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엄경산림 대법회 64강-4 (2015. 6. 1.)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
十行品 第二十一之二
五. 重頌
14. 第十 眞實行
(3) 同佛善根 (4) 入佛種性
(5) 入佛慈悲種性 (6) 入佛智慧種性
(7) 諸佛의 眞實語를 學習
(3) 同佛善根
三世所有一切佛로 悉與等心同智慧하야
一性一相無有殊하니 此無碍種所行道로다
已抉一切愚癡膜하고 深入廣大智慧海하야
普施衆生淸淨眼하니 此有目者所行道로다
已具一切諸導師의 平等神通無二行하야
獲於如來自在力하니 此善修者所行道로다
遍遊一切諸世間하며 普雨無邊妙法雨하야
悉令於義得決了하니 此法雲者所行道로다
能於佛智及解脫에 深生淨信永不退하야
以信而生智慧根하니 此善學者所行道로다
能於一念悉了知 一切衆生無有餘하야
了彼衆生心自性하니 達無性者所行道로다
同佛善根. 부처님의 선근과 같다. 라고 하는 내용인데요.
三世所有一切佛로, 과거ㆍ현재ㆍ미래에 계시는 모든 부처님.
悉與等心同智慧하야,
모두 다 평등한 마음으로 더불어, 같은 마음으로 더불어 지혜를 같이해서,
一性一相無有殊하니, 한 성품이요. 또 하나의 모양으로써 다를 바가 없으니, 此無碍種所行道로다. 다른 것이 왜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스스로 無碍. 걸림이 없는 어떤 마음상태가 되면 그것이 다 평등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실은 내 마음에서 그것을 동등하게 볼 때, 그것이 걸림이 없는 것이고, 또한 평등한 것이다. 경계가 어떠하냐? 하는 것은 그렇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계가 같을 리는 없습니다.
경계는 언제나 차별합니다. 無碍種의 所行道로다.
已抉一切愚癡膜(이결일체우치막)하고,
이미 일체우치의 막을 걷어내고 = 抉. 이것은 도려낸다. 긁어낸다. 하는 결자입니다.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은 눈을 가린 막과 같은 겁니다.
그것이 결막염이니 뭐니 막이 많잖아요. 그래서 눈이 어둡다든지, 침침하다든지, 안 보이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그래서 어리석음을 어둠에다 비유를 하잖아요. 어둠이 있으면 사물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 합니다. 어리석음이 있으면 눈에 막을 끼운 것 같아서 옳은지 그른지 옳고 그른 것, 앉을 자리 설 자리, 때와 때 아닌 것, 이런 것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 한다. 그런 비유입니다.
深入廣大智慧海하야, 광대한 지혜의 바다에 깊이 들어가서,
왜냐? 어리석음의 막을 다 도려내듯이 긁어냈으니까 광대한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서, 普施衆生淸淨眼하니, 중생들에게 청정한 눈을 널리 베푸니
此有目者所行道로다. 이것은 눈 있는 사람 = 지혜의 눈이 있는 사람 = 밝은 눈이 있는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참~ 아주, 글도 아름답고 뜻도 깊고 그렇습니다.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인생을 사는데 지혜의 안목. 그것이 제일 우선하는 일입니다. 지혜의 안목이 있어야 그것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지, 어떤 경계가 어떻다. 물질의 상태가 어떻다. 그것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已具一切諸導師(이구일체제도사)의, 이미 일체 모든 도사의
平等神通無二行하야, 평등한 신통과 둘 없는 행을 이미 갖추어서,
그렇습니다. 不二行, 無二行이라고하는 것은 우리 절에 들어갈 때, 不二門이 있듯이 不二行입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인 차별. 일체 법은 둘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 법은 전부 상대적인 차별로 이루어 졌는데, 그것을 전부 하나로 보는 것. 그래 유마경에서 크라이막스가 뭡니까? 不二법문이지요. 유마거사와 부처님의 제자들과의 不二법문에 대한 논의가 유마경의 아주 절정을 이루는데요.
유마거사가 병이 들었는데요.
