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東 26 Healing 散步會 對馬島 上陸記
고교시절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이후 45년 만에 동창생 11명이 일본국 대마도로 산보여행을 다녀왔다. 굳이 의미한다면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따라 가본 것이고 개인적으론 한말 의병장으로 대마도에 유배되어 순국하신 면암 최익현 선생의 유적(遺跡)을 답사하러 떠난 테마기행이었다.
여행의 발단은 日本通 진규의 제안이었고 이를 저돌적으로 밀어붙인 힐링 산보회장 강호의 추진력과 섬세하게 실행한 총무 효선의 역할분담 덕이다. 여기에 탁월한 photograper & story teller인 명호와 섭재가 가세하니 금상첨화 주마가편이었다. 이바구꾼 기덕과 철이 윤활을 하고 상남자인 국가대표 춘표와 핸썸 가이 기완이 배경을 이루고 돌쇠 같은 성규와 자상하고 치밀한 준호의 준비가 어우러진 ‘드림팀’이 이룬 작품이었다.
여행만한 공부가 없다고 다들 말하지만 실은 불편하고 낯선 생활이기에 우정 다니지는 않았다. 등산이 힘든 동창들끼리 모여 서울근교를 트래킹 하던 힐링 산보와는 규모나 여정이 다르기에 내심 걱정도 많았다. 더욱이 빠듯한 일정에 기차와 배를 타고 가는 것이기에 혹여 차편을 놓칠까 걱정되어 밤잠을 설치니 소풍전야의 초등학생 기분이었다.
딱히 할 일이 없는 기덕과 성규는 마침 지방 사업체를 둘러보려는 효선의 일정에 묻어 자동차편으로 하루 전에 부산을 향해 출발하니 가히 마음은 상쾌하고 뜻은 장대하였다. 중부 내륙고속도로 코스를 잡아 제천에서 사업 미팅과 점심을 하고 부산 신항 인근에 도착하니 멀리 거가대교가 보인다. “개새끼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거제를 이번 기회에 보려고 해저터널과 2개의 사장교로 연결되는 전장 8.2 km 길을 가니 대한민국의 국력이 실감난다. 33년전 처음 미국에가 샌프란시스코의 바다 밑을 통과하는 지하철과 이층다리인 Bay Bridge를 보고 감탄했던 자신이 무색하였다. 경동동창회장 남상태 선배가 최근까지 사장을 역임했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덕분에 6,25포로수용소와 멸치잡이로만 유명했던 궁벽한 어촌이 최고로 경기가 좋은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니 상전벽해란 이를 말함이다.
단체여행을 하다보면 늘 고문관이 나오고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들이 터지게 마련인데 명문고교의 우수반과 왕손출신들이 거개인지라 한사람의 일탈 없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대마도의 때 묻지 않은 자연속에 요란하거나 사치하지 않은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었으니 힐링이란 바로 이를 말함일 것이다.
쓰시마(對馬島)는 지리적으로는 조선의 영토가 되었어야 함에도 워낙 척박한 땅이기에 조선인들이 자리 잡지 못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종 때 왜구들의 본거지인 이곳을 점령한 기록이 있고 일찌기 백제인들이 도래하여 하비루(阿比留)라는 성씨를 이루고 살다 1246년 지금의 카미자카 공원인근에서 고레무네 시게나오의 군대에 패하여 이후 소가(宗氏) 가문이 득세하여 번주가 되었다하는데 실은 역사적 근거는 없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일본인들이 근거 없는 속설이라면서도 게재한 이유가 퍽이나 궁금하지만 차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대마도의 번주는 요즘으로 치면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며 공무역을 통해 살아가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토미 히데요시 편에 서 조선에 출정하여 수만의 군사를 다 잃고 몰락한다. 이후 겨우 조선과 다시 통교하여 그 유명한 조선통신사들의 일본방문의 안내와 기착지로 기능하며 연명했으니 지금도 그 유적이 곳곳에 산재한다.
(대마도 남단 이즈하라항 인근의 조선통신사 비)
통신사비와 역사박물관을 보고 덕혜옹주의 봉축비(근일에 한국관광객을 위해 세운비로 옹주의 결혼은 봉축할 일은 아니었다)를 관람한 후 면암 최익현 선생을 추모하러 수선사를 방문하니 조상의 얼과 절개가 가슴을 벅차게 한다. 선생은 한말 관직에서 물러나 충청도 청양에서 후학 양성을 하다 74세의 나이에 창의(倡義)하여 호서, 호남의 의병을 지휘하다 일본군에 잡혀 이곳 대마도에 유배되어 “왜놈의 것을 먹을 수 없다”며 단식한 끝에 순국하셨다. 모름지기 장부(丈夫)라면 의롭지 못한 일에는 분연히 맞서는 의분(義憤)이 있어야 할 것이니 公의 살아온 발자취가 나를 숙연케 한다. 조선의 마지막 왕녀로 대마도 번주의 아들에게 시집와 비운의 삶을 산 덕혜옹주의 이야기도 가슴 뭉클한 사연이다. 대마도에 얽힌 조선의 恨과 緣을 후세들은 알고 다니는 것인가. 무례하고 공중 질서의식이 없는 몰지각한 일부 한국관광객 때문에 어느 주점에는 “한국관광객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어 나를 부끄럽게 한다.
(최익현선생 순국비에서 미래인력연구원 이사장 이진규 고려대 교수와 필자)
이번 여행은 쓰시마의 남단인 이즈하라 항으로 들어와 섬의 반쪽밖에 보지 못했다. 다음엔 부산에서 52km 밖에 안 된다는 대마도의 북단 히타카쓰 항으로 들어와 86km 의 남북을 종단하는 코스를 잡으면 대마도의 속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함께 한 모든 이들과 앞으로도 의미 있는 여행을 할 것을 기약하며 첫 해외원정 힐링 산보의 막을 내렸다.
“꽃보다 할배”라는 老 탈랜트 들의 해외여행 프로그램이 화제이다. 고령화 사회를 향해가며 나타나는 trend 이겠지만 chemistry 가 맞는 동창생들과 함께 하는 여행도 많은 것을 보고 우정을 다질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본 여행을 기획하고 후원한 미래인력연구원 이사장 이진규 교수와 실무를 담당한 안은지 간사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2013년 추석을 앞두고 천안에서 安堂 崔基德 쓰다
첫댓글 힐링산보회 대마도 여행기의 대미를 장식한 좋은 글이군!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리시게.
역사와 추억은 사실도 중요하겠지만 사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동창들끼리의 대마도 여행을 역사적 배경을 곁들여 아름답게 승화시킨 안당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진짜 진짜 대단하다, 安堂의 博覽强記에 존경의 뜻을 표한다.
참 좋은글이네
안당의 좌우의 편견없는 좋은글이 중앙지에도 자주 게재되면 좋으련만.....
안당의 글은 물흐르듯이 유려한 꾸밈없는 문체가 항상 부러웠는데, 여행에 동참한 친구로서 간과했던 순간의 생생함을 더하는구만.
누구나 느낌은 가질 수 있을지언정, 그 느낌을 표현하는 것은 벌개의 재주인지라 안당의 내면이 풍요로움은 물론 사물을 보는 따뜻한 인식과 민족의 아픔을 일깨워 내일을 다지려는 계도의 깊은 의미도 담고 있어 좋았다네. 가일층 분발을 기대하며... 하비루는 아비루가 맞은 표현인 듯하네.
남은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 친구들의 격려와 상찬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서로 북돋고 아끼며 배려하는 아름다운 정을 나누며 살기를 기원합니다. Everlasting Smile, Dear my buddies, Good Luck n be health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