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를 고를 때, 혹은 직업을 찾을 때 누군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내 적성에 맞는 길을 안내해 주었더라면 다른 길을 갔을 텐데 하는 후회를 누구나 한번쯤 했을 것이다. 이같은 ‘후회’를 비즈니스로 풀어낸 사람들이 있다.
조진표 와이즈멘토 대표는 “인생에 안내자가 필요하다면 그때는 학생 시절”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학창 시절 학생들은 대학 입학 시험에만 몰두하고, 부모들은 일에 바빠 그만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만다. 결국 자녀의 미래는 학교 성적으로 결정나거나 점쟁이의 손에 맡겨지기도 한다.
조대표는 “한국에 1만2천개의 직업이 있지만 어머니들이 아는 직업은 의사·판사·변호사·교수·치과의사 등 다섯가지밖에 없다”며 “대부분 가정은 취약한 정보를 갖고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직장인들은 학창 시절부터 직장을 구할 때까지 늘 수많은 경쟁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뜨고 있는’ 분야만을 고려해 학과와 직업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요즘이라고 달라진 것이 없다. 부모들은 “이번에도 우리 아이를 막차 태워 보냈다”는 답답한 마음을 갖고 있다.
조대표는 “이러다 보니 아이들은 30대 초반까지도 적성에 맞는 학과나 직업을 찾아 헤매고, 부모들도 10년 이상 교육비를 지출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키는 것보다 직장을 구할 때까지 ‘멘토’(Mentor·정신적 스승)를 붙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조대표는 서울 강남의 학원가에선 꽤 유명하다. 그가 유명세를 탄 이유는 형 때문이다. 그의 형 진만씨는 서울 학원가에서 실력을 알아주는 1급 논술강사였다. 그러나 2001년 32세의 나이에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조씨의 장례식엔 학생들이 줄을 서서 추모하기도 했다. 조대표는 형과 함께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외공부가 아니라 인생의 길을 발견해주는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지만 형의 죽음으로 좌절하고 말았다. 외국계 컨설팅업체에서 기업 컨설팅을 하던 조대표는 올해 3월 형의 유지를 따르기로 결심하고 학생들의 조언자 그룹을 결성, 와이즈멘토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조대표가 운영하는 와이즈멘토는 마치 기업의 장단점을 파악해 미래의 수종사업을 찾아내듯 학생들의 적성에 맞춰 학과나 진로를 선택하도록 도와준다. 먼저 학생을 만나 흥미와 적성을 찾아내고, 부모의 기대와 경제력을 파악한다. 부모의 경제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과도한 교육비 지출을 막기 위해서다(미국에선 이미 교육비 과다 지출로 중산층의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맞벌이의 함정’이 출판됐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학생이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10∼15년 뒤 한국 사회의 변화를 예측해 현재 뜨는 직업이 아니라 앞으로 뜰 직업을 소개해준다(예를 들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어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성장한 분야는 금융·건강·교육 산업).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한국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고 학생·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진로를 선택토록 돕는다.
와이즈멘토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 눈에 띄는 것은 학생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문가들을 멘토로 붙여준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이들을 만나 다양한 직업의 세계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부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미리 알 수 있다. 와이즈멘토에선 1백여명의 전문가 자문단을 확보,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학생과 부모에게 제공한다. 현재 3백여명의 학생이 와이즈멘토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고 있다.
와이즈멘토가 학생들을 위한 ‘멘토’를 자임하고 나섰다면, 샐러리맨들의 ‘인생코치’를 맡겠다고 나선 곳이 있다. 한국코치협회 회장이자 한국리더십센터 김경섭 대표는 지난 11월 국제코치연맹 초대 회장을 지낸 샌디 바일러스를 한국에 초청, 기업가·샐러리맨 대상의 대규모 코치 대회를 국내 처음으로 개최했다.
김경섭 회장은 “미래의 야망을 이뤄주기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미국에선 인생코치(Life Coach)라고 부른다”며 “문제 해결의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조언자(advisor)의 역할이라면 코치는 정답을 찾아가도록 용기를 북돋워주고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1995년 국제코치협회가 미국에서 출범한 뒤 협회는 지금까지 51개국에서 온 11만5천명을 코치로 훈련시켜왔다. 바일러스는 “포천지에 열거된 1천개의 대기업이 대부분 코치를 두고 있다”며 “미국에선 3만5천명의 코치가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의 연봉은 능력과 인지도에 따라 격차가 큰데 대략 4만∼60만달러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 코치란 직업이 발달하게 됐을까. 바일러스에 따르면 미국의 샐러리맨 중 50%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이들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주는 사람이 필요했고, 이 역할을 코치란 직업이 맡게 됐다고 한다.
초기엔 재무설계사들이 코치로 활동했지만 고객이 재무설계뿐 아니라 회사내 갈등, 미래의 목표, 가정 불화 등에 대해서도 조언을 요구하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대거 코치로 유입됐다.
국내에선 코치의 역할에 대해 생소하지만 일부 기업들은 코치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LG그룹 임원들이 미국에서 온 코치들로부터 리더십에 대해 배웠는가 하면, 두산중공업은 간부급 사원들이 코치가 되는 훈련을 받았다.
두산중공업 프로젝트에 동참한 이영숙 한국인 코치는 “상무·부장·차장 등이 코치가 되는 훈련을 받았고, 위에서부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골치 아픈 노사 문제도 원활하게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치의 역할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질문하는 사람’일 것이다. 회사 실적이 약한 직원들을 불러놓고 야단치거나 정답을 보여준다면 ‘자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코치들은 질문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정답을 찾도록 돕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보기술(IT)업계 대표의 실례를 보자. 그는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직원 셋을 두고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이었다. 전체 직원회의에서 공개 망신을 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얼마 전 코치 과정을 마친 경험을 적용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우선 ‘지각대장들’을 불러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왜 지각하느냐, 내년 승진 대상자들인데 안타깝다, 회사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묻자 그들은 뜻밖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회사내 부서간 칸막이가 높아 얼굴조차 볼 수 없어 직원들 사이에 화합하는 분위기가 사라졌고, 결국 회사생활이 재미없어 늦게 나오게 됐다는 것이었다.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사장은 칸막이를 없애거나 낮추었고, 회사 분위기와 지각대장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김경섭 한국코치협회 회장은 코치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업가들이나 샐러리맨들은 미래 계획을 세우는데 불안해한다. 계획을 세우는데 용기를 주고 차근차근 길을 제시해준다면 성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한국의 미래가 어둡다는 얘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이때, 미래를 밝혀준다는 인생코치의 등장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한국의 미래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