‘내가 병이 들었는지 부처님께서 뻔히 아시는데, 제자들을 시켜서 문병을 왜 안 오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부처님이 그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전부 낱낱이 보내려고 해요. 거기에 목건련ㆍ사리불ㆍ수보리ㆍ가섭ㆍ아란, 내 노라 하는 소위 10대 제자가 거기에 나옵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10대 제자” ←이렇게는 안 되었지만, 열 명의 상수제자들이 거기에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전부 아이고 나는 그 유마거사한테 병문안 못 갑니다. 왜냐? 그 거사는 지혜가 아주 뛰어나셔서, 내가 옛날에 좌선하고 있다가 그 거사한테 아주 오지게 깨졌습니다. 또
나는 과거에 설법을 하고 있었는데, 그 거사가 지나가다가 내 설법하는 소리를 듣고는 그것이 무슨 설법이냐고 하면서 나를 아주 오지게 박살을 낸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언제 걸식을 하러 갔다가 마침 그 거사를 만났는데 그 거사가, 걸식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것이 걸식이냐고 하면서 사정없이 나를 비판을 하고, 바른 걸식은 이런 것이다. 그렇게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어디서 좌선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거사가 지나가다가 좌선하는 내 모습을 보고, “여보시오. 좌선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좌선인줄 아느냐?” 하면서 정말 아주 폭포수같이 흐르는 그런 설법으로써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을 다 낱낱이 그야말로 박살을 내는 그런 장면이 유마경에 있잖아요. 아~ 대단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누구도 문병을 못가는 겁니다.
네보고 “가라.”, 네보고 “가라.”, 10대 제자 다 시켜도, 나는 못가겠다.
그 사람 만나면 혼날 것 같아서 겁이 나서 못가겠다. 마지막에 문수보살보고 가라고하잖아요. 할 수 없이 문수보살이 최종 지명자가 돼서, 사실은 문수보살도 좀 떨리는데 하는 수 없이 문수보살은 갈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문수보살이 나머지 모든 제자들하고 그 수많은 보살들을 전부 대동해서 인솔해서 가가지고, 유명한 거사하고 부처님의 제자들과 훌륭한 보살들이 만나서 그냥, “병문안 왔습니다. 견딜 만합니까? 약이라도 좀 드십니까? 언제쯤 낫는답니까?” 이런 소리 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거기서 한판 법담이 오고가는데, 거기 주제가 뭐냐?
불이법문인 겁니다. 둘이 아닌 법문. 여기 無二行 했는데요. 無二나 不二나 같은 뜻이지요. 사찰마다 不二門이 있잖아요. 그것이, 不二라고 하는 낱말하나가 불교의 궁극적 이치를 표현하는 겁니다. 이 세상은 전부 둘입니다.
차별입니다. 불평등입니다. 그런데 그 근본자리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차별과 평등. 둘로 밖에 이야기 안 된다. 그러나 내면에 있어서는 평등이다. 이 말입니다. 평등 속에 평등을 바탕으로 차별이 있고, 차별 속에 평등이 있고요. 그래서 문수보살하고 불이법문이야기를 좍~~~ 이렇게 해오지요.
30 몇 명이 나와서 하는데, 최후에 문수보살이 아주 훌륭한 불이법문을 하는데요. 문수보살이 또 유마거사에게 깨지는 광경이 거기서 또 나오잖아요.
그 천하의 문수보살도 불이법문가지고 유마거사한테 깨지잖아요. 그래 문수보살이 “우리는 다 불이법문을 이야기했고, 마지막 나도 했습니다. 비로소 거사의 차례입니다. 거사께서 불이법문에 대해서, 不二의 이치, 둘이 아닌 도리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하세요.” 라고 딱 하니까 杜口毘邪(두구비야)라 그래요. 비야리 성에서 입을 딱 막았다. 유마거사가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겁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말 않는 것이야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제가 야구 보다가 언제나 욕하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천하에 수억 씩 받는 프로선수가 떡~ 서서 헛 방망이도 한번 못 휘두르고 삼진아웃 되는 것. 그 대목에 가서는 저는 사정없이 욕하지요. “그러려면 우리 집 고양이 데려다가 세워놓지 네가 왜 거기 서 있느냐? 저기 공양주도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얼마든지 한다. 프로가 되어서 헛 방망이라도 한번 휘두르고 나가야지, 가만히 서 있느냐?” 고 저 혼자 막 그렇게 욕을 합니다.
