에 계시”고, 벗들도 “별이 아슬이 멀 듯이” “너무나 멀리 있”다(윤동주 <별 헤는 밤>). 삶을 돌아보며 살아갈 줄 아는 정도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회복할 길 없는 수라장에서 허덕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실존 앞에서 절망하게 된다.
아름답기만 하던 유년기의 루쉰에게도 그런 날은 뜻밖에도 너무나 일찍 찾아왔다. 그가 겨우 12살 때, 과거 합격자였던 할아버지는 아들이 계속 등과에 실패하자 뇌물로 국면을 돌파하려 했다. 심부름 갔던 하인이 어리석게도(!) 고관에게 영수증을 요구했고, 그 때문에 할아버지는 구속되었다. 투옥 사건을 계기로 루쉰 집안은 급속히 몰락했다.
뒷날 루쉰은 “먹고 살 만하던 사람이 갑자기 몹시 어려운 처지로 떨어지게 되면, 몰락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깊은 어둠과 비애를 담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가 자신의 불행한 소년기에서 유래하였다고 생각하면 루쉰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