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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트 릿지에서 비박한 이튿날 아침, 이때만 해도 추위로 몸을 새파랗게 얼었지만 조종환(왼쪽)씨와 박석헌씨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다. |
"죽음의 고비를 몇 차례 넘기다 보니, 이제는 눈짓 손짓만으로도 마음을 읽을 정도가 됐어요. 처음 시작할 땐 서로 말들이 많았는데 말이죠"-조종환
"나보다도 상대방이 무사하길 바랐죠. 둘 중 한명만 다쳐도 안전한 하산을 보장받을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죠"-박석헌
지난 8월 말 캘리포니아 포티너스(Fourteeners) 15좌를 완등한 남가주의 두 산악인의 말이다. 산 좀 탄다하는 이들도 평생의 목표로 삼거나, 몇몇 봉우리들로 포기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위험하고도 어려운 완등을 만 1년만에 해치웠으니, 듣는 이들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한다.
포티너스는 1만 4000피트를 넘는 봉우리를 일컫는 말로 가주에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미 본토 최고봉인 마운트 휘트니(1만 495피트)를 위시한 13개의 봉우리와 이들과 마주하고 있는 화이트 마운틴, 그리고 오리건 주 접경에 있는 마운트 샤스타까지 모두 15개의 봉우리로 이뤄진다. 미터로는 대략 3280미터이니, 수목한계선을 훌쩍 넘긴다. 그렇다 보니, 많은 봉우리들이 정상 언저리에 만년설을 이고 있거나, 빙하를 끼고 있는 것도 있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봉우리들은 삐죽빼죽 날선 화강암 덩어리들로 이뤄져 어느 것 하나 쉽사리 등정을 허락하지 않는 준봉들이다.
암벽등반으로 유명한 남가주 산악회의 회장이기도 한 박석헌(57세)씨와 조종환(52세)씨의 등반의 뿌리는 고교시절에 닿아 있다. 종환씨는 80년대 초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을 시작으로 유럽의 아이거 북벽, 파키스탄 북부 발토로 빙하의 트랑고 타워 등을 등반했다. 산악인 고 박영석의 사촌형이기도 한 석헌씨는 81년 남가주 산악회의 창립 멤버로 이듬해 히말라야 산맥의 푸모리봉의 원정을 이끌었다.
지난해 6월 마운트 랭글리로 시작해서 두번 째 등반에서는 사흘만에 다섯 개의 봉우리를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이 기록은 한인 등반역사에서 최초로 기록될 만 하다. 팰리세이드 빙하를 둘러싼 봉우리들로 책상 크기에서부터 소형 자동차 크기의 날선 바위들이 아무렇게 던져진 천길단애의 능선이 바라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난공불락이다.
"무게를 줄이느라, 드라이 푸드와 장아찌, 멸치 볶음만으로 사흘을 버티다가 내려와 형이 끓여주는 자장면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종환씨에게 힘들었던 얘길 듣자니, 한다는 얘기가 자장면 얘기라니. 등반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는 반증인가.
그러나, 자세한 등반 얘기를 듣자니, 몸서리가 쳐진다. 몇 해전 기자도 폴레모니움과 실을 등반했던 터라 그 때의 고통이 생생혀져서다. 썬더볼트 빙하에서 캠프를 차린 이들은 이튿날 오전 9시에 출발해서 오후 5시에 썬더볼트 정상에 선다. 캠프로 오르내리는 시간과 체력저하를 피하기 위해 칼날 능선 돌틈에서 비박을 한다. 역시 무게를 줄이느라 막영구를 제대로 챙길 수 없었기에 살을 에이는 추위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샌다. 다음날 수프 한모금과 초컬릿만으로 요기를 한 이들은 6시에 출발해서 흔들거리는 돌들을 타고 넘으며 4개의 봉우리들을 차례로 정복한다. 마지막 정상에 선 것이 오후 2시 30분께. 정상적인 하산이었다면 행복했으리라. 애초에 없던 길을 잘못 잡아 킹스 캐년으로 하산하다가 다시 정상에 되돌아가 릿지쪽으로 길을 잡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잘못된 길. 결국 하산시간을 놓쳐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가 기진맥진한 채로 다시금 비박을 감행한다. 끼니라고 남은 건 초컬릿 반 토막과 트레일 믹스 몇 알이 전부. 이튿날 새벽, 고드름을 씹으며 빙하를 횡단해서야 사흘간의 길고 긴 등반이 끝난다.
"그동안 선·후배들이 도와줘서 힘들지 않았어요. 때로는 동행을 해줘서 외롭지도 않았구요. 이제 먼저 간 영석이한테 찾아가 소주 한잔 올려야지요." 3년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의 추모등반 출발을 앞두고 있는 석헌씨는 그와 함께 올랐던 인수봉과 한라산, 설악산 천화대 등반길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
조종환씨가 이제는 한동안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야겠다는데, 박석헌씨는 후배들의 등반길을 돕겠단다. 하지만 "록짐(실내암장)에 가면 언제라도 이들을 볼 수 있다"고 언제나 이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 이광훈 전 회장이 한마디 거든다.
백종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