아무튼 유마거사는 그 짓 밖에 안 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그것이, 그 도리가 최고의 불이법문의 소식을 보여준 것이라고, 그 이후로 그냥 온갖 조사ㆍ온갖 훌륭한 선지식이 찬탄ㆍ찬탄ㆍ찬탄을 그냥 쏟아놓는 것 아닙니까? 문수보살은 불이법문에 대해서 가타부타 한 마디 말 없습니다. 오로지 그저 유마거사 불이법문ㆍ말 않는 것ㆍ가만히 있는 것. 가만히 있는 것으로써 不二의 소식을 보였다고 하는 거기에 대해서 그냥 무수한 선지식들이 얼마나 많은 찬사를 보내는지 게송을 짓고, 논문을 짓고, 그냥 법문을 하고 2천여 년의 세월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잖아요. 2천여 년의 세월을 그렇게 해온 겁니다. 그것이 여기 無二行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不二行. 그 소식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많은 설법 가운데, 차별과 평등. 그 속에서 不二는, 無二는 평등을 뜻하는 것이지요.
獲於如來自在力(획어여래자재력)하니, 여래의 자재력을 얻으니
此善修者所行道로다. 잘 수행한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遍遊一切諸世間(변유일체제세간)하며,
일체 모든 세간에 두루ㆍ두루 노닐며,
普雨無邊妙法雨하야, 가없는 미묘한 법의 비를 널리 비 내려서,
悉令於義得決了하니, 다 이치에 대해서, 이치로 하여금
決了라고하는 것은 해결하는 것. 깨달아 아는 것. 깨달아 앎을 얻게 하니,
此法雲者의 所行道로다. 이것은 법의 구름 가진 사람.
법의 구름 가진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일체 세간을 돌아다니는 것 좋습니다. 불자가 왜 돌아다니느냐? 無邊妙法雨.
미묘한 법의 소리. 진리의 가르침을 비 내리려고, 진리의 가르침을 펴려고 돌아다니는 겁니다. 무슨 바늘 하나주면서 인연 맺자고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것대로 ㅎㅎㅎ 의미가 있지만, 사실은 법의 비를 내리게 하려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치를 = 悉令於義. 모든 이치에 대해서 다 깨달아 알게 하니, 이것은 法雲者의 행한 바 도로다. 별을 두 개나 쳐 놓았어요. 그 다음 밑에는 별이 세 개 쳐진 대목입니다.
能於佛智及解脫에,
능히 부처님의 智. 깨달음의 지혜와 그리고 해탈에 대해서,
深生淨信永不退하야, 깊이 청정한 믿음을 내어서 영원히 퇴전하지 아니해요. 부처님의 깨달음과 해탈의 문제에 대해서 淨信을 내요. 그것도 깊이 믿음을 내요. 深信같이 좋은 것이 없습니다. 오늘 현수품, 두 번째 권이 나왔는데요. 그것이 신심에 대한 이야기 많잖아요.
永不退하야 以信而生智慧根하니,
믿음으로써 지혜의 뿌리를 탄생시킨다. 믿음에서 지혜가 자라요.
믿음에서 지혜가 자라니 此善學者의 所行道로다. 이것은 善學者.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제가 이 구절을 읽다가 별을 세 개를 쳐 놓았어요. 위에는 별을 두 개 치고요. 아~~ 부처님의 지혜, 깨달음의 지혜와 그리고 해탈. 그것은 청정한 믿음을 깊이내서 영원히 물러서지 않는 것. 공부 조금 하다가 “에~ 이 재미없다.” 고 그러고, 이것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심으로 하는 겁니다. 신심은 재미하고 차원이 다릅니다.
차원이 다르다고요. 아~~ 마음에서...
아무 것도 손에 잡히는 것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으면서 가슴으로부터 뜨거운 신심이 고동치는 것은 이것은 못 말리는 겁니다.
以信而生智慧根. 믿음으로써 지혜의 뿌리를 내게 하는 善學者.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 = 善學者. 참~~ 좋은 표현이지요?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能於一念悉了知 一切衆生無有餘하야,
일체 중생을 남김없이 한 생각에 다 알아서,
了彼衆生心自性하니, 저 중생들의 마음 자성을 깨달아아니,
達無性者所行道로다. 無性 = 성품의 실체가 없다. 이 말입니다.
성품은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을 통달한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이 구절도 참 좋은 이치입니다. 깊은 이치지요?
(4) 入佛種性
法界一切諸國土에 悉能化往無有數호대
其身最妙絶等倫하니 此無比行所行道로다
佛刹無邊無有數에 無量諸佛在其中이어든
菩薩於彼悉現前하야 親近供養生尊重이로다
菩薩能以獨一身으로 入於三昧而寂定호대
令見其身無有數하야 一一皆從三昧起로다
入佛種性. 부처님 種性에 들어가다.
法界一切諸國土에, 법계의 모든 국토에,
悉能化往無有數호대, 다 변화하여 수가 없이 무수히 가되,
其身最妙絶等倫하니, 그 몸이 가장 아름답고 미묘해서 等倫.
짝할 것이 끊어졌으니, 그 누구와도 짝할 수 없으니,
此無比行所行道로다. 이것은 비교할 수 없는 행을 하는 이의 행한 바 도로다.
佛刹無邊無有數에, 부처님세계가 가이없고 숫자가 없음에,
無量諸佛在其中이어든, 한량없는 부처님이 그 가운데 계시니,
菩薩이 於彼에 悉現前하야, 보살이 또, 부처님이 계시면 으레 보살이 있지요. 보살이 거기에 다 현전해서 親近供養生尊重이로다.
친근하고 공양해서 존중심을 내더라.
菩薩이 能以獨一身으로, 보살이 능히 홀로, 한 몸으로써
入於三昧而寂定호대, 삼매에 들어가서 고요히 선정에 들어있어요.
令見其身無有數하야, 그런데 그 무수한 몸을 보게 한다. 이 말입니다.
한 몸이 선정에 들었는데, 무수한 몸을 보게 하되,
一一皆從三昧起로다. 그것이 전부 삼매로부터 일어났더라.
낱낱이 다 삼매로 쫓아 일어났도다.
(5) 入佛慈悲種性
菩薩所住最深妙하며 所行所作超戲論하며
其心淸淨常悅樂하야 能令衆生悉歡喜로다
諸根方便各差別을 能以智慧悉明見하고
而了諸根無所依하니 調難調者所行道로다
能以方便巧分別로 於一切法得自在하야
十方世界各不同에 悉在其中作佛事로다
諸根微妙行亦然하야 能爲衆生廣說法하니
誰其聞者不欣慶가 此等虛空所行道로다
入佛慈悲種性. 부처님의 자비종성에 들어가다
菩薩所住가 最深妙하며, 보살이 머문바가 가장 깊고 미묘하며,
所行所作이 超戲論(소행소작초희론)하며,
보살이 행하는 바ㆍ보살이 짓는 바가 超戲論이라.
戲論을 초월했다는 말은 장난을 다 초월했다. 이 말입니다.
그것 뭐 심심풀이로 놀이삼아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其心淸淨常悅樂(기심청정상열락)하야,
그 마음이 청정해서 항상 기쁘고 즐거워요.
能令衆生悉歡喜로다.
모두 다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환희를 내게 하는 도다. 生歡喜로다.
諸根方便各差別을, 온갖 근기들,
모든 근기들이 거기에 해당되는 방편들이 각각 차별해요.
能以智慧로 悉明見하고, 능히 지혜로써 다 환하게 그것을 보고,
而了諸根無所依하니, 모든 근기들,
온갖 근기들을 알아서 의지하는 바가 없게 하니,
調難調者所行道(조난조자소행도)로다.
조복하기 어려운 이를 조복한 사람. 말 잘 듣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야 쉽지요. 그런데 말 잘 안 듣고 조복하기도 어렵고 도대체 고집불통인 인간을 잘 다스려서 조복시키는 사람. 제일 어려운 일이지요.
調難調者. 조복하기 어려운 이를 조복하는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을 조어사라고 그러잖아요. 調御師.
야생마를 길들여서 아주 말 잘 듣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馬로 만드는 것.
아주 제일 어려운 일이거든요. 부처님은 고집불통의 중생들. 아주 어리석고 어리석은 중생들을 잘 가르치고 가르쳐서, 그야말로 야생마를, 집에서 키우는 타는 말. 어린 아이가 타도 아주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그런 말로 만들듯이, 중생들을 부처님은 그렇게 한다. 그런 의미가 조어장부입니다.
調御丈夫라는 말이 그런 뜻입니다.
옛날에 제주도에 말몰이꾼이 있었습니다.
야생마를 길들여서 집에서 키우는 말로 만드는 그런 사람들이 말몰이꾼인데, 그것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전라도에 어디 아주 무서운 짐승이 나와서 동네를 막 헤집고 다니면서 피해를 많이 준다는 그런 말을 듣고,
‘지가 아무리 사납다한들, 제주도 한라산 말보다 사나우랴? 내가 가서 그것 길들이겠다.’ 어떤 용감한 청년이 갔어요. 그 짐승이 어디서 지나가느냐?
어디로 지나간다고 가르쳐 주는 겁니다. 거기에 마침 나무가 있어요.
말을 길들일 때 밧줄을 준비해갑니다. 오랏줄을 준비해서 말이 지나가면 그 나무위에서 말위에 뛰어내려서 말 등에 타고 달리면서 그 오랏줄을 말목에 묶어요. 그래서는 말을 꼼짝 못하게, 지치도록 해서 길들여서 야생마를 집에 말로 만들거든요.
그런 식으로 하려고 가서 했는데, 그것이 사실은 호랑이입니다.
제주도사람인데 호랑이를 알 리가 있나요? 제주도 말보다는 덜 사나울 것이라 생각하고 가서, 마침 호랑이가 뛰어나오는데 제주도에 말 잡듯이 그렇게 해서 타기는 탔어요. 올라타서 달리는데 비호같이, 그야말로 비호처럼 달리는 겁니다. ‘세상에 무슨 말이 이렇게 빠른 것이 있는가?’ 하고, 지 딴에는 말인 줄 알고는 밧줄로 목을 묶는다고 묶었는데 잘 묶어지나요? 호랑이 등을 타고는 밤새도록 달리는 겁니다. 어디를 달리는지도 모르게 밤새도록 달린 겁니다. 그래서 날이 희끄무레하게 샐 때, 말도 지치고 사람도 지쳐서 다 널브러져 버렸어요. 말이 죽었어요. 알고 보니까 호랑이었어요.
그 청년이 그래도 나중에 깨어나서 아주 유명한 사람으로 기록이 됐습니다. 이 이야기 처음 듣습니까? 허허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부처님도 그와 같이 말몰이꾼. 야생마말몰이꾼과 같이 인간을, 어떤 고집불통의 인간도 부처님 앞에 오면... 부처님 앞에 와서 꼼짝 못하고 아주 제대로 된 수행자로 변모시킨 그런 사람들 많이 있었잖아요.
能以方便巧分別로, 능히 방편으로 잘 분별하는 것으로써
於一切法得自在하야, 일체 법에 자재함을 얻어서
十方世界各不同에, 시방세계에 각각 같지 아니함에
悉在其中作佛事로다. 모두 다 그 가운데서 불사를 짓는 도다. 그랬습니다.
諸根微妙行亦然하야, 온갖 근기가 미묘하며 그 행도 또한 그러해요.
能爲衆生廣說法하니, 능히 중생을 위해서 널리 설법하니,
誰其聞者不欣慶(수기문자불흔경)가? 누가 그 법문 소리 듣고,
미묘한 법문 소리ㆍ설법소리 듣고서 不欣慶 = 기뻐하지 않겠는가?
此等虛空所行道로다. 이것은 허공과 같은 사람. 허공과 같은 이가 행한 바 도로다. 공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지요.
(6) 入佛智慧種性
智眼淸淨無與等하야 於一切法悉明見하고
如是智慧巧分別하니 此無等者所行道로다
所有無盡廣大福을 一切修行使究竟하야
令諸衆生悉淸淨하니 此無比者所行道로다
普勸修成助道法하고 悉令得住方便地하야
度脫衆生無有數호대 未曾暫起衆生想하며
一切機緣悉觀察하야 先護彼意令無諍하고
普示衆生安隱處하니 此方便者所行道로다
入佛智慧種性. 부처님의 지혜종성에 들다.
저 위에는 부처님의 자비종성에 들고요.
智眼淸淨無與等하야, 지혜가 청정해서 더불어 같을 이가 없어요.
於一切法悉明見하고, 일체 법에 대해서 다 밝게 보고,
如是智慧巧分別(여시지혜교분별)하니, 이와 같은 지혜로써 잘 분별하니,
此無等者所行道로다. 이것은 같을 이 없는 사람.
최고인 사람. 오직 하나 뿐인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所有無盡廣大福을, 있는바 다함없는 광대한 복을
一切修行使究竟(일체수행사구경)하야,
일체 수행으로 하여금 다 성취케 해서, 여기서 究竟은 성취입니다.
다 완성하게 해서,
令諸衆生悉淸淨하니,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다 청정하게 하니
此無比者所行道로다. 이것은 비교할 바 없는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普勸修成助道法(보권수성조도법)하고,
널리 助道法닦아 이루기를 권하고,
悉令得住方便地하야, 다 하여금 方便地에 머물게 해서
度脫衆生無有數호대, 중생들을 度脫함에 그 수가 없어서
未曾暫起衆生想(미증잠기중생상)하며,
일찍이 잠깐도 중생이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니,
저 앞에 있었던 이야기하고 같습니다. 중생을, 무수한 중생들을 해탈시키지만, 일찍이 잠깐도 중생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
본래부처다. 이 말입니다. 본래부처다.
一切機緣悉觀察(일체기연실관찰)하야, 일체 機緣들을 다 관찰해서
先護彼意令無諍(선호피의영무쟁)하고,
저 뜻을 잘, 마음을 다 보호해서 다툼이 없게 하고,
普示衆生安隱處하니, 중생들에게 편안한 곳을 널리 보이니,
此方便者所行道로다. 이것은 방편을 잘 쓰는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7) 諸佛의 眞實語를 學習
成就最上第一智하고 具足無量無邊智하야
於諸四衆無所畏하니 此方便智所行道로다
一切世界及諸法에 悉能碍入得自在하고
亦入一切衆會中하야 度脫群生無有數하며
十方一切國土中에 擊大法鼓悟群生하야
爲法施主最無上하니 此不滅者所行道로다
↑64강 - 4
↓64강 - 5
一身結跏而正坐하야 充滿十方無量刹호대
而令其身不迫隘하니 此法身者所行道로다
能於一義一文中에 演說無量無邊法호대
而於邊際不可得하니 此無邊智所行道로다
於佛解脫善修學하야 得佛智慧無障碍하고
成就無畏爲世雄하니 此方便者所行道로다
了知十方世界海하고 亦知一切佛刹海하며
智海法海悉了知하니 衆生見者咸欣慶이로다
或現入胎及初生하며 或現道場成正覺하야
如是皆令世間見하니 此無邊者所行道로다
無量億數國土中에 示現其身入涅槃호대
實不捨願歸寂滅하니 此雄論者所行道로다
堅固微密一妙身이 與佛平等無差別호대
隨諸衆生各異見하니 一實身者所行道로다
法界平等無差別이나 具足無量無邊義어든
樂觀一相心不移하니 三世智者所行道로다
於諸衆生及佛法에 建立加持悉究竟하야
所有持力同於佛하니 最上持者行斯道로다
神足無碍猶如佛하고 天眼無碍最淸淨하며
耳根無碍善聽聞하니 此無碍意所行道로다
所有神通皆具足하며 隨其智慧悉成就하야
善知一切靡所儔하니 此賢智者所行道로다
其心正定不搖動하고 其智廣大無邊際하야
所有境界皆明達하니 一切見者所行道로다
已到一切功德岸하야 能隨次第度衆生호대
其心畢竟無厭足하니 此常勤者所行道로다
三世所有諸佛法을 於此一切咸知見하야
從於如來種性生하니 彼諸佛子行斯道로다
隨順言詞已成就하고 乖違談論善摧伏하야
常能趣向佛菩提하니 無邊慧者所行道로다
諸佛의 眞實語를 學習. 제불의 진실어를 학습하다.
成就最上第一智하고, 최상가고 제일가는 지혜를 성취하고
具足無量無邊智하야, 무량무변한 지혜를 구족해서,
於諸四衆無所畏하니, 모든 사부대중이 두려운 바가 없게 하니,
此方便智所行道로다. 이것은 方便智의 所行道로다.
방편지혜를 가진 사람이 행한 바 도로다.
一切世界及諸法에, 일체세계와 그리고 모든 법에,
悉能遍入得自在하고, 다 두루ㆍ두루 들어가서 자재함을 얻고,
亦入一切衆會中하야, 또한 일체대중 가운데 들어가니,
度脫群生無有數(도탈군생무유수)하며,
무수한 중생들을 度脫. 제도해서 해탈하며,
十方一切國土中에, 시방일체 국토가운데서,
擊大法鼓悟群生(격대법고오군생)하야,
큰 법의 북을 두드려서 중생들을 모두 다 깨우치게 해서,
爲法施主最無上하니, 법의 시주가 되어서 가장 높으니,
아~~ 참, 좋은 말이지요. ‘법의 시주’ 중요합니다. ‘법의 시주’
법의 시주가 되어서 가장 높으니,
드디어 서울에 조그만 콧구멍만한 절, 반야사에서 법공양 실을 하나마련 했대요. 그러면 그 절은 작은 절이 아니라, 서울 시내를 다 포용하니까 서울 시내만 하지요. 사람들이 하도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마음만 내면 가서 얼마든지 법을 퍼 나를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전번에 제가 그런 이야기했더니, 고맙게도 발심을 해서, 너무ㆍ너무 고맙게도 법공양 실을 하나마련 했습니다. 나중에 꼭 한번 가봐야 되겠습니다. 아~~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제가 바라는 바를 만족시키는 일입니다. 아직 만족은 아니지만...
법공양이, 여기 뭐라고요?
법시주자가 되어서 가장 높으니 = 最無上하니 = 가장 높으니
此不滅者所行道로다. 이것은 滅이없는, 끝남이 없는 사람이 행한 바 도다.
법을 자꾸 펴야, 2600년 전에 부처님이 설법했는데, 그 법을 자꾸ㆍ자꾸 전해서 오늘 날 260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여기까지 전해졌잖아요.
우리 손에까지 와 닿았잖아요. 이것이 누가 전하지 아니했으면, 이것이 우리 손에 와 닿지 않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도 이렇게 공부하고 감동하고, 거기서 어떤 깨달음이 있고 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꾸 전하세요.
자꾸 전하면 뒷사람들에게 또 그것이 전해지고ㆍ전해지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법공양ㆍ법공양하는 겁니다.
여기는 法施主그랬네요. 법시라는 말도 있고요.
不滅者. 그래야 법이 멸하지 않는 겁니다. 여기에 멸하지 않는 사람이 행한 바 도라고 했잖아요. 不滅者所行道라. 그렇습니다. 인연 따라서 염불도 좋고ㆍ설법도 좋고ㆍ간단한 뭐도 좋고, 인연 따라서...
一身結跏而正坐(일신결가이정좌)하야,
한 몸이 결가부좌. 가부좌...
|
첫댓글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永不退하야 以信而生智慧根하니...고맙습니다._()()()_
杜口毘邪...고맙습니다 _()()()_
以信而生智慧根. 믿음으로써 지혜의 뿌리를 내게 하는 善學者.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
_()()()_
_()()()_고맙습니다.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以信而生智慧根...믿음으로써 지혜의 뿌리를 탄생시킨다. 고맙습니다. 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_()()()_
_()()()_
이것은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심으로 하는 겁니다. ... _()_
·以信而生智慧根.
法施主 = 不滅者.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
-()()()-
_()()()_
南無大方廣佛華嚴經 南無大方廣佛華嚴經 南無大方廣佛華嚴經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以信而生智慧根. 믿음으로써 지혜의 뿌리를 내게 하는 善學者.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
以信而生智慧根. 믿음으로써 지혜의 뿌리를 내게 하는 善學者. 공부하기 좋아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